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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어쨌거나 스물넷
작가 : 펙트
작품등록일 : 2016.8.22

경쟁을 통해 올라온 음식들. 좋은 음식이라고 판정받아도 손님들이 찾지 않으면 가차 없이 없애는 이곳은 디저트 뷔페, 로제와인.

 
36 실망스럽다
작성일 : 16-10-28 09:36     조회 : 59     추천 : 3     분량 : 8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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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아, 그거 실수야. 실수.”

 

 

  일일 카페 이후 찾아온 휴일이었다. 외삼촌은 월말평가를 며칠 늦춘 대가로, 파티쉐들에게 조리실에서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윤아와 리하는 다른 파티쉐들보다 조리실에 일찍 도착해 한창 연습하고 있었다. 리하는 윤아가 틈틈이 없을 때마다 연습을 방해했다. 크루아상을 만들기 위해 휴지(중간 발효) 중인 푀이타주(천겹의 푀이타주-흔히 파이에 쓰이는 반죽)를 바닥에 던지는가 하면, 오븐 룸에 가서 푀이타주를 굽고 있던 오븐을 몰래 꺼놓기도 했다.

 

  윤아는 숨을 깊게 내뱉으며 자신의 옆 조리대에서 흥얼거리는 리하를 바라봤다. 리하는 민트원액과 생크림을 함께 섞는 일을 하고 있었다. 윤아는 최대한 침착해지기 위해 머릿속의 잡생각을 버리기로 다짐했다. 그런데도 쉽게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뿐더러, 여태껏 리하가 자신에게 실수를 가정했던 방해를 떠올렸다. 봉사활동 때의 망친 카메라나 엎질러놓은 아몬드 분태, 아이디어 노트를 훔쳐 효린을 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그런 일들을.

 

  윤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리하에게 성큼 다가가, 핸드믹서로 민트 생크림을 만들던 리하의 손목을 잡았다. 핸드믹서가 여전히 허공에서 돌고 있었다.

 

 

  “뭐야, 이거? 안 놔?”

  “너 대체 나한테 이런 짓들을 하는 이유가 뭐야?”

  “이런 짓들? 말했잖아. 실수라고.”

  “넌 실수를 매번 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잖아.”

 

 

  리하는 잠시 동안 웃다 말고 윤아의 손을 뿌리쳤다.

 

 

  “모든 게 네 맘대로 되니까 좋던?”

  “뭐?”

 

  “넌 쉽게 모든 걸 다 얻었잖아. 직업도, 능력도, 집안내력 그 좋은 유전도, 친구도, 대현이의 관심도! 내가 그토록 원했던 미스 로드 출연도 쉽게 얻었잖아. 난 그것 하나 잡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넌 노력도 없이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나서 매스컴으로 쉽게 이 자리까지 올랐잖아!”

 

  “나도 노력 안 한 건 아냐. 나도 힘들게…….”

  “네가 뭘? 네가 노력을 나만큼이나 해봤어?”

  “네가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 그렇지만 나도 쉽게 얻은 거라곤 없어. 다 어렵게…….”

  “웃기지 마!”

 

 

  리하는 조리대 위에 있었던 재료들과 도구들을 한 번에 쓸었다. 체리는 바닥에 뭉그러졌고, 리하의 아이디어 노트는 다른 물건들에 짓이겨 구겨지거나 찢어졌다. 그 옆에 칼은 날이 서 있었고, 핸드믹서는 1단계로 회전 중이었다. 리하는 물건들을 내팽겨 치는 과정에서 칼에 손을 베었다. 리하는 자신의 손가락에 흐르는 피를 방치해두고 윤아를 노려보았다. 리하의 눈에는 윤아가 가소로웠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 났으면서 자신이 힘들게 노력했다고 생색내는 윤아가 보기 싫었다. 그런 윤아를 감싸주는 파티쉐들에게도 짜증이 났다.

 

 

  “너 대체 이게…….”

 

 

  윤아가 리하에게 말하던 찰나였다. 뒤늦게 도착한 파티쉐들의 말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왔다. 규동과 효린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할 말을 잃었고, 몇몇의 파티쉐들은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리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 닦는 시늉을 했다. 리하와 같이 어울려 다녔던 파티쉐들이 리하의 주변에 둘러싸여 무슨 일인지 물었다. 리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실수로 윤아의 푀이타주를 엎질렀는데 윤아가…….”

 

 

  리하의 주변에 둘러싸인 파티쉐들 중 하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은 말도 아니게 피폐했다. 다시 리하를 보려다가 리하의 손에 흐르는 피를 보았다. 파티시엘은 깜짝 놀라 어서 치료하자며, 리하를 데리고 락커로 향했다. 남은 파티쉐들은 윤아를 다그쳤다.

