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고등어 무조림
진화는 석이 어머니를 뵈러 바로 동생들을 모두 데리고 석이네 집으로 갔다. 석이네 집은 진화네 바로 뒤 약간 언덕진 위쪽에 있었다. 진화를 본 석이 어머니의 반가움과 놀라움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석이 어머니는 진화를 부둥켜안고 한없이 한없이 우셨다. 진화가 만주로 떠난 후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너무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진화는 늦은 저녁을 석이네서 먹었다. 며칠 동안 밥을 못 먹었단다. 상 위에 진화가 제일 좋아하는 고등어무조림이 올라와 있었다. 진화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석이 어머니 고등어 조림이, 그 안에 들어간 그 짭조름한 무조림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진화는 부끄러움도 잊고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꿈에 그리던 집밥이었다. 꿈에 그리던 고향밥이었다.
석이 어머니의 이 고등어 무조림은 우리 집에서는 전설 같은 음식이다. 가을바람이 불면 제철이 되는 고등어로 석이 어머니는 무를 숭덩 숭덩 썰어넣고 고등어무조림을 참 잘하셔서 도련님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노미 아들들도 오래 오래 많이 얻어 먹었다고 한다. 노미의 셋째 아들인 우리 아빠에게도 이 고등어 무조림은 어린 시절 잊을 수 없이 맛있었던 반찬 중 하나였다고 하셨다. 나도 오늘은 고등어 무조림을 해서 아들이랑 먹어야 겠다.
큰형이 돌아와 밥 먹는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고 반가운지 동생들은 형이 밥을 세 그릇이나 비울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둘러앉아 진화가 밥 먹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진화가 며칠 동안 씻지도 못했다는 말에 석이는 물을 끓여 진화가 씻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진화가 씻는 동안에도 동생들은 모두 목욕통 주위로 둘러앉아 큰형이 씻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진화는 좀 부끄러웠는데, 동생들이 진화 옆을 떠날 생각을 안 해서 저리 가라고도 못 했다. 그렇게 진화는 새신랑처럼 단장을 마쳤다. 이제 아내에게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 사이 노미는 홍이에게 젖을 먹이고는 재우고 있었다. 배가 부른 홍이는 어느새 노미 품에서 곤하게 잠이 들었다. 노미는 홍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는 가만히 일어났다. 그리고 한쪽에 진화가 벗어놓은 옷을 들춰보았다. 새카맣게 먼지를 뒤집어쓴 옷이었지만 고급양복이었다.
‘이 양반이 이런 옷은 어디서 얻어 입었을까.’
했다. 노미는 그제야 이 사람이 밥은 먹었는가, 씻고 싶을 텐데 씻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이네 가서 한참을 안 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거기서 먹고, 씻고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안방에 계신 아버지는 잠이 드셨는지 기척이 없으셨다.
‘많이 놀라셨을 텐데, 괜찮으신가.’
하지만 노미는 지금 아버지를 뵈러 갈 정신이 없었다.
‘내가 너무 살 차게 굴어서 많이 섭섭하려나?’
그러나 노미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좀처럼 웃어지지도 울어지지도 않았다. 자기도 자기 맘이 왜 이런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마당으로 들어서는 발소리들이 들렸다. 다들 돌아온 모양이었다. 노미는 얼른 자리에 누워 자는 척했다.
“형수님, 드가도 됩니꺼?”
하고 민화가 문밖에서 물었다. 노미는 잠시 망설이다,
“예~.”
하고 대답했다. 문을 열고 얼굴만 빼꼼히 방으로 들이민 민화가 노미에게
“아직 안 주무셨습니꺼?”
하며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홍이 저 주이소. 오늘 밤은 지가 데리고 잘께예.”
했다.
“벌써 잡니더. 됐습니더.”
했다. 그러나 민화는
“형수님, 오늘은 지가 데리고 잘께예. 그라고... 형님 쫌 봐주이소. 지금 억수로 쫄았다 아입니꺼. 석이형네서 지들이 큰형 밥도 먹이고, 목욕도 시켰습니더.”
