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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잘못된 놈을 이세계로 보내버림
작가 : 라인트
작품등록일 : 2020.9.21

택배기사로 일하던 정수는 트럭을 사느라 빚도 갚고, 일찍 여읜 아버지 대신에 집안을 일으킨 건실한 청년 가장이었다. 주말을 앞둔 터라 약간 들뜬 마음으로 금요일 업무를 시작하는데 이게 웬 걸? 트럭이 공중을 달리기 시작했다! 우주까지 날아간 트럭 때문에 질식사한 정수는 자신이 원래 이세계로 보내야 했을 일본 택배기사인 '다나카' 대신에 살해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격분한다. 실수를 저지른 천사를 두들겨 팬 정수는 이를 갈며 이세계로 향했다. "이왕 이세계로 떠난 거, 다시 없을 정도로 깽판을 쳐주지." 목적은 지구 귀환. 명색이 이세계인데 행성 간 이동 기술이 있는 곳 하나 쯤은 있지 않겠어?

 
13화- 알현 (4)
작성일 : 20-09-30 19:07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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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문이 막힌 여신은 이를 악물었고, 정수는 다시금 깊게 한숨을 쉬었다.

 

 “요즘 내 인생 장르가 뭔지 참 모르겠어. 이건 뭐 정치물도 아니고 왜 대화의 음절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걸까? 응?”

 

 파지지지직!

 

 짜증이 한도를 넘어 고스란히 분노로 치환되었다. 정수는 치켜 올린 엄지손가락을 반대로 내렸다.

 

 “불합격이다. 요 속 시꺼먼 여신아. 다만 너 같은 여자가 제멋대로 날뛰면 곤란하니 이쪽에서 역으로 제안하지. 네 세계의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삼켜. 그 다음엔 날 따라와라.”

 

 세계의 규모를 줄이라는 것은 신으로서의 위엄을 버리는 행위였다.

 

 비유하자면 성주에게 자신이 직접 세운 성을 버리고 떠나라는 말과 비슷했다.

 

 자존심을 드높이는 그녀에게 달갑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협조적이지 않던 전생자가 한 모처럼의 제안이었다.

 

 ‘그래도 인간의 제안에 넙죽 넘어가는 것도 싫어.’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도 저 남자에겐 통하지 않겠지.

 

 여신은 마지막으로 강수를 두기로 결심했다.

 

 “방법은 내가 정하겠어.”

 

 “방법?”

 

 “너에게 새로울 것도 없는 방법이지. 네가 수련을 위해 마셨던 검은 물. 그거 실은 정정들의 피야.”

 

 정수의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동족이 아니더라도 한 세계의 인류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의 피를 마셨다니, 태연자약한 쪽이 이상한 것이다.

 

 다만 정수는 여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찝찝함을 털어 넘겼다.

 

 “아아, 예상은 했는데 진짜였어? 난 소설 속 주인공이라도 되어버린 걸까? 어째 불길한 예감은 빌어먹게도 딱딱 들어맞는지 몰라. 그래서 그 방법이란 게 정확히 뭔데?”

 

 “이곳에서 수련을 해. 내가 온전히 흡수하지 못한 마나며 몸을 구성하는 보석이며 아낌없이 퍼주지. 부디 내 세계가 존재했다는 산 증인이 되어줘.”

 

 “날더러 정정이 되라고?”

 

 “그래. 어차피 너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단계까지 왔어. 최근에 배가 고픈 적이 있었어?”

 

 “음……!”

 

 정수는 여신의 시선을 피했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다행히 정수와 정정의 피는 상성이 좋은 것인지 정정들의 시체가 녹아 만들어진 검은 강물을 마시고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정수의 몸은 점차 정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이놈은 이제 지구인이 아니라 걸어 다니는 정정이라고 해야겠지.’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이대로 변화가 계속된다면 그의 몸은 허물어져 완전히 정정처럼 변하고 말리라.

 

 “네 몸, 마나를 흡수하면 할수록 무거워질 거야. 네 파트너의 정련 실력도 훌륭하지만, 정정에겐 특별한 방법이 필요해. 게다가 넌 전무후무한 걸어 다니는 정정이야. 당신의 몸은 내가 손을 댈 수밖에 없어. 어때?”

 

 말끝을 장난스럽게 올리는 여신의 교태는 남자의 마음을 충분히 녹일 만한 것이었다.

