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어. 그럼 포인트 하나의 가치는 얼마나 되지?”
[1 포인트에 약 1 쿠퍼 가치의 아이템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디멘션의 화폐 단위는 쿠퍼, 실버, 골드로 나뉘는 데 100 쿠퍼가 1 실버와 같고 100 실버가 1 골드와 같다.
“10,000 포인트를 얻어야 1골드 가치의 아이템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아직은 튜토리얼이라서 퀘스트 완료 보상과 몬스터를 잡았을 때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건 좀 더 경험해 봐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 포인트에 대한 개념은 알았고 다른 보상도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을 보스를 잡으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어.”
도우미의 말에 천유강은 다시 오크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혹시나 하고 상태창을 확인해 보았는데 경험치도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험치도 오르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곳에서의 전투를 통해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은 디멘션 세계에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즉 여기서 레벨이 오르면 디멘션 게임에서도 레벨이 오른다는 거지? 그건 도움이 되겠어.”
천유강은 솔로 플레이만 해왔기 때문에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만 얻는 엠블럼을 비교적 많이 얻을 수 있었지만 다른 유저들에 비해서 레벨은 적은 편에 속했다. 균열 안에 던전에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면 부족한 레벨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거다.
어느덧 군락 밖의 모든 오크가 천유강의 손에 처리되었다. 그러자 군락 안에 있는 집에서 사람들의 해골로 장식이 된 커다란 지팡이를 든 오크가 나타났다.
[보스 - 오크 주술사]
[LV 200]
보스는 일반적인 필드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오크 주술사였다. 보스급 몬스터라서 능력치 보정이 되어 일반 오크 주술사보다는 강력하겠지만 그래도 레벨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다.
천유강이 빠르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몇 번 찌르자 주문 한 번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져 버렸다.
툭!
오크 주술사가 쓰러지면서 이상한 아이템을 떨어트렸는데 이곳에서 처음으로 얻는 아이템이었다.
[균열 안에서는 몬스터를 죽여도 아이템을 획득할 수 없고 오직 최종 임무를 클리어해야만 단 하나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아이템은 뭐가 다른가?”
[이곳에서 획득한 아이템은 포인트를 소모하지 않아도 현실 세계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소유권을 양도하지 않는다면 디멘션 세계에서도 소지하고 있을 겁니다.]
“.........엄청난 말인데 그건,”
[튜토리얼에서는 특별히 유니크 등급 이상의 아이템 획득이 가능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던전에서 꼭 유니크 급의 좋은 아이템이 나올 거라는 보장은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높은 레벨의 던전일수록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증가합니다.]
“유니크라....... 그건 고맙군.”
천유강은 아이템에 다가가 그것을 집어 보았다.
볼테르의 문장
(레전드)
오크들의 사냥의 신인 볼테르의 힘이 담긴 문장. 볼테르를 섬기던 주술사 구다르가 인간의 마을 7개를 몰살시켜 그 원념으로 만들었다.
문신 형태로 장비할 수 있으며 한번 문신으로 세기면 죽기 전까지 해제할 수 없다.
능력치 : 행운 + 777
레벨 업 시에 보너스 스탯 +1
체력이 5% 이하로 떨어지면 폭주한다.
갑옷을 착용할 수 없다.
몬스터에게 위협 증가
(오크 주술사 전용)
[축하드립니다. 레전드 아이템이 나왔데요. 제가 베타 테스트 하는 동안 레전드급 아이템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도우미의 축하 메시지에도 천유강은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단점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물론 장점도 상당하다.
행운 스탯이 높으면 아이템 드랍율도 오르고 크리티컬 수치와 확률 등 다양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서 모든 플레이어가 올리길 원하는 스탯이었다.
이점이 많지만 모든 스탯 중에서 유일하게 행운 스탯만 레벨 업을 통해서 얻는 보너스 스탯으로는 올릴 수 없다.
그래서 행운 스탯은 칭호나 엠블럼 혹은 특별한 이벤트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지만 그 상승 폭은 미미하다.
