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아기

　미순이가 광주에 다녀온 후 노미와 미순이는 오랜만에 아랫목에 이불을 끌어안고 마주 앉아 있었다. 태화가 맛있게 구워다 준 군밤을 까먹으며 노미와 미순이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미순이는 노미에게 광주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20년대 초, 독립만세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던 시기에 광주에서 만세운동을 하던 석이 아버지는 당시 네 살이었던 석이와 이제 막 태어난 젖먹이였던 미순이를 데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많은 동료들이 잡혀가 고문을 당하다 죽었고, 목숨은 부지했으나 평생 불구가 된 이들도 있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는 터전을 잃고 모두 뿔뿔이 흩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동료들이 흩어지기 전, 한 친구가 틀림없이 살아서 만나자며, 막 태어난 자기 딸이 크면 꼭 석이한테 시집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 아기를 받아준 사람이 석이 어머니였다. 만약에 그 아기가 자라서 석이 색시가 되면 석이 어머니는 자기 며느리를 직접 받은 시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여기까지 얘기한 미순이는 한숨을 쉬었다.

　“지가 고향에는 아주 어릴 적 가보고 첨 가보는 디라. 들도 넓고, 산도 좋고, 여처럼 바다가 푸른색이 아닌 누른 바다가 있던디, 시상에, 그 바다에서 온갖 먹을 것이 나오고 다 맛나고, 사람들도 다 좋고, 고향이라 그런가 하나도 낯설지도 않고요잉. 다들 내랑 똑같이 말을 항께, 월매나 신기하든지라.”

　하며 웃었다. 미순이는 미순이만 전라도 억양으로 말을 해서 동네에서 놀림 아닌 놀림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모두 미순이처럼 말하는 곳에 다녀왔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좋았을까.

　“근디 수소문을 한다고 혔는데도 결국 그 아재 소식을 못 들었어라. 만주에 갔다는 소식도 있고, 경성에 산다는 소식도 있고, 우리 사는 데를 갈쳐 주고 혹 연락이 닿거든 기별해 달라 하고 오긴 왔는디, 참,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색시를 바라고 오빠를 내내 장가 안 보내고 있을 수도 없고잉. 어무이는 간 길에 색시들을 몇 명 본 모양인디, 다 그냥 그랐는지 말씀이 없으셔라.”

　석이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와 상관없이 내년에 윤화랑 미순이 혼례를 치르는 일은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해가 훌쩍 다음 해로 넘어갔다. 설 명절이 되었다. 이제 풍물놀이도 없고, 가까운 친지들 이외에는 오고 가는 이도 없었다. 지금처럼 떡을 뽑아 떡국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저 멀건 소고깃국에 절편이랑 인절미라도 해먹을 수 있으면 형편이 좋은 집이었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넘쳐나니 도대체 먹을 것이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원하는 것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고, 가지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때의 소원은 오로지 하나 실컷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었다.

　음력 1월 15일은 대보름이었다. 양력으로는 보통 2월 말경이 된다. 오곡밥을 해 먹고, 땅콩, 잣, 호두 같은 견과류를 챙겨 먹고, 온갖 마른 나물을 해 먹는 날이다. 나물 좋아하는 노미는 설보다 대보름을 더 좋아했다. 이제 곧 봄이 올 것이다. 시절은 어려웠지만 노미는 버릇처럼 이때만 되면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누가 뭐래도 노미는 봄이 좋았다.

　봄꽃이 피기 시작하자 제일 바쁜 사람은 민화였다.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꽃이란 꽃은 다 꺽어다 노미에게 가져다 주었다. 담장을 따라 심어놓은 개나리가 노랗게 터져 나왔다. 산에는 진달래가 피어 불이 난 듯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이 쌓였던 산이 순식간에 울긋불긋 봄의 색깔로 가득했다.

　태화의 돌맹이 줍기도 계속 되었다. 노미는 제발 개구리는 그만 주워오라고 사정을 했다. 착한 태화는 개구리 대신 예쁘고 반들반들한 돌맹이들을 주어다 노미 손에 쥐여주었다. 어김없이 그 돌맹이들은 화초장 위에 조르르 자리를 잡았다.

