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팥죽, 호박죽 그리고 귀신
시골에는 밭 울타리에 호박을 심는다. 호박줄기는 꼬불꼬불해서 어디든지 잘 타고 올라간다. 초여름이 되면 호박잎이 어른 얼굴보다 더 넓어지고 노오랗고 길쭉한 호박꽃들이 탐스럽게 핀다. 호박꽃은 나팔만큼 크다. 그러면 꿀벌들이 꿀을 따려고 연방 호박꽃 주위를 윙윙 난다.
호박줄기에 끝은 항상 꼬불꼬불한 덩굴손이 나있다. 덩굴손 꼬불꼬불한게 끊임없이 주위 나뭇가지나 철조망 위, 전봇대 위로 엉겨붙어서 어디든지 타고 올라가는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납작한 돌을 도마삼아, 길쭉한 나무막대기를 부엌칼이라고 생각하고 호박꽃을 야채처럼 썰면서 순돌이, 구원자와 소꿉놀이를 했다. 커다란 호박꽃 속에 꿀이 많은지 꿀벌이 호박꽃 속에 들어가서 꿀을 빨고는 꽃 속에서 잠이라도 자는지 꼼짝도 앉고 오랫동안 앉아있는 것이었다.
호박꽃이 지고나면 비로소 알사탕만한 애호박이 맺힌다. 비가 오고 나면 탁구공만큼 자라있다가, 또 소나기가 그치고 나면 야구공만하게 자란다. 한여름이 지나서 좀 시원해지면 참외만한 연두색 애호박을 따서 된장찌개에 넣거나 호박전을 부칠 수 있다.
농촌에서 가장 많이 해먹는 것은 호박을 송송 채썰어서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조선간장(집간장)을 넣어 간을 맞추고 국물이 자작하게 끓이는 호박볶음이다. 여름에 된장찌개에 호박볶은 것을 넣고, 열무김치, 달걀프라이와 함께 비벼먹는 것이 단골 점심메뉴이다.
겨울에도 호박죽을 끓여 먹어야하기 때문에 애호박으로 몇 개 따먹고 남겨서 늦가을까지 키운다. 가을에 누렇게 익은 호박을 따서 따뜻한 안방이나 창고 안에 넣어둔다.
늦가을에 호박을 따면 집집마다 엄마들이 호박전을 만들기 위해 늙은 호박속을 숟가락으로 쓱쓱 긁어낸다. 밀가루 반죽과 섞어서 프라이팬에 콩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지글지글 구워내면 호박 특유의 풍미와 함께 참 달고 고소하다.
겨울이 되면 엄마는 항상 닭집아지매와 함께 호박죽을 끓였다. 먼저 누런 호박을 삶아서 식힌다음 숟가락으로 호박껍질을 벗긴다. 그래야 쉽게 벗겨진다. 호박 안에 든 호박씨들은 모두 숟가락으로 긁어서 모은다. 그 씨앗들을 모아서 말렸다가 내년에 다시 심기도 하고 호박씨를 마른 프라이팬에 볶아서 먹기도 한다. 껍질 벗긴 호박을 가마솥에 넣고 푹 더 삶는다.
다른 작은 솥단지 안에는 물에 불린 팥이 끓고 있다. 닭집아지매는 호박이 솥바닥에 눌어붙을까봐서 기다란 나무주걱으로 계속 젓고 있다. 그러다가 불이 꺼질까봐 연방 마른 사과나뭇가지를 아궁이에 밀어넣기도 한다. 호박이 푹 익으면 거기다가 삶은 팥을 넣어서 섞는다.
그리고 설탕,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마지막에 엄마가 밀가루를 물에 개어서 끓고 있는 죽에 주르륵 부어서 끓인다. 하얀 밀가루는 노란 호박들 속에서 익어가면서 죽을 좀 더 부드럽게 하고 간간이 수제비처럼 덩어리져서 호박죽 먹는 사이사이 씹는 맛을 제공한다.
팥죽에는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넣지만 호박죽에는 밀가루로 뜬 수제비가 더 어울린다.
그리고 나서 가마솥 뚜껑을 덮고 아궁이에 불을 더 넣지않고 숯불만 남은 잔열로 뭉근히 끓이면 노란호박죽 완성이다. 닭집아지매는 커다란 통 여러개에 호박죽을 떠놓고 뚜껑을 열어 식힌다. 그릇마다 노란호박죽을 담아두고 식힌다. 이 통들을 차가운 밖에 두고 몇 날 며칠을 먹는다. 뜨거운 호박죽도 맛있지만 차가운 호박죽도 색다른 맛이 있다. 호박의 달삭한 맛이 더 강해진다고나 할까? 식어서 쫀득한 밀수제비가 달콤한 호박죽과 어우러져서 더 맛있어진다. 그러면 나는 유독 호박죽을 좋아해서 밥은 먹지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호박죽을 퍼먹으면서 겨울을 보냈다.