 

 

  “너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리하가 실수를 할 수도 있지 조리실을 이렇게 만들면 어떡해? 이건 또 누가 다 치워?”

  “정도껏 해라. 아무리 화나서 이러게 만들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리하를 다치게 하는 이유는 뭐야? 파티쉐의 기본은 손을 다치면 안 되는 거야. 그걸 알고 이런 거야?”

  “자기 집안이 잘났다고 유세부리기는…….”

 

 

  평소에 윤아를 시기하던 소수의 파티쉐들이었다. 규동의 뒤에 있던 몇몇 파티쉐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 웅성거렸다. 규동은 그들의 말에 더는 참지 못하고 윤아의 손을 잡고 조리실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한 파티시엘이 윤아를 변호했다.

 

 

  “윤아는 그런 짓 하지 않았을 거야. 무엇보다 우리가 윤아 성격을 알잖아?”

  “맞아. 우리가 이 상황을 목격하지 않아서 모르지만은 리하가 우연히 다친 것일 수도 있고.”

 

 

  다행히도 윤아를 생각해주는 파티쉐들이 더욱 많았다. 애당초 소수의 파티쉐들이 윤아의 자리를 탐해서 어떻게든 끌어내려고 했던 사람들이란 걸 더욱 잘 알기에, 이 상황은 비록 목격하진 않았어도 적어도 윤아가 난장판으로 만든 것은 아니라 굳게 믿었다. 규동은 그들의 얼굴을 한 번 씩 둘러보다가 한숨을 쉰 뒤, 윤아를 이끌고 조리실에서 나갔다. 효린은 그들과 멀어져가는 윤아의 뒷모습을 보고 고민하다가 윤아의 뒤를 따랐다. 규동은 사람들이 없는 파티쉐 전용 계단으로 갔다. 그리고는 뒤돌아 윤아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 있었어? 리하가 또 괴롭혔어?”

 

 

  이어서 도착한 효린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윤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 너무 피곤했다. 자신을 어떻게든 끌어내려는 대근에 모자라 틈만 노렸다 하면 쏘아붙이는 리하와, 자신을 이용했던 주훤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늘 대현이가 외가에서 모임이 있어서 늦지 싶은데……, 지금 연락해도 보지도 못할 것 같고. 상황을 정리해줄 위치의 사람이……, 윤아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네가 그러지 않은 거 맞지?”

 

 

  그 때, 한 파티시에가 다급하게 계단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윤아를 불렀다.

 

 

  “마, 마스터가 왔어! 당장 널 불러오래.”

 

 

  효린은 그 말에 당사자인 윤아보다 더 걱정하며 발을 굴렀다. 윤아는 규동의 시선을 피해, 규동의 손을 뿌리친 뒤 조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리실에 들어서자, 손가락 치료를 마친 리하와 몇몇의 파티쉐들 그리고 외삼촌이 보였다. 외삼촌은 리하와 어울리던 파티쉐들에게 모든 얘기를 들었는지, 리하와 윤아를 데리고 오븐 룸으로 들어갔다. 오븐 룸의 문을 닫았을 때, 리하의 이름을 불렀다. 리하는 외삼촌의 무덤덤한 표정에 조금은 겁을 먹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아하니 네 실수가 아닌 것 같더구나.”

  “네?”

 

  “윤아의 휴지 중이었던 반죽을 보아하니, 실수로 엎지른 것 보다는 일부러 한 것 같더라. 실수로 엎질렀다면 적어도 볼(반죽하는데 쓰이는 식기)과 같이 엎어지거나 했어야 할 텐데, 볼은 조리대 중앙에 놓인 상태였고 반죽은 그와 좀 더 떨어진 곳에 뭉개져 있었어. 거기다가 푀이타주 반죽은 묽은 상태가 아니라 찰흙 같은 상태라서 반죽을 잡고 던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어.”

 

 

  리하는 외삼촌이 자신이 했던 짓을 모두 간파하자 당황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변명도 대지 않았다.

 

 

  “윤아. 아무리 리하가 그런 짓을 했다고 해서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안 돼. 그건 엄밀히 말해 폭행이야. 위험한 행동이라고. 네가 정말 했을지에 대해 의심이 가긴 하지만. 리하나 윤아나 둘이 똑같이 잘못 했으니까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해. 둘이 좋게 화해한다면야 포인트를 감점시키지 않겠다. 오늘은 파티쉐들이 월말평가 준비에 얼마나 임하는지 구경하러 온 거니까. 특히 이 순간부터 너희 둘을 지켜볼 거야.”

