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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36화 호박전과 달래
작성일 : 20-09-29 06:39     조회 : 33     추천 : 0     분량 : 6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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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6화 호박전과 달래

 

 장마였다. 온종일, 아니 몇 날 며칠을 비가 멈추지 않고 왔다. 석이는 자기 방 앞 마루에 나와 기둥에 머리를 기댄 채 앉아있었다. 머리에는 아직 붕대를 맨 상태였다. 아무래도 이마에는 상처가 남을 것 같았다. 몇 바늘을 꿰맸다고 했다. 석이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언제나 웃던 사람이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늘 쉼 없이 떠들던 사람이 아무 말이 없다. 석이가 저렇게 고왔나. 남자를 보고 곱다고 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석이는 고운 소년이었다. 석이는 그렇게 마당에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붓으로 그린 듯이 앉아있었다.

 

 어느새 비가 잠시 그쳤다. 노미가 그런 석이를 차마 부르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손에는 석이가 좋아하는 호박전이 들려있었다. 석이가 인기척을 느끼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노미를 알아보고는 힘없이 빙그레 웃는다.

 

 “뭐 좀 먹었습니꺼?”

 

 “야.”

 

 힘없이 대답한다. 하지만 참 오랜만에 듣는 석이 목소리였다. 노미는 겨우 울음을 참았다.

 

 “호박전이 참 맛납니더. 좀 먹어볼라는교?”

 

 석이는 또 힘없이 웃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노미는 다가가 석이 옆에 좀 떨어져 앉았다. 호박전을 사이에 어색하게 두었다. 마당에는 아직도 비가 후득후득 떨어지고 있었다. 노미는 그렇게 내리는 비를 석이와 나란히 앉아 한참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하지만 이상하게 또 편안한 침묵이 한참 흘렀다. 노미도 그렇게 다른 쪽 기둥에 머리를 기댄 채 한동안 떨어지는 비를 보고만 있었다.

 

 그런 노미를 석이가 가만히 고개를 돌리고 보았다. 우리 형수님은 언제 봐도 참 고우시다. 그림같이 어여쁘시다.

 

 “심장이 덜컥....”

 

 석이가 입을 열었다. 노미는 반가웠다. 하지만 티 내지 않고 가만히 석이를 바라보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어라. 형수님.... 첨 뵙고요.”

 

 석이는 노미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수줍게 말했다.

 

 “와예?”

 

 하고 노미가 별 감정 없이 물었다.

 

 “겁나 고우셔가. 나가 시상에서 본 여인 중에 젤로 고우셔가.”

 

 노미도 수줍게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고운 소년이 자기에게 곱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저도예.”

 

 노미의 말에 석이가 노미를 바라보았다.

 

 “저도 도련님 첨 뵙고 ‘참말로 고운 소년이구나. 고운 소년이 참 곱게도 웃는구나.’ 했어예. 도련님 웃으시믄 안 따라 웃을 수가 없었어예.”

 

 석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느새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석이가 우니 노미도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애써 참았다. 그리고 얼른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고 다가가 석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석이의 두 손을 잡고 석이 눈을 바라보았다. 웃어도 곱고, 울어도 고운 아이였다. 아직은 아이였다.

 

 “우셔예. 우셔도 됩니더. 석이 도련님은 웃어도 곱고, 울어도 고운 사람입니더.”

 

 석이는 노미를 바라보며 펑펑 울었다. 그런 석이의 눈물을 노미는 자기 옷소매로 닦아주었다.

 

 “괘안습니더. 괘안아질겁니더. 아니, 괘안아지게 해주이소. 도련님이 우리 모두 다 괘안아지게 해주셔야 합니더.”

 

 그것은 노미의 간절한 부탁이었다. 그것은 노미의 석이를 향한 주문이고 기도였다.

 

 

 

 얼마 후, 장마가 슬그머니 끝나갈 무렵 석이와 석이 어머니가 옷을 갖춰 입고 노미네 집으로 건너왔다. 두 사람은 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렸다. 아버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셨다. 하지만 짚이는 것이 있어 가슴이 서늘했다.

 

 “가려는 것이냐?”

