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가 길길이 날뛰자, 미남자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손가락으로 허공 이곳저곳을 건드렸다. 뭔가를 들여다볼 때마다 미남자의 혼란이 더 증폭되는 기색.
미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허공에다 손짓을 하다가 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재한 일본인이십니까? 아니면 일본에서 트럭 기사 아르바이트를 하신 한국인 유학생? 문서에는 대대로 일본에서 거주한 분이라고 쓰여져 있는데요.”
이쯤 되니 착하게 살아온 정수도 참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의 말투가 살짝 거칠어졌다.
“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요?”
정수도, 이름 모를 금발의 미남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화가 나 있었지만 정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서 사람을 패는 야만성은 갖추지 못했다.
‘저 놈이 내 트럭을 우주 먼지로 만들고, 날 이곳에 감금한 주모자라면 얘긴 다르지만.’
일단 영문도 모르는 곳에서 말을 통하는 지성체와 조우했다. 독방에 갇힌 죄수마냥 혼자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저는 토종 한국인입니다. 일본어는 스미마셍이랑 아리가또 밖에 모르죠. 그보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당신이 저를 여기로 데리고 온 겁니까?”
상대는 우주의 투명한 돔(dome) 형태의 구조물에서 태연자약하게 서 있는 사람이었다.
정수에겐 우주인이거나 신적인 존재일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할 배짱은 없었다. 아까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실수하고 말았지만.
“어라, 그럴 리가 없는데?”
미남자는 일방적으로 대화를 중단하고는 아까처럼 허공을 매만지더니 이내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이걸 어떻게 한다? 그 분께서 아시면 치도곤을 면치 못할 텐데…….”
그 이후로는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할 여유가 없었는지, 미남자는 정수가 알지 못하는 말로 쉴새 없이 떠들어댔다.
“윽……!”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링 같은 것에 옥죄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정수는 격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앞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미남자는 무려 5분이나 떠들어댔다. 그가 혼잣말에 강력한 감정을 실을 수록 정수가 느끼는 고통도 똑같이 비례해서 커졌다.
‘괴로워……. 귀가 따가워! 하지만…….’
정수는 다리가 풀려 엎어지고, 속을 게워냈는데도 귀를 틀어막지 않았다. 저 미남자가 제멋대로 떠들고 나서 어디론가 떠나갈 가능성이 있었다.
‘어떻게든 정보를 모아야해. 실수로라도 저 남자가 다시 한국어로 얘기할 수도 있으니까…….’
정수의 눈물겨운 노력이 통했는지, 유리창이 깨지지 않는다고 알려준 목소리가 또 뒤늦게 활로를 열어주었다.
- 응접실에서 신의 대리인과 5분 이상 대화를 나눴습니다. 위업을 달성한 그대를 눈 여겨 본 신들이 새로운 세계에서 시작하는 그대의 일생을 지켜보기 위해 ‘로그(Log) 시스템’을 추가했습니다.
- 신어를 접한 스무 번째 인간으로 등극했습니다. ‘언어의 이해’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스킬이 생긴 직후, 정수는 새롭게 접한 언어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입술의 움직임, 제스처,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반복되는 발음 등등, 언어를 배울 힌트는 여러 가지였다.
공부 머리가 나빴던 정수였기에 단박에 언어를 마스터하는 위업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다만 끈질기게 시도한 덕분에 ‘언어의 이해’ 스킬의 숙련도가 미미하게 상승했다. 아까의 목소리가 상황이나 정수의 상태가 변할 때마다 부지런히 이야기해 주었다.
미남자는 마지막엔 허공의 무언가를 향해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더니, 이윽고 발까지 동동 굴렀다.
‘아까의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모습도 그렇고, 지금도 다급하게 뭔가를 살피거나 확인하는 중인 것 같은데…….’
딱 일주일 차 신입이 주소를 잘못 읽어 배송을 잘못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 아파트 단지 전부를.
저 미남자의 꼴이 딱 큰 실수를 저지른 신입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정수가 괴로워하며 손톱으로 바닥을 긁는 모습에 미남자는 자신만의 세상에서 빠져나와 정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로 구부러진 눈매와 양쪽이 위로 올라간 입. 짧게 지나간 표정이었지만, 분명한 비웃음이었다.
‘재수 없어.’
고작 대리인 따위가 꼴값을 떠는 게 참 보기 흉했다. 패션 잡지의 표지에 떡 하니 찍혀 있으면 어울릴 것 같은 외모이건만.
“아아, 이거 실례. 신어는 듣기만 해도 인간에게 부담을 주는 소리였지요. 몇 백 년 동안 서류 작업만 하니 기본적인 상식조차 까먹은 모양입니다. 용서해 주시죠.”
고개조차 숙이지 않는 사과. 상대가 당연히 용서할 거라고 생각하는 교만함.
정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놈이 신어로만 중얼거려도 정수는 쓰러지고 말 것이다.
‘첫 번째 거래처를 텄을 때의 느낌으로…….’
정수는 영업용 가면을 쓴 채로 웃었다. 너무 비굴하지 않게, 그렇다고 거리감을 내색하지는 않게.
상대의 호의를 얻어내기 위해 많이 지어본 미소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저라면 아마 미쳐 버렸을 겁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어째서 저를 이곳까지 오게 하신 겁니까? 그것도 제 트럭을 직접 운전하시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하시면서.”
“아아, 그렇군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현 상황을 다른 부서에서 착오가 생겨서 일어난 일이에요.”