하며 킥킥 웃었다. 그리고는 노미가 말릴 틈도 없이 자는 홍이를 가만히 안고 나갔다. 그렇게 민화가 홍이를 안고 나간 후 노미는 멍하고 앉아있었는데 그 때 밖에서 ‘에헴’하는 기침소리가 났다. 노미는 얼른 자리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옆에 와 눕는 것이 느껴졌다. 진화의 베개는 늘 거기 있었다. 베개만 두고 가 버린 그 날 이후로도 늘 그렇게 진화의 베게는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어제 나갔던 사람처럼 진화는 다시 자기 자리에 와 누웠다. 태화가 불을 어찌나 세게 땠는지 방이 뜨끈뜨끈했다. 진화는 그렇게 한동안 자리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멀리 개 짖는 소리도 들리고 휘휘 부는 겨울바람 소리도 들렸다.
“자나?”
하고 진화가 조용히 노미를 불렀다. 노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안 보고 싶었나? 어찌 사람이 왔는데 한 번을 안 봐주노.”
노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참, 못됐다. 진짜.”
그렇게 말하는 진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내는, 니 한번 보겠다고, 죽어도 니 품에서 죽겠다고 그렇게 발이 부르트게 왔는데. 니는 내 얼굴도 안 봐주고....”
노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너무 아팠다.
“내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더라.... 내는 참말로 바보 병신이더라....”
하며 진화가 흐느꼈다. 노미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진화는 자기 얼굴을 팔로 가리고 흑흑 흐느껴 울었다. 노미는 진화를 돌아보았다. 진화가 팔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있어 노미는 진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어찌 그리 못난 소리를 합니꺼.”
하며 노미가 화난 목소리로 꾸짖듯이 말했다. 그제야 진화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치우고 노미를 보았다. 달빛 아래 화가 잔뜩 나서 덜덜 떨고 있는 노미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 노미도 진화의 얼굴을 이제 처음으로 보았다. 흐느껴 울고 있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게 흐느껴 울고 있었다.
“못났으니..... 못난 소리를....흐흑.... 하지..... 내 못났으니.... 니도 내 꼴 보기 싫은 거 아이가?”
하는데 흑흑 흐느끼는 바람에 말이 중간중간 끊겼다. 그것은 달빛 아래 울고 있는 서방님 얼굴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고운 내 낭군 얼굴이었다. 하루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던 그리운 남편의 얼굴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 흐느껴 울고 있었다. 세상 모르는 게 없는 선비이고, 온 동네의 존경받는 선생이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제일 앞에서 동생들을 지켜낸 맏형이고, 집안 대소사를 다 관리하는 종손이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바르지 못한 이에 엄했고, 진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고 너그러웠다. 그런 사람이 지금 아기처럼 흐느껴 울고 있었다.
“니 진짜로.... 흐흑, 내 안보고 싶었나?..... 어떻게.....흑, 내를..... 한 번도 안 봐주노.”
노미는 도대체 이 아기 같은 사람을 어쩌면 좋을까 싶었다. 세상 제일로 어른인 사람이 어찌 내 앞에서는 이렇게 아기 같아질까 싶었다.
“우예.... 안 보고 싶습니꺼..... 그기.... 말이 됩니꺼. 보고 싶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심장을 쥐고 뜯고, 또 뜯고, 내 그래 쥐어 뜯어가 심장이 이제 한나도 안 남았습니더. 심장이, 내 가슴이 이래 너덜너덜해져 버렸는데 우예 뭘 어쩝니꺼.”
하며 노미는 울음이 터졌다. 한번 터진 울음은 통곡이 되었다. 멈추지를 않았다. 노미는 진화의 앞섬을 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참으려야 참을 수 없는 울음이었다. 진화는 그런 노미의 얼굴을 자기 가슴에 끌어안았다. 노미는 얼굴을 진화 가슴에 묻고 엉엉 목을 놓아 울었다. 그제야 진화는 노미를 품에 꽉 끌어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진화는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그리고 또 미안했다.
“내 다시는... 니 놓고 어디 안 갈게. 약속한다. 다시는 니 혼자 두고 안 간다.”