 

 아버지가 애써 입을 여셨다. 석이는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물더니

 

 “야,”

 

 하고 대답했다. 뒤에 서 있던 태화와 민화 정화가 ‘헉’하는 소리를 냈다.

 

 “아주버님, 그동안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어라. 아주 가는 것이 아니고요. 한동안 광주 본가에 가 있겄습니다. 야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니 야를 가까이 보고 싶어 하시기도 하고요. 흩어졌던 일가가 이제 많이 다시 모여있게 되아서라. 거도 우리 땅이 있어가 돌봐야 하기도 하고요. 여기 땅은 원래가 아주버님이 주신 것이니 아주버님께 돌려드리고 가는 것이 마땅하지라.”

 

 아버지는 깊이 숨을 몰아쉬었다. 섭섭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뒤에 선 동생들과 노미도 그 심정을 뭐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나야 그렇다 해도 아이들이, 우리 아 들이 많이 섭섭할낀데.”

 

 “형!”

 

 “형아!”

 

 “형!”

 

 하며 동생들이 석이를 뒤에서 와락 끌어안으며 통곡을 했다. 석이도 가슴이 미어졌다.

 

 “이제 공출이 와도 낼 것도 없고, 자꾸 이래 사람들을 잡아가니, 일본놈들 손 안 닿는 데로다 좀 피해있어야 하지 싶어서라.”

 

 하고 석이 어머니는 눈물을 삼키며 겨우 말을 했다.

 

 “석이네 땅은 석이 꺼요. 그것은 다시 와서 또 농사지어야 하지 않겠소.”

 

 “그거는... 원래 미순이 몫으로 줄라 했어라. 그러니 윤화 꺼지라이. 애들이 오믄, 애들이 올 때까지 아주버님이 지켜주셔라.”

 

 하며 결국 석이 어머니는 울음을 터트렸다.

 

 “형아, 가지 마라. 안 가믄 안되나?”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이미 정해져 버린 일이란 걸 알면서 정화는 그렇게 한 번 더 떼를 써봤다.

 

 “아주 가는 거 아니여. 자주 왔다 갔다 할 거니께 염려 말고.”

 

 태화는 섭섭함이 넘어서 화가 난 표정이다.

 

 “형은, 우리 안 봐도 되나? 안 보고 살아지나?”

 

 “형 가는데 맘 무겁게 하지 마라. 왔다 갔다 한다 안 하나?”

 

 제일 섭섭할 민화가 태화를 달랬다. 맘 같아선 가지 말라고 난장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인데 태화는 꾹 참았다. 민화는 석이 손을 잡았다.

 

  “형님, 잘 댕겨오이소. 집은 우리가 안팎으로 항상 청소해놓고 할 테니. 자, 자, 어무이께 절하자.”

 

 민화의 성화에 동생들은 석이 어머니께 큰절을 올렸다.

 

 “형님도 절 받으이소.”

 

 하고 동생들과 석이는 맞절을 했다. 결국 정화는 고개를 못 들고 펑펑 울었다.

 

 

 간단한 짐만 들고 선 석이와 석이 어머니는 가족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끝까지 의연하던 민화가 석이 어머니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아기 때 민화는 석이 어머니 젖을 먹고 자랐다. 쌍둥이 형제를 낳고 바로 다음 해에 정화가 태어났기 때문에 민화 어머니는 쌍둥이 중에서 민화를 석이 어머니에게 맡겼다. 석이 어머니도 막 미순이를 낳은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어머니가 누가 누구 아이라 할 것 없이 젖먹이 네 아이를 함께 키웠다. 석이 어머니는 이제 노미를 끌어안았다.

 

 “성님도 안 계신디, 나가 틀림없이 얼라 나올 때 올 테니 걱정 말고잉.”

 

 노미는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이가 마지막으로 노미의 손을 쥐었다.

 

 “형수님, 나가 괜찮아지게 할라고 지금 가는 거이니 너무 염려하지 마셔라. 다 괜찮아지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마셔라.”

 

 석이의 목소리는 어느새 더는 아이의, 소년의 소리가 아니었다. 눈빛마저 단호했다. 그런 석이가 노미는 믿어졌다.

 

 “알았습니더. 지는 도련님만 믿습니더.”

