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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56 우리 데이트 하자
작성일 : 16-11-20 20:05     조회 : 207     추천 : 0     분량 : 8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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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16년……, 만이네. 오빠.”

 

 

  지욱은 여전히 윤아를 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거 무슨 상황이야?”

  “윤아랑 지욱 선배랑 아는 사람이야?”

  “대현이는 어쩌고 대놓고 포옹해?”

  “부럽다…….”

 

 

  파티쉐들은 지욱과 윤아가 예상치도 못하게 포옹을 하자, 놀란 듯 혹은 흥미로운 듯 수군거렸다. 대현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얘기를 꺼냈다.

 

 

  “무슨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오랜만에 만났다고 해도 사람들 많은데서 그러지 마라. 애들 오해……, 살라.”

 

 

  지욱은 여전히 해맑았고, 윤아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지욱과 멀어졌다. 지욱은 이참에 새로 마련한 집에 짐을 풀러 갔고, 나머지 파티쉐들은 로제와인으로 돌아갔다. 일하는 도중에 몇몇 파티쉐들이 윤아에게 지욱과 무슨 사이냐고 물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옆에 있던 대현이 험하게 내려다보았다.

 

 

  “일에 집중하지 않고 노닥거리면 가만 안 놔둔다.”

 

 

  파티쉐들은 그 말에 은근슬쩍 대현과 윤아를 번갈아보며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대현은 그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짧게 내뱉었다. 윤아와 어색한 것 같아, 별 것 아닌 얘기라도 꺼내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마땅히 할 얘기가 없었다. 명수와 효린도 은근 자신과 윤아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윤아와 지욱이 끌어안은 게 그들에게 있어서 충격적이긴 했다. 윤아는 로제와인에 들어왔을 때부터 기억 속의 남자가 자신이라며 매번 쫒아 다녔고, 자신 역시 윤아를 신경 쓰는 티를 많이 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보니 간혹 윤아를 양다리라고 좋지 못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파티쉐들도 있었다. 대현은 윤아가 괜한 오해를 살 것 같아, 이산 가족 상봉이라는 타이틀로 최대한 무덤덤하게 굴었지만 그럴수록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한편 윤아 역시 대현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자신이 실컷 대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지욱이니 혼란스럽기도 했다. 대현은 여태껏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이나 말들을 받아주었다고 생각하니 민망하기도 했다. 윤아는 대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못하고 반죽만 바라보았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욱이 어느새 짐을 풀고 외삼촌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외삼촌이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지욱의 등을 떠밀며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래, 그래. 집에는 가봤어?”

  “네. 오랜만에 부모님 뵙고 왔어요.”

  “건강하셔?”

  “당연하죠. 매일 아침마다 운동 꾸준히 하시는 걸요.”

  “다행이네. 내가 너 온다고 오늘 맛있는 거 많이 준비했으니까 실컷 먹고 얘기나 하고 가.”

  “네. 항상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외삼촌과 지욱, 윤아의 맞은편에 대현과 규동이 앉았다. 식탁 위에는 갈비찜과 오징어조림, 보쌈과 샐러드 등 다양한 음식이 있었다. 윤아와 규동은 잠깐 감탄을 하다가 먹기 시작했고, 대현은 잠시 동안 뜸들이다가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먹는 내내 외삼촌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프랑스는 어땠어? 적응은 잘 했고?”

  “네. 프랑스에 가본 경험이 있으니까 쉽게 적응할 수 있었어요.”

  “프로젝트는 잘 끝마쳤어?”

  “네. 이모와 함께 파티쉐 프로그램 종영 잘 하고 왔어요.”

  “정말 몰라 볼만큼 잘 컸구나. 수고 많았다.”

  “하하, 프랑스에서도 로제와인이 정말 유명하더라고요. 제가 로제와인 출신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쑥스러울 정도였어요.”

 

 

  지욱은 김치찌개 국물을 떠먹은 뒤 윤아에게 시선을 두었다.

 

 

  “윤아는 정말 예뻐졌네.”

  “예뻐지기는 무슨…….”

  “정말이야. 자그마할 때도 엄청 귀여웠는데. 그렇죠, 마스터?”

  “그럼. 윤아 은근 남자한테 인기가 많다니까? 윤아 좋아하는 사람도 꽤 있을 걸?”

  “쿨럭!”

