다크 피닉스의 알은 보물 중의 보물이다. 섭취하며 큰 힘을 얻을 수 있어 지옥의 대공들도 탐내는 물건이고 부화한다면 마왕급의 다크 피닉스를 얻을 수도 있다.
천유강에게는 다른 의미로 각별했다. 강제적으로 첫사랑이 된, 지금은 마계 공작 서열 1위인 리어즌 발트란의 부인이 된 마이트가 다크 피닉스다.
그 후로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가슴 속에 깊숙이 새겨진 첫사랑이라는 글자는 다른 기억으로 박박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이건 꼭 얻어야 한다.
“낚시 한 번에 얼마라고 했죠?”
“100 플레입니다, 손님.”
“100 플레······.”
골드보다 가치가 높은 플레다. 그런 플레가 100이나 필요하니, 한 번 낚시에 거의 1억이 드는 셈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서비스로 공짜로 기회를 드리죠.”
“그건 고맙군요.”
상점 주인이 건넨 작살은 투창처럼 던져서 물고기를 아니, 괴수들을 잡을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작살이 꽂히면 낚싯대에 달린 도르래를 돌려서 끌어오면 된다. 단순하지만 물속을 빠르게 움직이는 괴수들을 정확히 맞추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여기 보시면 잡은 물고기에 해당하는 포인트가 나와 있습니다.”
상점 주인이 준 종이에는 괴수들의 종류가 나열되어 있었고 해당하는 포인트도 적혀 있다. 대충 계산해 봐도 만 포인트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해보겠습니다.”
“작살을 던지면 바로 시간이 돌아갑니다. 1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잡으세요.”
이제까지 보아왔던 낚시터 중에서 가장 특이한 곳이다. 보이지 않는 경계에 물이 막혀 있고 그곳으로 작살을 던져서 거대한 물고기 몬스터를 잡아야 한다. 투창에도 일가견이 있던 천유강이기에 내심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물고기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지만, 그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물살을 가르는 작살을 느끼자마자 황급히 몸을 돌려 작살을 피해냈다.
“이런…….”
포인트를 많이 주는 물고기는 더 날렵했다. 마치 비웃는 것처럼 작살 주변을 유유히 돌아다녔다.
아무리 힘껏 던져도 잡히는 것은 많지 않다. 10여분을 낭비하고 나서야 이것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요령만으로는 안 된다는 건가?”
교활하고 날렵한 물고기 괴수들을 잡기 위해서는 힘과 요령으로는 부족했다. 적절한 스킬 활용이 중요했다.
“가속!”
오피툴라토르가 준 엑셀러레이터라는 직업은 아쉽게도 전사계 직업이 아니라 보조 직업이었다. 직업소개소에서 직업을 바꾸자마자 스킬 하나를 얻었는데 그게 지금 사용한 가속이라는 스킬이었다.
가속 스킬은 다양하게 쓸 수 있었는데 적에게 사용하면 현재 적용 중인 버프의 지속 시간을 빨리 돌리고 아군에게 쓰면 스킬 하나의 쿨 타임을 줄여준다.
짓고 있는 건물에다 사용하면 건축 시간을 단축시키고 연구 중인 시설에 쓰면 연구 기간이 준다. 그리고 무기에다가 쓰면 공격 속도가 빨라진다.
가속 스킬이 들어간 작살은 전보다 훨씬 빨랐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었다. 천유강이 던진 작살을 뚫어지게 노려보자 날아가는 도중에 이동 방향이 바꿨다. 소원 스킬을 이용해 작살을 움직인 것이다. 염동력으로 활용한 거다.
푹!
처음으로 많은 포인트를 주는 물고기를 잡았는데 무려 50포인트나 주는 물고기다.
“이거군.”
요령을 아니 같은 일을 반복하면 금방 만점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마나였다. 가속 스킬과 소원 스킬을 남발하다 보니 마나가 어느새 바닥난 거다.
스킬의 도움 없이 작살의 끝에 걸리는 눈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1시간이 지났고 천유강이 얻은 포인트는 겨우 307이었다. 만 점에는 근접하지도 못한 거다.
“허허~ 처음치고는 엄청 많이 잡았군.”
상인의 말도 장사를 위한 아부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카테고리를 유심히 보다가 문득 생각나 상인에게 물었다.
“포인트를 모았다가 한꺼번에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비싸긴 하지만 다크 피닉스의 알을 위해서는 충분히 지급할 의사도 있다. 하지만 상점 주인은 난색을 보였다.
“그건 곤란합니다. 다음에 하면 포인트는 초기화됩니다.”
“그렇군요.”
아쉽긴 하지만 그게 규칙이라면 어쩔 수 없다. 천유강은 아쉬운 대로 엠블럼을 골랐는데 물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B 등급 엠블럼이었다.
마나도 바닥났고 다시 낚시하기 위해서는 만발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낚시를 하기 위해 여기에 온 건 아니다.
천유강은 주변을 수소문해서 나가 여왕의 둥지를 지키고 있는 병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여왕님을 만나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동맹을 맺기 위함입니다.”
“외교 사신이라는 거군. 원래라면 들여보내야겠지만 지금은 때가 좋지 않소. 산란기가 시작되어 여왕님의 심기가 좋지 않으시오.”
“방법이 없겠습니까?”
“흠~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만약 여왕님이 좋아하는 천일염을 가져다주면 기분이 좀 나아지실 거요.”
“천일염이요?”
“빙하 염전에서만 난다는 희귀한 소금이오. 하지만 지금은 설인들이 점령해서 가까이 가는 것도 목숨을 걸어야 하지.”
설인은 수북한 털로 덮인 거대한 괴물이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고 눈 뭉치를 무기로 사용하는 이들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이곳 지저에서는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을 거다.