하지만 페널티도 만만치 않았다. 갑옷을 못 입는다는 것은 체력 에너지에 투자를 많이 안 한 천유강에게는 커다란 제약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문장은 착용이 불가능하다.
“이거 오크 주술사 전용 템인데?”
이 아이템에는 종족 제약이 걸려 있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오크였다.
천유강은 민첩을 중시하는 전사 타입이라서 힘에 이점이 있고 민첩에 불리함이 있는 오크는 절대 피하고 싶은 종족이다.
그러자 도우미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튜토리얼에서 얻는 아이템에 한해서 특별히 그런 제한을 없애 드립니다.]
“서비스가 좋네. 근데 이건 문신인데....... 이거 사용하면 현실에서도 문신이 그려지는 거지?”
[그렇습니다.]
문장을 몸에 새겨서 능력을 얻는 문장사 같은 직업도 인기 있는 직업이지만 이 문장을 몸에 새기면 진짜 현실에서도 문신이 생긴다.
문신을 혐오하지 않지만 자신의 몸에 새기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다.
“행운이 이 정도 페널티를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는 건가?”
이 문장을 세기면 갑옷을 전혀 입을 수 없다.
천유강이 기사나 중장갑병처럼 갑옷이 필수적인 직업군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죽 갑옷 같은 경갑옷은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모든 부위 중에서 가장 방어력이 높은 갑옷을 입지 않는다면 가뜩이나 빈약한 체력 때문에 사망 확률이 극도로 높아질 것이다.
오크 종족이야 갑옷을 입지 않아도 튼튼한 체력을 지니고 있어 부담이 적지만 민첩에 투자를 많이 하고 체력에는 투자를 적게 한 천유강은 소위 말하는 물몸이다.
천유강이 고민하고 있자, 도우미가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문장을 몸에 새기면 현실에서도 반영이 됩니다. 그 뜻은 현실에서도 행운이 777 포인트 오른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아이템을 착용하시길 강력하게 추천해 드립니다.]
“현실에서 행운이 오른다는 게 의미가 있나? 현실에서 아이템이 드랍 되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행운 스탯은 아이템 드랍률 말고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칩니다. 행운력 777 이라면 현실에서도 필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능력을 보일지 모르지요.]
“이걸 착용하면 현실에서도 갑옷을 입지 못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뭐 그건 상관없지만.”
천유강은 신체에 기공을 둘러 몸을 방어하는 경기공에 능숙했다. 그래서 다른 무인들처럼 거추장스러운 갑옷 따위는 착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꺼림칙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천유강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알겠다. 문장을 몸에 새기겠어.”
솔직히 잘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레전드 아이템이라면 현실에서 최소 몇백억에 거래된다. 그마저도 팔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레전드 아이템을 착용해서 손해 볼 것 없다는 것을 믿고 착용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원하는 부위에 문장을 가져다 대세요.]
천유강은 문장을 들고 여기저기 대보다가 결국 가슴 부위에다가 문신을 하기로 했다. 옷을 입으면 문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슴에 새기기로 한 것이다.
“이모님이 보시면 난리 나겠군.”
천유강이 몸에 문장을 대고 한참을 누르고 있자 이내 그곳에서 환한 빛이 나더니 거짓말처럼 천유강의 가슴에 고풍스러운 문신이 생겼다.
“된 건가?”
[그렇습니다. 이상으로 튜토리얼을 마칩니다. 만약 현실에 있는 균열 포탈을 찾아서 클리어하시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다음 단계라고? 다음 단계가 따로 있나?"
[그렇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시면 테스트 서버인 이면 세계에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게 됩니다.]
"영지? 디멘션 월드의 군주들이 영토를 얻는 것을 말하는 거야?"
[비슷합니다. 테스트 서버인 이면 세계에서 영역을 얻고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퀘스트에 성공하면 마찬가지로 경험치 외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네."
[일단 다음 균열을 완료하면 더 자세한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있으십니까?]
