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부산
태화, 민화 그리고 성재는 부산에 도착했다. 윤화가 간 길 그대로였다. 트럭으로 기차역까지 실려 가 기차 화물칸에 태워져 부산에 도착한 것이다. 12월의 매서운 바닷바람이 세 동무의 얼굴에 휘몰아쳤다. 그리고는 한 줄로 세워져 어딘가로 줄줄 끌려갔다. 너무 추워서 세 사람은 가능한 한 서로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걸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짐짝 취급이데이~.”
하고 민화가 이빨을 덜덜 떨며 말하자,
“짐짝은 추위 안 탄다! 이기 뭐꼬?”
하며 태화도 몸을 덜덜 떨었다.
“부산은 돼지국밥이 유명한데, 이놈들이 국밥을 주진 않겠제?”
라고 얼은 입에서 흰 입김을 뿜으며 성재가 겨우 말했다.
밤새 달려와 아침 동이 트는 시간이었다.
“형수님이 버선 신으라 할 때 언능 신을걸...”
하며 태화는 그 버선이 그리웠다.
“그 잡곡밥이랑 김장김치랑 후다닥 다 먹는 긴데, 반도 몬 먹었다 아이가....”
하고 민화는 그 밥이 그리웠다.
“밥 막 다 묵고, 우리 색시 무릎에 누워가 막 속살을 이래이래 만지고 있었는데....”
하고 성재는 자기 색시가 그리웠다. 두 총각은 그런 성재가 순간 미웠다.
그들은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병원처럼 보이는 건물로 끌려 들어갔다. 창고나 다름없는 큰 건물이었는데 군인들이 입구를 지키고 섰다. 안으로 들어오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그래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앉아있는 조선 남자들의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다. 겁에 질려 쭈그리고 앉은 이도 있었고, 그 와중에도 꼿꼿하게 등을 펴고 앉은 이도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로 지키고 서 있는 일본군들을 꼬나보는 이도 있었다. 진화 형 같고, 윤화 형 같고, 남화 형 같았다.
“윤화 형도 저러고 있었겠지?”
하고 태화가 말했다. 민화도 표정이 서늘해졌다.
“둘째 형은 아직도 소식이 없나?”
하고 성재가 물었다.
“없다.”
민화가 참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성재는 윤화의 상황이 이제 곧 자기들의 현실이 되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웠다. 그렇게 세 사람은 발을 동동 구르며 서로의 체온을 의지한 채 붙어 앉아있었다.
“느그 형들은 다 우찌 됐노? 느그 형제들은 다 장개갔다 아이가?”
하고 태화가 성재에게 물었다.
“장개가믄 징용이고 징병이고 안 붙들려 간다 해가 서둘러들 다 장개를 갔는데 이기 모꼬? 부산에 있던 은광이형이랑 민혁이형은 만세 운동 하다 붙잡히가 죽다 살았고, 창섭이형은 니들도 들었제? 일본 갈라 하다 들키가 소좇 채찍으로 성한 데가 없이 맞고 머리를 박박 깍이가 한달 만에 왔다. 현석이형은 만주 간다고 설치다 어무이가 안된다 해가 집에 있다 아예 징용에 자원해가 갔다. 다행히 험한 데로는 안가가 어디 부두에서 배 만들고 있다카드라. 동근이 형은 교회 다니다 미국 선교사들 따라 미국 갔다. 젤로 잘 있지 싶다. 일훈이 형은.... 내 참말로.... 유일하게 대학생이었다. 그 바람에 징병갔다. 군대로 끌리갔다. 아직은 살아있나본데, 은제 죽을지 모른다.”
성재네 형제들 이야기도 태화, 민화네 만큼이나 처참했다. 그때는 다들 그랬다.
그때 한 자그마한 일본군이 주전자에 뜨거운 오차를 가지고 나타났다. 다들 우르르 일어나 줄을 섰다. 곁에 선 덩치 큰 일본군이 줄을 서라며 고함을 쳤다. 오차와 함께 주먹밥도 한 덩이씩 줄 모양이었다.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나중에 알게 될 일이지만 이때 나온 오차도, 주먹밥도, 이동경비 일체도 모두 그들의 임금에서 제하는 것들이었다. 공짜가 아니었다. 나중에 지급될 옷과 소지품 모두가 매우 높은 가격으로 그들이 충당해야 할 경비에서 지출되는 것이었다.
