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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작가 : 코리아구삼공일
작품등록일 : 2020.9.10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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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배경을 제외하고, 모두 허구이며 인물들은 가공의 인물들입니다.>
이젠 사라져가는 대가족세대와 시골의 마을공동체생활을 겪은 70,80세대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그저 평범한 아이의 눈으로 부모님세대를 바라본 옛 이야기입니다.

 
일학년 입학 & 봄소풍
작성일 : 20-09-20 08:00     조회 : 332     추천 : 2     분량 : 7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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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소풍

 

 난 일곱 살에 읍내에 있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유치원에 다닐 돈도 없고, 우리아부지는 뭐든지 미리하면 좋은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학교에 한 해 일찍 입학했다. 동네 여기저기를 빌빌 돌아다니는 것보다야 학교에 가면 미리 한 글자라도 더 배울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머리가 좋은 아이들같은 경우에는 학교를 일찍 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자신들의 계산이 엄청난 착오였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봄소풍을 간다고 했다. 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오빠가 소풍을 가면 엄마가 과자와 음료수를 사주고 김밥을 싸주어서 참 부러웠었다. 그런데 첫 소풍을 가게 되어서 마음이 설레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소풍장소를 적으셨다.

 ‘버들골 강변 모래밭’

 “여러분, 이번 봄소풍을 버들골 모래밭으로 갑니다.”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너희 집이 버들골 아니냐?”

 “아..아니요. 모..모..모르는데요.”

 담임선생님은 순간 이상한 표정을 지으셨다.

 버들골로 소풍을 간다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우리집 앞으로 전교생이 소풍을 온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 왠지 우리집을 보여주기가 쑥쓰러웠다. 읍내에 나와보니 읍내는 2층 양옥도 있고, 깨끗한 마당에 꽃밭도 있는 집들도 있었다.

 ‘나도 저렇게 깨끗하고 예쁜 집에서 한 번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읍내 집들은 대문 밖으로 조금만 가면 학교도 가깝고, 시장도 가깝고 사람들도 많아서 좋았다. 난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우리집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돼지랑 강아지도 키우고 사과밭 안에 있는 우리집이 읍내에 사는 친구들의 집과는 많이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다.

 우리집이 창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같은 남이나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에게까지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평소에 빨래도 하고, 고디도 잡고, 여름이면 동네 불알친구인 순돌이, 구원자와 빤스만 입고 헤엄치는 강가로 소풍을 간다는 게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곳은 말하자면 나의 사적인 장소인데 전교생에게 까발려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순간적으로 모른다고 한 것이다. 학교에는 짓궂은 아이들도 있어서 그 아이들이 놀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우리엄마 나이와 비슷한 담임선생님은 평소에 냉정하고 거만했다. 반장엄마나 부반장엄마가 뭔가 선물같을 걸 들고 오면 오도방정을 떨면서 싹싹하게 굴었다. 학생들에게 편애도 엄청 심했다.

 반장이나 부반장, 좀 잘사는 집 아이들에게는 절대 큰소리로 혼을 내지 않았다.

 옷을 좀 초라하게 입거나 더러운 옷을 입을 아이들에게는 조그만 실수에도 가차없는 호통을 쳤고 긴 지휘봉으로 손바닥을 있는 힘을 다해서 내리쳤다. 난 선생님이 속으로 무척 싫었다.

 나는 학교 수업 때 얌전히 앉아있었으나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할 때가 많았고, 학교공부나 학교생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이 많이 없는 과수원이나 숲에서 꽃이나 나무를 구경하거나 마당에 그림을 그리고, 냇가에 가서 물고기를 관찰하며 이것저것 상상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좁은 교실에 쓰레기통 옆까지 책상을 들여놓고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바글바글대는 학교가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늘 어서 집에 갔으면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나를 자기멋대로 좀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가 가끔 학교에 농사지은 과일을 들고 찾아오는 때는 과장스러운 친절을 나에게 베풀었다. 하지만 엄마가 가고 나면 또 얼굴이 싹 변하는 것이었다.

 

 학교 숙제 중에서 습자지에 국어책 따라쓰기 숙제가 있었는데, 습자지 5장에 100원이었다.

 나는 아침에 학교갈 때 엄마가 꼭 백원짜리 동전 하나를 준다. 우리 집이 학교에서 머니까 쮸쮸바라도 하나 사먹으라고 주는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준비물을 사서 해야하는 숙제를 내는 날이면 쮸쮸바같은 건 포기해야한다. 학교 정문 바로 앞 양쪽에는 간판없는 문방구가 두 군데 있는데 색종이, 가위, 풀, 연필같은 학용품부터, 쮸쮸바, 하드(아이스바), 불량식품 쫀드기, 어떨 때는 삶은 번데기도 조그만 종이봉지에 백원어치씩 팔았다. 콩알만한 꾀돌이 과자도 큰 그릇에 수북히 쌓아놓고 작은 소주잔만한 컵에 오십원씩 받고 팔았다. 없는 게 없었다.