도우미의 말에 천유강은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진짜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뭐야? 무슨 목적이 있으니까 이런 테스트도 진행하는 거잖아.”
[저는 단지 명령을 수행할 뿐입니다. 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 그럼 누가 명령을 내리는 건데?”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누가 있긴 하는 거군. 뭐 당연한 일이겠지.”
천유강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도우미에게 물었다.
“.......좋아. 그럼 너는 이름이 뭐지?”
[이름...... 말씀이십니까?]
계속 기계적인 말투였던 도우미의 말에서 한순간 당황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계속 도우미라고 부를 수 없잖아. 앞으로도 만날 일이 있는 거 아닌가?”
[테스트에 계속 참여하시면 다시 만날 일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름이 뭐야? 그것도 알려줄 수 없나?”
[.........]
“알려줄 수 없으면 할 수 없고.”
[........세레나자드.]
“뭐?”
[세레나자드입니다. 플레이어님.]
“세레나자드라. 알겠어.”
[그럼 본래 있던 곳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어지러울 수 있으니 준비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세레나자드의 말이 끝나자 다시 천유강에게 감당할 수 없는 어지러움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지?”
천유강은 아직도 어지러운 정신을 붙잡고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그 어디에서도 세레나자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꿈이었나?”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아침에 천유강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너무 게임에 빠졌나? 이거 남들 욕할 게 못 되네.”
간혹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자신이 이런 꿈을 꿀지는 몰랐다.
“하긴 그런 황당한 일이 일어날 리 없지.”
게임 아이템을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지금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게임은 단지 게임일 뿐이다. 게임이 현실 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오늘은 대학교 개학식이다. 평소처럼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빨리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가 세면대에 물을 받고 있을 때였다. 평소처럼 거울을 보면서 이를 먼저 닦으려 할 때 무언가가 헐거워진 잠옷 사이로 보였다.
“어?”
잠옷의 단추를 풀렸을 때 그곳에 나타난 것은 아까 그 고풍스러운 문장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광경에 다시 패닉 상태에 빠진 천유강은 다시 눈을 비비며 그 문장을 쳐다봤다.
“........농담이지?”
쾅!!!
이곳은 일본 도교의 중심에 위치한 미나자키 가문이 소유한 거대한 저택이었다.
일본 최상류층인 마나자키 가문답게 각종 호화로운 장식들이 즐비한 이곳에 아침부터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있는 여자가 문을 세게 걷어차며 나왔다.
"오빠!"
천유강에게 당한 여자, 미유키가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는 자신의 친오빠에게 가 매달렸다.
"무슨 일이야?"
"어떤 놈이 디멘션에서 날 죽였어."
"뭐?"
자기의 여동생 미유키의 말에 마나자키 가문의 장남이자 사쿠라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 큐유베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부터 무슨 소리야? 차근차근 말해.”
“오늘 어떤 한국 놈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내가 당했다고! 그래서 유니크 신발 아이템도 떨어트렸어.”
"길드에서 몇 명 붙여줬을 텐데?"
"그놈들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고!"
"상대는 누군데? 거대 길드 소속인가?"
"몰라, 그냥 혼자 다니는 놈이었어."
“알겠다. 처리하지.”
자기 여동생인 미유키가 하고 다니는 짓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여동생을 건드린 놈은 용서할 수 없다.
미유키를 건드렸다는 것은 자신을 건드렸다는 말과 같다.
이제는 자신의 자존심과도 연관된 문제다.
"오빠, 그놈 절대 죽이면 안 돼! 사로잡아서 내 앞에 무릎 꿇려줘."
"알겠으니까, 기다려봐."
큐유베는 어디론 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내가 왜 전화했는지는 잘 알겠지?"
수화기 너머로 황망해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도 미유키가 당했다는 것을 같이 붙여준 사내들을 통해서 알고 있는 거다.
"그놈, 꼭 찾아서 나한테 보고 해."
큐유베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오랜만에 장난감이 생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