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돌아오지 않는 소녀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거기 서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았다. 노미는 어쩌다 갑자기 자기가 여기 서 있게 되었는가 싶었다. 모래가 섞이고 반이나 썩었을지언정 그래도 배급이라고 받은 보리와 콩은 다른 사람들이 집에 가져다주겠다며 벌써 들고 가 버렸다. 어떻게든 틈을 보아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틈이 나지 않았다.
처녀들 모두 얼빠진 사람들처럼 그저 군인들이 이끄는 대로 트럭에 올라타고 있었다. 트럭 한 대가 꽉 차자 트럭이 떠나고, 다음 트럭이 와서 섰다. 이제 노미도 그 줄에 섰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눈앞이 아득한데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노미의 팔을 확 잡아챘다. 얼마나 세게 잡아챘는지 노미는 순간 ‘아야!’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진화였다.
얼마나 씩씩거리며 달려왔는지 머리와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니 여서 모하노?”
노기가 가득 찬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벼락이 떨어질 듯 했다. 노미는 지금까지 이렇게 화가 난 서방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노미는 반갑기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진화의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노미는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쌀을 두 가마나 준다 해가....”
진화는 기가 막혀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리 나온나!”
진화는 괜스레 노미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진화에게 붙잡혀 나오는 노미는 영락없이 나쁜 짓 하다 남편에게 걸린 마누라였다. 노미는 주춤주춤 진화 손에 이끌려 줄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완장 찬 사내가 고함을 쳤다.
“어이! 거기 뭐하나?”
“지 안사람입니더. 지는 이 사람 공장에 안 보내니 데리고 가겠습니더.”
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노미 손을 틀어쥐고 공터를 나섰다.
“止まれ！(토마레!) 거기서!”
하며 군인들이 진화 앞을 막아섰다. 진화는 터질 것 같은 눈으로 군인들을 노려보았다. ‘으드득’하고 이빨 갈리는 소리도 났다. 하도 서슬이 퍼러니 막아선 군인들도 순간 움찔했다.
그때였다. 공터로 막 달려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복권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복권은 진화가 공터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쫓아 온 것이었다.
복권은 진화 손에 붙들려 있는 노미를 보았다. 복권의 얼굴도 순간 하얗게 질렸다. 복권은 진화와 짧게 눈을 맞추더니 뒤에 서 있는 일본군 대장에게 아는 체를 하며 다가갔다. 그리고는 귀에 대고 무언가를 얘기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일본군 대장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진화를 막아선 군인들에게 명령했다.
“放してやれ! (하나시테야레) 보내줘라!”
그렇게 진화와 노미는 공터를 빠져나왔다. 일본군대장이 노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공터를 빠져나가는 노미와 진화를 복권은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진화가 얼마나 노미의 손을 세게 잡고 끌고 갔던지 노미는 손이 부서질 것 같았다.
“아픕니더. 이거 좀 노이소.”
하는데 진화는 말이 없다. 노미는 아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눈물을 훌쩍였다. 노미가 훌쩍이는 소리에 진화가 뒤를 돌아보았다.
“니 거가 어디라고 줄을 서 있노?”
진화는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는 눈치였다.
“지는 쌀을 두 가마나 준다해가, 기름 짤 줄 아는 사람은 다 손들라 해가, 그냥 손을 든 긴데, 갑자기 줄을 세우더니 막 오늘 당장에 공장에 가야 한다고 해가.”
하는데 눈물은 이미 줄줄줄 흐르고 있다. 진화는 그제야 움켜쥐었던 손을 놓아주었다. 노미는 아픈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었다. 벌겋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진화는 벌게진 노미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프나.”
“화 많이 났어예?”
하며 노미는 자기 손보다 화가 난 서방님 마음을 어찌 달래나 싶어 애달팠다. 진화는 한숨을 쉬었다.
“이리 줘 봐라.”
하며 진화는 벌게진 손을 잡아다 살폈다. 멍이 들 것 같았다. 진화는 노미의 손을 가만히 잡고는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진화가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아래를 보니 진화 신발이 없다. 얼마나 정신없이 뛰어왔던지 중간에 짚신은 달아나 버리고, 맨발로 여기까지 뛰어온 것이다. 발 여기저기가 까진 채 피가 맺혀 있었다.
“에구머니나!”
