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태어난다는 것
“정화, 니 손칼 있제?”
하고 민화가 묻자, 정화가 나무 비녀를 깍아 만들었던 손칼을 보여주었다.
“응!”
“실은, 실은 있나?”
하고 민화가 물었다. 태화가
“옷에서 째면 된다.”
했다. 준비는 끝났다.
“형수님, 걱정 마이소. 내 석이형 어무이가 산파하는거 옆에서 거들믄서 마이 봤습니더.”
하고 민화가 노미를 안심시켰다.
“형수! 걱정 마이소. 내가 달래 받았다 아입니꺼.”
하고 정화도 끼어들었다. 태화는 기가 막혔다.
“소랑 사람이랑 같나?”
그 말에 다들 긴장했다. 그때 노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내는 도련님들 믿습니더. 아 머리가 보이거든, 힘주라 하이소. 아 귀가 보이믄 받아내믄 됩니더. 그라고...”
하는데 또 말도 못 할 진통이 왔다. 노미는 이를 악 물고 통증을 견뎌냈다. 허리를 누군가 양쪽으로 끊어질 때까지 비틀어 잡아당기는 것 같은 끔찍한 통증이었다. 소리조차 지를 수 없는 무서운 고통이었다.
세 도련님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저 온몸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형수를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세 도련님도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민화와 태화가 노미 팔을 붙들고 머리를 받쳐주고 있었다. 정화가 입고 온 진화의 두루마기를 벗어 밑에 깔고 아이 받을 준비를 했다.
“그라고.... 아이가 나오믄 탯줄을 아기 쪽으로 손가락 한 개 만큼 묵고, 내 쪽으로 또 손가락 한 개 만큼 묵고 중간을 자릅니더.”
정화는 열심히 들었다.
“알았습니더. 알았습니더.”
하는 정화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화로에서 불이 타올라 어느새 마구간 안은 따듯하고 환해져 있었다. 진통은 잠시 멈추는 듯하다가도 다시 벼락에 맞은 듯이 노미의 온몸을 덮쳤다. 도련님들이 곁에서 아무리 안타까워도 이 고통은 오로지 노미 혼자 겪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노미는 순간 자기가 어쩌다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리다고는 해도 남자들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기 첫 출산이 어린 소년들 손에 맡겨진 것이 기가 막혔다. 그러나 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서운 고통의 순간이기도 했지만, 말할 수 없이 감격스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이것은 여인만이, 어머니만이 겪을 수 있는 특별하고 고귀한 경험이었다. 세 도련님들은 평소에도 형수님을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했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 형수가 존경스럽고 고귀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곁에서 보는 탄생의 고통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형수가 이 고통을 잘 이겨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진통은 한참이나 계속 되었다. 노미도 어느새 진이 다 빠져 자꾸 까무러쳤다. 이러다 큰일 나는 게 아닌가 싶어 모두 초조하기만 했다.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인 줄 세 도련님들은 미처 몰랐다. 그때, 다시 무서운 진통이 몰려왔다. 노미는 손수건을 입에 물고 있었다. 온몸을 쥐어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형수님! 힘내이소. 힘내이소!”
하며 태화가 울먹였다.
“아 머리 보이나?”
하고 민화가 다급하게 정화에게 물었다. 하지만 정화도 막상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노미는 자기 손으로 밑을 더듬어 보았다. 아이 머리가 잡혔다.
“나옵니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노미가 말했다.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노미는 말 그대로 젖먹던 힘까지, 온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배에 힘을 주었다. 노미는 온몸을 쥐어짜내며 마지막 비명을 질렀다. 순간 아기가 쑥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정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나옵니더! 보입니더!”
감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물과 피가 쏟아지며 아기가 태어났다. 정화는 얼른 아기를 두루마기로 감쌌다. 그리고 형수가 시킨 대로 실로 탯줄 두 군데를 묶고 중간을 잘랐다. 핏물을 뒤집어쓴 작은 생명은 그때까지도 기척이 없었다. 정화는 아기를 품에 안고 등을 문질렀다. 태화도 민화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등을 때리라!”
