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나비-1
우물에 간 미순이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를 않았다. 벌써 올 때가 되었는데 할 때쯤 동네 아저씨 하나가 헐레벌떡 미순이네 집으로 뛰쳐 들어왔다. 석이는 밭에 일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미순이 어머니는 부엌에 있다 나왔다.
“석아! 석아! 크.... 큰 일났데이!”
석이는 어리둥절해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미순이.... 미순이가 붙들려갔데이! 트럭에 잡히갔다! 순사 둘이가 아를 올라타가...”
까지 듣자, 눈에 불꽃이 튄 석이는 들고 있던 낫을 들고 뛰었다. 미순이 어머니는 그만 그 자리에서 기절할 듯이 쓰러지셨다가 기듯이 노미네 집으로 달려왔다.
“윤화야! 윤화야!”
미순이 어머니는 목이 터져라 윤화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셨다. 깜짝 놀란 노미와 도련님들이 마당으로 나왔다.
“아지매, 무슨 일입니꺼? 윤화 도련님은 볼일이 있어 나갔습니더.”
미순이 어머니는 그만 마당에 주저앉았다.
“미순이가! 우리 미순이가.... 트럭에 붙들려.... 석이가 방금 낫을 들고 뛰갔당께~!”
미순이 어머니는 꺼이꺼이 울다 까무룩 정신을 잃으셨다.
노미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쓰러진 미순이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있는데, 태화와 민화가 뛰어가려 하는 것을 일단 말렸다. 미순이 어머니가 물을 한 사발 드시더니 정신이 돌아왔다.
“태화야, 민화야 나랑 주재소에 같이 좀 가드라고! 저러다 우리 석이도.... 석이도 죽어야!!”
태화와 민화는 석이 어머니를 부축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정화도 따라 뛰려는 걸 노미가 정화를 붙들었다.
“도련님은... 지 집으로 가시소. 지 친정 아버지한테 말씀을 전하시소. 아버지는 틀림없이 무슨 방도가 있으실 깁니더.”
정화는 그 길로 두메골 노미네 친정을 향해 뛰었다. 나와 서 계신 아버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미순이는 우물에 가서 물동이를 내리고는 우물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이제 곧 시집갈 고운 처녀 얼굴이 우물물 위에 둥실 떠 있었다. 괜스레 민망하기도 하고, ‘내도 제법 곱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마음이 간질거렸다. 그렇게 혼자 제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는데 우물물 위에 낯선 남자 얼굴 둘이 불쑥 떠올랐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순사들이었다. 도대체 우물에 왜 순사들이 와있나 싶었다.
미순이는 그대로 트럭에 태워줬다. 놀란 미순이 발버둥을 쳤지만 남자 둘이 미순의 팔을 잡고 바닥에 찍어눌렀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미순은 남자의 손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매서운 손매가 날아와 미순의 얼굴을 후려쳤다. 미순은 정신을 잃었다.
언뜻 정신이 돌아왔는데 미순은 트럭에 태워져 있었다. 정신을 차린 미순은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그렇게 버둥거리다 미순은 트럭 밖으로 몸을 날려 거의 뛰어내릴 뻔했다. 그때 밭에 있던 동네 아저씨를 보았다. 그러나 미순은 다시 트럭으로 끌려 들어갔고 남자들은 미순이를 타고 앉았다. 결국, 미순이는 손이 묶였다. 입술은 찢어졌고, 볼은 부었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석이는 낫을 들고 정신없이 달렸다. 얼마 전 대장간에서 솥을 구해 올 때 함께 얻은 크고 날이 좋은 놈이었다. 석이는 사람을 해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든 배를 쑤셔주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세상 착한 석이 마음에 그렇게 흉하고 무서운 마음이 용솟음쳤다.
어떻게 주재소까지 달려갔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숨에 읍내 주재소에 도착한 석이는 문 앞에 서 있는 총 든 보초병을 향해 붕 날아올라 어깨를 쥐고 뒷목을 낫 손잡이로 내리쳤다. 맞은 놈이 퍽하며 고꾸라졌다. 그 사이 옆에 선 다른 보초병의 총구를 손으로 쥐고는 기둥을 타고 옆으로 붕 몸을 날려 발등으로 그놈의 얼굴을 날아 찼다. 그놈도 바닥에 널브러졌다.
“미순이 내놔라! 이 썩을 노무 새끼들아!”
석이가 고함을 치며 마당 여기저기 서 있다 달려오는 군인들을 차례로 때려 눕혔다.
“내 동생 내놓으라고! 이 개놈들아!!”
