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첫눈
남자들은 겨울이면 내내 새끼를 꼬아 짚신도 만들고 새끼줄도 만들어야 했다. 짚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은 주로 형들 일이였다. 형들은 가마니도 짜고, 멍석도 만들었다. 그래서 겨울 동안 작업방은 제일 바쁜 곳이었다. 하지만 짚으로 하는 제일 중요한 일은 지붕을 다시 얹는 것이었다.
겨울이면 남자들은 묵은 짚을 걷어내고 새 짚으로 지붕을 덮었다. 힘도 들지만 위험하기도 하고 기술도 있어야 하는 일이라 보통 스물이 넘어야 영치는 일(지붕 중앙을 따라 새 짚을 얹어 엮는 일)을 했다. 영치는 일을 잘하면 장가가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장가간 진화보다 장가 안 간 윤화가 영치는 일을 더 잘해서 장가는 윤화가 먼저 갔어야 한다고 동생들이 큰형을 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화는 동생들 놀림에도 그저 웃었다.
산에 가서 한 짐씩 나무를 해다 헛간을 꽉 채우는 일은 막내들 일이었다. 힘 좋고 발 빠르고 손재주 좋은 정화는 늘 남들 두 세배나 되는 나무를 해서 내려왔다. 그렇게 해 온 나무를 한 짐씩 가져다 동네 엿 만드는 아지매 집에 가져다 주고는 엿으로 바꿔왔다. 그렇게 얻어 온 엿은 항상 형수 먼저 주었다.
여자들에게 겨울은 길쌈철이었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비단도 짜고, 목화에서 면실을 뽑아 면도 짜고, 삼베를 쪄 손으로 일일이 쩨서 실을 만들어 삼베도 짜야 했다. 그렇게 만든 천으로 옷을 만들고, 또 솜을 틀어다 이불도 새로 만드는 것이 겨울에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노미는 어머니를 도와 요즘 내내 베를 짰다. 어머니는 베를 곱게 잘 짜기로 근동에 유명하셔서 그렇게 한겨울 짠 삼베 천을 팔아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들 입는 옷은 어느 대가댁 양반 자제들 부럽지 않게 입히셨다. 그런 어머니 솜씨를 따라가는 것이 노미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열심히 배웠다.
겨울밤이면 이집 저집 이불 홑청(이불을 싸는 천)에 풀을 먹여 다듬이질하는 소리들이 울렸다. 이렇게 방망이로 이불 천을 두드려야 이불이 덮고 자기 좋게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천을 두드려 부드럽게 하다니, 천이란 원래 부드러운 것 아닌가 할 것이다. 풀을 먹여 뻣뻣한 천을 아무리 잘 두드려도 비단처럼 부드러울 수는 없어서 덮고 자다 보면 몸이 뒤척일 때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게 된다. 여행 가서 호텔에서 잠을 자 본 사람이면 호텔 이불을 싸고 있는 흰 커버를 알 것이다. 이불과 매트리스를 덮는 흰 시트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이 부스럭거리는 이불 홑청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겨울이라고 이방 저방 다 불을 땔 수 없어 식구들은 날이 추워지면 모두 제일 큰 안방에 모여서 잤다. 진화와 노미가 제일 안쪽에 자고 아버지 어머니가 그 옆에 주무시고 바깥쪽으로 도련님들이 주르르 누워서 자는데 다들 잠이 들었다 싶으니 아내가 그리운 진화는 자꾸 노미를 만지고 싶었다. 그런데 진화가 움직일 때마다 이불이 부스럭거리니 진화는 여간 민망하지가 않았다. 그만하면 그만둘 만도 한데 진화는 그날따라 아내가 간절하게 그리웠던 모양이다. 이불이 부스럭거리거나 말거나 진화는 노미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갑자기 쿨럭쿨럭하고 기침을 하신다. 놀란 진화는 얼른 아내를 품에서 놓았다. 잠시 후 다시 노미를 가만히 안으려는데 이번에는 동생 중 한 놈이, 아마 태화지 싶다.
“이누무 자슥! 그거 딱 안 놓나!”
하고 잠꼬대를 했다. 다들 그렇게 이 갈고, 코 골고, 방귀 뀌고 하는데 진화는 결국 이불을 획 걷어차 버렸다. 노미는 소리 안 나게 웃느라 애를 먹었다.