음력 12월 31일 동짓날이 되면 해는 늦게 뜨고 달은 일찍 뜬다. 자도 자도 밤일 때가 많다.
동짓날이 되면 검붉은 팥죽을 끓여 먹어야 일년내내 탈이 없고, 끓인 팥죽을 퍼내어 집 주위에 골고루 뿌린다. 옛날 사람들은 그래야 복이 들어오고 나쁜 기운이 빠져나간다고 믿는듯했다. 나의 부모님 세대는 음식이란 건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날마다 먹어야하는 시기와 이유가 분명히 있어서 그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믿었다.
우리엄마도 그랬다. 동지가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팥죽을 끓여서 먹어야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우리식구들은 팥죽을 싫어했는데도 꼭 호박죽을 끓이고 나면 곧 팥죽을 끓였다.
팥죽에는 반드시 찹쌀 새알심을 넣었다. 나는 팥죽을 안좋아해도 찹쌀 새알심은 좋아했다.
엄마가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찹쌀가루를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익반죽을 해서
안방으로 들여보내면 나와 위선자, 막둥이가 모여앉아 동글동글 새알심을 빚는다.
우리는 히히히 웃으면서 크게 빚기도 하고 작게 빚기도 한다. 엄마는 부엌 작은 솥에서 팥을 삶아서 익으면 체에 걸러서 팥앙금만 걸러낸다. 그걸 다시 솥에 부어서 소금, 설탕으로 간을 맞추었다. 그리고나서 우리가 빚은 찹쌀 새알심을 넣어서 약한 불에 뭉근하게 끓였다. 찐하고 검붉은 팥죽을 떠서 우리에게 한 그릇씩 꼭 먹게 했다. 그리고 엄마는 한 그릇은 따로 퍼서 집안 주위를 돌면서 입으로 뭐라뭐라 중얼거리면서 팥죽을 뿌리는 것이다. 왜냐고 물어보면 팥은 귀신을 쫓는다고 했다.
“귀신이 진짜 있나? 근데 저번에는 귀신이 없다고 했잖아.”
내가 말했다.
“엄마!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있노? 그런거 없다고 테레비에 나왔다.”
오빠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하면 엄마는 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너거가 몰라서 그렇지 그런게 다 있다. 저거가 알도 모르면서 캐쌌노?”
그리고는 식은 팥죽을 담은 커다란 스테인리스통을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거 닭집 양계장에 갖다주고 온나.”
시간은 다섯 시가 좀 넘었지만 동짓날이라 해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같이 뿌옇다고나할까?
“나도 따라갈래.”
위선자가 말했다. 엄마는 위선자에겐 생전 심부름같은건 잘 시키지 않는다. 뭘해도 엎지르거나 깨먹기 때문이다. 아마 닭집아지매집에 간다고 하니까 닭집아지매가 혹시 닭튀김이나 찹쌀도너츠같은 걸 주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따라나서려는 것 같았다.
닭집아지매는 인심이 좋아서 내가 심부름으로 무얼 갖다주면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었다.
닭집딸 똑똑이언니는 나보다 열 살 정도 나이가 많았다. 허리 아래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하얀 손으로 찹쌀도넛츠를 기가 막히게 잘 튀겼다. 똑똑이언니는 여자고등학교에 다니는데 가사수업시간에 배운 요리를 꼭 집에서 복습을 한다고 한다.
흔히 닭집아지매는 약간 속이 터져서 검은 팥앙금이 살짝 보이는 뜨끈한 찹쌀도너츠를 큰 접시에 가득 담아서 우리집으로 가져왔다.
“아이구, 이거 똑똑이가 잘못 튀긴건데 맛이나 봐라.”
하면서 가져온 찹쌀도너츠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닭집아지매는 아이가 많은 우리집에 빨리 갖다주려고 강가 버들밭길을 가로질러 온다.
우리집과 닭집아지매 집 사이에 두어 집이 더 있는데 그 길로 오면 중간중간에 누군가를 만나서 도너츠를 나누어주어야하기도 하고 길이 머니까 더 빠른 강가 버들밭길로 질러서 오는 것이다. 닭집아지매집과 우리집이 서로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을땐 냇가 버들밭길이 말하자면 지름길인셈이다.
