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검을 가진 남자가 천유강의 뒤쪽에서 슬그머니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다가오며 스킬명을 외쳤다.
“질풍검!”
말 그대로 검에 회오리 같은 바람이 둘러싸이며 넓은 면적을 공격하는 스킬이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있던 천유강은 가볍게 움직이며 공격 반경에서 벗어났다.
“젠장 조심해 이놈 엄청 빠르다. 민첩에 올인한 놈이야!”
“맡겨둬!”
도끼를 든 남자가 허리를 양단할 듯이 휘둘렸다.
붕~
육중한 도끼가 공간을 가르며 날아오자 천유강은 재빨리 성직자가 쓰러져서 생긴 빈틈으로 몸을 날렸다.
자신이 민첩에 많이 투자해서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빠르다고는 하지만 포위되어 싸운다면 아무리 만전의 상태라도 불리했다.
“어딜 도망가!”
도끼 전사가 남자가 도망하는 것을 보고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달려서 도망치는 천유강의 등 뒤로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천유강은 그런 공격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상체를 숙여 공격을 도끼를 피한 후 반 바퀴 돌아 발로 도끼 전사를 밀어 미유키 쪽으로 날려버렸다.
"#@@##@@ 깍!!"
주문을 외우던 미유키는 갑자기 날아온 도끼 전사로 인해 주문을 끝낼 수 없었다.
마법이라는 것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주문을 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짓 또한 정확히 병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도중에 중단되면 주문이 취소되고 되고 마법의 종류에 따라서는 마나 역류라는 현상이 나타나 오히려 시전자에게 해를 끼친다.
높은 직업 레벨을 필요로 하는 주문일수록 더 많은 주문과 손짓과 마나를 필요로 하는데 헬 파이어와 같은 최고 레벨의 주문은 발동만 2분에서 3분이나 걸린다고 하니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쉽게 포기했다.
물론 스킬 레벨이 올라가면 주문과 손짓의 수가 줄어 매직 미사일과 초기 마법은 마스터 한다면 주문 없이도 날릴 수는 있다.
미유키는 매직 미사일과 같은 마법에 투자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광역 마법으로 손쉽게 천유강을 잡으려 했는지 몰라도 마법의 시전 속도가 느려서 다행히 천유강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스메쉬!"
거대한 대검을 든 남자가 도끼 전사가 날아가는 것을 보더니 흥분해서 스킬을 발동시켰다.
이 스킬은 단순하게 칼을 휘두르는 스킬로 마나 소비대비 데미지의 효율이 좋아 인기가 많은 스킬이지만 모션에 걸리는 시간이 짧지 않았다.
사전 공격 없이 이렇게 모션이 큰 스킬을 쓰는 것은 하급 악마를 세 마리나 혼자 쓰러트린 천유강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퍽!
천유강의 발차기에 대검 전사는 스킬을 반도 발동 못 시키고 카운터에 맞아 뒤로 나가 자빠졌다. 하지만 그들의 동료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광연참!"
한 명이 죽었으나 네 명 모두를 하나의 상처 없이 이긴다는 것은 천유강에게도 몹시 벅찼다.
대검 전사가 넘어지게 무섭게 장검 전사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슈슈슉!
광연참이란 스킬은 스메쉬와 다르게 순간적으로 열 번을 폭발시키듯이 베는 스킬이었다.
스킬 레벨도 제법 높은 듯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때문에 천유강은 맞서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몸을 급히 굴렀다.
데굴데굴~
무인으로서는 수치로 여길 수도 있는 비참한 구르기였지만 위험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어느 사이에 다가온 도끼 전사가 천유강이 구르던 자리를 내리쳤다
쾅!!!!
“으악! 미꾸라지 같은!!!!”
위기를 잘 넘기고 있는 것 같지만 스테미너 소비가 심했다. 순식간에 숨이 턱까지 올라왔다.
아무리 스테미너에 투자를 많이 했다고 해도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이 움직이면 스테미너 소비가 배가 되어 부담된다.
"헉~헉~."
아까의 악마의 싸움에서 소비된 스테미너가 아직 차지 않았기 때문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다시 공격하려 했지만 이번엔 세 명의 전사들이 아까처럼 따로따로 공격하지 않고 죽일 듯이 노려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적들의 빠르기나 힘은 악마보다도 적어 보였지만 게임의 스킬은 그것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아까 장검 전사의 스킬 광연참만해도 천유강이 손도 못 쓸 만큼의 빠르기와 강함을 보여주었다.
상대들은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다. 그런 자들이 이렇게 협력 플레이를 해오면 평소라도 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저주 걸린 반지까지 착용하고 있어서 스탯 20% 감소 효과도 받고 있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거리가 좁혀졌다.
천유강이 필사의 각오를 다지는 순간,
"플레임 스트라이크!!!!!"
어느새 주문을 끝맺은 미유키의 목소리가 울려 펴졌다. 그리고 미유키의 등 뒤로 커다란 불덩어리가 7개나 떠올랐다.
천유강은 그것이 정확히 어떤 스킬인지 몰랐지만, 미유키와 같은 파티의 전사들은 사색이 되어 뭐라고 소리쳤다.
"#@#%@%@#%"
자신의 동료들이 뭐라고 떠들건 말건 미유키는 핏대를 세우며 천유강과 자신의 일행이 있는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까 천유강에게 맞아서 넘어진 것이 분했는지 자신이 가진 최고의 마법으로 공격하려는 것이다.