 조금 밑에 가게에는 포또를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었다. 포또는 연탄불 위에 국자를 올려놓고 거기 설탕을 젓가락으로 녹인다. 그리고 소다가루를 젓가락으로 찍어서 부풀려서 먹는 과자인데, 그 가게에서는 포또를 기름 친 누르개로 호떡누르듯이 납작하게 눌러서 산모양같은 무늬를 슬쩍 찍어서 판다. 그걸 길쭉한 핀으로 살살살 긁어서 한번도 안 부러뜨리고 원래 포또에서 산모양무늬를 분리해내면 주인아주머니가 백원을 다시 돌려주거나 포또를 한 번 더 할 수 있다.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큰 인기였다. 포또가게 앞이나 인도 위에서 책가방을 멘 아이들이 구부리고 앉아서 그걸 긁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많은 유혹들을 뿌리고 맨입으로 집에 오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맨날 학교에서 나머지공부를 하고 오느라 힘이 들었던 나는 백원 동전을 가지고 오늘은 무얼 사먹을까?하는 고민이 유일한 낙이었다.

 ‘오늘 습자지를 사야지.’하고 가게로 갔지만 포또를 만들고 싶었다. 설탕을 녹여 소다를 집어넣어 황금색으로 부풀린 다음 산모양무늬를 찍어서 모양나게 긁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포또를 만드는데 백원을 써버렸다. 산모양을 긁다가 중간에 부러져서 그냥 먹었다. 습자지는 사지 못했다. 융통성이 없어서 돈을 빌리지도 못했고 집에 가면 엄마 아부지는 너무 바빠서 다시 습자기 하나 사러 읍내로 나갈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습자지에 따라쓰기숙제’를 하지 못하고, 국어공책에 최대한 국어책의 글씨와 비슷하게 따라쓰기를 그리다시피 했다. 산수 숙제도 끝냈다. 선생님이 내가 최대한 똑같이 공책에 그린 따라쓰기 숙제를 습자지에 한 것처럼 인정을 해주길 내심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음 날, 숙제검사를 할 때 선생님은 힘들게 따라하기를 그린 내 공책을 교실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게 뭐야? 습자지에 하라니까!”

 숙제를 안 한 아이들이 몇 명 불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선생님은 기다란 지휘봉으로 나를 제일 먼저 불러냈다. 그리고 인정사정없이 내 손바닥을 세게 후려쳤다. 습자지에 따라쓰기를 못한 아이들 모두들 손바닥에 뻘건 줄이 죽죽 그어질 정도로 세게 맞았다. 하지만 은정이라는 반친구는 숙제를 하지 않았는데도 맞지 않았다. 은정이가 지레 겁을 먹고 훌쩍거리자 선생님은 은정이는 때리지 않고 그냥 두었다. 은정이는 엄마가 학교에 자주 찾아왔다.

  “오늘 못한 숙제는 다해야 집에 간다!”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아침에 엄마가 뭘 사먹으라고 준 백원을 들고, 학교 교문 앞 문방구로 가서 습자지를 5장 사왔다. 습자지가 없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 내가 따라쓰기 숙제를 하고 있는데 교실로 은정이엄마가 배시시 웃으면서 들어왔다.

 “선생님, 우리 은정이가 어제 숙제를 못해서요.”

 은정이엄마가 변명 비슷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온 얼굴에 웃음을 띠고 온화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호호호, 안그래도 지금 숙제를 좀 시키고 있어요. 어머니.”

 “선생님, 지금 저희가 급한 일이 있어서 은정이 데리고 좀 가야해서요.”

 “어머? 그러세요? 그럼 어서 가야죠? 은정아! 엄마랑 집에 가야지?”

 나는 선생님의 상냥한 목소리를 듣고 오늘 아침에 먹은 계란국이 목구멍으로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어제도 내가 산수를 못해서 남아있었다. 엄마는 하도 내가 집에 안오니까 나를 찾아 학교로 한 번 왔었다. 그때 선생님이 하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어머니, 애가 많이 모자라니까 특수반에 보내세요.”

 순간 충격을 받은 엄마는 선생님에게 사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야는 아직 일곱 살이고, 저희도 농사짓느라 글자 한번 못 가르쳐줬습니더. 촌에 살다보니 유치원도 못보내서 처음에 적응이 안되서 그럴깁니다. 조금만 더 있어보고예.”

 “근데 애가 지가 사는 동네 이름도 모르더라니까요. 이번에 소풍을 버들골 강가로 가는데

 버들골이 어딘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겠어요?”

