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오지 않는 봄
그해 겨울은 유난히 더 길었다. 만주에 있는 진화는 겨울 동안은 남화와 같이 병원 곁방에서 지냈다. 진화는 부스럼이 쉬 낫지를 않아 고생했다. 홍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편지로 받으며 진화는 울음을 삼켰다.
남편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노미는 참 기가 막혔다. 불쑥 이 사람이 일부러 오지 않나 하는 의심도 들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워낙에 인물이 좋은 사람이니 그곳에서 정인이라도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어 노미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산다는 게 다 그랬다. 내 사람 목숨도, 내 사람 마음도 옳게 지켜낼 수 없는 시절이었다. 있으면 있나 보다 갔으면 갔나보다 해야 하는 것이 그때를 살던 사람들의 운명이었다. 그때를 살던 여인들의 운명이었다.
1940년, 그해도 보릿고개는 힘겨운 것이었다. 젖먹이를 둔 여인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그러나 석이가 전라도에서 가져온 쌀이랑 잡곡들 덕분에 노미는 젖이 마르는 일 없이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겼다. 말할 수 없이 넓은 평야가 있던 전라도에는 그래도 먹을 것들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전라도 땅은 나머지 땅들을 먹여 살렸다.
도대체 봄은 와줄 것 같지 않더니 어느새 고향에도 봄이 왔다. 봄이 오면 제일 먼저 노미네 식구들은 어머니 제사 준비를 했다. 형들 없이 막내들 셋과 석이가 제사상 앞에 앉았다. 어머니의 첫 제사였다. 만주에서는 진화와 남화가 어머니 제사상을 차렸다. 윤화는.... 홀로 숙소 마당 한쪽에서 향을 얻어다 피웠다.
다케짱 덕분에 풀려난 성재는 그 봄 딸을 얻었다. 성재네 딸은 석이 어머니가 받아주었다. 성재는 돼지를 잡아 온 동네 잔치를 하고 노미네 식구들도 모두 초대했다. 서류상으로 성재는 결핵이었고, 서류상으로 정화는 간질이었다. 다케짱과 복권이가 해 준 일이었다. 성재는 부모님과 색시 이외에는 부산에서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정말로 세 사람이 다 건강검진에서 불량을 받아 풀려난 줄 알았다.
석이는 봄농사를 지으러 어머니와 함께 전라도로 돌아가야 했다. 오고 가는 날짜를 알고 헤어지는 것이라 이제는 헤어지는 일이 많이 섭섭하지 않았다.
홍이는 어느새 제자리에 혼자 앉을 수 있을 만큼 컸다. 태화는 홍이가 자기를 닮았다고 우겼다. 정화는 자기를 더 닮았다고 우겼다. 민화도 자기를 닮았다고 우기고 싶은데 참았다. 그 대신 홍이가 자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우겼다. 그도 그럴 것이 홍이는 삼촌들이랑 잘 놀다가도 잠만 오면 민화를 찾았다. 엄마도 아니고 꼭 민화 품에 안겨야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아기가 홍이 뿐만이 아니었다. 태화는 원래 그랬고, 언제부턴가 정화도 민화가 옆에 없으면 잠을 못 잤다. 잠시만 안 보여도 야단이 났다. 민화는 정화 때문에 똥 누러도 못 간다고 투덜거렸다. 민화는 자기가 낳지도 않은 아기 셋을 돌보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런 민화를 돌보는 이는 누가 뭐래도 노미였다.
발이 넓기로 둘째가라면 섭섭하신 노미 아버지는 아기 젖을 먹여야 하는 딸을 위해 온갖 보양식을 가져다 주셨다. 굴에, 전복에, 붕어에, 낙지에, 장어에, 꿩고기까지 구해 오셨다. 그러면 노미는 그것을 민화부터 먹였다. 결핵을 다스리는 일은 일단 잘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유난을 떤 덕분인지 민화는 결핵증세가 악화되지 않았다. 살도 살짝 올랐다. 민화는 형수님 은혜를 앞으로 어찌 갚을까 싶었다. 민화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노미는
“그저 오래 오래 내 옆에서 지금처럼 이쁘게 곱게 살아주이소.”