적어도 전에 빙궁 퀘스트에서 나온 맘모스 모양의 고르기아스 정도의 강함을 지니고 있을 거다. 그때는 지형과 무작위로 걸린 저주 덕분에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런 운이 따라 줄 거란 보장이 없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면 피할 수도 없다.
“알겠습니다. 제가 꼭 구해오겠습니다.”
“정말로 구해오면 여왕님을 접견하는 것을 허락하겠소.”
경비병에게 물어서 빙하 염전이라는 곳의 위치도 확실히 알아냈다. 지금은 갈 수 없고 나중에 병력들을 모두 동원해서 가야 한다.
이곳에 더 할 일이 없으니 영지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천유강을 반기는 건 항상 켈타스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얼굴도 보였다.
“안녕.”
그건 당군명이었다. 방금까지 뭘 먹고 있었는지 입가에는 빵 조각이 묻어 있었다. 천유강이 그걸 보고 입가를 가리켰지만 무슨 의미인지 못 알아듣고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천유강이 다가가 직접 부스러기를 떼어 주었다.
“자운이가 이런 건 안 말해 주냐?”
“아니. 항상 말한다.”
먹으니까 졸린 모양이었다.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더니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졸리면 자.”
“낮잠 자면 밤에 못 잔다.”
“그런 건 꼬박꼬박 지키네.”
당군명이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 나사 하나 풀린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같이 살아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이 좋다.
한 가지를 파고들면 끝장을 볼 때까지 놓지 않는데, 그럴 때는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던 것을 끝내면 잠시 공백기가 오는데, 그때는 집중력이 급하락해 멍하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지금처럼.
“오랜만에 대련이나 할까?”
“……좋다.”
천유강이 강해진 만큼 당군명의 실력도 급격히 올라갔다. 이 영지에 온 후로는 그 속도가 더 급격하게 붙었는데 그건 병력을 이끌면서 책임감과 유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언제나 홀로 지내던 당군명에게 호흡을 맞춰가며 함께하는 전투는 낯설었지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 시작한다.”
당군명과의 대련에서는 힘을 감출 필요가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뇌전을 강하게 뿜었다.
파지지직!
당군명은 몸을 강화해 천부경의 강한 출력을 감당하게 하는 천부경의 1단계 탈각(脫殼)을 이루지 못하고 2단계에 들어섰다. 그래서 강한 힘을 사용하는 것은 그녀에게 독으로 작용한다.
육체적인 면에서는 천유강이 훨씬 우위에 있지만 천부경의 2단계인 물화(物和)의 경지는 당군명이 천유강보다 한 수 위다. 그래서 장기전으로 가면 천유강이 유리하지만 모든 것을 쏟아붓는 단기전에서는 당군명이 유리하다.
대련은 승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단점을 파악하고 고치기 위해서 하는 거다. 둘이 대련은 치열하게 보였지만 실제로 상대의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은 없었다.
30분이 지나자 녹초가 된 둘을 동시에 주저앉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그래.”
같은 천부경을 사용해서 그런지 당군명과의 대련은 항상 많은 깨달음을 준다. 둘 모두 초식을 사용하지 않는 자유로운 움직임 탓에 변칙적인 수가 많다. 그 안에서 많은 동작들이 만들어지고 폐기되기도 한다.
둘은 같은 나무둥치에 등을 맞대고 앉았다.
“자운이하고는 요즘 잘 못 만나지?”
“자운이 바쁘다.”
항상 붙어 다녔던 둘이다. 하지만 급변하는 상황 때문에 무림맹은 바쁘게 움직였고 그에 속한 무인들도 덩달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당자운은 당가의 삼남이다. 형이 둘이나 있으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당가 정실은 그밖에 없어 이곳에서는 당가의 대표로 활동한다.
덕분에 둘이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보고 싶지 않아?”
배 씨 남매와는 다르게 서로를 챙기며 의지하던 의좋은 남매다. 당연히 보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당군명은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자운이에게 폐만 끼쳤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 해야 해.”
대답하는 그녀의 눈에는 강력한 의지마저 깃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동생이기에 더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거다.
“더 강해져야 해. 그리고 더 변해야 해.”
문득 그녀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고된 훈련을 하는 지가 궁금해졌다.
자신은 부모님을 낫게 하려고 목숨을 걸면서까지 위험한 일에 뛰어드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분명 그녀도 자신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없이 천유강과 필적하는 초절정 무인이 될 리가 없다.
그 이유를 물어보려다가 입을 닫았다. 지금 자신은 남의 짐을 나누어 질만큼의 여유가 있지 못하다. 그녀는 그녀대로 자신은 자신대로 목적을 위해서 힘내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그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상쾌한 바람을 맞는 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같은 시간에 수업이 있어서 수화진과 당군명과 함께 가기로 했는데 당군명의 얼굴에 늘 보이던 얼음 가면이 보이지 않았다.
“가자.”
“너…… 그 상태로 가려고?”
천유강이 묻자 당군명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하지만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는 듯이 꿋꿋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변하겠다고.”
당군명의 말은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바로 실전으로 옮겨졌다. 그 처음이 쓰고 다니던 가면을 벗는 거다. 작은 변화였지만 당군명은 밤새 고민하다가 선택한 일이다.
“가자.”
졸지에 두 미녀와 함께 등교하게 된 천유강은 뭇 남자들의 시샘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문제도 생겼다. 당군명의 미모를 본 중국 무림맹의 모용세가의 차남, 모용이현이 딴 마음을 먹은 거다.
“저게 그 여자란 말이지?”
저 정도면 넓은 중국 대륙에서도 찾기 힘든 미모다. 출생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건 마음만 먹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군명이 모용세가를 뒷배경을 둔 자신을 거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첩 정도라면 가문에서도 이해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