 순간 찔끔한 엄마는 그 말에 대꾸는 하지 않고 점심이라도 사드려야하는데 죄송하다면서 무언가를 담은 봉지와 편지봉투 하나를 건넸다. 담임선생님은 넙죽 받았다.

 어젯밤, 엄마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교육시켰다.

 “우리동네 이름은 버들골이다. 알았나? 따라해봐라! 버들골!”

 나는 엄마에게 내 복잡한 심경을 말로 표현할 능력이 없었고 우리엄마는 너무 바빠서 내 말을 들을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에게 내가 많이 모자란다는 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숙제를 다한 날도, 숙제를 덜한 날도 남아서 다른 아이 몇 명과 나머지 공부를 했다. 나머지 공부를 한다고는 하지만 선생님이 설명을 조곤조곤 해주는 법도 없었고 산수문제가 잔뜩 적힌 종이를 그냥 주구장창 혼자 푸는 것이었다.

 사실 담임선생님은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었고, 잘사는 집 아이들이나 어머니가 학교에 자주 들락거리는 아이들은 숙제를 안해도 한번도 혼내지 않았다.

 소풍가기 전날, 엄마는 오빠와 나에게 똑같이 초콜릿발린 막대과자, 사탕, 초콜릿, 새우과자를 사주었다. 그리고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소풍가방도 사주었다. 새로 물병도 사주었다.

 소풍가는 날 새벽에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소시지를 볶고, 미나리도 무치고, 밥을 꼬들꼬들하게 지어서 식초, 설탕, 소금으로 간을 했다. 우리집은 밥을 새콤달콤한 초밥처럼 만들어서 김밥을 싼다. 나는 엄마가 김밥을 쌀 때 소시지, 단무지, 노랑 계란지단, 볶은 우엉을 집어주면서 조수 노릇을 했다. 막둥이와 위선자는 도마 옆에 붙어앉아 김밥을 썰고 남은 꼬다리김밥을 주워먹었다. 엄마는 마당에서 키운 닭이 낳은 달걀을 삶았다. 그리고 소금에도 깨를 빻아 넣어서 종이에 쌌다. 집에서 농사지은 땅콩도 삶아서 싸주었다. 엄마가 마련해준 모든 음식을 미키마우스 소풍가방에 넣었다.

 내가 소풍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자 막둥이와 위선자는 말했다.

 “언니야, 까자 남겨와래이.”

 “언냐, 까자.”

 막둥이는 아들인데, 셋째인 위선자가 나에게 언니라고 하니까 자기도 늘 언니라고 부른다.

  소풍가방을 메고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소풍장소인 우리동네를 향해서 온 전교생이 줄을 지어 걸어갔다. 학교에 자주 들락거리는 친구엄마들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양산을 쓰고 손에 커다란 도시락보자기를 들고 따라왔다. 우리엄마는 과수원에서 적과(사과솎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이런 행사에 온다는건 상상도 못한다.

  나는 내가 평소에 마음대로 누비는 우리동네로 소풍을 와서 소풍오는 기분도 들지 않았다.

 우리 동네 버드나무 숲 앞 모래밭에서 보물찾기같은 간단한 게임을 하고 점심시간에 김밥을 먹었다. 우리반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소시지, 똑같은 단무지, 똑같은 달걀지단으로 만든 김밥인데도 서로 다른 사람의 김밥이 궁금해서 난리였다.

 “내꺼 하나 줄테니까 우리 바꿔 먹어보자.”

 “어? 너네집김밥에는 미나리가 없고 오이를 넣었네.”

 똑같은 재료로 쌌지만 김밥맛은 조금씩 다 달랐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삶은 달걀은 모두 싸왔다. 음료수는 대부분이 사이다, 우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발소집 딸 순자는 텔레비전에 광고를 하는 맛살을 한 봉지 가져왔다.

 모두들 순자에게 맛살을 얻어먹고 싶어서 목을 빼고 있었다.

 순자는 마지못해 맛살을 꺼내어 손톱으로 실낱같이 가늘게 찢어서 둘러싸서 구경하는 아이들에게 한가닥씩 한가닥씩 손을 벌벌 떨면서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이제 달라고 하지마! 내 먹을 것도 없다.”

 아이들은 간에 기별도 안가게 나누어주는 맛살을 소중하게 조금씩 조금씩 씹었다.

 학교선생님들은 소풍에 같이 온 어머니들이 바리바리 싸온 음식들을 대접하느라

 한 창이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따라온 엄마들이 춤판을 벌였다.