시골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하면 모두 똑같이 나누어먹어야한다. 친한 집만 줬다가는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 그래서 엄마는 호박죽을 끓여도 꼭 옆집 파인애플집호호할매집에는 꼭 갖다주었다. 팥죽을 끓여도 맨 먼저 갖다주었다. 냄새가 바로 퍼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호박죽같은 음식은 이제 할 힘이 없는 호호할매는 죽을 들고가면 입을 함지박만하게 벌리고 웃으면서 좋아했다.
내가 팥죽이 든 무거운 통을 가슴에 끌어안듯 들고 위선자가 내 뒤를 쫄쫄 따라왔다.
엄마가 장바구니에 돈을 넣어서 위선자에게 들려주면서 말했다.
“가는 김에 닭집에 가서 달걀 한판 받아온나.”
버들밭 사이길로 들어섰을 때 나무 때문에 주위는 더 어둑어둑했다.
냇물은 더 검푸르게 보였다.
“언니야. 저기 닭집언니야 외할매가 빨래한다.”
위선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추운 겨울 석양이 지는 무렵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쓴 똑똑이언니의 외할머니가 강가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지 허리를 폈다가 굽혔다가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닭집양계장은 동네 강가쪽에 있었다. 바로 그 밑에는 빨래터가 있어서 닭집아지매는 늘 거기서 빨래를 하곤 했는데, 가끔 머리하얀 친정어머니가 오셔셔 대신 빨래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우리가 닭집양계장 근처에 다다랐을 때 빨래터에 빨래를 하는 머리하얀 할머니는 없었다.
그건 빨래터 근처에 있는 갈대숲에 하얀 수건이 걸려있고 갈대가 바람에 흔들려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이었다. 착시현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걸 허깨비를 본다고 했다.
“어? 분명히 닭집할매가 빨래하고 있었는데?”
위선자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몇 달 전에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엄마가 했던 기억이 났다.
아부지가 부조금을 봉투에 담아서 갖다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선자에게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괜히 말했다가는 귀신을 봤다느니 호들갑을 떨어댈 것이 뻔했다.
매일 오고가는 버들밭길에서 귀신을 봤다고 해봐야 더 무섭게 느껴질 것이고 심부름한다고
자주 왔다갔다해야하는 건 나였다.
우리 빨래터 근처는 물이 얕다. 냇물이라고 하기엔 강폭이 무척 넓었고 우리동네 위쪽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여울이 있어서 낚시를 하러가거나 여름에 수영을 하러간 사람들 중에 일년에 한 두 번씩은 꼭 물에 빠져죽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엄마를 따라서 여름저녁에 빨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누가 나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뒷꼭대기가 쭈뼛서는 것이었다.
위선자도 없었다면 난 무서워서 버들밭 사이로 난 지름길로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팥죽통을 들고 양계장 안으로 들어서자 닭집아지매는 반가워하면서 말했다.
“아이구, 날도 추운데 팥죽 들고 온다고 욕봤다. 하하하”
닭집아지매의 막내아들 건들이는 우리오빠보다 두어살 위인데 나를 보자 심술궂게 메롱하며 약을 올렸다. 그러고는 목소리는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여서 ‘바보야’하는 것이다.
늘 그렇게 약을 올린다. 건들이는 나이는 많은데 집에서 막내라 그런지 나이에 비해 철이 많이 없었고 유치하였다. 나는 무시하고 못 본척했다.
아지매는 닭집똑똑이언니가 사두었을 은박지로 싸인 초콜릿을 하나씩 우리의 손에 쥐어주었다.
위선자는 받자마자 포장지를 뜯어서 초콜릿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위선자는 이런 맛에 닭집아지매집에 기를 쓰고 따라오는 것이다.
나는 막둥이와 나눠먹으려고 주머니에 곱게 넣어두었다.
바닷가의 대도시에 살다온 닭집아지매집에는 읍내 수퍼마켓에도 팔지 않는 비싼 과자가 자주 있었다. 제사를 지내도 우리 고장에는 절인 조기를 구워서 올리는데 닭집아지매는 생물조기를 구워서 제상에 올렸다. 그리고 우리가 평소 구경하지 못하는 게장이나 해물찜, 작은 꽃게튀김같은 것을 잔뜩해서 나누어주었다. 우리집 음식이 삶고, 찌고, 끓이고 소박하다면 닭집아지매집의 요리법은 화려했다.
닭집아지매가 달걀을 장바구니에 담아주면서 말했다.
“깨질라 조심해서 들고 가래이.”
