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버선
태화는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니들은 여 있어라. 절대 나오지 마라.”
하더니 민화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바닥을 덮고 있던 문을 열고 나갔다.
“태화야!”
하고 민화가 작은 소리로 불렀지만 이미 태화는 밖을 나간 뒤였다. 민화도 망설일 틈이 없었다. 태화를 따라 나가려는 정화를 바닥에 주저앉혔다.
“니는 형수 지켜라. 태화 자는 내 없으믄 안 되는거 알제?”
정화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민화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엄한 형의 눈이었다. 민화는 정화의 볼을 손으로 한번 쥐며 마지막인 듯 막내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민화도 덮개를 열고 나갔다. 덮개를 닫으려는 데 민화가 따라 나오자 태화는 민화를 다시 밀어 넣으려 했다.
“니 혼자 몬 간다.”
민화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태화를 쏘아보았다. 태화도 결심한 듯 민화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정화에게 마지막 눈인사를 보내고 덮개를 닫고 가마니를 덮었다. 커다란 정화의 눈이 이글거렸다.
태화와 민화는 메주방 문을 벌컥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막상 두 사람이 나오자 마당에 섰던 일본군들과 함께 온 완장 찬 사내들은 놀라는 눈치다. 그러나 반장은 그것 보라는 듯 킬킬 웃었다.
“그 총 치워라!”
태화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반장은
“겨우 방에 숨어 있었던 게냐? 난 또 똥둣간에라도 숨어 있는 줄 알았지.”
하며 비웃었다.
“막내는 어디 숨겨놨노?”
하며 반장은 비아냥거렸다.
“막내는 진짜로 부산에 갔다.”
하고 민화가 말했다.
“그 총 치우라고!!”
하고 태화가 소리쳤다. 원래 한 번씩 고함을 치면 누구보다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게 통했는지 반장은 노미와 아버지에게서 총을 거두었다. 민화가 달려가 아버지와 노미를 부축해 마루에 앉혔다. 두 사람 다 내내 찬 바닥에 꿇어앉아 있었던 것이다. 노미는 눈으로 ‘와 나오셨습니꺼.’하며 울었다. 민화는 ‘죄송합니더, 어쩔 수 없었습니더.’하고 눈으로 대답했다.
“끌고 가라!”
하고 반장이 소리치자, 일본군들은 태화와 민화를 총으로 겨누고, 완장 찬 사내들이 태화와 민화를 양쪽에서 붙들고 끌고 갔다.
“막내에게 기별하시오. 부산이든, 어디든 영장 나왔으니 바로 징용 사무소에 가서 등록하라고!”
반장은 그렇게 한 번 더 노미와 아버지를 향해 으름장을 놓고는 떠났다. 아버지는 그대로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리칠 힘조차 없었다.
“버선, 버선!”
노미는 방에서 아까 태화가 신으려다 만 버선을 쥐고 나왔다. 민화는 노미가 하도 성화를 해서 버선을 신고 있었는데, 태화는 귀찮다고 버선을 안 신었던 것이다. 노미는 버선을 쥐고 주춤주춤 뛰어나갔다.
어느새 길에 태화도 민화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눈이 온 그 길을 허우적거리며 뛰어갔다. 멀리 트럭이 보이고, 그 트럭에 태워지는 태화와 민화가 보였다.
“도련님! 버선! 버선!”
노미는 애타게 소리쳤다. 태화가 그런 노미를 보았다. 민화도 보았다. 태화는 눈물이 나서 형수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물을 손등으로 휙 훔쳤다. 노미가 버선을 들고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까 버선 신으라 할 때 말 들을 걸 하고 후회되었다. 그러나 태화가 미처 노미를 향해 손을 흔들 틈도 없이 트럭은 출발했다. 달래 어미를 잡아갔던, 미순이를 잡아갔던, 윤화가 타고 갔던 바로 그 트럭이었다. 노미의 눈에 하얀 도련님들 얼굴이 보였다. 세상 젤로 잘 생긴 우리 꽃 같은 도련님들이 트럭에 태워져 붙잡혀 가고 있었다. 버선을 손에 쥔 채 노미는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도련님! 버선! 버선!!”
하며 노미는 통곡을 하며 울었다.
“춥을낀데, 태화 도련님은 춥으면 안되는데....”
하며 노미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한없이 울었다.
태화도 민화도 기가 막혔다. 너무 기가 막혀 눈물도 안 나왔다.
“태화야, 민화야!”
그때 안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전에 장가간 태화와 민화의 동갑 친구 성재였다.
“니가 여기 왜 있노?”
하고 깜짝 놀란 태화가 물었다.
“장가 간 사람은 징용 안 간다 아이가?”
하고 태화는 성재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물었다. 트럭에는 열 명 남짓한 남자들이 타고 있었다. 다들 근처 동네 사는 남자들이었다. 소년들이었다. 민화도 성재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모르겠다. 무조건 들이 닥쳐가 영장나왔다 하믄서 밥먹고 있는데 끌려 나왔다.”
하며 성재는 울먹였다. 얼마 전에 장가를 가 이제 징용도 안 가고 좋겠구나 하고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니 색시는... 얼라 가졌다 안 했나?”
하고 민화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성재에게 물었다.
“맞다.... 내년 봄이면 나온다.”
하며 성재는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울던 성재 눈에 태화 민화가 신발도 안 신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기다 태화는 버선도 안 신은 맨발이다.