 

 했다. 그 말에 힘이 났는지 석이가 빙그레 웃었다. 어른의 웃음이었다. 그 지독한 슬픔을 건넌 어른 남자의 웃음이었다. 석이는, 석이와 석이 어머니는 그렇게 떠났다. 하지만 슬프기만 한 이별은 아니었다. 살기 위해, 다 살리기 위해 석이가 길을 떠나기로 했다는 것을 노미는 알았다.

 

 

 가을이 되었다. 형들 없이, 석이도 없이 동생들은 가을걷이를 했다. 달래가 없었으면 아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제 주인을 닮아 어찌나 힘이 좋은지 웬만한 수소보다도 힘이 셌다. 봄도 가뭄이었는데 가을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비해 쌀이 반도 안 났다. 벌써 9월에 있을 공출이 걱정이었다.

 

 노미는 새참을 준비하며 함지박 하나에 주먹밥을 만들어 담았다. 작년에는 함지박 두 개 가득 밥을 담고도 모자랐는데 이제는 새참을 먹을 사람이 없었다. 셋이서 둘러앉아 먹는 새참은 맛도 없었다. 태화, 민화는 이제 겨우 열일곱이고, 정화는 열여섯이었다. 모두 말은 안 했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여기 둘러앉았던 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 진화는, 윤화는, 남화는, 석이는, 미순이는.... 태화는 터지려는 눈물을 밥이랑 같이 꿀떡 삼켰다. 그리고는 목이 메는지 가슴을 쾅쾅 쳤다. 그런 모습을 민화가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민화도 주먹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먹성 좋은 정화인데 주먹밥을 그저 들고만 있었다. 민화가 등을 툭 치니 그제야 입에 쑤셔 넣는다. 노미는 그런 도련님들을 어찌해야 할까 싶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하고 노미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정화를 바라보았다. 이어 불러 달라는 뜻이다. 그러자 정화가 입에 문 것을 꿀떡 삼키더니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하고 그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하고 태화가 이어 불렀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고개, 그 고개 다 넘기 전에 오실라나.”

 

 하고 민화가 불렀다. 그렇게 다들 아리랑을 한차례 부르고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게 세 도련님은 형수님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어김없이 공출이 떴다. 공출해 가는 놈들은 다 완장 찬 조선사람들이었다. 같은 조선사람들끼리 사정을 봐줄 만도 한데 완장 찬 조장, 반장이라는 자들이 일본 군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곡식은 그렇다 쳐도 문제는 소였다. 이제는 달래가 너무 커서 어디다 숨길 수도 없었다. 이번 공출은 유난히 더 갑작스러웠다. 달래 어미를 잡아갔던 추석 때처럼 일본 헌병들도 섞여 있었다. 일본 헌병들이 떴다는 것은 소를 잡아가거나, 사람을 잡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전처럼 산으로 끌고 갈 시간이 없었다. 집 뒷마당이 작은 언덕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언덕에는 굴처럼 파 둔 저장고가 하나 있었다. 나중에 전쟁 때는 방공호로 쓰이기도 한 곳인데 정화는 일단 그곳에 달래를 숨기고 입구를 수숫대로 막았다. 일부러 들여다보지만 않으면 안 들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정만 잘하면 소를 안 잡아가기도 한다던데 정화는 달래를 운에 맡길 수는 없었다.

 

 

 드디어 놈들이 들이닥쳤다. 노미는 도련님들에게 가능한 꼬나보지 말고 착한 표정을 지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될 리가 없었다. 이제는 제법 배가 부른 노미는 그저 아무 일 없이, 아무도 다치는 이 없이 이 난리가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서 있었다. 아버지는 병중이라는 핑계를 대고 방에 누워계셨다. 광에 쌓아 둔 쌀가마니들이 어김없이 모두 실려 나왔다.

 

 “이게 다요?”

 

 하며 반장이라는 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노미에게 물었다.

 

 “야, 올 농사가 다들 이렇습니더.”

 

 했다. 그 반장은 들고 있는 장부를 훑어보더니,

 

 “이 집은 소를 한 마리 밖에 안 냈소? 장부대로면 세 마리는 더 내야 하는데...”

 

 노미는 기가 막혀 대꾸할 말도 없었다. 그저 끙하고 참아야 했다.