 

 물론 감정이 마모된 정수에겐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세계의 여신이 사람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 그녀가 보이고 있는 모습이 가짜라는 사실을 반증했다.

 

 ‘가짜 모습에 현혹될 수는 없지. 하지만 제안 자체는 매력적이야.’

 

 체중이 눈에 띄게 불어나는 것은 싫어도 느끼고 있었다. 여신의 말대로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 걷지도 못할 만큼 몸이 무거워질 것이다.

 

 ‘그래도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세 가지 있어.’

 

 그것들을 전부 풀지 않으면 교섭은 결렬이었다.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앞섰다.

 

 드러낸 모습조차 가짜인 상대의 말을 믿을 수 있는가?

 

 ‘그래. 어차피 상대를 믿을 수 없다면 답변을 듣는다 한들 무의미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정수는 기회가 올 때마다 여신을 떠보기로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군. 그럼 계약이라도 할까? 악덕 기업보다 훨씬 더 양심이 없을 테니까,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이미 각오한 바야. 그리고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야 내 복수를 대신 해주지.”

 

 여신과 정수. 둘이 복수의 칼날을 가는 상대는 같았다.

 

 여신이 한때 힘을 합칠 수 있는 동료가 된다면 승산이 조금이라도 올라갔겠지만, 남의 복수를 대신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흥! 당신을 위해 피를 흩뿌리진 않을 거다. 그건 그렇고 당신도 상당히 얼빠져 있군. 잘도 지구 출신인 내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다하고.”

 

 여신은 얼굴을 붉혔다.

 

 그녀도 자신의 부탁이 모순되었다는 것 정도는 잘 알았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그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 세계와 함께 소멸될 바에야 차라리 두 번째 삶을 택하는 게 훨씬 나았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뭐든 상관없어. 설령 건방진 인간과 동격이 된다고 하더라도.”

 

 정수는 자신보다 훨씬 인간다운 모습의 여신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인간성을 깡그리 없애버린 신을 향한 적개심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래? 그럼 한 마디 마저 내뱉고 계약을 맺지. 네 각오는 고작 그 따위인가?”

 

 “역시……. 넌 재수없어.”

 

 “칭찬 감사.”

 

 여신과 정수의 계약은 단순했다. 조항은 총 다섯 개.

 

 1. 이 계약서에 여신-여신 라를 필두로 엔라베스의 다른 신과 정정의 기운을 흡수한 집합체-을 갑이라 칭하고, 지구 출신의 인간 최정수를 을이라 칭한다.

 2. 갑은 갑이 흡수하지 못한 엔라베스의 파편과 마나 따위로 을의 수련을 도와야 한다. 기간은 엔라베스의 멸망 직전까지 한한다.

 3. 갑은 자신의 정련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 을의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것을 의무로 삼는다. 그 의무 역시 엔라베스의 멸망 직전까지 완료해야 한다. 만약 의무를 기한 내에 달성하지 못하거나, 도중에 저버린다면 갑은 을에게 영원히 종속해야 한다.

 4. 을은 어떤 세계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관계없이 갑과 함께 갑의 복수를 함께 이행해야 한다. 이 조항은 을이 소멸하기 전까지 유효하다.

 5. 갑과 을은 서로에게 그 어떤 방식으로든 직/간접적으로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이는 갑과 을 모두에게 절대적인 사항이며 ‘허용 범위’는 사전에 협의를 거쳐 조율하도록 한다.

 

 딱 보아도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허술한 계약이었지만 정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건 구색맞추기에 지나지 않으니까.’

 

 심지어 계약이라고 해도 입회인도 없으며, 강제력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들을 나열한 서류에 지나지 않았다.

 

 악덕 기업 어쩌고 지껄이면서 분위기는 다 잡아 놓고 선보인 계약서가 이토록 엉망이라니!

 

 여신은 내심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를 다졌던 자신이 한심했다.

 

 “이 정도 속박으로 날 묶어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님 날 얕보는 거냐?”

 

 “하아…….”

 

 정수는 여신을 두 명 밖에 만나보지 못했지만, 둘의 공통점이 ‘무척 성가시다’라는 것 이외에는 없다는 것에 심히 유감을 표했다.

 

 “어차피 계약서를 준비해도 어길 녀석은 어겨. 날 지켜주는 여자가 말하더군. 신들은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약속은 어긴다고.”