하고 민화가 소리쳤다. 그러자 정화가
“이... 이렇게?”
하며 아기의 등을 두드렸다. 보다 못한 민화가 달려가 아기를 받아 안고는 엎드려놓고 등을 탁탁 가볍게 쳤다. 그러자 아기가 ‘응애!’하고 첫울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세 도련님들 얼굴에 안도와 감격의 웃음이 번졌다. 노미도 그제야 말할 수 없이 기쁜 웃음을 웃었다.
“고춥니더! 아들입니더!”
하고 민화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노미에게 말했다. 노미는 아기를 품에 안았다. 노미의 첫아이였다.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대던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자 조용해졌다. 정화는 따듯한 물수건을 가지고 와 노미에게 건네주었다. 노미는 아기를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그러자 또 아기가 세상이 떠나가라고 울었다.
“고놈 목소리 봐라!”
하고 태화가 감격에 겨워 말했다. 민화가 지친 노미 대신 아기를 받아 안고 아기를 마저 물로 씻겨냈다. 태화도 정화도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다 씻긴 아기를 민화가 수건으로 닦아 자기 겉옷으로 싸서 태화에게 주었다. 태화도 아기를 안아보았다.
“너무 작다.”
하며 태화가 벙긋 웃었다. 정화도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민화는 노미의 손을 잡아주었다.
“욕봤습니더. 잘했습니더.”
하며 민화는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노미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고맙습니더. 도련님들 다 너무 고맙습니더.”
하며 노미는 민화 손을 잡아 자기 볼에 비비며 눈물을 흘렸다. 정화도 다가와 노미 손을 자기 얼굴에 대고 눈물을 흘렸다. 고생한 형수가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 태화는 노미의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큰형이 옆에 있어야 될낀데, 우짭니꺼. 죄송합니더.”
하며 울먹였다.
그때였다.
“시상에! 여서 아를 낳았는교?”
하며 누군가 마구간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 무리의 아주머니 아저씨들이었다. 손에 성경책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교회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남자들은 밖에 서 있고 여자들 서너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구, 아기 엄마는 괜찮은교?”
하며 여인들이 노미를 살피러 다가왔다. 노미는 여인들이 와 준 것이 너무도 반가웠다. 한 여인이 다가와 아기를 살피더니
“시상에, 탯줄도 잘 묵었네.”
하며 아기를 안고 있던 정화를 보며 칭찬했다. 여인들은 능숙하게 노미의 주변을 정리해주었다. 온화한 인상의 한 여인이 노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참말로 신기합니더. 성탄절에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으셨네예.”
노미는 그제야 오늘이 성탄절이란 걸 알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노미는 배시시 웃었다.
“성탄절이 뭡니꺼?”
하고 민화가 물었다.
“이천 년 전에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신 분이 태어나신 날입니더. 예수님말입니더.”
라고 노미가 대답했다. 노미의 대답에 여인들은 깜짝 놀라 노미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어찌 그걸 아는가 하는 표정이었다. 노미는 별말 없이 그저 웃었다.
“아기 엄마는 참말로 특별한 사람인 모양입니더.”
하며 아까 그 온화한 인상의 여인이 사뭇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도와준 사람들이 달구지를 가져다준 덕분에 노미는 무사히 할아버지 댁에 갈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첫 손녀의 첫 증손주였다. 그런 귀한 손녀와 증손주가 길에서 아기를 낳고 남의 달구지를 타고 들어 온 것이었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도와준 이들에게 몇 번이나 절을 하며 인사를 하시고, 아기를 받아 준 어린 세 도련님을 참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또 칭찬하셨다.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을 한 세 도련님과 노미는, 그리고 아기 홍이는 따듯한 노미의 할아버지 댁에서 그 밤을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나의 할머니 오노미님은 아들 여섯, 딸 둘, 이렇게 팔 남매를 낳으셨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것은 할머니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여인들이 아이를 잘 낳지 않는다. 실은 잘 낳을 수가 없다. 훨씬 더 풍요롭고, 훨씬 더 좋은 환경인데도 우리는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나도 겨우 아들 하나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