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몬을 만나는 길에 있는 몬스터는 마법사형 몬스터인 밴쉬였다.
여러 가지 저주 마법과 흑마법을 쓰는 마물인 밴쉬는 역시나 강력했다.
밀려드는 흑마법과 저주 마법을 피하고 공격며 힘든 전투를 이어나갔고 그렇게 밴쉬를 상대하며 1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여러 곳을 찾아 헤매었지만, 목표로 했던 바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길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곳저곳을 다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바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몇십 분이 지나자 결국 천유강은 바몬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아크 데몬인 데이드라가 있는 통곡의 강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거 곤란한데?"
통곡의 강을 1시간째 뒤지고도 데이드라를 찾지 못하자 천유강은 난감해졌다. 어쩌면 유니크 몬스터는 단 두 마리밖에 못 잡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데이드라와 바몬을 먼저 잡을 것이 나을 뻔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약 2시간여 남았다. 할 수 없이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은 전날 4위를 한 세이프 치프인 레라가 있다는 절망의 숲이었다.
레라라도 남아있기를 바라며 절망의 숲을 뒤졌다.
그렇게 30분을 돌아다니자 천유강의 레벨은 96이 되었다. 바몬을 만나기 전까지 만들려고 했던 목표 레벨인 100에는 미치지는 못하였지만, 이 정도 레벨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레벨이었다.
그렇게 절망의 숲을 뒤지던 천유강의 눈에 마족이 눈에 띄었다. 그것도 둘씩이나.
"하하하하하."
"크으윽."
그곳에는 한 마족이 다른 마족의 목덜미를 잡고 크게 웃고 있었다. 처음에는 레라가 다른 마족을 죽이고 있는 장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뜻밖에도 당하고 있는 것이 레라었다. 세이드 치프인 레라가 처참한 몰골로 상대에게 잡혀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반면에 상대는 상처하나 보이지 않고 멀쩡한 모습이었다.
"크하하하하!!! 이 사냥 대회는 내가 우승이다!!"
그 마족이 레라를 장난감처럼 나무에다 집어 던져버렸고 레라는 비참하게 금색 보석을 사용하여 사라졌다.
"하하하하 응? 누구냐?!"
그 마족은 천유강이 서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위치를 들키자 천유강은 천천히 마족이 있는 쪽으로 걸어나갔다.
"오호~~ 크크크 너였군."
뜻밖에도 마족 남자는 천유강을 아는 눈치였다.
"나를 아는가?"
"그럼 알고말고. 내가 힘을 가질 수 있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자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지?"
남자의 말에 천유강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앞의 마족에게 도움을 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크흐흐 저기를 봐라."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 누워있었다.
"마계.....황금초?"
바로 어제 천유강이 퀘스트를 깰 때 싸웠던 황금초가 힘이 하나도 없이 누워있었다.
천유강이 마지막에 죽이길 거부하고 살려두었던 그 마물이다. 이런 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우연히 너의 활약을 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 그 귀중한 황금초를 이상한 곳에 쓰더군. 고작 다 죽어가는 늙은이를 살리는 데에 쓰다니 참 멍청하지. 황금초는 다른 마족에게는 고작 치료제일지 모르지만 난 다르다. 나의 몸속에는 절반이나 신족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황금초는 나에게 엄청난 힘을 가져다주지."
남자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지이익!
마족이 팔에 힘을 주니 황금색의 기운이 손에 맺혔다. 전날 황금초가 쏘아대던 그 기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필요 없어. 이미 충분한 힘을 얻었다. 가장 세다는 바몬은 물론 데이드라와 레라도 내가 가뿐하게 이겼다. 하하하하!!!"
"무우~~~~"
황금초는 힘이 없는지 구슬프게 울었다. 머리 위에 나 있는 다른 모든 잎사귀들이 다 뜯겼지만, 아직 죽지는 않은 것이다.
"넌 이제 쓸모가 없으니 죽어라!"
마족의 손에서 기운이 뭉치더니 황금초를 향해 나아갔다.
펑!!
"호~ 역시 멍청하군. 그깟 마물을 보호하려 네가 대신 내 공격을 감수한 거냐?"