 

 

  대현은 두부 숙회를 먹다말고 사레 들렸는지 연속으로 기침을 했다. 규동은 어색하게 웃고는, 자신의 가슴팍을 몇 번 때리는 대현에게 물을 건넸다. 대현은 물을 마시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밥을 먹었다. 윤아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고, 지욱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시 윤아와 얘기를 나누었다. 프랑스에서 무엇을 했고, 어떤 디저트가 유명한지, 그리고 윤아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탁. 대현은 식탁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밥에 집중하려 해도 윤아와 지욱의 웃음소리가 매우 거슬렸다. 지욱이 물었다.

 

 

  “더 안 먹을 거야?”

  “네 알 바 없잖아.”

 

 

  대현은 지욱의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윤아를 힐끔 쳐다보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외삼촌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밥이 맛없냐고 물었다. 규동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맛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위로 올라가보겠다며 대현의 뒤를 따랐다. 윤아는 대현과 규동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지욱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규동은 2층 계단을 올라 대현의 방문에 노크하려다, 테라스를 둘러보았다. 대현이 다리를 꼰 상태로 소파에 누워 있었다. 규동이 소파의 끝에 앉으며 말했다.

 

 

  “대현이 넌 지욱이 형과 윤아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알지?”

  “글쎄.”

  “그 둘이 대화를 들으면 어릴 적부터 너희 셋이 알던 사이인 것 같던데. 난 옛 일을 모르니까 막상 사이에 껴서 물어보기가 그렇더라고.”

  “둘의 사이라…….”

 

 

  ‘서로 좋아했던 사이였지. 뭐, 지금도 서로 좋아하고 있는 건가?’

 

 

  “짜증나게. 야, 물을 거면 다른 거 물어.”

  “뭐가 뭔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아서 말이야. 윤아가 공항에서 지욱이 형한테 16년 만이라고 말했던 건 무슨 뜻이야?”

 

  “임윤아가 나 처음 봤을 때 기억 속의 남자 아이라면서 내 꽁무니 따라다녔던 거 기억하냐?”

  “응. 기억 속의 남자가 너라서 좋아한다고 그랬지.”

  “근데 사실은 그 기억 속의 남자 아이가 내가 아니라 도지욱이라는 거지.”

  “뭐?”

 

  “임윤아는 6년 전의 사고로 인해 후유증으로 기억이 뒤섞였어. 그래서 도지욱에 대한 기억을 나로 착각한 거야. 그러니까 걔는 내가 아니라 여태껏 도지욱을 좋아했다는 거지. 도지욱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멍청하게 웃는 걸 보니, 이제 그 쪽에 관련된 기억이 대부분 되살아 난 것 같던데.”

 

 

  규동은 윤아가 6년 전에 무슨 사고를 당한 것인지, 그 후유증이 저번에 봐왔던 이상한 증상이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한 번 물으면 밑도 끝도 없을 것 같아 마음속에 묻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대현은 이 모든 걸 알고 있었고, 그걸 알면서도 윤아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갑작스럽게 지욱이 형을…….”

  “이상할 거 하나 없어. 걔는 줄곧 나한테 말했어. 기억 속의 남자 아이가 나라서 좋아한다고. 그런데 사실은 도지욱이니까 여태까지 도지욱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지. 너 앞으로 어쩔 거냐?”

 

 

  규동은 대현의 질문을 듣고, 난간에 한쪽 팔을 걸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까만 암흑으로 뒤덮였고 간혹 가로등 불빛이 약하게 보였다.

 

 

  “너야말로 괜찮아? 앞으로 어쩔 거야?”

  “도지욱 보고 그렇게 기뻐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내가 걔 마음을 어떻게 할 상황도 안 되니까.”

 

 

  대현은 눈을 감으며 마저 말을 이었다.

 

 

  “그냥 기다릴 수밖에.”

 

 

  ‘저번처럼 기다려 왔으니까.’

 

 

  로제와인에 출근하자마자 대현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다른 파티쉐들이 윤아에게 다가가 물었다.

 

 

  “윤아야, 지욱 선배와 무슨 사이야?”

  “너 대현이랑 썸 타는 거 아니었어?”

 

 

  윤아는 곤란한 듯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파티쉐들은 윤아의 대답을 듣고 싶은 마음에 윤아에게 좀 더 다가갔다. 그 때, 윤아의 뒤에서 파티시에 제복으로 갈아입은 지욱이 나타났다. 누가 보더라도 윤아의 표정은 곤란해 보였다.

 

 

  “어? 윤아의 제복이 검은색이네?”

 

 

  지욱은 상당히 놀란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게, 지욱과 대현이 실력으론 맨 꼭대기에 서있었는데, 막상 검은 제복을 입고 있는 건 대현과 윤아이기 때문이다.