 

 

  외삼촌은 오븐 룸의 문을 슬쩍 보다가 그곳으로 향해 문을 열었다. 리하와 같이 어울리던 무리가 외삼촌과 눈이 마주쳤다. 파티쉐들은 화들짝 놀라 자리를 피해주었다. 외삼촌은 말없이 오븐 룸에서 나갔고, 파티쉐들은 외삼촌의 눈치를 보다 오븐 룸으로 들어왔다. 리하는 윤아를 노려보다가 자신이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하다며, 조리실을 청소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윤아는 파티쉐들에 개의치 않고 오븐에서 굽다 만 푀이타주를 꺼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지난번 윤아에게 오페라 케이크 레시피를 가르쳐 달라고 했던 파티쉐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대현은 비빔밥을 섞다가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가족과 큰 이모네 식구, 엄마의 지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옆에…….

 

 

  “내 얼굴이 그렇게도 예뻐?”

  “엄마, 얘는 왜 데리고 나왔어요?”

  “얘는 무슨, 얘가 뭐니 얘가. 좋으면서 괜히 반말하지 마.”

  “아참, 엄마. 난 얘 안 좋아한다니까?”

 

 

  단비가 있었다. 단비는 비빔밥을 섞다 말고 대현에게 들이밀었다.

 

 

  “요즘 들어 우리 자주 만난다, 그치?”

  “시끄러, 밥이나 먹어.”

  “나 먹여줄 거야?”

  “이게 진짜…….”

 

 

  대현은 신경질 적으로 밥 한 숟가락 크게 떠 자신의 입에 넣었다. 단비에게 신경도 쓰기 싫다는 듯, 자꾸만 자신의 팔에 찰싹 붙는 단비를 떨쳐냈다.

 

 

  “다 큰 게 징그럽게 굴지 좀 마라.”

  “너무해.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만 나 가지고 놀아. 애인도 있는 게 날 귀찮게 만드는 이유가 뭔데?”

  “혹시 이거 질투야? 나 애인 있는 게 그렇게도 싫어?”

  “네가 싫다. 네가.”

  “자식이 괜히 튕겨 내기는.”

 

 

  때마침 대현의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이 울렸다.

 

 

  “오, 핸드폰도 잘 안 가지고 다니던 애가 오늘은 핸드폰 가져왔네?”

 

 

  대현은 몇 주 전에 갔던 벚꽃 축제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냥 혹시나 싶어 이제 들고 다니려고.”

 

 

  대현이 핸드폰을 잡기도 전에 단비가 잽싸게 가로챘다. 대현은 귀찮은 듯 핸드폰에 신경 쓰지 않고 밥에만 열중했다. 단비는 대현의 비밀번호 패턴을 풀고 문자를 확인했다. 눈을 굴리며 천천히 읽어 내리면서 시큰둥하게 말했다.

 

 

  “규동이한테서 온 문자인데? 보여줄까?”

  “필요 없어. 나중에 읽으면 돼.”

  “윤아와 관련된 건데?”

 

 

  대현은 젓가락을 들다 말고 황급히 단비에게 고개를 돌렸다. 단비는 속으로 흥미를 가지면서, 표정은 시큰둥하게 말을 이었다.

 

 

  “윤아에게 무슨 일이 있나봐. 권리하라는 애가 윤아한테…….”

 

 

  대현은 리하의 이름을 듣자마자, 단비의 손에 들린 자신의 핸드폰을 뺏어 문자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단비는 리하의 이름에 대해 생각하다가 뭔가를 떠올린 듯 옆에서 부채질을 했다.

 

 

  “권리하,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분명 권예라의 동생이었지? 윤아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 건가? 언니나 동생이나 로제와인에서 사고를 치는 건 여전하구나.”

 

 

  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가볼 데가 있다며 급하게 식당에서 나갔다. 택시를 잡기 위해 달리면서 규동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규동과 연결되었다.

 

 

  “이규동, 무슨 일이야?”

 

 

 -

 

 

  조리실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파티쉐들은 불을 켜고 윤아와 리하를 번갈아 보는 외삼촌에 기를 펴지 못한 채 조용하게 연습을 계속했다. 리하는 윤아를 힐끔 쳐다보는 상황에서 외삼촌과 눈이 마주쳤다. 외삼촌이 눈을 얇게 떠 지켜보자 리하는 놀란 듯 급히 고개를 돌려, 다 만든 브라우니를 작은 정사각형으로 여러 개 커팅 했다. 생각보다 외삼촌의 집착이 강했던 터라, 리하는 당황했다. 연습을 한지 3시간이 지났는데도 외삼촌은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다. 이래서는 윤아에게 제안을 하고 싶어도 제안을 할 수 없을뿐더러, 만들고 있던 민트 브라우니도 제대로 못 만들 판이었다.