그러자 둥둥 떠다니고 있던 불덩어리가 순식간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쾅!!쾅!!!쾅!!쾅!!!!!!!
거대한 불덩어리가 떨어지니 동굴이 무너질 것처럼 진동했다. 불덩어리의 열기가 순식간에 동굴을 덥혀 마치 동굴이 한순간에 사우나처럼 후끈하게 변했다.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역시나 마법사는 주문만 안전하게 외울 수만 있다면 공격력이 가장 강한 마법사 직업이었다.
"캬하하하하하~~ 죽어라 조센징!!"
미유키가 마치 실성한 듯이 웃어댔다. 아까의 애교 많은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다 검은 연기가 걷고 보이는 광경에 웃음소리를 뚝 멈추었다.
"정신 나간 년이군."
"!!!"
놀랍게도 천유강이 너무나 멀쩡하게 자욱한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좁은 통로에서 강력한 마법이 사방에서 몰아친 것을 고려하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말도 안 돼! 스치지도 않았다니!"
"다행히 방패가 3개나 있어서 말이지."
이미 쓰러져있는 미유키의 일행을 가리키며 말했다. 위기에 순간이었지만 천유강은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떨어지는 불덩어리는 모두 7개라서 천유강에게 집중되었다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스킬이 그런 건지 아니면 여자가 일부로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 사방으로 쏘아 보낸 것인지는 몰랐지만 7개가 전부 제각각으로 떨어졌기에 정작 천유강에게 위협을 주는 것은 겨우 3개였다.
그래서 천유강과는 달리 당황하면서 어찌할 바 모르는 적 전사 세 명을 불덩어리로 던지고 자신은 뒤로 빠져서 무사할 수 있었다.
“칫~ 평생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군.”
자기 잘못은 생각 안 하고 남에게, 더군다나 조금 전까지 동료였던 남자들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모습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아직도 위험이 끝난 것이 아니었기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조금 전의 마법의 위력이라면 미유키의 레벨은 천유강의 레벨보다 훨씬 높은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아까의 절망적인 상황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그래서 천유강은 약간의 허세를 담아서 말했다. 상대의 허점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더 할 건가? 여기서 물러서면 나도 싸우지 않겠다. “
천유강의 말에 미유키가 얼굴을 붉히며 눈썹을 찡그렸다.
"겨...겨우 마법 하나 피했다고 의기양양해진 거냐?"
"경고하는데 나는 이런 싸움은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걸어온 싸움을 피할 만큼 너그럽지도 않지. 전사와 마법사의 1대 1이라면 전사가 유리한 것을 알고 있겠지?"
"헹!! 웃기지 마. 레벨이 300도 안 됐으면 아직 1차 승급도 하지 못했을 텐데. 설마 그런 놈한테 질까 보냐?"
디멘션 월드에서는 마스터한 여러 직업 중에서 하나를 골라 승급할 수 있었다. 총 3번 승급이 가능한데 1차가 300 레벨에, 2차가 500 레벨에, 3차가 700 레벨에 할 수 있다.
문제는 승급을 한 쪽과 아닌 쪽 하고 차이가 극명하게 난다는 거다. 그래서 미유키가 직업의 상성의 불리함에도 자신만만할 수 있었다.
미유키의 말에 천유강은 눈을 들어서 미유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주제도 모르고 설치지 말고. 꺼져라!"
천유강의 눈이 마치 야수의 눈처럼 날카로워졌다.
그 순간 내뿜은 살기에 미유키는 자신도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들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너를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원한다면 보여주마."
천유강은 손을 내밀며 스킬을 발동시키는 모션을 취하자 미유키는 마른침을 삼키며 혹시 날아올 공격에 대비했다. 상대의 스킬을 알지 못하니 최대한 주의하는 거다.
"둠 사이드!"
천유강이 스킬 명을 크게 소리치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검은 어떤 물체가 미유키를 향해 날아갔다.
휙!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기세에서 밀린 미유키는 감히 반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몸을 뒤로 뺐다. 일단 상대의 주요 스킬 한 번만 피하면 승기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쨍그랑!
그러나 천유강에게서 날아간 물체는 허무하게 바닥에 떨어졌다. 그 물체는 사실 적 전사가 죽으면서 떨어트린 의문의 아이템이었다.
천유강은 스킬을 사용하는 척하며 주의를 손으로 돌리고는 떨어져 있는 아이템을 발로 차서 미유키에게 날린 것이다.
미유키가 그 상황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둘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좁혀져 있었다.
"감히 조센징 따위가!!"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미유키가 발악하듯 주문을 외웠다. 자신이 외울 수 있는 마법 중에서 가장 캐스팅 시간이 짧은 파이어 에로우를 외쳤다.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애로우는 1서클의 마법이지만 그 효율성과 위력은 2서클에 못지않다. 또 미유키의 지력이 높은지 파이어 에로우의 속도와 담겨있는 기세가 흉흉했다.
하지만 엘리트 몬스터 세 마리의 협공과 보스 몬스터와 싸움에서도 이긴 천유강에게는 이 정도 마법을 피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미유키도 천유강이 홀로 보스를 잡은 것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안일하게 공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남자들처럼 미유키의 미모의 넋이 나가서 자신의 무용담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지 않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