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배추전
진화는 한동안 노미가 읍내에도, 장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배급이라는 것이 말이 한 달에 한 번이지 제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설사 나온다 하더라도 진화는 노미를 보내지는 않을 작정이었다. 진화는 자기 사람들을 어찌 지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진화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가을도 함께 깊어가던 어느 날, 노미네 집에는 꼬맹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서당이 문을 닫은 후에도 진화에게 한문을 배우고 싶은 아이들이 진화네 집으로 왔다. 몇 안 되는 아이들을 모아 진화는 사랑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건넛방에서는 노미에게 한글을 배우고 싶은 아이들이 모였다. 그러면 언니 오빠들을 따라 온 어린 동생들이 마당에 모였다. 그런 꼬마들은 막내 도련님들 차지였다.
남자아이들은 주로 태화, 정화랑 놀고, 여자아이들은 민화 앞에 모였다. 여섯 살, 일곱 살 꼬마 소녀들이었다. 마당 한쪽에 모여 소꿉놀이를 하는 데 민화도 끼어 있었다.
“서방님, 아~ 하이소.”
하며 한 소녀가 납작한 나무 조각을 수저처럼 들고 민화 입에 넣어주는 시늉을 했다. 민화가 입을 벌리고 먹는 시늉을 하려는데 옆에 있던 소녀가 그 소녀를 밀치며,
“와, 니 서방님이고? 내 서방님이다.”
하더니,
“서방님, 이거 드시소. 정구지전입니더.”
하며 제법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으며 나무젓가락으로 나뭇잎을 집어 먹여주는 시늉을 하며 민화 입 앞에서 흔들어댔다. 민화도 재미있어서
“그랄까?”
하며 받아먹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나무 수저 든 소녀가 볼이 부어서는 나무 젓가락 든 소녀를 획 밀었다.
“니 뭔데? 내가 먼저 색시하기로 했다 아이가?”
그러자 젓가락 든 소녀도 화가 났다.
“와, 밀치노? 와 맨날 니만 오라버니 색시하노?”
둘은 화가 잔뜩 났다. 민화는 얼른 둘을 말렸다.
“고마해라. 둘 다 하믄 된다 아이가.”
그러자 이 두 소녀의 싸움을 지켜보고만 있던 아무것도 안 든 소녀가 끼어들었다.
“색시를 어찌 둘이 합니꺼. 색시가 둘이믄 집안 망합니더.”
한다. 그러면서 민화를 ‘그런 것도 모릅니꺼.’하는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민화는 무안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그라믄, 오늘은 한 사람이 하고, 다음에 다른 사람이 하고 그라자. 오늘은 나영이 니가 오라버니 색시해 줄래?”
하며 아무것도 안 든 소녀에게 햇살 미소를 날리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두 소녀는 너무 실망했다. 그리고 나영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됐습니더. 지는 오라버니 안 좋아합니더.”
너무나 단호하게 말해 민화도 다른 소녀들도 말문이 막혔다. 민화는 짐짓 서운한 표정으로
“와? 와 안 좋아하는데?”
했다. 다른 두 소녀는 서로 손을 맞잡고는 나영이가 부러워 죽는다.
“동네 아 들이 오라버니들 보고 태화는 내끼다, 정화는 내끼다, 민화는 내끼다 하는 꼴이 보기 안 좋습니더. 사람이 물건도 아이고, 없는 데서 오라버니들 이름 막 부르고, 오라버니는 그라는 게 안 싫습니꺼?”
생각지 않게 의젓한 자기 의견을 가진 이 꼬마가 민화는 신기했다.
“싫기는, 다들 좋아해주는 긴데. 그라지 말고, 오늘은 니가 내 색시 해도.”
하며 또 나영이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나영이는 그런 민화가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됐어예.”
하며 나영이는 ‘흥’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다른 소녀들은 ‘쟤 뭔데?’ 하는 표정이다. 민화는 너무 우스워서 배를 잡고 웃었다.
“그라믄, 이제부터는 술래잡기한다! 다 숨어라!”
했다. 소녀들은 까르르 웃으며 숨으러 뛰어가고 나영이도 치마를 털며 일어나더니 민화를 향해 픽 웃으며 장독대 쪽으로 뛰어갔다.