노미는 깜짝 놀라 진화의 발을 살폈다.
“신발은 우쨌습니꺼. 이래 맨발로 뛰어온깁니꺼?”
진화는 자기 발밑에 주저앉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노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일으켜 세웠다.
“지금 신발이 문제가? 니는 니가 우찌 될 줄 알았나?”
진화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잘못했습니더. 지도 이리 될 줄 몰랐습니더. 기름 짤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길래 손을 든 것인데.... 잘못했습니더. 일본사람들도 사람인데 사람이 사람한테 뭐 그래 나쁘게 하겠나 싶어가.”
진화는 기가 막혔다.
“니 보기에는 저놈들이 아직도 사람 같나? 뭔 짓을 할지 모르는 놈들이다. 예전에는 어쨌는가 몰라도 지금은 그렇다. 저놈들이 니를 데려다 콩기름을 짜게 할지, 니 기름을 짜게 할지 우예 아노? 처녀들이 잡혀갔다는 얘기 몬 들었나? 니 아까 몬 봤나? 다들 얼라들이었다. 때도 안 벗은 어린 처녀들로만 줄을 세웠다. 그런 애들을 데려다 모 할 꺼 같노?”
노미는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노미는 자기 신발을 벗어 진화 발에 신으라고 주었다. 자기는 버선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버선발로 걸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진화 발에 반도 안 걸리는 작은 짚신을 주어봤자 소용이 없었다. 진화는 허탈하게 웃었다.
“됐다!”
하며 도로 노미에게 신발을 주었다.
“발에.... 피납니더.”
하며 노미는 눈물을 삼켰다. 노미는 목에 걸고 있던 머릿수건을 죽 찢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진화의 피 묻은 발을 감쌌다. 가까이 보니 발 상태가 더 심각했다. 발바닥이 다 벗겨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노미를 도련님들이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노미와 진화가 문 안으로 들어서자 정화가 뛰어와 노미를 살폈다. 그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괜찮으십니꺼?”
하는데 그저 항상 잘 웃고 하던 그 막내 도련님이 아니었다. 설명이 안 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목소리였다. 노미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닌데도 노미는 움찔했다. 괜찮다는 말도 모깃소리 만큼 조그맣게 나왔다. 민화가 달려와 노미를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태화도 엉엉 울며 노미 등에 고개를 박고 울었다.
“언니!”
하며 미순이 거의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노미 품에 와락 매달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다 퉁퉁 부어 있었다. 노미 소식을 전해준 것이 미순이 어머니였는지 미순이 어머니도 얼굴이 하얗게 된 채로 넋을 잃고 앉아 계셨다.
윤화도 남화도 석이도 다들 노기가 가득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다. 시부모님과 눈이 마주치자 노미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셨고, 겨우 서 계시던 어머니는 노미 손을 붙잡더니 가만히 한숨을 토하셨다.
나중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트럭을 향해 뛰어가다 곤욕을 치른 아버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했다. 딸을 내놓으라고 주재소 유리창을 박살 낸 아버지, 여동생 간 데를 대라고 순사 한 놈 팔을 부러트렸다가 온몸의 뼈마디가 다 나가게 매를 맞았다는 오라비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트럭을 타고 간 그 소녀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 소녀들은 내내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트럭에 실려 간 소녀들 중에는 할머니가 아는 이도 있었다. 복권이가 무슨 말을 했길래 자기를 놓아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내 그때 붙들려 갔으믄 니 아버지도 세상에 몬 태어났을 테고, 니도 여기 없을 거 아이가. 참말로, 말도 안되는 일이다. 말도 안되는 일. 그런 세상이었다. 니 할아버지랑 내랑 살아온 세월이 그래 처참했다. 내는 암껏도 몰랐다. 암껏도 몰랐으이 살았제.”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시고, 내 이마를 쓸어내리셨다.
이 일이 있은 후, 진화와 동생들은 메주 띄우는 작은 방 바닥을 팠다. 쇠붙이로 된 도구들은 다 빼앗기고 없었기 때문에 나무삽과 나무곡괭이로 작업을 했다. 사람들이 안 보는 밤에만 아무도 모르게 일을 하려니 작업은 꽤나 오래 걸렸다. 밑으로 깊이 판 후 옆으로 굴을 파 남자 서너 명이 충분히 앉을 만한 공간을 만들고 마루 밑으로 작은 숨구멍 겸 창을 내어 밖을 살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방바닥에 나무판을 깔고 그 위에 멍석을 깔아 놓으니 감쪽같았다.
