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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28화 일곱 개의 옥 가락지
작성일 : 20-09-29 06:20     조회 : 33     추천 : 0     분량 : 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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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8화 일곱 개의 옥 가락지

 

 진화와 노미가 깊어가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미처 잠이 들지 않았을 때였다. 문밖에서 정화 목소리가 들렸다.

 

 “형! 내 드가도 돼나?”

 

 “와?”

 

 “드가도 돼나?”

 

 무슨 일인가 싶어 노미는 얼른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예, 들어오이소.”

 

 했다. 그러자 정화가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왔다.

 

 “에이! 내는 저 방에서 못 자겠다! 쫍고! 내내 방귀 뀌고, 코 골고!”

 

 하며 진화 옆에 벌러덩 눕더니

 

 “형아, 내 오늘만 여서 자께.”

 

 한다. 그리고는 진화 등에 딱 붙어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자 곧바로 태화랑 민화가 정화를 잡으러 들이닥쳤다.

 

 “니 나온나, 나온나. 여가 어디라고!”

 

 평소 달빛 같기만 하던 민화가 정화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빨리 나온나. 쥐 터지기 전에 언능!”

 

 화가 나면 제일 무서운 태화가 정화를 향해 눈에 힘을 있는 대로 주고 주먹을 흔들었다.

 

 “둘 다 덤비라! 내는 오늘은 그 방에서 안 잔다!!”

 

 정화도 단단히 각오한 듯 물러설 생각이 없다. 셋이서 옥신각신하는데 진화는 기가 막혀서 소리칠 힘도 없었다.

 

 “도련님들, 고마하이소. 그라믄 오늘은 여서 주무시고....”

 

 하는데 진화가 노미를 눈이 휘둥그레져서 바라본다.

 

 “우얍니꺼. 저 방이 장정들이 다 자기는 좁은 거 맞습니더.”

 

 하고 노미가 말을 하니 정화는 냉큼 노미 쪽으로 건너와 노미를 끌어안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형수님~!”

 

 하는데 태화랑 민화가 뻘쭘하다.

 

 “그라믄, 지도 여서 자믄 안돼겠습니꺼?”

 

 하고 태화가 형 눈치를 살피며 말을 해본다. 민화도 표정이 간절하다.

 

 “니들은 안 된다!”

 

 하고 진화가 단호하게 말하자

 

 “정화는 되고, 내는 안 되고, 큰형은 맨날 정화만 이뻐하고 내는 안 이뻐하고!”

 

 또 시작됐다. 태화가 눈이 씰룩씰룩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섭섭한 표정은 민화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다 큰 아들이 왜 형이랑 잘라 하는데!”

 

 하며 진화가 고함을 빽 쳤다.

 

 “그라믄, 지가 안방으로 갈테니, 도련님들 여서 주무시소.”

 

 하고 노미가 주춤주춤 일어서려 했다. 그러자 정화가 노미를 도로 끌어 앉히며

 

 “내는 큰형이 아니라 형수랑 자고 싶어가 온긴데.”

 

 하며 배시시 웃는다. 진화는 막내를 바라보며 말문이 막혔다. 이제는 대꾸할 힘도 없다.

 

 “니 이제 열여섯이다! 아직도 얼란 줄 아나?”

 

 “됐어예. 다들 형님이 그리워가 그라는데, 다 델꼬 잡시다.”

 

 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들 조르르 진화 옆으로 누웠다. 여전히 좁게 자야 하는데도 좋단다. 언제 가지고 왔는지 베게는 이미 손에 다 들고 있었다. 건너올 때부터 여기서 잘 생각들이었던 모양이다.

 

 다들 그렇게 정이 깊었다. 한시도 떨어져 못 사는 형제들이었다. 그런 녀석들을 진화는 한명 한명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형이 오랜만에 쓰담쓰담을 해주니 동생들은 좋아 죽는다. 이런 아이들을 두고 진화는 먼길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화는 목이 멨다.

 

 

 

 봄비가 와 조금 쌀쌀하던 어느 날, 베틀에서 쉼 없이 일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읍내 의원이 와서 맥을 짚어보더니 단순한 속병이 아니라 했다. 병이 생각보다 깊어 쉽게 나을 것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태어날 아기 때문에 모두 기쁨에 겨워 있던 가족들은 침통한 소식에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며칠씩 기척조차 못하시는 날이 많았다. 열심히 약을 달여 정성을 다해 간호했지만, 어머니 병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약을 가지고 들어간 노미가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불러 보았다.

 

 “어무이, 약 드시소.”

 

 그러자 어머니가 겨우 눈을 뜨시고 노미를 바라보셨다.

 

 “내 좀 일으켜 도.”

 

 노미는 얼른 어머니를 자리에 앉으시게 했다. 그사이 더 마르셨다.

 

 어머니는 주춤주춤 머리맡에 있던 장에서 무언가 꽁꽁 종이에 싼 것을 꺼내셨다. 펼쳐보니 옥 반지들이었다. 모두 여섯 개였다.

 

 “원래 일곱 개였는데, 하나는 널 줬다. 함에다 넣어서 보낸 것이 그것이니라. 잘 갖고 있나?”

 

 “예.”

 

 “이거는....”