“내도 하자!”
하며 남자애들이랑 ‘비석치기’ 하던 태화가 쫓아왔다. 남자애들이 태화를 따라 뛰었다. 정화는 아까부터 애들 둘을 양팔에 둘러매고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가을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정화는 송아지에게 ‘달래’라고 이름을 지어주고는 여기저기서 젖동냥을 해 키웠다.
찬바람이 불자 태화가 마당에서 휙 하고 뒤로 넘어갔다. 노미는 태화가 넘어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형들이 얼른 태화를 방에다 눕히자 민화가 끌어안고 자장가를 불렀다. 노미도 곁에서 태화 다리를 주물렀다. 돌처럼 딱딱하던 몸이 민화 자장가에 거짓말처럼 서서히 풀리더니 한숨을 내뱉으며 태화의 눈이 돌아왔다. 태화는 이런 모습을 형수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노미는 태화의 팔다리를 주물러주며 애썼다고, 욕봤다고 위로해 주었다.
김장철이 되었다. 바다가 가까운 마을이라 동네에서는 모두 바닷물에 김치를 절여왔다. 집집이 배추를 달구지에 싣고 바닷가로 가서는 바닷물을 떠서 배추를 담가 절였다. 그렇게 바닷물에 절여 온 배추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고춧가루, 액젓 등으로 양념한 배춧속을 넣고 김치를 만드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 시절 김치만큼 맛있는 김치를 요즘은 도대체 먹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양념도 지금처럼 많이 안 하고 그저 바닷물에 절여온 김치를 멸치액젓이랑 고춧가루 기본양념만 넣고 슬슬 무쳤는데도 요즘처럼 온갖 양념이 다 들어간 김치보다 훨씬 맛있었다고 했다. 그리운 것이 그것뿐이겠는가. 처참한 시절이었다는데, 먹을 것이 없어 굶는 것이 예사였다는 데도, 그 시절 먹었던 김치가 제일 맛있었고, 그 시절 먹었던 곶감이 제일 맛있었고, 그 시절 먹었던 우거지 된장국이, 고등어 조림이, 육전이, 파전이, 배추전이 제일 맛있었다고 하셨다.
노미는 오랜만에 전을 부친다고 부엌에 앉았다. 솥을 뺏기는 바람에 한동안 내내 뚝배기에 밥을 지었었다. 석이가 잘 아는 대장장이 아재가 있어서 얼마 전 겨우 무쇠솥을 구해 왔다.
무쇠솥을 구해 왔으니 이제 솥뚜껑을 뒤집어 전도 부칠 수 있게 되었다. 지짐이(전, 부침개의 경상도 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도련님들 덕분에 노미는 이제 거의 지짐이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점심참으로 배추전을 부친다고 했더니 아까부터 도련님들이 모두 부엌 앞에 기다리고 앉아있었다. 추석 이후 처음 먹는 지짐이였다. 메밀가루를 풀어 소금간을 약간 하고 그저 흰 배춧잎을 담갔다가 지져내는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다들 입안에 고이는 침을 꿀떡 삼키며 전 지지는 형수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첫 번째 전이 채반 위에 척 올라오자 손 빠른 태화가 제일 먼저 전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그 손을 노미가 척 막았다.
“어허, 상 위에서는 어른이 먼저지만, 부엌에서는 얼라가 먼접니더.”
하고 노미가 말했다. 그러자 볼이 부은 태화가
“그런기 어딨습니꺼?”
한다. 그러자 노미가
“지 맘입니더.”
하더니 넓은 배추전을 손으로 쭉 찢어 정화 입에 넣어주었다.
“히히, 내가 젤로 얼라다. 맞제?”
하며, 정화는 맛나게 배추전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자, 태화 도련님, 드시소.”
하며 노미가 다른 반쪽을 태화 입에 넣어주었다. 볼이 부었던 태화는 금방 환하게 웃으며 얼른 전을 받아먹었다. 이럴 때는 동생인 것이 좋다. 세상 이보다 더 맛있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던 민화도, 언제 왔는지 곁에 앉아있던 석이도 입을 ‘아’하고 벌리고 있는데, 뜨거운 전을 죽 찢어 후후 바람에 불어 식힌 후 두 사람 입에 각각 넣어주었다. 노미는 자기가 먹는 게 아닌데도 도련님 먹는 모습에 자기 배가 부른 듯이 뿌듯했다.