 

 

  “선배가 없을 때 새로운 부총주방장을 뽑는 평가가 있었거든요. 윤아가 종합적으로 우승했어요.”

  “호오, 네 재능은 익히 내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는 걸? 다시 봤다 윤아야. 대견스러워.”

 

 

  화악. 윤아의 귓불이 붉어졌다. 지욱에게 칭찬을 받은 그 순간이 얼마나 가슴 떨리고 기뻤는지 몰랐다. 파티시엘 중 하나가 지욱에게 물었다.

 

 

  “윤아와 선배는 무슨 사이에요?”

 

 

  윤아가 다시금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지욱을 보았다. 지욱이 뭔가를 눈치 챈 듯.

 

 

  “무슨 사이라니? 당연히 친동생 오빠와도 같은 거지. 나랑 지욱이랑 윤아 셋이 어릴 때 꽤나 친한 사이였어. 지금은 우리가 너무 커서 어색한 감이 있기도 하고, 내가 유학을 자주 갔으니까 윤아랑은 16년 만에 본 거거든. 아, 혹시 어제 공항에서 윤아랑 안은 것 때문에 그런 거야? 에이, 너무들 한다. 반가워서 안는 건데 그걸로 이렇게 몰아가는 거야? 16년 만에 만난 거라니까? 16년?”

 

 

  지욱은 재차 16년을 강조했다. 16년이란 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기간이었다. 일 년, 아니 몇 개월만에 보는 걸로만 해도 반가워 안을 수 있는데 16년이란 건 오죽하겠는가.

 

 

  “아아, 그래서 대현이가 이상가족 상봉이라고 덤덤하게 받아들인 거구나.”

  “그럼 윤아가 한 말도 들어맞네.”

 

 

  지욱이 다른 파티시엘의 말에 ‘뭐가?’라고 물었다.

 

 

  “윤아가 여기 입사하기도 전에 대현이 보고 자신의 기억 속 남자라고 했으니까요. 어릴 적에 자신을 가르쳐주고 그랬다나.”

 

 

  지욱이 조금은 놀란 듯 윤아를 바라봤다. 윤아가 민망했던 것인지 어설픈 웃음소리를 냈다. 지욱은 싱긋 웃으며 자신이 프랑스에서 만들었던 디저트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파티쉐들은 너도나도 지욱의 뒤를 따랐다. 윤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윤아의 뒤에 몇몇의 파티쉐들이 숙덕거렸고, 사물함을 닫던 리하는 그것을 듣게 되었다.

 

 

  “솔직히 이거 양다리 아냐?”

  “에이 양다리까지야. 셋이 어릴 때 친했다잖아. 셋이 소꿉친구 뭐 그런 거겠지. 윤아가 양다리 칠 애냐.”

 

 

  윤아의 신뢰는 쉽게 깨질 리가 없었다. 특유 어벙하게 웃는 윤아가, 일에는 착실하던 윤아가, 어느 사람이든 좋아하고 믿어주는 윤아가 양다리라니, 전혀 이미지가 매치 안 된다는 식으로 다른 파티쉐들이 말했다.

 

  리하는 올려 묶은 머리를 다듬고 파티쉐 모자를 썼다. 그리고는 락커에서 나가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하여간 종잡을 수 없는 애라니까.”

 

 

  ‘뭐, 나로서는 좋은 기회인 건가…….’

 

 

  조리실 내부에는 초콜릿 냄새로 그득했다. 지욱은 식힘망 위에 다 만들어 놓은 초코 케이크를 올린 뒤, 조심스럽게 화이트 초콜릿 글라사주를 부었다. 케이크의 윗면이 하얗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노란 원이 군데군데 생겼다. 치즈를 연상케했다. 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프랑스 물을 먹은 실력자는 급이 다르구나. 이번 월말평가 장난 아니겠다.”

 

 

  규동은 팔짱을 끼며 지욱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대현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글쎄. 원래 뛰어나긴 했지만 내가 봤을 땐 그냥 그대로야. 기술이 좀 더 거창하게 표현될 뿐인 것 같단 말이지. 창작 면에서는 그대로랄까.”

 

 

  대현은 규동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던 준비만 마저 할 뿐이었다. 지욱은 로제와인에 복귀하게 되면서, 유학 가기 전에 이뤘던 팀으로 들어갔다. 그 팀에는 대현과 윤아가 있는 팀이었다. 지욱은 윤아의 옆에서 크림을 휘핑할 동안 다른 파티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음, 그 쪽 파티시엘 이름이……?”

  “김효린이라고 해요.”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네. 저는 1년 전에 로제와인에 들어왔어요.”