하며 석이는 달려오는 놈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 눕혔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치고, 다리로 복부를 차고, 총을 든 군인들 어깨 위로 날아올라 목을 꺾어 넘어뜨렸다.
그저 시골 무지렁이 농부 놈 하나가 낫을 들고 난장을 치러 왔구나 하고 생각했던 군인들은 석이의 펄펄 나는 몸짓에 모두 기가 질렸다. 순식간에 지키고 섰던 군인들 대여섯 명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자 안에서 권총을 든 순사들까지 뛰어나왔다. 석이는 손에 잡히는 한 놈을 뒤에서 잡고는 낫으로 목을 노렸다. 석이에게 팔을 꺽인 그 일본군은 꼼짝없이 총알받이가 되었다. 총을 든 군인들과 순사들이 석이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내 동생 내놓아라! 우리 미순이 내놓으라고!”
하고 석이가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쳤다. 그 서슬에 모두 멈칫했다. 다들 어찌할지 몰라 대치상황이 되었다. 일본군들 사이로 일본군 대장이 나섰다. 옆에 있던 완장 찬 사내가 귓속말로 석이의 말을 전했다. 일본군 대장은 아니꼽다는 듯 웃었다.
“네 동생을 왜 여기서 찾노? 미칬나?”
하고 완장 찬 사내가 석이에게 외쳤다.
“방금 트럭에다 내 동생을 붙들어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 어서 내놓아라!”
하고 석이가 물러서지 않고 소리쳤다.
“気でも狂ったのか！”
키데모 크릇타노카
(미친놈이구나!)
“妹が男と駆け落ちでもしたようだな。”
이모오토가 오토코토 카케오치데모 시타요오다나
(여동생이 남자랑 도망이라도 친 모양이군.)
하며 비웃었다. 그 말을 알아들은 일본군들이 킬킬거리며 같이 웃었다. 그러나 못 알아들은 석이는 킬킬거리는 일본놈들 낯짝을 발로 다 짓이겨 주고 싶었다. 그러다 웃던 일본군 대장이 한 마디로 명령했다.
“殺せ!”
코로세!
(죽여라!)
순간 서 있던 일본군들이 일제히 석이를 향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석이 손에 잡혀있는 자기 동료의 안위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덤벼들자 석이는 손에 쥐었던 놈을 덤비는 군인들을 향해 던져주고는 손에 잡히는 대로 또다시 때려눕히고 밟고 차고 했다.
일본군 대장은 석이의 춤추는 듯한 몸짓을 감상이라도 하듯 한동안 석이와 군인들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テッキョンか?”
텟쿈카?
(택견인가?)
하고 완장 찬 사내에게 물었다. 완장 찬 사내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일본군 대장을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군인의 소총을 뺏어 들더니 석이를 겨누었다. 눈앞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매화처럼 날아다니는 석이를 향해 대장은 총을 쏘았다. 석이는 배에 총을 맞았다. 그리고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석이를 일본군들이 발로 차고 총 개머리판으로 때렸다. 순식간에 석이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때 대장이 소리쳤다.
“やめろ!”
야메로!
(그만!)
석이는 희미하게 정신이 남아 있었다. 대장은 석이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쥐었다.
“テッキョンの使い手は、みな捕まえて殺したと思っていたが、まだ残ってたんだな。駐在所でテッキョンをするなんて。お前は命が惜しくないようだな”
텟쿈노 츠카이테와 미나 츠카마에테 코로시타토 오못테이타가 마다 노콧테탄다나 추우자이쇼데 텟쿈오 스루난테 오마네와 이노치가 오시쿠나이요오다나
(택견하는 놈들은 다 잡아다 죽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아 있었군. 주재소에서 택견을 하다니. 네가 목숨이 아깝지 않구나!)
라고 일본말로 말했다. 석이는 그 일본군대장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피를 토하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미순이 내놓아라...”
일본군 대장은 허리춤에 찬 권총을 꺼내 석이의 머리를 겨누었다. 그때였다.
“살려주셔라!”
석이 어머니가 주재소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뒤를 태화와 민화도 따라 들어왔다. 태화와 민화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석이를 발견했다. 믿을 수 없는 참혹한 광경에 둘은 말을 잃었다.
“살려주셔라!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여라. 그냥 둬도 죽을 것잉께, 지발 이대로 데려가게 해주셔라!”
하며 석이 어머니는 허리춤에서 금덩어리 두 개를 꺼내 무릎으로 기어가 일본군 대장 앞에 내밀었다. 석이랑 미순이 혼인하면 주려고 어머니가 마련해 두신 것이었다. 일본군 대장은 번쩍거리는 금덩어리를 잠시 바라보았다. 석이는 이미 미동도 없었다. 대장은 미순이 어머니의 손에서 금덩어리 두 개를 획 낚아채 갔다. 그리고는 비릿하게 웃으며
“連れて行け!”