“뭐꼬? 신발도 못 신고, 버선도 못 신고 끌려왔나?”
착한 성재 얼굴에도 노기가 서렸다. 기가 막히기는 태화 민화도 마찬가지였다. 민화는 자기 버선을 벗어 태화에게 신겨 주려 했다. 태화는 됐다고 말렸다. 서로 니가 신어라 니가 신어라 하고 실랑이를 하니 입구에 앉아 있던 총든 일본군이 일본말로 조용히 하라고 고함을 쳤다. 할 수 없이 태화와 민화는 버선을 한 짝씩 나눠 신었다. 성재가 그런 두 사람을 안타깝게 쳐다보다가 맨발인 쪽에 자기 짚신을 벗어 신겨주었다. 그래서 성재는 신발 안 신은 버선발로 앉았고, 태화와 민화는 한발은 버선, 다른 한발은 짚신을 신은 참 이상한 상태로 앉았다. 이 처참한 와중에도 동네 동갑 친구 세 명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노미는 버선을 손에 쥔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어 집으로 뛰어갔다. 아버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마루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는 노미가 돌아온 것을 보시고는
“정화는.... 정화는 어딨노?”
하셨다. 노미는 후다닥 메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닥에 깐 가마니를 걷고 덮개문을 열었다. 정화가 넋이 빠진 표정으로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도련님....”
노미가 안타깝게 불렀다.
“형수님....”
하며 정화는 왈칵 울음이 터졌다. 정화는 흑흑 흐느껴 울었다. 아버지가 따라와 정화 얼굴을 확인하셨다. 정화는 아버지 얼굴을 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정화야!”
아버지는 막내를 부둥켜안고 아기처럼 울었다. 정화도 그런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아들이 여섯이나 있었는데 이제 막내 하나 밖에 안 남은 것이다. 노미는 억장이 무너졌다. 도대체 앞으로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다 노미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도련님, 아버지, 지 읍내에 다녀오겠습니더.”
정화도 번쩍 정신이 들었다. 노미가 왜 읍내에 가려는지 알아차렸다.
“지도예. 지도 같이 가겠습니더.”
그렇게 해서 노미와 정화는 서둘러 옷을 챙겨입었다. 정화가 솜옷에 솜바지에 귀까지 내려오는 벙거지를 쓰고 목도리도 코까지 둘러맨 것을 확인하고는 노미도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달래가 끄는 달구지에 올라탔다. 정화가 형수를 번쩍 들어서 달구지에 태웠다. 노미는 속으로 ‘막내가 이제 다 컸구나.’ 싶었다.
정화는 안방에서 이불을 가지고 와서 노미를 둘둘 싸맸다. 이를 악물고 있는 정화는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참고 있는 노미의 얼굴을 보았다. 이제 형수를 지킬 사람은 자기 뿐이었다.
정화는 달래의 고삐를 단단히 쥐었다. 정화가 ‘이랴!’ 하자 달래가 흰 콧김을 내뿜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버지가 문밖까지 따라 나오셨다. 그렇게 노미와 정화는 아까 태화와 민화를 태운 트럭이 간 길로 달래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읍내로 향했다.
상황 이야기를 들은 복권이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 반장이라는 놈이 요즘 복권이 하는 일을 심상치 않게 생각해서 내내 하는 일마다 딴지를 걸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쪽에 인맥이 많은 이도 복권이고, 이쪽 일을 더 오래 하고 더 잘 아는 이도 복권이었다. 그 반장이라는 놈이 줄을 대고 따라다니던 일본군 대장을 얼마 전 일본으로 돌려보내며 끈을 싹둑 잘라버린 이도 복권이었다. 새로 온 일본군 대장은 복권이가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끈 떨어진 연이 되어버린 그 반장 놈이 지금 더 길길이 날뛰는 것이라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징용자 숫자를 정해놓고 무조건 송출을 하라고 압박을 했다. 지원자만으로는 그 숫자를 다 감당할 수 없으니 현지 조달을 책임지고 있는 반장들은 별짓을 다 해 징용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조선사람이 조선사람들을 잡아다 바치고 있는 기가 막힌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서류에는 모두 자원한 것처럼 되어있지만 납치나 다름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일본 정부는 다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었다. 실은 적극적으로 조장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말이 영장이지 그것은 납치허가증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부분은 지금도 한일간의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는 문제로 그저 할머니 이야기 듣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역사학자도, 정치인도 아닌 대한민국 아줌마가 함부로 언급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적어도 그때 우리 도련님들에게, 우리 소년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우리는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알리고 또 알려야 한다. 안 그러면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은 묻혀버리고, 그때 우리 소년들에게, 우리 소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게 된다. 만주에서, 중국에서, 사할린에서, 타이완에서, 남양군도라 불리던 태평양의 섬 사이판, 팔라우, 티니안에서, 그리고 중국 남단의 섬 하이난에서, 인도네시아에서, 필리핀에서 우리 소년 소녀들, 그리고 그곳의 소년 소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알려야 한다.
복권이는 노미와 정화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어딘가로 전화했다. 하지만 복권이도 최선을 다할 뿐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사이 태화, 민화, 그리고 성재를 태운 트럭은 경주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일본이 만들어 놓은 철도는 그렇게 조선 땅 곳곳에 뻗어 그곳의 물자를, 사람을, 피를 빨아들이는 데 이용되고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듯 조선의 발전을 위해 깔아 둔 철로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