다음 날 아침, 진화는 노미 옆을 지나가며
“이불에 그 풀 좀 먹이지 마소.”
했단다.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 참 고생이 많으셨다. 그 와중에 팔 남매를 낳으셨으니 대단하시다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
며칠 후,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첫눈이었다. 막내 도련님들은 강아지처럼 좋아서 눈밭을 뛰어다녔다.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은 항아리들이 하얀 모자를 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막내 도련님들에게는 눈이 그저 하늘에서 내려주는 장난감이지만 형님들에게 눈은 빨리 치워야 하는 번거로운 일거리였다. 눈이 올 때 빗자루를 들면 어른이고, 눈싸움을 하면 아이라 했다. 진화와 윤화는 빗자루를 들었는데 남화는 동생들이랑 어울려 눈싸움을 한다. 진화와 윤화는 그런 남화를 보며 저놈 아직 아기구나 싶었다. 윤화는 집 앞을 쓸며 미순이네 집 앞까지 빗자루질을 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22일경이 동지가 되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날로 이날은 모두 붉은 팥죽을 만들어 먹는다. 노미네 식구들도 팥죽을 한 솥 끓여 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와 함께 먹었다. 이런 날은 반드시 같이 어울려 앉아 맛난 것을 나누어 먹던 석이네 식구들이 없으니 노미네 식구들은 모두 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 윤화 안색을 살폈다. 티는 안내도 윤화는 내내 미순이네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남화는 요즘 사랑방에 들어박혀 온갖 책을 다 읽고 있었다. 어디서 구해오는지 한문 언문 가리지 않고 한 자루씩 책을 얻어와 읽고 또 읽었다. 공부가 깊어지는 남화를 보면서 진화는 한숨이 깊어졌다.
태화는 다행히 그렇게 한번 휙 넘어간 이후로는 별 증상 없이 추운 계절을 잘 지나가고 있었다. 불 담당인 태화는 자연스레 군밤, 군고구마 담당이 되었다. 밤이면 화로에 둘러앉아 입가가 새카맣게 되는 것도 모르고 모두 맛있게 군밤을 까먹었다.
민화는 감기를 한번 호되게 앓고 나서 영 기운이 없었다. 그런 민화가 안타까워 노미는 민화만 몰래 날달걀에 참기름을 떨어뜨려 입에 쏙 넣어주곤 했다. 그런 형수가 민화는 세상에서 젤로 좋았다.
정화는 달래 젖동냥을 다니느라 여기저기 안 다닌 데가 없었다. 달래는 어느새 꽤 커서 강아지처럼 정화 가는 데로 잘도 쫓아다녔다. 달래는 이제 젖을 떼고 여물을 먹기 시작했다.
제법 언문을 잘 읽게 된 도련님들은 돌아가며 ‘홍길동전’도 잃고, ‘춘향전’도 읽었다. 어머니는 저녁이면 꼭 도련님들을 불러다 책을 읽게 하셨다. 처음에는 노미가 읽기 시작하다가 도련님들에게 넘겨주었다. 도련님들은 ‘홍길동전’을 읽은 날은 괜히 구르고, 날아다니고 했다. ‘춘향전’을 읽은 날은 다들 색시처럼 걸어 다녔다.
눈이 이삼일 간격으로 내리니 동네는 어느새 눈 속에 하얗게 쌓였다. 보기는 좋은데 눈 치우는 일이 큰일이라 그날 아침도 도련님들은 내내 길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꼬박 반나절을 보냈다. 눈을 대충 다 치웠나 싶었는데 다시 하늘에서 눈이 나풀나풀 내렸다. 윤화가 막 하늘을 향해 참았던 욕을 하려는데, 그때 멀리서
“오라버니~!”
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순이였다. 하얀 눈이 나풀나풀 내리고 있는데 미순이 윤화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달려온다.
겨울 머리 싸개를 하고 손에는 장갑도 끼었다. 입에서는 하얀 김이 나오고 볼은 빨갛게 익은 사과 같다. 웃으면 눈이 안 보이는 아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하얀 눈 속을 뛰어온다. 뒤로 석이와 석이 어머니도 역시 눈이 안 보이게 웃으며 오고 있다. 누가 뭐래도 이제는 윤화의 가족들이다. 어느새 서로 닮아있는, 눈이 안 보이는 웃음을 웃으며 윤화는 가족들을 반겼다.