　정화는 이제 한 번도 안 먹은 엿을 구해다 주었다. 그렇게 가져다 준 엿은 항상 반은 노미가 먹고 나머지 반은 정화 입에 들어갔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정화는 노미에게 다 먹으라고 주었다. 그러면서 이제 자기는 더는 얼라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아기처럼 웃었다.

　남화는 열심히 책을 구해다 노미에게 주고 자기도 읽었다. 요즘에는 열심히 한글 쓰기도 했다. 틀린 글자가 있는지 문맥이 나쁘지 않은지 노미에게 봐달라고 할 때는 남화는 반드시 노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남화는 점점 읽는 시간보다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석이랑 미순이도 한글 숙제를 열심히 해왔다. 미순이 공부가 더 빨라서 석이는 조금 기가 죽었다. 하지만 착한 동생이 더 착한 오빠한테 뭐라 하지도 않고 잘 가르쳐 주었다. 둘이 어깨를 맞대고 쭈그리고 앉아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받아쓰기하는 오누이 모습은 참 귀여웠다.

　그런 석이랑 미순이 옆에서 윤화도 슬쩍 끼어 앉아 무언가 쓰기 시작했다. 주로 집에서 쓰는 것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장부를 적은 일이긴 했지만 윤화는 모르는 글자가 있어 노미에게 물어봐야 할 때는 반드시 ‘선생님’이라고 하며 세상 착하게 웃었다. 윤화도 홀로 앉아 무언가 읽거나 쓰는 날이 많아졌다.

　진화는 요즘 읍내에 자주 다녔다.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낮에 집에 없는 날이 많았다. 읍내에 다녀오는 날은 꼭 사탕이나 양갱 같은 것을 챙겨와 노미만 몰래 주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했던가. 그렇게 노미네 식구들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그리고 아픈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봄 밥상은 나물 밥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냉이로 된장국도 끓이고 고추장 양념에 맛있게 버무리기도 했다. 달래, 머위잎, 미나리, 돌나물, 어떤 것은 된장에, 어떤 것은 초장에 무치고, 들기름, 참기름을 알맞게 뿌려 먹으면 고기반찬이 안 부러웠다.

　좋아하는 나물 반찬이 한 상 가득이라 노미는 행복했다. 막 나물 한 젓가락을 집어 먹으려는데, 갑자기 노미가 입을 틀어막고는 ‘욱!’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모두 밥을 먹다 말고 노미를 보았다. 그것인가? 드디어? 그때가 온 것인가? 하며 모두 노미를 바라보았다. 노미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즘 내내 입맛이 없고, 작은 냄새에도 민감했다. 남화가 감격스러운 얼굴로,

　“형수님!”

　하는데, 노미는 확신이 없었다. 정화만 영문을 몰라

　“형수님, 속이 안 좋아예? 언쳤어예?”

　한다. 모두 진화를 바라본다. 진화도 놀라고 좋아서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다.

　“아직 모릅니더. 아부지한테 기별을 넣어가 맥을 짚어봐야 압니더.”

　하고 노미는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모두 다 이번에는 확실하다 싶었다. 그리고 진화와 노미에게 너도 나도 축하 인사를 했다.

　“또 뭐? 뭐? 뭔데? 또 뭔데 나만 모르노?”

　정화가 영문을 몰라 화가 났다. 다들 깔깔깔 웃으며 정화 뒤통수만 치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를 않는다.

　“그래, 그래, 또 내만 모르지.”

　하고 정화는 잔뜩 골이 났다.

　“형수님 얼라 가지신 것 같다. 니 곧 삼촌된다. 애 봐야 된다꼬.”

　하고 민화가 일러주었다. 그제야 정화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진짜로! 언제? 언제?”

　“아직 모릅니더. 맥을 짚어봐야 알지예. 미리 너무 좋아했다가 아니믄 우짭니꺼.”