아까부터 젓가락을 들고 앉아있던 남화와 윤화는 동생들 입에 들어가는 전을 그저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드디어 세 번째 배추전이 채반 위에 올라왔다. 남화는 젓가락을 치우고 입을 벌리고 있다. 노미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얼른 배추전 반쪽을 후후 불어 남화 입에 넣어주었다. 착하고 이쁜 도련님이 맛나게 먹어주는 모습에 노미는 저절로 웃음이 났다.
그런데 윤화는
“지가 먹을께예.”
하고는 전을 향해 젓가락을 대었다.
“와예, 부끄럽습니꺼?”
하며 노미가 놀리자,
“지가 오빱니더.”
하며 윤화는 짐짓 정색을 한다. 노미는 묻지도 않고 그냥 윤화 입에다 전을 밀어 넣어주었다. 입만 열면 오빠라고 하는 것이 얄밉기도 해서였다. 윤화는 벌쭘한 표정으로 그래도 맛은 있는지 형수가 넣어준 배추전을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배추 한 통을 다 부쳤는데도 도련님들 배가 안 찼다. 언제 왔는지 진화도 도련님들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지짐이가 방까지 올 리가 없지.”
하며 동생들을 쏘아보았다. 노미는 웃으며 막 나온 배추전을 진화 입에도 넣어주었다.
노미는 배추 한 통을 더 가져다 배추전을 산처럼 부쳐 도련님들 방에 넣어주고 부모님 계신 방에도 드렸다. 미순이네도 가져다 주라고 했더니 석이가 아니라 윤화가 들고 일어났다. 석이는 일부러 남화 옆에 붙어 앉아
“형님 댕겨오셔라.”
하고 모른 체를 한다. 나중에 접시를 들고 온 미순이 말이 윤화 오라버니가 ‘아!’ 하라고 하더니 손으로 입에다 넣어주고 갔다고 얼굴이 빨개져서 좋아했다. 내한테 배워서 그러는 거라고 노미는 짐짓 자랑을 했다. 꼭 남 안 보는 데서만 자기 색시를, 색시 될 사람을 챙기는 이상한 사람이다.
먹을 것은 부족했지만 정은 부족하지 않아서 우리는 그래도 그런대로 살았다. 배급으로 받은 것들은 벌써 떨어진 지 오래였다. 살려면 살아남으려면 산이든 바다든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어떻게든 다 모아다 먹어야 했다.
음력 10월 14일, 양력으로는 11월 24일, 노미의 생일이었다. 진화 아버지는 식구들 생일이 돌아오면 반드시 찰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게 하셨다. 세월이 어려워 고기반찬도 떡도 할 수 없었지만, 반드시 찰밥과 미역국은 챙겨주셨다. 며느리도 예외가 아니라서, 아니 세상 가장 귀한 며느리라 하셨기에 시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파 누워 계실 때조차도 노미의 생일이 돌아오면 잊지 않으셨다가 찰밥과 미역국을 챙겨주셨다. 생일상은 제 손으로 차리는게 아니라며 도련님들이 오랜만에 노미를 몰아내고 부엌을 차지했다.
조촐한 생일상이었지만 어디서 구했는지 노미가 좋아하는 회도 올라와 있었다. 미순이네 식구들까지 불러 한 가족이 오랜만에 둘러앉았다.
“새아기가 우리 집에 와 처음 맞는 생일이구나.”
하며 시아버지가 말문을 여셨다.
“딸 없는 집에 시집와가 며느리 노릇에, 딸 노릇까지 하느라 욕봤데이. 신랑 하나 건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낀데, 장정 다섯이, 석이까지 여섯이 와서 들썩대니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보통 번거롭지 않제?”
하시며 빙그레 웃으셨다.
“아입니더. 도련님들이 워낙에 일도 잘하시고, 다정하셔가 지는 어려운 일이 없습니더.”