  “아아, 어쩐지. 난 2년 전에 유학 갔거든. 같은 팀이니까 잘 해보자.”

 

 

  지욱은 2년 전과 달리 팀 구성원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쉽게 적응해 나갔다. 대현은 자신이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든데다가, 지욱이 툭하면 자신이 가보지 못한 프랑스에 대한 얘기를 꺼내 신경이 곤두섰다.

 

 

  “다음에 여유가 되면 프랑스로 여행가보는 걸 추천해.”

  “꼭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

  “아참, 윤아야. 우리 모처럼 오랜만에 만났는데 데이트 하자.”

  “응?”

 

 

  지욱의 천진난만하면서도 뜬금없는 말이 윤아를 당혹케 하는 것도 모자라, 상대편에 있던 명수와 효린도 당황시켰다. 명수가 대현의 눈치를 슬쩍 보고난 뒤,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 판단하여 지욱에게 물어보려 할 찰나였다. 지욱이 말을 계속해서 이었다.

 

 

  “16년 동안 못했던 말들도 많고, 해야 할 이야기도 많으니까 하루 날 잡아서 놀자.”

  “그럴까? 나도 물어볼 게 많으니까 따로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언제 만나서 놀아?”

  “음……, 이번 돌아오는 휴일 어떨까?”

 

 

  윤아는 이번 휴일에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 때 데이트 하자며 고개를 끄덕이려고 할 때 문득 대현이 생각났다. 윤아는 조심스레 자신의 옆에 있는 대현을 올려다보았다. 지욱이 입국하기 전부터 서로 별 다른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이 대현이 기억 속의 남자라고 착각해 실컷 좋아하는 티를 내놓고, 이제 와서 지욱과 놀자니, 자신이 생각해도 나빴다. 자신이 대현이라고 해도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대현은 윤아와 눈이 마주쳤다. 무심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별 달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만 신경 쓰는 건가……?’

 

 

  대현의 기분이 그리 상하지 않은 것 같아 안심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자신이 전혀 섭섭해 할 상황이 아닌데도, 윤아는 그랬다.

 

 

  ‘난 대체 뭘 바라고 섭섭함을 느낀 걸까.’

 

 

  휴식 시간이 돌아왔다. 지욱과 윤아가 대화하는 동안, 대현은 묵묵하게 밥을 먹기만 했다. 지욱과 윤아의 대화는 끝도 없었다. 한 얘기가 나오면 또 다른 화제로 넘어갔고, 파티쉐들이 그 대화에 끼어들기도 했다. 대현은 정신이 사납다는 것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이 모를 정도로 조심히 윤아를 바라봤다. 윤아의 볼은 홍조를 띄고 있었고, 얼굴빛은 보다 밝아진 것 같았다.

 

 

  ‘둘이 아주 살판났네.’

 

 

  그 순간, 윤아가 스치듯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대현과 마주쳤다. 대현은 놀란 듯 시선을 회피했다. 윤아는 뭔가를 고민하다 말고 대현에게 자신의 도시락에 있던 소시지를 주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맛이래.”

 

 

  대현은 자신의 도시락 위에 놓인 소시지를 가만히 내려다본 뒤 다시 고개를 들었다. 윤아는 지욱과 다른 파티쉐들에게도 자신의 소시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대현은 얼핏 자신의 어릴 적 일에 대한 기억을 꺼냈다. 자신이 심한 열 감기에 앓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윤아가 지욱에게 주려고 마카롱을 만들었는데, 지욱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쪽지가 들어간 마카롱을 대현의 옆에 놔두고 갔던 때를 말이다. 아파서 정신이 없는데다가 실눈으로 얼핏 보았던 윤아의 모습이었는데, 대현은 그 순간을 몇 차례나 마음에 두었다. 그 모습이 윤아의 마지막 모습이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자신보다 지욱을 먼저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아니, 그 둘 다 맞는 말이었을 지도 몰랐다.

 

  대현은 도시락을 다 먹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시락에 투명한 뚜껑을 덮었다. 고개를 돌려 쓰레기통에 버렸다. 대현은 윤아가 주었던 소시지만 먹었다.

 

 

  “이틀 뒤에 뭐 입지……. 반바지를 입을까? 시원하게 원피스를 입을까나. 아, 외삼촌께서 원피스 사줬는데 그걸 입어야겠다.”

 

 

  윤아는 지욱과 오랜만에 놀러가는 것이라 잔뜩 들떠 있는 상태였다. 내일 밤에 정해도 될 것을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윤아는 자신의 옷장에서 원피스를 꺼냈다.