푸시시식!
황금색의 기운이 천유강의 팔에 어리는가 싶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사라졌다. 황금초를 그냥 죽게 놔둘 수 없었던 천유강이 대신 그 공격을 받아내었던 것이다.
"너도 저 녀석의 도움을 받았을 터인데 너무 심한 것 아닌가?"
태연한 척 말했지만, 마족이 가볍게 쏜 공격에 데드릭에게 받은 데미지보다 더 많은 데미지를 받았다. 무기로 막았음에도 말이다.
가지고 있는 장비 사탄의 분노가 사기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크흐흐 역시 재미있는 놈이군. 좋아 그런 의미에서........."
지잉
순간 마족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천유강의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이어졌다.
"고통 없이 보내주지."
푹
빠르게 천유강의 옆으로 이동한 남자의 기다란 손톱이 천유강의 어깨를 뚫었다.
"크윽!"
어깨를 부여잡은 천유강은 뒤로 급히 물러났다.
"크하하하! 겨우 그거냐? 네 녀석만 죽이면 나 지온이 이 대회를 완벽하게 가져가겠구나. 하하하"
‘지온? 지온이라면 전날 꼴등이었던 거 같았는데.’
지온은 전날에 성년식을 치르는 1000명의 마족들 중에서도 가장 하위에 있었던 마물이다. 그런 마족이 단지 황금초를 먹었다고 이렇게 강해진 것이다.
지온이 다시 손을 뻗자 아까와 같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장난하는 것 같은 손짓과 볼품없어 가늘어 보이는 빛 덩어리였지만 아까 받아봐서 안다. 저것에 정통으로 한 방이라도 맞는다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 전날에 황금초가 쏘았던 기운보다도 강하다.
그러니 반드시 피해야 한다.
펑!
그 빛줄기에 가격당한 산봉우리의 귀퉁이가 마치 오려낸 것처럼 사라졌다. 고열의 레이저 같은 강력한 관통 공격이었다.
그리고 지온의 무서운 점은 손가락에서 뽑아내는 빛이 전부가 아니었다. 빠른 속도를 무기로 한 근접 전투에서도 강력함을 보였다.
천유강이 공격을 하기 위해서 붙었을 때는 이미 그곳에 지온은 존재하지 않았다. 천유강이 손을 뻗었을 때 지온은 잔상만 남기고 사라졌고 그다음에 천유강의 사각에서 손톱이 날아왔다.
이제까지 천유강은 자신의 빠른 속도를 무기로 해서 적들을 상대했었다. 빠른 연계 공격과 상대의 공격 거리를 허용하지 않아서 한방이 강하지는 않지만, 천천히 야금야금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 천유강의 장기다.
그런데 지온의 수법이 천유강과 닮아있었다.
문제는 지온의 스탯이 천유강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천유강의 공격은 번번이 빗나갔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김없이 전혀 예측 못 한 곳에서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공격이 느껴졌다.
"크윽!"
다시 쏜살같이 날아온 공격에 반격할 틈도 없이 천유강은 황급히 허리를 숙여야 했다.
"크하하! 피하는 것은 제법이구나.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지온의 말이 맞다. 지금은 피하는 것이 고작이다.
블레이드 크롤도 빠르긴 했지만, 직선으로밖에 공격 못 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공략해서 쉽게 승리를 가져갔다. 하지만 지온은 움직임이 자유로웠기 때문에 공격 경로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웠다.
“약하군. 너는 좀 더 수련을 쌓고 와야 했다.”
힘과 스피드 모두 지온에게 더 우위가 있었다. 거기에 사기적인 원거리 스킬까지 있으니 천유강이 속절없이 밀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투는 그게 다가 아니다.
“나의 빠르기를 최강이다. 이제 죽어라!"
턱
그런 지온의 공격은 거짓말처럼 천유강에게 막혔다. 천유강이 자신의 관자놀이에 거의 닿을 것 같은 지온의 손목을 손으로 잡은 것이다.
처음으로 지온의 공격이 실패한 것이다.
"아니?"