 

  리하가 윤아에게 제안하는 것을 수없이 생각할 때였다. 외삼촌은 대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조리실에서 나갔다. 파티쉐들은 그제야 숨이 트이는지, 하던 작업을 중단했다. 리하는 복도로 통하는 조리실 입구를 보며 경계하다가 윤아를 오븐 룸으로 불렀다. 윤아는 하던 작업을 그만두고 리하의 뒤를 따랐다.

 

  윤아가 오븐 룸의 문을 닫고 리하를 쳐다보았다.

 

 

  “왜?”

  “우리 화해하자.”

 

 

  윤아는 리하의 뜻밖의 말에 당황하여 다시 한 번 물었다. 리하는 한 쪽 눈썹을 찡그리며 다시 한 번 말했다.

 

 

  “화해하자고. 미안.”

  “사과하는 말에 전혀 진심이 담겨 있지 않잖아.”

 

 

  리하가 한 사과는 조금의 진심도 담겨있지 않았다. 언뜻 비꼬면서도 윤아를 깔아 낮추는 듯 했다. 리하는 팔짱을 끼며 윤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난 분명 사과했어. 너도 빨리 나한테 사과해.”

  “미, 미안해.”

 

 

  윤아는 얼떨결에 리하에게 사과를 했다.

 

 

  “분명 우리는 미안하다고 말 주고받았다?”

  “뭘 하려는 거야?”

  “마스터께 사과했다고 말할 거야.”

  “그렇다면 좀 더 우리가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내가 너랑 진심으로 사과할 것 같아?”

  “뭐?”

  “난 너랑 진심으로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잘못한 건 없거든.”

  “잘못한 걸 모르는 거야? 아니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잘못한 게 없는데 뭘 몰라? 없으니까 없는 거지. 난 딱히 날 낮춰 너한테 사과할 이유가 없거든. 그렇지만 사과하는 척이라도 안 하면 내 포인트가 깎여서 말이야.”

  “너 진짜…….”

  “난 간다.”

 

 

  리하가 오븐 룸에서 나갔다. 윤아는 자신의 눈앞에 닫힌 문을 보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조리실에선 리하가 돌아온 외삼촌에게 윤아와 사과했다고 말하던 중이었다. 몇몇의 파티쉐들은 리하의 말에 조금은 의심쩍은 듯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외삼촌 옆에 있던 대현은 윤아를 슬쩍 쳐다보다가 다시 리하를 내려다보았다. 외삼촌은 그제야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는 가식적으로 웃는 리하를 못마땅하게 쳐다만 보았다.

 

  그 후로 외삼촌은 잠시 다른 뷔페를 둘러보다 오겠다며 사라졌고, 조리실에 남은 파티쉐들은 다시 월말평가 준비에 힘썼다. 대현은 크레이프 케이크(얇은 핫케이크 반죽을 여러 개 겹쳐 만든 케이크)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체크하다가, 자신의 옆에 있는 윤아에게 말을 걸었다.

 

 

  “너 권리하랑 사과한 거 확실하냐?”

 

 

  윤아는 잠시 뜸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윤아를 바라봤고, 윤아는 그 눈빛을 보다가 은근슬쩍 피했다. 대현은 알만 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볼에 밀가루를 부었다. 윤아는 그것을 바라보다 리하를 쳐다보았다. 때마침 리하도 윤아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윤아와 눈이 마주쳤다. 몇 초 간 서로를 보다가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윤아는 뭔가를 다짐한 듯 연습 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

 

  파티쉐들은 오후가 되어서 연습을 끝마치고 갈 준비를 했다. 윤아는 어디로 리하를 데리고 가 얘기를 할지 둘러보았다. 조리실이든 오븐 룸이든 몇몇의 파티쉐가 청소하고 있었고, 락커로 가자니 옷을 갈아입고 있는 파티쉐들이 있었다. 윤아는 행여 다른 파티쉐들이 볼까 은밀하게 리하의 손목을 부여잡고 복도로 끌어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우리 똑바로 사과하자. 마스터를 속이는 건 안 돼. 다른 파티쉐들을 속여서도 안 되고. 내가 더 잘못한 것 같으니까 내가 먼저 사과할게. 너도 잘못했으니까 서로 화해하고 끝내자.”

  “싫은데?”