석이가 달려와 윤화를 부둥켜안고, 미순이 어머니도 윤화를 얼싸안았다. 하지만 정작 제일 와락 안아주고 싶었을 미순이를 윤화는 보낼 때처럼 그렇게 머리를 한번 툭툭 만져주고는 픽 웃고 만다.
미순이가 왔다고 부둥켜안아 준 사람은 민화랑 태화였다. 남화는 석이가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석이를 번쩍 안아서 빙 돌려주었다. 정화는 일단 석이 등에 매달렸다가 미순이 머리에 하얀 눈덩이 하나를 올려주었다. 반갑다는 뜻이다.
‘색시는 만났나, 좋겠다, 색시 데리고 안 왔나?’ 등등 질문들이 마구 쏟아졌다. 그 난리 통에도 미순이는 윤화 만 보았다. 윤화도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고 미순이만 봤다.
함박눈이 내렸다. 담장 밑으로 막내들이 식구별로 만들어 놓은 눈사람들 가슴에는 한글로 각자 이름이 씌여 있었다. 윤화 눈사람은 눈도 입도 삐죽하고, 남화 눈사람은 키가 훌쩍 크고, 석이 눈사람은 눈도 입도 웃고 있고, 태화 눈사람은 입에 곶감 꼭지를 물었고, 민화 눈사람은 작고, 정화 눈사람은 덩치가 산만 하고, 진화 눈사람이랑 노미 눈사람은 손을 잡고 있고, 미순이 눈사람은 윤화 뒤에 업혔다.
“이게 민화 오라버니가?”
하고 나영이가 물었다. 나영이도 요즘 노미에게 한글을 배우러 오고 있었다. 막 수업을 마친 나영이가 눈사람들 앞에 앉았다.
“응, 똑같제?”
정화가 자기가 만든 눈사람들이 꽤 맘에 드는 듯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니 이제 한글 잘 읽네.”
하며 정화는 나영이를 칭찬해주었다. 다른 소녀들 같으면 정화가 말만 걸어도 좋아서 까르르하고 환호를 질렀을 텐데 나영이는 별 반응이 없다.
“와 민화 오라버니만 작노?”
하며 나영이는 정화를 짐짓 째려보았다.
“원래 젤로 작다.”
하고 정화가 우겼다.
“이래 작지는 않다.”
그러자 정화는 나영이를 놀려주고 싶었다.
“와? 서방님이 너무 작은 게 맘에 걸리나?”
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자 나영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서방님 아이다! 그라고 민화 오라버니 안 작다!”
그러자 정화는 나영이를 실눈을 뜨고 바라보며
“니, 민화형 좋아하제? 안 그런 척 하믄서 실은 니 민화형 좋아하는 거 내 다 안다.”
하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자 나영이가 정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좋아하믄 다 서방님이가? 우쨌든, 민화 오라버니는 이보다는 크다.”
하더니 눈을 발모양으로 뭉쳐 민화 눈사람 밑에 넣어주었다. 민화 눈사람 키가 훌쩍 컸다. 정화는 나영이에게 ‘우와~!’ 하고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그제야 맘에 들었는지 나영이가 아기 얼굴로 웃는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나영이 눈을 가렸다.
“누구게~?”
나영이는 손을 만져보았다. ‘누구긴...’ 나영이는 누군지 알지만, 얼른 대답을 안 했다. 민화가 까꿍하고 나영이 얼굴을 뒤에서 보았다. 나영이는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잘 안 웃는 아기가 픽 웃는다.
“봐라! 요래 웃으니 얼매나 이쁘노?”
민화는 그제야 자기 눈사람에 발이 생긴 것을 보았다. 그 바람에 키도 컸다.
“이거 니가 이래 해줬나?”
나영이는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는다.
“형아 눈사람 쪼매나게 만들었다고 얼매나 모라카는지. 내가 아기 형수한테 야단 억수로 맞았데이.”
하며 정화가 민화에게 일렀다. 민화는 사뭇 감동을 받았다.
“그랬나? 야! 우리 나여이~~!”
하며 민화는 나영이를 번쩍 안아서 빙빙 돌려주었다. 이번에는 나영이도 방긋 웃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영이 가슴에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안겨있었다. 얼마 전 민화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서 그중 한 마리를 나영이에게 준 것이었다. 흰 바탕에 주황색 밤색 얼룩이 있는 삼색 고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