저녁 일곱시가 넘어서 버드나무 숲길이 더 컴컴해졌기 때문에 올 때는 동네길로 걸어가기로 했다. 어두운 것은 핑계이고 사실은 아까 갈대위로 흰 수건이 얹힌 것을 똑똑이언니 외할머니로 착각을 한 것이 무서워서 버드나무길로는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넷길에 가로등은 없지만 집들 사이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와서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여서 버드나무 숲길보다는 나았다.
나는 달걀을 깰까봐 손에 힘을 주고 발 아래를 보면서 조심조심 걸었다.
그런데 위선자가 자꾸 자기도 같이 장바구니를 들고 가고 싶다는 것이다.
“안돼. 니는 덜렁거리니까 달걀깨진다.”
“히이이잉. 나도 들고 싶다. 언니야 한번만~”
위선자는 계속 징징거렸다.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들고 살살 걸어라. 깨면 엄마한테 혼난다!”
내가 엄포를 놓은 다음 장바구니 한쪽 손잡이를 마주잡고 걸었다.
그런데 잠시 후 위선자는 돌부리에 걸렸는지 안넘어지려고 온 팔을 휘저으면서 허우적거리더니 순식간에 꽈당 자빠졌다. 그 바람에 달걀이 서 너개 깨져서 계란흰자가 줄줄 흘러나와서 장바구니 바닥이 흥건하게 젖었다.
“으이구! 내가 이러니까 들지말라고 했잖아. 이제 어떻게 하노?”
엄마에게 혼날 생각을 하니 위선자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위선자는 늘 그런 식으로 사고를 쳤다.
나는 혼이 날까봐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달걀이 든 장바구니를 위선자에게 쥐어주고 말했다.
“니가 깼으니까 엄마한테 니가 깼다고 말해라.”
“응. 알았어.”
위선자는 장바구니를 들고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언니가 달걀 깼다.”
“뭐라고? 으이구 이노무 가시나. 멀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다. 들어오기만 해봐라!”
엄마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참나. 위선자년을 믿는 게 아니었다. 늘 이런 식이다.
엄마는 위선자가 잘못해도 절대 혼내지 않는다. 위선자에게는 심부름도 안시킨다.
위선자는 날 때부터 귀가 잘 안들렸다. 그래서 말도 잘 못했다.
위선자의 말은 엄마와 나 정도만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서 엄마 아부지는 안간힘을 써서 돈을 모아 수술비를 모았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막둥이도 떼어놓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위선자를 데려가서 한 달 동안이나 있다가 왔다. 수술을 한 것이다.
우리집에는 외할머니가 와서 한달동안 우리밥을 해주고 빨래를 빨아주었다.
위선자는 그 전에는 엄마라고 정확하게 발음을 하지 못했다.
“어어....”
그러나 수술후에는 말을 곧잘 하게 되었다.
엄마는 어릴 때 힘들게 고생시켰다고 위선자에게는 늘 미안해하였다.
아무리 잘못을 해도 너그러이 봐주었다. 우리에게도 늘 양보를 하라고 강요했다.
그래서 그런지 위선자는 천방지축이었고 조심성이 전혀 없었다. 제멋대로였고 거짓말도 잘했다. 늘 잘못을 저지르고도 나에게 뒤집어씌우기 일쑤였다.
‘차라리 저년이 말을 못할 때가 더 나았는데.........’
지가 엄마지갑에서 돈을 훔쳐서 변소에 숨겨놨다가 들켰을 때도 내가 그랬다고 뒤집어씌웠다.
오만상은 나가서 돌아다니느라 바빴고, 오만상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기에는 너무 벅찬 상대였기때문이다.
엄마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법이 없었고, 늘 나를 혼냈다.
“니는 도대체 뭐가 될라고 그러노? 어이? 나는 아부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니 나이 때부터 남의집에 가서 돈벌어서 동생들 다 먹여살렸다! 언니가 언니값을 못해! 동생 불쌍한데 언니가 무조건 양보해야지!”
365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이야기다.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는 아홉 살때부터 부잣집 애보기로 일을 하러갔다고. 그래서 온 식구를 먹여살렸다는 그 이야기.
“난 우리아부지가 있는데? 내가 왜?”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순간 얼굴이 시뻘개지고 얼굴근육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나서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 이런 싸가지없는 인간! 니같은 건 키워봤자 인간되길 글렀다! 나가! 당장!”
그러면서 또 위선자와 끌어안고 한바탕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아무래도 내가 보기에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인지 보통의 엄마와는 달랐다.
엄마의 기준에서 약자라고 인식되는 대상에게 잘해주다못해 지나치게 보호를 한다고나 할까?
그런가하면 나에게는 약간 뭔가 경쟁의식이 있는지 아부지가 나를 안아주거나 하면 못 안아주게 화를 냈다.