"놀라울 정도로 강하고 빠른 공격이다 그런데........“
천유강이 주먹이 그대로 지온의 명치에 박혔다.
“쿠엑!”
지온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땅에 데굴데굴 굴렀다.
“왜 이렇게 어설프지?”
“이 새끼!”
지온이 욕을 하면서 일어났을 때는 이미 천유강이 바로 코앞까지 붙은 상태였다.
놀란 지온이 황급히 피하려 했지만 다가온 천유강이 그의 얼굴을 손톱으로 그어버렸다.
"크악!"
얼굴에 피를 철철 흘리며 지온이 뒤로 물러났다.
“속도와 힘은 좋지만 정작 손에 담긴 파괴력은 부족해. 전투 기술이 자신의 육체를 못 따라갈 만큼 형편없다는 소리야.”
천유강이 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온에게 걸어가며 계속 말했다.
“자신의 실력을 가다듬으며 그 방향성에 의문을 가져본 적 있나? 손에 닿을 것만 같은 경지를 얻으려 밤새워 고민한 적은?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해 보고 다시 정립한 적은?”
“그게 무슨 개소리냐? 난 그런 것 없이도 이미 충분한 힘을 얻었어!”
지온이 발악하듯 손을 내저어 빛무리를 사방으로 쏘아댔다. 하지만 아무리 빠른 투사체라고 해도 정교한 조준 없이 쏘아대는 공격을 천유강이 맞을 리 없었다.
“당연히 없겠지. 지금 넌 거대한 힘을 손에 쥔 다섯 살 어린아이 같다. 자신의 것도 아니면서 단지 힘에 심취했을 뿐, 정당한 노력 없이 갑자기 힘만 강해진 자의 한계지."
천유강의 말에 지온은 공격당한 얼굴을 부여잡고 이를 갈았다.
“큭! 건방진 놈, 겨우 한 번 공격에 성공해놓고 의기양양하구나.”
지온은 이번에는 함부로 공격하지 않고 천유강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단지 주위를 도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생성되더니 주변 사물들을 끌어올렸다. 그만큼 빠른 움직임이었고 너무 빨라서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동시에 돌고 있는 것 같은 착시 현상까지 만들었다.
“크크크! 어떠냐?”
지온이 말하니 마치 사방에서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천유강은 그것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잡스럽다.”
천지를 울리는 지온의 움직임에도 천유강의 평가는 박했다.
“허세를 부리지 마라!”
주변을 돌던 지온이 번개처럼 천유강을 노리고 손톱을 휘둘렀다.
속도도 속도지만 각도와 타이밍도 절묘했다. 앞에 천유강이 비하하긴 했지만 그건 상대적인 실력일 뿐, 절대 방심할 만한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천유강은 그 공격을 가볍게 한 걸음 움직이는 것으로 부드럽게 피했다.
너무나도 태연한 천유강의 움직임에 지온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우연이다!!!”
숭~ 숭~ 숭~
계속 주위를 돌며 지온이 마치 매처럼 날아서 천유강의 사각을 노렸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들어오는 빠른 공격에 천유강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지만 천유강의 표정에는 전혀 위기감이 없었다.
"크하하하 역시 입만 산 놈이었구나. 곧 편안하게 죽여주마!"
천유강이 반격을 하지 못하고 피하기만 하자 다시 지온의 기세가 올랐다. 천유강이 자신의 공격에 꼼짝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비록 자신의 공격이 유효타가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천유강을 쓰러트릴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천유강은 지온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안을 관조하며 이제까지 쌓아 올린 모든 경험들을 녹여 전투에 반영하고 있었다.
'생각하고 피하면 늦는다. 동작이 생각보다 빨라야 해.'
지온의 빠르기는 현재 천유강의 민첩 스탯으로는 눈으로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머리보다 본능으로 싸워야 한다.
“죽어라!”
그 순간 다시 한번 화살처럼 지온이 튀어나왔다.
스윽
다시 천유강이 한 걸음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러자 지온이 돌고 있던 것을 멈추고 우뚝 멈춰 섰다.
"크윽! 어떻게?"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지온의 가슴팍에는 한줄기 새빨간 자상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천유강의 반격이 성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