　하며 노미는 내심 불안했다. 실은 아기가 빨리 안 생겨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원 일이랑 담쌓고 살았다 해도 노미 아버지는 의원이셨다. 딸이 태기(임신 징후)가 있다고 하니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그리고 맥을 짚어본 결과, 임신이 맞았다. 걱정도 되었지만 노미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친정아버지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러나 가장 기뻐야 할 진화는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노미가 아기 가졌다는 말에 석이네 식구들도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못 먹는 노미가 진저리(바다에서 나는 해초의 일종으로 식감이 꼬들꼬들한 편)만 먹힌다고 했더니 도련님들은 돌아가며 진저리를 많이도 구해다 주었다.

　진화와 노미는 이제 안방에 안 자고 자기들 방으로 건너와 잤다. 진화는 누워있는 노미의 얼굴을, 배를 손으로 쓸어주고 있었다.

　“그래 아무것도 못 먹어가 우야노?”

　하며 진화는 안타깝게 혀를 찼다.

　“어무이가 게워내더라도 묵어야 된다 하셔가 죽이랑 좀 먹었어예.”

　하며 노미는 진화를 안심시켰다.

　“근데, 당신은 얼라 생긴 게 안 좋습니꺼?”

　노미는 요즘 좀처럼 눈도 안 맞추고 웃어주지도 않는 남편이 못내 서운했다.

　“안 좋기는, 우예 안 좋노. 좋지. 꿈인가 생시인가 싶게 좋다.”

　하는데도 진화 표정은 어둡다.

　“근데, 와 표정이 내 그랍니꺼? 무슨 걱정이 있어예?”

　진화는 노미 이마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얼마 전에 창섭이 형이 일본 간다고 밤배를 타려다 걸렸다 아이가.”

　노미는 소문을 들어 대충 아는 얘기였다.

　“주재소에 끌려가 쇠좆 채찍(소의 성기 가죽을 말려 만든 채찍)으로 맞았단다. 형수 말이 살이 성한 데가 없었단다. 그 채찍이 시상 흉한 물건이라. 살을 잡아가 훑어내믄 살갗이 다 벗겨진단다. 그런 매를 온몸의 살이 다 터지게 맞고는 하루에 매실장아찌 한 개 올린 주먹밥 한 덩이 먹이더란다. 그 후로 창섭이 형은 매실 냄새도 안 맡는다 안 하나.”

　노미는 남의 얘기로만 들리지 않아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한 달을 있다가 머리를 빡빡 깎이가 배짝 말라 왔는데, 내 진짜 눈물도 안 나더라. 이런 세상에 얼라를 낳는 게 맞는가 싶다.”

　진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새삼 답답하고 미웠다.

　동네 사람들 중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기 땅을 빼앗기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땅을 잡히고 돈을 빌렸다가 세를 감당하지 못해 자기 땅을 은행에, 그러니까 일본에 빼앗기는 일이 허다했다. 땅을 잃은 농사꾼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제 땅을 빼앗긴 사람들은 일본으로, 만주로 건너갔다. 건너가야 했다.

　이렇게 일본으로 가는 길이 어려우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만주를 일본이 차지하고 있기는 했어도 조선 본토보다는 일본의 간섭이 덜해서 거기는 조선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며 학교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며 살고 있다고 했다. 외국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도 있어서 그곳은 전혀 일본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이후로 진화는 내내 남화를 그 학교에 데리고 가 공부시키고 싶었다. 중학교를 다니다 말았지만 남화라면 따라가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남화와 뜻을 같이할만한 훌륭한 인재들도 많을 것이었다. 진화의 고민은 깊어졌다. 남화는 해를 넘겨 열아홉이었다. 더 데리고 있다가는 공부 시기를 놓치기도 하겠지만 드디어 사람들을 마구 잡아가기 시작한 일본에게서 동생들을, 가족을 지켜낼 방법을 진화는 찾아야만 했다. 아무도 안전하지 않았다. 진화는 노미의 배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자기도 모르게 어금니가 아프도록 이를 꽉 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