 시시한 소풍을 마치고, 다시 줄을 맞춰 모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살짝 줄에서 이탈해서 우리 과수원 속으로 숨어들 듯 들어왔다. 막둥이와 위선자에게 아침에 들고간 그대로인 소풍가방에서 과자를 꺼내 나누어주었다. 막둥이와 위선자의 손에 들어간 과자는 게눈감추듯이 사라졌다.

 

 우리 반에 몽구라는 아이가 있는데 내가 봐도 우리집 막둥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아이였다. 마음이 많이 어린 아이였다. 몇 달이 지나도 매일 엄마가 학교 교실 앞까지 가방을 들고 왔다. 몽구는 교실에 안들어오려고 그러는지 밖에서 뻗대는 걸 몽구엄마가 구스르고 달래고 해서 겨우겨우 의자에 앉혀놓고 나가곤 했다. 그런데 몽구는 공부못하는 내가 봐도 정말로 공부를 못했다. 아무리 가르쳐줘도 몰랐다. 알고 싶은 마음도 없어보였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유독 그 몽구에게 어려운 산수문제를 풀게 하고는 못하면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회초리로 머리, 팔다리, 몸 닥치지 않고 마구 때리는 것이었다.

 어려운 문제는 반장이나 부반장에게 시키면 될 것을 뭐하러 굳이 반에서 제일 못하는 아이에게 칠판 앞에 나와서 풀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몽구는 무방비상태로 맞다가 짐승처럼 괴성을 지르면서 울어대는 것이다. 그러다가 바지 아래로 주르르륵 오줌을 싸버리는 것이다. 선생님이 너무 무섭고 이 상황이 너무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몽구가 오줌을 쌌다고 더 혼을 내는 것이었다.

 몽구는 우아앙! 울면서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버렸다. 오후에 몽구엄마가 찾아와서 책가방과 책을 싸갔다. 그 이후로 몽구는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몽구는 특수반에서 공부하게 됐다. 담임선생님은 자기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학생들에게 푸는 여자같았다.

 

 여름이 다가오자 선생님이 나에게 자주 살짝 옆에 다가와서 내일은 사과를 가져오라고 속닥거렸다. 난 선생님에게 사과 갖다주기가 싫었다. 나는 음식을 나누어먹는 것도 친한 사람이나 내가 신세를 진 사람에게 보답의 의미로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와 정신적으로 교류나 소통이 전혀 없었고 눈꼽만치도 친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과를 갖다주어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는 일이 없었으며 일주일쯤 지나면 또 달라고 했다. 어른이 아이에게 뭘 달라고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아침에 학교근처까지는 아버지가 경운기로 나와 오빠를 비롯한 동네아이들을 태워다주지만 학교는 주위의 땅보다 높은 지대에 있었고 교문으로 들어오려면 긴 비탈진 길을 걸어올라와야했다.

 일곱 살 먹은 내가 책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내 얼굴만한 사과를 담은 봉지를 들고 온다고 생각해보라! 선생님이 엄마가 없을 때 단 한번도 나에게 친절한 적도 없는데 왜 힘들게 농사지은 사과를 갖다주어야하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그리고 사과를 주는 1초정도만 좋아할뿐 받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람이 쎄하다.

 선생님에게 정말 갖다주기 싫었는데....엄마에게 달라고 해서 억지로 사과를 갖다주었다.

 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서 선생님에게 얼른 주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내가 선생님에게 뭔가 갖다주는 모습을 다른 반친구들이 보는게 싫었다.

 친구들 앞에서 갖다주면 친구들은 나와 선생님이 친한 사이라고 오해할 것 같았다.

 그리고 뭔가 못 갖다주는 친구들이 좀 난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엄마는 과수원 나무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잘 익은 것들만 골라서 사과를 땄다.

 내 머리통만한 세계1호, 황금색으로 익은 골든(골든딜리셔스), 연두색 육오, 짜개면 연푸른색 사과 안에 꿀이 박힌 인도사과, 달콤한 유와이를 따서 봉지에 소중하게 담아서 주었다.

  아마 선생님이 내가 공부도 못하고 모자란다고 하니까 잘 봐달라고 그러는 것 같았다.

 

 우리 1학년 반에 오후에 6학년 언니들이 공부를 도와주러 오는데 나를 가르쳐주는 언니는

 내가 조금만 가르쳐주어도 금방 안다고 똘똘하다고 칭찬했다. 그 언니는 나랑 다른 친구들에게 풍선껌도 나누어주었다. 불친절하고 감정기복이 심한 선생님은 나에게 한번도 뭔가를 준 적이 없었다. 한번도 친절하지 않았다.

 

 
작가의 말
 

 80년대 초 '포또'라고 불리던 과자가 나중에 달고나라고 이름이 바뀌더군요.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나나 20-09-20 13:43
 
저런 선생은 자질이 없는 교육자네요...좋은 선생님들까지 욕먹이는 암적인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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