 

 “이 집 남자들 다 어딨소?”

 

 하며 반장은 마당 한쪽에 서 있는 도련님들을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았다.

 

 “애들뿐이요? 남편은?”

 

 “만주에 갔습니더. 가서도 농사짓고 있습니더.”

 

 “둘째는.... 음...., 징용갔구만.”

 

 했다. 서류에 나와 있는 모양이었다. 노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둘째 형 이야기가 나오자 동생들은 눈이 커졌다.

 

 “혹시, 소식이 있습니꺼? 연락이 없습니더.”

 

 하고 노미가 간절하게 물었다. 그러자 그 반장이라는 자는

 

 “안 죽었으면 연락이 오겠지. 죽었으면 죽었다고 오고.”

 

 라며 정말 딱 때려죽이고 싶게 말했다. 태화가 눈에 핏발이 섰다. 정화는 이를 으드득 갈며 참았다. 민화는, 민화는 이미 그놈 목을 확 꺾어 버리는 상상을 했다.

 

 “셋째는?”

 

 “남편이랑 만주에 갔습니더. 혼자 농사를 우예 짓습니꺼.”

 

 노미도 애써 분을 삭이며 겨우 대답했다. 그러나 이 눈치 없는 자는 집안을 휘 둘러보더니 이제 더 가져갈 것이 없다 싶었는지 동생들을 아니꼬운 표정으로보았다.

 

 “그래서 애들만 남았구만. 허! 고놈들, 곱상하니, 와? 니들도 황국신민으로서 징용이든, 징병이든 함 다녀와야 안 되나?”

 

 하며 이죽거렸다. 노미는 눈앞이 노래졌다.

 

 “아직 나이가 어립니더. 만으로 열다섯, 열여섯입니더.”

 

 “황국신민으로 성전의 일군이 되는데 나이가 문제가? 요즘 열다섯 먹은 애들도 다 징용가는구만.”

 

 하며 도련님들을 뱀 같은 눈으로 휙 훑어보았다.

 

 “그라믄, 농사는, 농사는 누가 짓습니꺼. 성전을 치를라믄 농사짓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아닙니꺼.”

 

 노미가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듯 한 마디도 안 지고 덤벼들자 반장은 슬쩍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이누무 여편네가 어디서 꼬박꼬박 말대답이고?”

 

 하며 손이 쓱 올라간다. 정화가 번개처럼 튀어가 조장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조장을 노려보았다. 멀찍이 서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앞에 와 버티고 선 정화가 생각보다 키가 커서 반장은 잠시 멈칫했다. 태화와 민화까지 옆에 와 섰다.

 

 “이누무 자슥들이?”

 

 하며 반장은 셋을 번갈아 바라보는데 눈빛에서 밀렸다.

 

 “형수님이 틀린 말 했습니꺼? 쎄가 빠지게 농사지었다 아입니꺼.”

 

 하고 태화가 이를 물고 화를 참으며 말했다. 조장과 함께 왔던 이들은 어느새 다들 쌀가마들을 들고 가버린 뒤라 마당에는 반장뿐이었다.

 

 “가져갈 거 다 실었으믄 이제 그만 가서 일보이소.”

 

 민화가 나지막한 소리로 반장을 달래듯이 말하는데 반장은 왠지 그 소리에 기가 질렸다.

 

 “이... 이놈들이?”

 

 하며 반장은 뭔가 잔뜩 약이 올랐는데 뭐라 더 할 말도 없다. 제일 터질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정화와 눈이 마주치자 반장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는 듯하더니 갑자기 같이 온 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 함 와봐라! 뭐 더 숨겨놓은 게 있나 싹 다 뒤져라!”

 

 그러자 쌀가마니를 들고 나갔던 장정 몇이 뛰어 들어오더니 다시 집안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녔다. 반장은 팔짱을 끼고 서서는 동생들을 비웃었다. 정화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놈들이 뒷마당으로 갔기 때문이다. 정화는 당황한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였다. 뒷마당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 뭐 있다!”

 

 하고 한 놈이 소리쳤다. 정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곧 ‘음메~.’하고 달래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정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태화 민화 노미도 하늘이 노래지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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