“다 큰 걸 왜 안아주는데? 버르장머리없이 큰다. 절대로 그러지마라.”
그런데 또 아부지랑 싸우면 아부지와 비슷하게 생긴 나에게 종종 화풀이를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 위선자를 속으로 싫어했고, 절대 같이 뭔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화가 가라앉는 것을 봐가면서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던 나는 과수원 울타리곁에 서서 집안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 어두운 동넷길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손전등도 하나 들지 않고 말이다. 그 그림자는 전처럼 휙 사라지지 않고 뚜벅뚜벅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난 오금이 저렸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그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내고 싶었다. 우리밭 울타리의 철조망을 손으로 꼭 붙들고 나는 무서움을 참으면서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내 심장이 벌떡벌떡 요동치는 소리가 내 귀에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그림자가 사람 하나의 키만큼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심장마비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난 다리에 힘이 풀려서 차가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보다 높은 그 검은 그림자를 두려운 마음으로 올려다보았다.
여자였다. 그 검은 그림자는. 그 그림자의 여자는 나를 보고도 아무 감정의 변화도 없이 무표정하였고, 나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번히 뜨고 캄캄한 어둠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나를 휙 지나쳐서 사라졌다. 얼마나 걸음이 빠른지 벌써 저 아래 사람이 살지 않는 봉씨아저씨네 농장쪽으로 내려갔다. 그 검은 그림자는 곧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저 여자가 누구였더라? 분명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난 우리집 마당으로 걸어들어온 뒤에서 골똑히 생각했다.
“안들어오고 뭐하노? 이년아!”
엄마가 나를 향해 소리질렀다.
그제서야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얼굴이 기억났다. 딱 한번 본 그 얼굴.
분명히 그 얼굴이었다.
밤에 강가에서 낚싯꾼들이 보았다던 물귀신, 내가 어두운 여름밤 기다란 풀숲 사이로 보았던 그 검은 그림자. 밤에 변소간에 갈 때 잠에 취한 내 앞을 휙 지나가던 그 그림자.
지금은 한겨울. 동짓밤이니 그 그림자가 비교적 이른 시간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게 가까이 서 있으면 으레 눈이 마주치기라로 할만한데, 조금 전의 그 여자의 표정은 일부러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무시해서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코앞의 나를 전혀 인식하지 않는 눈동자. 인식을 하지 못하는 눈길이었다.
보이지 않아서 못보는 것같은 느낌.
‘그런데 밤길은 어떻게 보고 걷는거지?’
엄마에게 말해보았자 또 헛소리를 한다고 야단만 맞을 것이 뻔했다.
나는 엄마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봉씨아저씨가 새벽에 우리집에 찾아와서 아부지에게 말했다.
“나, 참. 내 식겁했다.”
“형님, 와요?”
“내가 밤에 돼지새끼를 받느라고 집에 늦게 갔다아이가. 차에 시동을 걸고 방향을 틀라꼬 후진을 하는데. 니도 알잖아. 내가 항상 거름더미 앞에 차를 세우는거. 내가 뒤를 안돌아봤으마 사람 하나 직있을끼다. 아니 산밑에 있는 우리밭 거름더미 뒤에서 갑자기 귀신같은기이 떡하니 튀어나오는기라. 어이? 도대체 한겨울밤에 와 그기이 우리집 거름더미 뒤에서 튀어나오노 말이다. 나는 귀신인지 알고 심장마비 일으킬 뻔 했다아이가? 나 십년감수했다.”
봉씨아저씨는 말을 하면서도 자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기 누군데요?”
우리아부지가 궁금해서 못 살 것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저 이무기 산밑에 배나무집 할망구더라니까. 아니 남 사고낼뻔 해놓고, 그 할망구가 귀신들린 것처럼 아무 소리도 없이 멍하니 나를 보더니 또 금방 어디로 휙 사라지더란 말이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을 와 밖에 풀어놓노 말이다.”
동네 모든 일을 해결하고 싶은 우리아부지가 배나무밭으로 가서 아저씨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배나무밭 아저씨가 말했다고 한다.
“우리 마누라, 몽유병때문에 밤에 돌아다니는 버릇이 있어서 시골로 이사왔는데... 정말 미안합니다. 아무리 문을 잠가놔도 귀신같이 빠져나가니~~~”
배나무밭 아주머니는 가끔 밤에 자다가 밖으로 돌아다니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잠을 자는 상태에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도 아무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배나무밭으로 샤시가게 트럭이 올라갔다. 아마도 배나무밭 아저씨가 집에 문을 수리하는 모양이었다. 그 후 배나무밭 아주머니의 모습은 더 이상 밤에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