 

 “그게 뭐야?”

 

 “내 말이. 그리고 한 번 속성이 정해졌다면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훨씬 나아. 너는 신으로서, 나는 인간으로서.”

 

 여신은 ‘네가 지금도 인간이라고 생각해?’라고 빈정대지 못했다.

 

 그녀 역시 같은 처지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한 발 양보해준 인간을 안 좋게 얘기하는 것은 그녀의 미학에 반했다.

 

 “좋아. 계약대로 널 위해 최선을 다하지.”

 

 여신은 다짐하듯 선언하며 정수를 양팔로 껴안았다. 그녀의 태도가 갑자기 변한 탓에 정수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음? 서로 약속을 나눈 정정끼리 하는 의식이야. 사사로운 감정은 없으니 안심해.”

 

 정수는 몸부림을 치려다 그만두었다. 흡수한 정정의 숫자가 그렇게까지 차이가 난다면 여신은 상상도 못할 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지구식으로 따지면 이건 마음이 있는 남녀끼리 하는 행위라고.”

 

 “그래? 새로운 지식을 얻었네. 지구식으로 따져도 괜찮지 않겠어? 우린 목숨을 담보로 계약을 나눈 사이잖아.”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은 하지 마라……..”

 

 여신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포옹을 풀었다.

 

 “어때? 내가 좀 사랑스러워졌어? 지구식으로.”

 

 “아니. 이전의 나였다면 신체 접촉에 두근거릴 ‘심장’이 있었겠지. 지금은 그런 게 없어. 마음 속 어딘가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여신이 갑자기 포옹했을 때에도 ‘기습인가?’하고 놀랐을 뿐이었다. 그 뒤에는 지구에서 배운 상식대로 행동했던 것이고.

 

 정수의 물리적인 심장은 정정의 핵으로 거의 다 대체되었고, 정신적인 심장은 멸망을 앞둔 이세계에 떨어진 이후에 맛이 가버렸다.

 

 ‘보석으로 이루어진 로봇이 된 기분이야.’

 

 감정 전체가 마모된 것은 아닌 모양이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겠는데. 감정 하나하나 실험을 거듭해보자.’

 

 적어도 엔라베스가 멸망을 맞이하기 전까진 몸과 마음의 상태를 최대한 파악해두고 싶었다.

 

 정수가 희로애락을 비롯한 감정을 리스트로 추리는데, 달의 여신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비어있는 부분을 다른 것들로 채우면 되겠네. 우선 북쪽의 강가부터 가볼까? 마나가 풍부하니까 정련하기에 좋은 장소다.”

 

 “오! 여행인가? 새로운 세계를 돌아다니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지!”

 

 정수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는 사실을 자각했지만, 굳이 호기심을 억누르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말없이 여신과 정수를 지켜보던 인드라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변한 두 사람의 관계에 혀를 내둘렀다.

 

 “누가 누굴 보고 괴짜라는 거야?”

 

 인드라는 혀를 차면서 둘을 뒤따랐다. 수호신으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여신은 정수의 손을 놓지 않을 채로 꼬박 하루를 달렸다.

 

 조깅 정도의 속도였지만, 쉬지 않고 하루를 달리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달리는 도중, 여신은 뒤돌아보지 않은 채 정수에게 말했다.

 

 “잘 봐줘. 내가 오라버니와 여동생과 함께 만든 세계의 모습을.”

 

 여신의 말에는 여러 감정들이 담겨 있었으나, 정수가 간파한 감정들은 소수에 그쳤다.

 

 혈육을 죽이고 말았다는 짙은 회한.

 

 자랑스러운 세계의 멸망을 끝끝내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허나 무엇보다 가장 선명한 감정은 예상 외로 ‘환희’였다.

 

 ‘다른 형태로나마 세계를 존속시킬 수 있게 된 희망을 품게 되어서 그럴까? 아니면 내가 그녀의 감정을 잘못 읽어낸 걸까?’

 

 정수는 호기심을 또 자극 받았지만, 이번만큼은 애써 억눌렀다.

 

 서로 돕기로 계약을 맺은 이상, 정수는 여신의 요구를 허용 범위 이내까지는 들어줄 의무가 생겼다. 게다가 여신의 감정에 대한 호기심보단 그녀가 창조한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훨씬 컸다.

 

 “좋아. 기대가 되네. 이만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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