어찌 됐든 세 사람도 줄을 서서 오차와 주먹밥을 받았다. 셋 다 신발도 버선도 서로 나눠 신고 있느라 꼴이 희한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웃었다. 멀끔하게 잘생긴 소년 셋이 한 사람은 버선발이고, 두 사람은 한 짝은 버선을, 한 짝은 맨발에 짚신만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차를 따라주던 조금 순한 인상의 일본군이 그런 세 사람을 슬쩍 건너다보더니, 나갔다가 돌아온 손에 버선 한 벌이랑 짚신 두 벌이 들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아무도 모르게 세 친구 앞에 툭 던지고는 가버렸다. 민화는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눈도 마주칠 틈이 없었다. 일본놈들 중에도 저런 놈이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순간 섬찟하기도 했다. 이 주인 없는 버선과 짚신은 누구 것이었을까.
그렇게 먹은 것이 아침 겸 점심인 모양이었다. 오후가 되자 모여있던 남자들은 차례로 불려 나가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모두에게 누런 색깔의 국민복과 일본식 버선, 고무로 밑창을 댄 신발, 모포 한 개가 지급되었다. 신체검사를 통과한 후에는 입고 온 옷 대신 나누어준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했다.
피검사도 받고, 눈, 귀, 입안까지 검사하는데 그다지 꼼꼼하게 검사하는 것 같지 않았다. 거의 대충 눈으로만 훑어보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태화와 민화는 틈을 보아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재는 혹시라도 자기가 도망치면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해가 될 것이 걱정이라 감히 도망칠 생각을 못 했다. 그리고 이대로 도망치면 징용거부자가 되어 감옥에 간다고 했다. 감옥에 가면 그나마 돈도 못 받고 해남도나 북해도 같은 악명높은 곳으로 보내진다고 했다. 그곳으로 간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성재 말을 듣고 나니 태화도 민화도 어찌해야 좋을지 앞이 캄캄했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신체검사에서 ‘불량’을 받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빠져나갈 사람들은 미리 다 서류를 조작해 빠져나갔고, 다리를 저는 소아마비 환자도 ‘불량’을 받지 않았다.
밤새 아버지는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앓으셨다. 화병이 나신 것이다. 계속 물만 달라 하시더니 결국 까무러치셨다. 정화도 노미도 거의 뜬 눈으로 아버지 곁에서 밤을 지새웠다. 노미가 아버지 이마에 있던 물수건을 갈아드렸다. 아버지는 계속 끙끙 앓으셨다. 정화는 그 옆에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앉아있었다.
“도련님, 그만 주무시소.”
하고 노미가 정화에게 말했다. 정화는 겨우 고개를 들더니
“안 졸립니더.”
했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이 큰 집에 아무도 없었다. 여섯이나 되는 형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밖에는 차가운 겨울바람 소리가 무섭게 웅웅거렸다. 정화는 몸서리가 나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억수로 추울낀데.”
정화가 혼잣말처럼 말하며 눈이 붉어졌다. 그리고는 괜시리 흘러내리는 콧물을 훔쳤다. 내내 쭈그리고 앉아있었더니 배가 불편해진 노미가 ‘아이고!’ 하며 허리를 폈다. 정화가 깜짝 놀라 다가왔다.
“불편하셔예?”
“아입니더. 허리가 아파가. 괘안습니더.”
“지가 할께예. 형수님은 눈 좀 부치시소.”
하며 정화가 노미와 자리를 바꾸려 했다.
“아입니더. 지는 괘안습니더. 도련님이나 언능 좀 주무시소.”
그러자 정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형수는 참말로! 말 쫌 들으이소. 애기 가진 사람이 왜 몸 단도리를 안합니꺼!”
노미는 잠시 정화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정화도 형수한테 소리를 친 것이 좀 머쓱했다.
“지가 합니더. 형수는 주무시소.”
하더니 억지로 형수를 옆으로 밀어내고 물그릇 옆에 자기가 앉았다. 그리고는 방금 간 아버지 물수건을 다시 걷어다 새로 찬물에 헹구어 꽉 짜더니 아버지 이마 위에 올렸다. 노미는 그런 정화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언제나 아기일 줄만 알았는데 인제 보니 막내도 많이 컸다.
정화는 베개를 가져다 노미를 눕히고는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자기도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울컥하고 또 울음이 복받쳤다.
“올까예?”
겨우 울음을 삼키며 정화가 물었다.
“태화형이랑 민화형이랑 풀리날까예?”
복권이는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복권이도 장담하지는 못했었다.
“그래야지예.”
노미도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대답했다.
“안 오믄, 안 오믄 우얍니꺼. 미순이처럼 안 오믄....”
정화는 결국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노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화를 품에 안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 막내를 가슴에 안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기도해야지예.”
라고 말하면서도 노미는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노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그저 또 기도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내 기도를 안 들어주시느냐고 화를 낼 권리 같은 것은 사람에게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하늘은 사람이 기도하기를 바라신다.