츠레테이케
(데려가라!)
하고는 군인들을 물렸다. 미순이 어머니는 온몸이 피범벅이 된 석이를 안아 들었다.
“형!”
하며 태화와 민화가 달려와 석이를 부둥켜안았다. 태화가 석이를 들쳐 업었다. 민화는 석이 어머니를 부축했다. 그런 네 사람을 바라보며 일본군들은 큰 소리로 비웃었다. 그들의 뒷통수에 대고
“チョン公、馬鹿野郎!”
촌 이사오 바카야로오!
(바보 조선놈!)
하는 비웃음 소리가 울렸다. 태화도 민화도 눈에 핏발이 섰다.
가까운 의원으로 가서 응급처치를 한 석이는 숨은 겨우 붙어있었다. 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살지 죽을지 알 수 없었다.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온 석이가
“미순아...”
하고 희미하게 불렀다. 그리고 석이는 다시 까무러쳤다.
윤화는 작은아버지 병문안을 마치고는 읍내로 향했다. 작은집에서 읍내까지는 별로 멀지 않았다. 윤화는 형수님이 부탁하신 수놓는 바늘을 사러 방물 가게로 향했다. 방물 가게 안에는 바늘 말고도 온갖 장신구들이랑 여자 화장품도 있었다.
“구경하이소. 다 곱지예? 색시한테 뭐라도 사다 주시믄 엄청 좋아할낀데예.”
하며 방물장수가 윤화에게 이것저것 예쁜 노리개들을 권했다. 윤화의 눈에 나비 모양 노리개가 들어왔다. 미순이 나비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윤화는 그 나비 노리개를 집어 들었다. 며칠 전 본 혼례복 입은 미순이를 닮아 있었다.
“얼만교?”
하고 윤화는 그 나비 노리개를 샀다. 그때 어디선가
‘오라버니!’
하는 미순이 목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이 미순이 목소리 같았는데, 바람결에 들려온 미순이 목소리에 두리번거렸지만 윤화는 목소리가 어디서 들렸는지 알 수 없었다. 미순이 생각을 하니 미순이 목소리가 들리나 싶어 윤화는 괜히 혼자 좀 쑥스러웠다. 윤화는 그렇게 발걸음도 가볍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마루에 앉아 있던 정화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윤화를 향해 달려왔다.
“형...!”
정화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정화는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윤화는 깜짝 놀랐다.
“뭐꼬?”
그때 노미가 주춤주춤 윤화를 향해 다가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기는 노미도 마찬가지였다. 윤화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도련님, 도련님...., 놀라지 마이소. 놀라시믄 안됩니더. 마음을 강하게 하시소.”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윤화도 그제야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느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화였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바위 같은 사람 아닌가. 윤화는 차분하게 오히려 노미를 달래며 말했다.
“알겠습니더. 무슨 일입니꺼. 안 놀랄테니, 말씀하이소.”
노미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꺼이꺼이하고 울음부터 터져 나왔다. 도저히 노미는 자기 입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형, 형아! 미순이가! 미순이가!”
“미순이가 와!”
미순이라는 말에 윤화는 눈이 확 커졌다.
“미순이가 트럭에 붙잡혀갔다.”
“뭐.... 뭐라카노? 지금!”
“트럭에.... 트럭에 실려갔다고.... 그래가 석이형이 낫을 들고 주재소로 뛰어가고....”
“뭐??!!”
윤화는 지금 자기가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래, 지금 석이는.... 석이는 어디있노?”
하는데 싸리문 밖으로 태화와 민화가 들어왔다. 태화가 손으로 끄는 손수레에 석이가 누워있었다. 노미는 쓰러지는 미순이 어머니를 향해 뛰어갔고, 정화는 손수레를 쥐고 있는 태화와 민화를 향해 뛰어갔다. 정화는 누워있는 석이를 보고는 욱하고 토하듯 울음이 터졌다. 윤화도 누워있는 석이를 향해 주춤주춤 다가갔다. 얼마나 맞았는지 퉁퉁 부은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석아!”
하고 윤화가 불렀다. 석이는 눈꺼풀을 바르르 떨 뿐 기척이 없었다. 미순이 어머니가 윤화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윤화야! 윤화야! 우리 미순이 몬 찾았당께! 미순이 몬 찾았다!!”
윤화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윤화라도 이건 견딜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불편한 다리로 겨우 뛰어나오신 아버지는 윤화를 붙잡고 울었고, 석이 얼굴을 보고 통곡을 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