 

 

  한편 규동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집 전화를 받게 되었다. 윤아에게 전해주겠다며 수화기를 탁자 위에 놔두고는 윤아의 방으로 갔다. 노크를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고개를 기웃거리고는 방문을 열었다. 윤아가 뒤돌아서 러닝셔츠를 벗고자, 배까지 들어 올렸다. 규동은 윤아의 옷차림과 살짝 드러난 등에 놀라, 말을 얼버무리며 급히 방에서 나갔다. 얼굴이 새빨개져 심장이 쿵쾅대며 뛰었다. 당사자인 윤아도 놀라지 않고 태연히 뒤로 돌아보았는데, 규동이 오히려 부끄러움을 탔다.

 

 

  그 때 대현이 계단에서 올라왔다.

 

 

  “너 걔 방 문 앞에서 뭐하냐?”

  “어, 어? 아, 맞다. 저번에 도련님 생일 파티 때 기억하지?”

  “근데 왜?”

 

  “저번에 윤아한테 가을쯤에 열리는 파티에 초청한다고 그랬나봐. 그런데 어쩌다 보니까 파티 날짜가 변경 되서 서둘러 앞당겨졌데. 이번 돌아오는 주의 평일인 것 같던데, 그 말을 대신 전해주려고.”

  “그럼 이틀 뒤네. 준비할 것도 많을 텐데 빨리 말해줘야지. 여기 앞에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대현은 자신의 손에 들린 수건을 어깨에 걸친 뒤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규동은 방금 전에 보았던 윤아의 뒷모습을 또 다시 상기시키고는 급하게 대현의 손을 잡았다.

 

 

  “지, 지금 문 열면……!”

  “뭐?”

 

 

  이미 때는 늦었다. 대현은 규동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문을 활짝 열었다. 규동은 급히 자신의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대현은 규동의 이상한 행동에 방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윤아는 이미 원피스로 갈아입고 윗옷 안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빼고 있었다. 규동은 천천히 눈을 뜨고는 괜히 무안했던 것인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너 어디 나가냐?”

 

 

  대현은 윤아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항상 윤아는 대현이 예상하지도 못하던 때에 화사한 옷으로 대현을 놀라게 했다. 윤아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대현이 부담스러워서 괜히 몸을 배배 꼬았다.

 

 

  “휴일에 나갈 때 뭐 입어볼지 고민하다가…….”

 

 

  이번 주 휴일이라고 한다면 윤아가 지욱과 데이트를 하는 날이었다. 대현은 무덤덤한 말투로 이번 주 주말에 가야할 파티에 대해 말했다. 금세 윤아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대현은 그 반응을 보고서 더욱 못되게 굴고 싶었고 비꼬고 싶었다.

 

 

  “어쩌냐, 네가 그리 좋다던 도지욱이랑 데이트 못 해서?”

 

 

  윤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이 대현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옷이 그게 뭐냐? 남자랑 데이트 하러 간다하면 꼭 이상한 옷만 입네.”

  “다음부터 안 입을게.”

 

 

  윤아가 소심하게 대답했다. 대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마디를 뱉은 뒤 밖으로 나갔다. 규동은 그 둘의 눈치를 보고 자신도 밖으로 나갔다.

 

 

  “그러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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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8 진심과 정성만 있다면 누구나 2016 / 10 / 31 57 3 7933   
47 47 나의 처음을 너와 2016 / 10 / 31 70 3 6040   
46 46 예약하신 객실은 하나뿐입니다 2016 / 10 / 31 67 3 7119   
45 45 왕중왕전 - Bye, Bye 미스로드 2016 / 10 / 30 65 3 8242   
44 44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2016 / 10 / 30 65 3 6008   
43 43 자세가 야해 2016 / 10 / 30 186 4 7123   
42 42 저 변태가 뭘 또 꾸미는 거야 2016 / 10 / 30 73 4 7562   
41 41 난 이미 충분히 지쳤는데 2016 / 10 / 30 67 4 6900   
40 40 울지 마 2016 / 10 / 29 173 4 8241   
39 39 어릴 때부터 줄곧 2016 / 10 / 29 80 4 7444   
38 38 인정받고 싶으면 피하지 마 2016 / 10 / 28 65 4 7149   
37 37 공과 사의 구별 2016 / 10 / 28 70 4 7478   
36 36 실망스럽다 2016 / 10 / 28 60 3 8692   
35 35 무슨 짓 하는 게 아닌가 2016 / 10 / 28 80 4 7229   
34 34 프로는 프로가 알아보니까 2016 / 10 / 27 65 4 6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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