만주의 추운 밤, 움막이나 다름없는 허름한 방에서 홀로 잠이 들지 못하고 있는 진화도,
병원 옆 곁방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세찬 바람에 고향 걱정, 형님 걱정으로 또 잠을 못 이루고 있는 남화도,
새까매진 얼굴로 똑바로 누울 수조차 없이 좁은 다다미 방에 덩치가 산만한 건이는 곁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는데 혼자만 멍한 눈으로 밤을 지새고 있는 윤화도,
어머니 옆에 누워 낯설지만 그래도 친척들이랑 같이 지내고 있는, 하지만 웃음을 잃어버린 채 오늘은 잠마저 잃어버린 멍한 표정의 석이도,
그리고 부산의 차가운 마루 바닥에 겨우 모포 하나 깔고 덮고 누워있는 태화, 민화도 모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태화와 민화 그리고 성재는 그렇게 태어나 가장 추운 밤을 지냈다. 드디어, 신체검사 결과가 나온 모양이었다. 다들 줄을 서서 군의관이 호명하는 대로 검사결과를 받았다. 군의관은 계속 ‘良好(양호)! 료오코오!’를 외치며 남자들을 통과시켰다. 그러다 멀쩡해 보이는 한 남자를 아래위로 훑더니
“불량(不良)! 후료오!”
이라고 했다. 그는 화색이 되었다. 미리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군의관과 그 남자는 짧게 눈짓을 하고는 그는 ‘양호’를 받은 사람들과는 다른 자리에 앉았다. 성재가 부러운 눈으로
“뭔데요?”
하고 물었다. 그 남자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자기 진단서를 쓱 보여주며
“결핵.”
이라고 말하더니 짐짓 잔기침을 했다. 성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입맛만 다셨다. 성재 차례였다.
“良好(양호)! 료오코오!”
성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태화 차례였다.
“료오코오!”
어김없이 ‘양호’를 불렀다. 태화도 성재 옆으로 와서 앉았다. 그때 저 뒷줄에 서 있던 민화가 군의관을 향해 소리쳤다.
“그랄 리가 없습니더. 양호라니요. 자는 간질이 있습니더. 한 번씩 휙 뒤집어지게 발작이 온단말입니더. 자, 불량입니더. 불량이라고요!”
민화가 태화를 향해 불량이라고 소리를 쳐댔다.
“日本語で話せ！ 日本語！ この朝鮮人野郎！”
니혼고데 하나세! 니혼고! 코노 조센진야로오
(일본말로 해라! 일본말로! 이 조센징 새끼야!)
하고 일본 군인들이 고함을 쳤다. 민화는 일본말을 모르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료오코오 나이! 후료오! 후료오 데쓰!”
민화가 대충 주워들은 일본말로 소리치자 군의관은 민화를 앞으로 오게 했다. 그리고 민화의 진단서를 살폈다. 그러더니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옆에 있던 다른 군의관에게 무언가 속닥거렸다. 진단서에 빨간 글씨로 결핵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까 불량을 받은 남자와 같은 글씨였다.
뒤에 있던 성재가 어느 정도 일본말을 알아들을 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어깨너머로 진단서에 적힌 결핵이라는 글씨를 분명히 보았다. 성재는 반가운 얼굴로 태화에게 말했다.
“태화야! 민화 결핵이란다. 불량 받을 것 같다.”
태화는 이걸 반가워해야 할지 말지 헷갈리는 표정으로
“뭐?”
하고 되물었다. 군의관 앞에 서 있는 민화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군의관은 민화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료오코오!”
하고 외쳤다. 그러자 태화가 벌떡 일어났다.
“료오코오라니! 거 결핵이라고 쓰여 있다 아닙니꺼? 자야말로 불량이라고! 결핵이 우째 양호가?!”
하고 벼락이 떨어지게 고함을 쳐댔다. 그러자 일본군들이 태화를 찍어 눌렀다.
“놔라! 이누무 새끼들아! 자 결핵이라고! 불량이라고! 자야말로 불량이라고!!”
태화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찍어누르는 놈들을 밀쳐내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태화야! 가만히 있어라! 태화야!”
하는데 민화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구르며 서 있었다. 그때였다. 태화가 갑자기 눈이 뒤로 넘어갔다. 드디어 발작이 온 것이다. 성재가
“태화야!”
하고 소리치며 다가가려 했지만, 일본군들은 발작이 와서 몸을 떨며 넘어가는 태화를 발로 차고 있었다. 태화 입에서 거품이 쏟아졌다.
“태화야!!”
민화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순간, 민화가 날아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