했다. 그런 노미를 향해 민화는 세상 제일 고운 미소로 답했다.
노미는 민화를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늘 다른 이들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집안에 여자가 노미 뿐이니 여자들이나 하는 바느질이며, 부엌일이며, 아기 돌보는 일까지 거들어주었다. 민화가 없었으면 그 많은 집안일을 어찌했을까 싶었다. 그런 아이가 자꾸 아프니 노미는 마음이 애닲았다. 결핵 기운 때문인지 감기를 한 번 앓으면 쉬 낫지를 않았다.
안타깝기는 태화나 정화도 마찬가지라 민화가 기침만 해도 난리들이 났다. 이불에 꽁꽁 싸놓고 방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는 둘이 돌아가며 간병을 했다. 태화는 다행히 그해 겨울도 봄도 발작 없이 지나갔다.
그래도 봄은 봄이라 들에도 산에도 꽃이 가득했다. 꽃 좋아하는 노미에게 민화는 어김없이 꽃을 꺾어다 주었고, 태화는 어김없이 돌맹이를 주어다 주었고, 정화는 어김없이 엿을 구해다 주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6월 공출이 있었다.
포악을 떨던 그 반장이라는 자는 담당 지역이 바뀌었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 온 반장인지 조장인지 하는 자는 좀 덜 포악해서 대충 설렁설렁 자기 일을 했다.
그간 공출이 하도 심하다 보니 마을 사람 반이 이사를 나가고 마을에는 빈집이 많았다. 가져갈 것이 줄어드니 당연히 뺏어가는 놈들의 포악도 줄어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자기 땅을 지키고 있던 노미네 집은 농사계로 분류되어 더는 징용 영장이 날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공출 때가 되자 도련님들은 달래를 데리고 산밭으로 가서 한참 동안 피해있었다. 하지만 아픈 아버지와 형수님, 어린 홍이만 집에 있게 할 수는 없었다. 태화, 민화, 정화가 순서대로 돌아가며 곁을 지켰다. 그렇게 어린 소년들은 어른이 되어갔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추수한 쌀의 대부분을 공출로 빼앗겼고, 이번에는 저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난다는 풀풀 날리는 쌀을 배급이라고 받았다. 세상에 무슨 쌀이 찰기가 하나도 없어서 뜸을 제법 오래 들여 밥을 지었는데 밥숟가락에 붙지를 않고 우수수 떨어졌다. 그런 쌀이라도 넉넉하면 좋을 텐데 그나마 한 달도 안 되어 바닥이 났다.
진화에게서는 올해 농사도 망쳤다는 허망한 소식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오려나 싶어 노미는 마음이 설렜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편지가 온 것이 10월 초였다. 한달이 다 되도록 다른 소식이 없었다. 그러더니 남화에게서 기가 막힌 소식이 왔다. 진화가 러시아로 넘어간다며 아는 이들을 따라 떠났다는 것이다. 가자마자 연락해주기로 한 진화에게서는 소식이 없고, 같이 간 이들은 다 도착했다는데 진화만 깜깜무소식이었다. 중간에 일행과 헤어졌다는 것이다. 소식을 받고 노미는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직 11월인데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 듯 했다.
할아버지가 실종되셨을 때 할머니는 그저 남들한테 일어나는 일이 나한테도 일어났구나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여인들이 남편을 허망하게 잃고 홀로 되는 일이 참 흔했다. 누구를 원망할까. 울까. 화를 낼까. 산 사람은 그저 오늘도 내일도 살아내야 했다. 그래도 살아 있으니 감사해야 했다. 그래도 해는 또 뜨고, 그래도 봄은 또 오고, 그래도 또 내가 잡아줘야 할 손들이 있어서 할머니는 노미는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