미남자는 제대로 된 설명도 않고 말을 그쳤다. 마치 ‘착오’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이라도 하려는 듯.
슬슬 정수의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괜찮으시다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제 트럭도 가져가고 싶습니다만.”
“흐음, 당신도 일단 당사자가 되었으니 일의 전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하겠죠. 이 모든 것들은 ‘이세계’라는 개념이 생겨나 인간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기에 벌인 일이에요.”
미남자의 말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단 한 번이라도 신이라 추앙 받은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물체이든, 상상 속의 동물이든, 가공의 인물이든 상관 없이 신격을 얻는다고 한다.
‘어째 시작부터 삼류 이세계물 설정하고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정수의 의구심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흔히들 판타지로 묘사되는 현상들은 거의 대부분 신이나 영웅에 관련된 게 태반.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현대까지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한 분들이라면 전부 대단한 신들이시죠.”
하지만 신이 된 자의 역량은 곧 신도의 믿음, 극단적으로 말해서 인기 1위의 신이 최강이라는 것.
즉, 신이라 해서 전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힘을 발휘하거나 위엄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다.
“구전된 이야기들이 언급되면서 ‘믿음의 힘’을 받아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약자들이 말썽을 일으키고 있어요. 인간들처럼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라 어쩔 수 없겠지만, 후후후.”
말투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미남자의 선민 의식은 지독히도 시대착오적이었다.
정수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였다.
정보를 얻고자 하지 않았다면 말도 섞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사장 아들이라면 재수 없지만 이해라도 할 텐데.
정수는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싸가지 없는 작자 앞에서 참는 것은 익숙했다.
미남자는 그런 정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설명을 계속했다.
“몇몇 약한 신들이 지구에서 신자를 얻을 수 없자, 뒷공작을 부렸어요. 인간들 사이에서 ‘이세계’라는 개념이 생기고,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자 신들은 거기서 돌파구를 찾은 거지요. 그들은 자신이 신자라고 지목한 자들을 죽여 다른 차원의 세계로 보내 억지로 신자의 수를 늘리려 했습니다.”
지구의 영혼이 한 번이라도 다른 세계로 향하면 두 세계가 링크 된다고 한다.
그 링크를 끊으려면 이세계 전생을 한 자의 흔적들을 모두 없애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고.
“특히 만들어진 신화의 주인공들이 이세계 링크로 재미를 보면서, 인간 세상에서 이세계에 대한 작품이 쏟아지고, 현실에 대한 애착이 옅어진 것에 따라 그 경향은 더 심해졌지요. 그래서 지금은 다른 세계의 신들이 목소리를 모아 지구에 항의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미남자는 다시금 고개를 홰홰 저으면서 ‘정말 머리가 아픕니다’라고 덧붙였다.
“당연히 제가 모시는 그 분께선 하나의 방책을 떠올리셨죠. 인간이 만든 문제는 인간이 해결토록 하자고. 그래서 최근에 이세계 붐이 일어나고 있는 일본에서 인간 한 사람을 선출해 이세계들을 순회하게 해 지구산 불순물을 정리하게 만들 생각이었죠.”
‘그래서 현지 언어 서비스까지 제공했던 모양이군.’
유럽인처럼 생긴 대리인이 일본어를 구사했던 이유는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트럭 기사죠?”
“보통 트럭 기사가 사람을 쳐 이세계로 보내지 않습니까? 물론 최근에 쏟아내는 작품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세계로 보내는 장면부터 시작하고는 합니다만, 클리셰(cliché)로 자리 잡은 개념이 가진 힘은 강력해요.”
클리셰를 대표하는 것을 지구에서 사라지게 만들면, 인간들이 이세계 전생에 대한 것들을 잘 떠올리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미남자도 그 원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신의 말씀이니 틀림없다고 했다.
“원래는 일본인 트럭 기사인 다나카 씨를 우주로 올려 죽인 뒤에 영혼을 빼내 지구에 링크 된 이세계들을 순회 시킬 생각이었습니다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다른 부서에서 착오가 발생한 모양이라서요.”
다른 부서고 나발이고, 착오가 생겼다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한 줄기의 희망이 생긴 덕분에 정수는 우주에서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그,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시 지구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유감입니다.”
대리인은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정수의 말을 일방적으로 끊었다.
친절로 희망을 꺾어 놓는 신적인 존재는 과연 선한 존재라 할 수 있을까?
쓸데없이, 철학적으로, 무거운 의문이 납덩이처럼 정수의 가슴팍에 내리 꽂혔다.
정수의 두 눈에서 빛이 완전히 꺼졌다.
한 사람을 절망으로 밀어 넣고도 미남자는 웃음을 거두지 않고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당신의 육체는 이미 우주를 떠도는 먼지가 되었습니다. 일단 트럭은 쓸 곳이 있기에 당신에게 부여한 인벤토리에 수납해 두었지만…….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세요. 타 부서에서도 어이쿠, 실수라고 말하네요. 이것 참, 후안무치한 분들입니다.”
물론 결코 제 잘못은 아니니…….
일말의 동정은 있었는지 미남자는 말끝을 흐렸다. 말끝을 흐린 한 마디 마저도 책임 전가로 썼다는 게 괘씸했다.
미남자는 계속 공적인 설명을 지껄였지만, 정수의 귓가에 닿지는 않았다.
실수?
실수라고?
사람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번거롭게 죽여 놓고서는 실수라는 한 마디로 무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여태까지 만난 진상들을 다 합쳐도 이 미남자의 뻔뻔함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될 것이다.
치가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