이장이 동네를 돌며 몇 달 안에 한 집에 한 명은 반드시 징용을 가야 한다고 엄포를 놓고 다녔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와 누구를 끌고 갈지 알 수 없었고, 진화는 아직 어린 막내들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본놈들이 사람 잡으러 온다는 기별이 있으면 윤화 남화 석이까지 메주방 바닥에다 숨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진화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며칠 후, 새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이 없는 맑은 가을날이었다. 세상은 이다지도 캄캄한데 조선의 가을 하늘은 몇천 년을 그러했듯이 한없이 푸르고 맑았다. 노미는 남화가 떠온 아침 새 물을 작은 흰 그릇에 담고 매일 그랬듯이 하늘을 향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또 하루가 노미에게 주어졌다. 지난 며칠 간의 일을 생각하면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다함이 없었다. 그러나 두려움 또한 그만큼 컸다. 노미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며 그다지 무서운 것이 없었다. 싫은 것도 없었다. 한없는 부모님 사랑을 받았고, 특별히 해하려는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았었다. 누나밖에 모르는 예쁜 동생도 있었고, 늘 다정하게 어울려 놀던 동무들도 있었다. 크게 야단맞은 적도 없었고, 남이 가진 것이 부러워 약올라 본 적도 없었다. 잘 웃고, 사람 좋아하는 노미를 모두 좋아해 주었고, 그런 사람들을 노미는 아끼고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노미는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처음으로 두려웠다. 무서웠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몰라 좋아라 하며 살았구나 싶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못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살아낸다 하더라도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당장 식구들 먹일 일이 걱정이었다.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던 노미는 얄밉도록 새파란 하늘이 왠지 원망스러웠다.
기도하고 있는 노미 옆에 언제 왔는지 민화가 와서 서서는 두 손을 모으더니 노미처럼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하고 사뭇 진지하게 기도를 올렸다. 태화도 노미 옆에 와서 서더니
“지도예, 지도예, 지도예.”
하고 기도를 올렸다. 노미는 그런 도련님들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정화도 형들을 따라 두 손을 모으고는 옆에 섰다.
“형수님, 도대체 거가 어디라고 줄을 섭니꺼?”
막내가 제일 어른처럼 노미를 나무라듯이 말했다.
“하여간에, 형수님도 가마히 보믄 똑똑한줄 알았더니 영 멍한 구석이 있습니더.”
한다. 노미는 뭐라 대꾸도 못하고 아직 기도가 안 끝난 터라 두 손을 모은 채로 어쩔 수 없이 막내에게 야단을 맞고 서 있었다.
“어쨌든, 지도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하며 정화는 예의 그 아기 같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하늘을 향해 감사기도를 올렸다. 푸른 하늘도 세 도련님들 때문에 웃는 것 같았다.
그런 푸른 하늘 아래 남화는 장독대에 걸터앉아 노트 한권을 손에 쥐고 읽고 있었다. 그것은 남화가 얼마 전 읽을 것을 달라고 해서 노미가 남화에게 준 작은 노트였다. 노미는 어릴 때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경주의 주일학교에 다녔었다. 그때 교회에서 받은 미국 노트에 펜으로 성경구절들을 받아 적었었다. 집에 있던 한글책을 다 읽어버린 남화가 더 읽을 것이 없자 노미가 읽어보라고 남화에게 준 것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여기까지 읽은 남화는 곁에 있던 노미에게 물었다.
“형수님,”
“예?”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데, 세상이 왜 이 모양입니꺼.”
남화의 목소리에는 노미가 쉽게 가늠하기 힘든 깊은 원망이, 깊은 분노가, 깊은 슬픔이 있었다. 누가 무엇인가 물으면 어떻게든 기필코 대답을 찾아내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노미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번만큼은 노미도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지도 모르겠습니더. 하지만 도련님은 알 수도 있습니더. 아실 수도 있으실 겁니더. 도련님이 알아가 지도 좀 알려주이소.”
남화는 허망하게 웃었다. 대답을 듣자고 형수에게 물은 것이 아니었기에 남화는 그저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원망이 담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