노미는 그동안 참았던 설움이 봇물 터지듯 터져버렸다. 다 녹아서 없어져 버린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 벌컥벌컥 뛰었다. 참을 수도, 참아지지도 않는 통곡이었다. 그런 노미를 진화는 그저 가만히 끌어안고 있었다. 발버둥 치며 우는 아내를 그렇게 꽉 끌어안고 같이 울었다.
안방에 누워있던 동생들이 형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형수 운다.”
하고 정화는 눈은 벌건데 얼굴은 웃으며 말했다.
“됐다. 형수가 큰형 용서해줬나 보다.”
하고 태화도 눈물을 소매로 꾹 찍으며 말했다. 민화도 흐르는 눈물을 자기 손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닦으며 말했다.
“큰형 좋겠다.... 부럽다.”
세 동생은 그렇게 모두 진화가 부러웠다.
“민화야...”
주무시는 줄 알았던 아버지가 민화를 부르셨다.
“예!”
하고 민화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형수 생일이 낼모레제? 찰밥하고 미역국 끓이레이.”
“예~!”
민화는 빙그레 웃었다.
노미는 아직도 흐느낌이 가라앉지를 않아 목이 턱턱 막혔다.
“내는... 당신이... 낼로... 잊어뿐줄 알았습니더. 아들도 하나 낳았으니... 이제 내는 쓸모없다... 생각한 줄 알았습니더. 색시라도 새로 얻어가... 영 안 올라하는 줄... 알았습니더.”
노미는 그동안 쌓였던 원망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와 자꾸 꺼이꺼이하는 소리가 올라왔다.
“니는 내가 그래 밖에 안되는 인간인 줄 알았나?”
울음을 겨우 참고 있는 노미를 진화가 가만히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래, 내 몬난 거 맞다. 내는 그래 내내 멀리 멀리 도망치면 내 몬난 거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다. 근데.... 불행이란 놈은 몬난 내가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쫓아오더라. 그 강을 건너는데 얼매나 발이 찬지. 도저히 몬 건너겠더라. 그러다 퍼뜩 생각이 났다. 이래 도망쳐 다니다간 니 얼굴을 다시는 못 보겠구나. 아무리 도망쳐도 내 몬난거랑 불행은 결국 끝까지 내를 쫓아오겠구나. 결국 잡히겠구나. 그래가 돌아섰다. 불행도 내 못난 모습도 맞서면 이길 방도가 생길 수도 있다 생각했다.”
진화는 품에 안은 노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죽어도 내 딱 니 얼굴 한 번만 보고 죽자. 그런 맘으로다 정신없이 내려왔다.”
그런 서방님 얼굴을, 세상 제일 고운 그 얼굴을, 그 눈을 노미는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얼굴이 고와서가 아니었다. 눈이 고와서가 아니었다. 그 안에 든 마음이 온통 고와서였다. 그 안에 든 마음이 온통 내 것이라서였다.
“보소.”
노미는 진화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당신은.... 멋집니더. 세상에서 젤로 잘난 사람입니더. 내한테는....”
노미에게 손 꽃받침을 당한 채로 진화는 예쁘게 웃었다. 노미도 겨우 웃었다.
“근데, 저 양복은 어디서 났습니꺼? 비싼 거 같던데예?”
그러자 진화가 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러나 애써 웃으며
“누가 줬는데.... 내 나중에 얘기해 줄게. 별일 아이다.”
하며 찡긋하고 웃었다. 진화는 그 이야기를 진짜 아주 아주 나중에 얘기해 주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랑 살면서 뭐가 제일 힘드셨어요. 하고 내가 물었더니 할머니는
"속상할 것도 없고, 속상한 게 뭔 줄도 모리고, 그냥 그냥 사나보다 하고 살았지. 요즘 애들처럼 싸우고 그런 것도 모리고, 그래 그냥 살았다. 근데 사람이 자꾸 없어지고, 가가 안 오고 해가... 그때는 그런 게 젤로 힘들었지."
하셨다. 그날 밤, 할아버지가 돌아오신 날, 할머니는 얼마나 울며 발버둥을 쳤는지 나중에 보니 뒤꿈치가 바닥에 쓸려 다 까져 있었다고 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