 

 어머니는 옥 반지 한 개를 가만히 만지셨다.

 

 “이거는 윤화 색시 꺼다. 미순이 꺼인데....”

 

 “둘이 혼례 치르는 날 니가 미순이 줘라.”

 

 “어무이가 직접 주이소.”

 

 노미는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암만해도 그때까지 몬 있지 싶다.”

 

 “어무이!”

 

 노미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노미 손을 끌어다 잡으셨다. 막 시집 왔을 때 손을 잡아주셨던 것처럼, ‘내는 니 보고 우리 식구인줄 알았다.’ 했을 때처럼 그렇게 다시 노미 손을 잡으셨다.

 

 “이 반지들은 내가 아이들 색시들이 생기믄 한 개씩 줄라고 길쌈해가 마련한 것들이다. 니가 가지고 있다가 한 놈씩 색시들을 만나거든 한 개씩 챙겨주거라. 다들 별나가 어디서 어찌 지 색시들을 만날지 내가 참 궁금했는데 다 몬 보고 니 하나 겨우 보고 가지 싶다.”

 

 하시며 어머니는 노미의 손을 어루만지셨다.

 

 “어무이! 아닙니더. 아닙니더. 오래오래 사실낍니더. 곧 나으실 깁니더. 약한 소리 하시믄 안됩니더.”

 

 어머니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어머니는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옥 가락지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어루만지셨다. 반지 안쪽에는 각자 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거는 남화 색시 꺼, 착한 아가 왔음 싶다. 이거는 석이 색시 꺼, 밝은 아가 오지 싶다. 이거는 태화 색시 꺼, 아픈 아를 잘 돌봐줄 아가 왔음 싶다. 이거는 민화 색시 꺼, 지가 워낙 색시 같으이 갸 색시는 씩씩한 아가 오지 싶다.”

 

 하고 말씀하시며 어머니는 웃으셨다.

 

 “아이다. 민화는 겉으로는 색시 같아 보여도 속은 우리 애들 중 젤로 남자다. 갸는 속이 남다른 아다. 민화 속을 알아주는 참한 아가 왔음 싶다. 이거는 우리 정화 색시 꺼이고...., 보기보다 아가 별나가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인디.... 그 장단을 다 맞춰 줄라믄 지 색시도 엄청스리 별날라나. 니가 잘 보고 골라 주그래이. 인연이라는 게 지 맘대로 되는 거이 아니라 하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우에 아노. 다만 우리 아이들 겉만 보고 좋다 하는 애들 말고 속에 든 것을 봐주는 아이들이 왔으면 싶다. 니처럼.... 니는 우리 진화 속을 볼 줄 안다 아이가.”

 

 어머니는 노미를 지그시 바라보시며 아들들에게 나눠주신 그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셨다. 동글동글 예쁘기도 하고 곱기도 한 그 여섯 개의 옥 가락지를 바라보며 노미 또한 도련님들 색시들이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내가 말 본새가 없어가 니한테 다정하게 대해주지도 몬하고, 짐만 잔뜩 지워주고, 험한 세상만 물려주고 가니....”

 

 “어무이....”

 

 노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줄줄 흐르는 눈물을 어머니가 바짝 마른 손으로 훔쳐주셨다. 삼베를 다듬고 째고 한 손이라 바닥이 울퉁불퉁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손이었다.

 

 “잘 살아래이, 니는 잘 살끼다. 왠지 니 보자마자 야는 잘 살 것 같다 싶었다. 니도 잘 살끼고, 진화도 니 덕에 잘 살끼다. 다른 녀석들이야 다 지 복대로 산다. 너무 마음 안 써도 된다. 세상이 다 니맘 같지 않으이.... 그저 사람 조심하믄 된다.”

 

 어머니는 그렇게 여섯 개의 옥가락지를 노미의 손에 쥐여주셨다.

 

 며칠 후, 결국 어머니는 의식을 잃으셨고, 의식을 잃으신 채로 사나흘을 더 버티시다 결국 돌아가셨다.

 

 꽃 같은 아들을 여섯이나 낳은 분이었다. 엄하고 강인한 성품의 여인이었지만 속정이 깊은 어머니였다. 다정하게 사람을 대하는 법은 잘 모르셨지만, 항상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셨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싫어하셔서 온 동네가 칭찬하는 잘생긴 아들들이 혹시라도 자기 외양만 믿고 자만할까 봐 늘 경계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들 입는 옷은 남부럽지 않게 곱게 차려 입히셨다. 노미는 어머니와 일 년도 채 같이 지내지 못했다. 그리고 기다리시던 손주를 안아보시게 하지도 못했다. 그것이 내내 죄스럽고 송구스러웠다.

 

 어머니의 장례식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석이까지 일곱 명의 아들들이 상복을 입고 섰다. 노미와 미순이도 상복을 입었다. 아버지의 슬픔은 생각보다 커서 대나무 같던 분이 아기처럼 우셨다. 아내를 잃은 지아비의 슬픔은 그런 것인 모양이었다. 가눌 수 없는 슬픔에 모두 힘들었지만,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이 또한 인생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저 다 일이다. 살다 보면 우리 모두 당연히 겪어야 할 삶의 한 부분들인 것이다. 가족들은 그렇게 봄이 아름답던 어느 날,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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