  “제발 리하야. 우리 이쯤에서 그만하자. 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말했잖아. 난 너 같은 거 재수 없어서 뭐라도 방해하지 않으면 온 몸이 근질거려. 망가뜨리고 싶어. 네가 이뤄가는 모든 일들을 내가 다 망가뜨리고 싶다고! 그렇게 착하게 굴지 마. 너도 나한테 쌓인 게 많지? 쌓인 게 있으면 너도 어디 한 번 저질러봐.”

  “리하야 제발…….”

 

 

  리하가 윤아의 손을 내치자, 윤아의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

 

 

  리하는 놀란 듯 한걸음 뒤로 주춤거렸다. 대현이 윤아의 뒤에 서서 리하를 사납게 보았다. 리하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리하의 옆에선 외삼촌이 걸어왔다. 외삼촌은 복도 끝에서 리하와 윤아의 말을 모두 들었다. 외삼촌은 그들의 앞에 서서 다시 한 번 경고했다.

 

 

  “권리하, 포인트가 문제였니?”

  “네, 네? 아닙니다. 포인트 문제 때문에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내가 너희 둘을 월말평가 전 박탈권을 두고 다시 한 번 말하겠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둘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다면, 또 한 번 나를 속인다면 그 땐 봐주지 않을 거야.”

 

 

  외삼촌은 리하에게 좋지 못한 시선을 주고 뒤돌아 로제와인에서 벗어났다. 대현은 그런 외삼촌을 보다가 다시 리하를 보며 말했다.

 

 

  “네가 먼저 사과했다기에 조금은 정신 차린 줄 알았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이러고 있다니. 실망이다.”

 

 

  대현 역시 자리에서 벗어났다. 리하는 주먹을 쥐며 온몸을 떨었다. 너무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리하는 한동안 한적한 복도에서 가만히 주먹만 쥐고 있다가, 윤아의 멱살을 잡았다. 윤아는 리하의 행동을 막으려고 했지만 쉽게 막을 수 없었다. 그 때, 연습을 마치고 나가려던 효린이 그 상황을 목격했다. 효린이 그 둘을 막으려고 다가갔지만, 리하가 효린의 어깨를 한 손으로 밀쳤다. 효린이 뒤로 밀리자, 뒤에서 잇따라 나오던 명수가 한 손으로 효린을 지지해주고, 다른 손으로 윤아의 멱살을 잡던 리하의 손을 잡아 내쳤다. 리하는 씩씩 거리며 명수를 노려보다 조리실로 들어갔다. 윤아는 애써 진정하며 명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오늘은 서둘러 집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마무리는 우리가 할 테니까 먼저 집 가서 쉬어.”

 

 

  윤아는 명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온 윤아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리하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에 대하여.

 

 

  ‘내가 그냥 했던 행동이 리하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그 행동은 뭐지? 내가 뭘 잘못 했을까? 내가 실수로 리하의 신경을 건들었을까?’

 

 

  한편 로제와인의 조리실, 리하는 윤아가 물에 불려놓는 중인 한천을 모조리 개수대에 쏟아 흘려보냈다.

 

 

  “어디 한 번 더 고생해봐.”

 

 

  다음 날, 윤아는 불려놓은 한천으로 양갱을 만들기 위해 다른 파티쉐들보다 일찍 출근했다. 두 손을 거두고 한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개수대를 보았다. 한천이 모두 쏟아져 사라지고 없었다. 윤아는 할 말을 잃은 채로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바닥에 떨어진 손수건을 주웠다.

 

 

  “이건 누구 거지?”

 

 

  윤아는 손수건을 살펴보다가 끝에 적힌 십자수를 보았다.

 

 

  RI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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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 왕중왕전 - Bye, Bye 미스로드 2016 / 10 / 30 65 3 8242   
44 44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2016 / 10 / 30 65 3 6008   
43 43 자세가 야해 2016 / 10 / 30 186 4 7123   
42 42 저 변태가 뭘 또 꾸미는 거야 2016 / 10 / 30 73 4 7562   
41 41 난 이미 충분히 지쳤는데 2016 / 10 / 30 67 4 6900   
40 40 울지 마 2016 / 10 / 29 173 4 8241   
39 39 어릴 때부터 줄곧 2016 / 10 / 29 80 4 7444   
38 38 인정받고 싶으면 피하지 마 2016 / 10 / 28 65 4 7149   
37 37 공과 사의 구별 2016 / 10 / 28 70 4 7478   
36 36 실망스럽다 2016 / 10 / 28 60 3 8692   
35 35 무슨 짓 하는 게 아닌가 2016 / 10 / 28 80 4 7229   
34 34 프로는 프로가 알아보니까 2016 / 10 / 27 64 4 6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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