하며 노미가 말했다. 돌아보는 도련님들 얼굴이 흐뭇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새아기가 힘이 덜 들라믄 얼른 아랫 동서들이 생기야 할텐데, 다들 아직 어리기도 하고 세월도 어수선하니 앞으로 치를 일이 캄캄하구나.”
하며 짧게 한숨을 쉬셨다. 도련님들은 자기들 혼인 얘기가 나오자 부끄러운지 서로를 바라보며 민망해했다.
“아부지, 지는 언제 장가갑니꺼?”
하고 태화가 물었다.
“니는 아직 멀었다. 윤화 가고, 석이 하고, 남화 가고 할라믄 족히 사오 년은 안 걸리겄나.”
하고 아버지가 대답하시자 태화는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더니
“내는 그라믄 스물 전에는 장가를 못가네예.”
하며 아쉬워한다. 그 당시는 대부분 스물 전에 장가가던 시절이었다.
“니는 그래 장가가고 싶나?”
하고 민화가 물었다.
“그래, 내는 요즘 왜 그러는가 몰라도 막 외롭고 쓸쓸하고 그렇다. 성재는 내랑 동갑인데 벌써 장가갔다 아이가.”
한번 성화가 나면 좀처럼 말릴 수 없는 태화였기 때문에 모두 그저 허허 웃었다. 이번에는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그래, 석이는 고향에서 기별이 왔나?”
하고 석이 어머니에게 물으셨다. 석이는 이야기 주인공이 갑자기 자기로 바뀌자 밥 먹다 말고 멈칫했다.
“예, 석이 아버지 친구분이 예전에 석이랑 자기 딸을 맺어주고 싶다 하셔가 제가 한번 애들 데불고 가볼라고요. 이참에 애들 고향 귀경도 시켜주고, 친척들도 잘 계신가 뵙고요잉.”
“잘 되었네. 길이 먼데 잘 다녀오시게.”
하며 어머니가 반가워하셨다.
“와! 석이 형, 기차 타나?”
하며 정화가 부러워한다.
“니도 따라갈라냐?”
하며 석이가 괜시리 부끄럽다.
“우야노, 둘째 형 미순이 보고자플낀데.”
하고 민화가 짐짓 윤화 눈치를 살핀다. 윤화는 웬일인지 대꾸도 안 하고 밥만 열심히 먹는다.
“석이 혼처가 정해졌다고 하믄, 내년에는 윤화랑 미순이 혼례하자. 알겠나?”
하고 아버지가 선언을 하셨다. 미순이는 밥 먹다 말고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자 윤화가
“예.”
한다, 짧고 확실하게 대답을 하고는 다시 열심히 밥을 먹는다. 노미는 미순이 손을 잡고 반가워했다. 다들 눈으로 축하를 보내는 데 정작 미순이는 입에 문 밥을 넘기지를 못하고, 윤화는 고개도 들지 않고 열심히 밥을 먹었다.
며칠 후, 석이 어머니, 석이, 미순이는 석이네 고향인 전라도 광주에 다니러 가고, 동생들이 기대한 것처럼 그렇게 눈물겨운 이별 장면이 연출되지는 않았다.
“추운데 단디 입어라.”
하고 윤화가 미순이 옷깃을 한 번 여며 준 것이 다였다. 미순이는 그것도 좋아서 얼굴이 발그레했다.
석이네가 없는 빈 집은 도련님들이 돌아가며 살폈다. 늘 곁에 있던 이들이 없으니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쓸쓸했다. 누가 있다 없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
윤화는 아침마다 마당을 쓰는데 꼭 석이네 까지 쓸어놓고 왔다. 남화는 물을 길어다 놓고 나면 꼭 석이네 집에 가서 오전 내내 책을 읽고 왔다. 민화는 석이네 장독대를 닦아주고 오고, 태화는 뒷마당을 한 바퀴 돌아보고 강아지들 밥을 챙겨주었다. 어차피 태화네 멍멍이가 석이네 강아지 아들이라 두 녀석은 늘 같이 있었다. 정화는 매일 양쪽 집 닭장을 다 돌아보았다. 계절은 어느새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