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어!?”
“뭐, 뭐야?”
갑작스런 비명에 방안에 있던 모두가 놀라 당황해 하고 있을 무렵,
“뭐, 뭣이더냐!”
뒤이어 이상환의 고함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아, 아니!?”
“이건 이 서리의 목소리가 아닌가!?”
“맞네, 맞아! 이 서리야!”
어찌된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분명 밖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뭐, 뭐야? 갑자기 뭔데 이거!? 이상환 서리라고?’
홍월은 느닷없는 상황에 당혹스러운 걸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할지라도 애당초 그에게 진탕 술을 먹인 것이 바로 자신이 아니던가.
‘이거 설마 나한테까지 책임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무슨…… 고작 송화주 한 병에 사달이 난다고?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그 양반!?’
아직 상황을 다 파악하지 못했음에도 지레 이상환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라 확신하는 그녀였다.
또한 중년인들 역시 밖의 상황이 신경 쓰였는지 꽤나 안절부절못해 하는 기색이었다.
“……나가봐야 하나?”
“그,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염려의 말들과는 달리, 옴짝달싹 안한 채 그저 주춤거리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홍월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소녀가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고 오겠사오니 여기서들 기다리고 계시지요. 청화는…… 일단 나와 같이 나가도록 하고.”
아무래도 바깥의 상황을 무시할 수가 없어 일어나긴 했으나, 세자의 존재 역시 신경이 쓰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들 사이에 홀로 두고 가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데리고 나가기에도 그렇고.
잠시간 고민하다 일단은 함께 나가기로 결정한 홍월이었다.
‘여차하면 어수선한 틈을 타 뒤로 빼돌리면 되니까.’
다만, 이 같은 홍월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으니…….
“아냐, 아냐. 그러지 말고 다 같이 나가세.”
“그래, 그것이 좋겠어.”
“얼른 나가자고!”
먼저 나선 그녀의 행동에 쓸데없이 용기를 얻은 모양인지, 중년인들이 다짜고짜 그녀와 함께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아, 아니 나리들은 그냥 여기서 상황을 지켜보고 계시면…….”
“아냐, 아니지. 이 서리는 우리 일행이야. 당연히 우리가 가야지.”
“암, 그래야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왜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건데!
계속해서 미적거리고 있는 모습들이 역시나 그녀가 앞장서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저들의 행태에 홍월이 기막혀하고 있을 즈음,
“그럼 일단 나가실까요? 먼저 무슨 일인지 확인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때까지 가만 앉아있던 이안이 조용히 일어서며 말했다.
“턱이 높으니 나오실 때 조심들 하시고요.”
고요하면서도 별다른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 곧은 걸음걸이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고운 자태…… 이안을 보던 홍월의 눈이 한순간 묘한 빛을 뿜었다.
“……그래, 그러자꾸나. 그럼 나리들도 뒤따라 나오시지요.”
앞장서 걸어 나가는 이안을 따라 홍월이 방을 나서자, 곧이어 중년인들도 주춤주춤 둘을 따라 나섰다.
*
“이, 이게 대체……?”
언뜻 봐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무, 무슨 일이에요?”
홍월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리 큰 일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구토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간 이상환이 근처를 지나가던 기녀를 맞닥뜨리곤 서로 놀란 정도일 거라고.
설마하니 맞닥뜨린 기녀가, 아니 미화가 무려 다섯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이년들이 지금…….”
안채 바로 뒤 편, ‘현장’에 도착해 있던 여옥은 이미 머리끝까지 흥분하여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진정하고 설명 좀 해보세요.”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느냐! 대체 이 무슨…….”
그러고 소리치던 여옥의 눈이 갑작스레 휘둥그레진다 싶더니,
“이익! 마……! 아, 아니, 청…… 화가 지, 지금 여기 왜……”
몹시도 더듬거리며 몸을 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저러면 더 티 나지 않나?’
여옥이 이리도 흥분해 있을 줄 알았다면 세자마마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홍월은 잠시간 참회의 순간을 가진 뒤, 재차 상황을 돌아보았다.
대단히 기묘한 현장이었다.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쪽 구석에서 죄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다섯 미화들.
그 중 가장 어려보이는 아이는 울먹거리기까지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비명을 지른 당사자인 듯했다.
‘저 아이…… 가장 어려보이는 걸로 봐선…… 상화라고 했던가?’
그리고 이어 두 번째로 보이는 것은,
“대체 뭣들 하고 있었느냔 말이야! 대답해, 대답하라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는 이상환.
미화들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방주인 여옥에게 소리치고 있는지는 불분명했으나, 분명 대단히 화가 난 게 틀림없어 보였다.
‘저 미화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뭣 때문에?’
그리고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으, 더러워……!’
땅바닥에 이리저리 흩뿌려진 채, 자신의 존재감을 톡톡히 보이고 있던 ‘그것’. 이상환이 제조한 게 분명해 보이는 선명한 주홍빛의 토사물이었다.
‘흠, 그렇다는 건…….’
대충 몇 가지는 짐작이 갔다.
상화의 비명은 저 이상환의 토사물 때문에 나온 것이리라. 어쩌면 그걸 뱉는 광경을 그대로 목격했을지도 모른다. 이상환으로선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의 ‘못 볼꼴’을 그대로 지켜본 이들의 존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여, 구토가 멈춘 뒤 소리를 질렀던 것이고.
문제는,
‘대체 어째서 저 애들이 여기 있었냐는 것이겠지…….’
기방의 크기가 유명 기방만 못하다곤 하나, 그렇다고 미화들의 거처가 있는 행랑채와 안채의 거리가 엎어지면 코 닿을 만치로 가까운 것은 아니었다.
하루 이틀 된 아이들도 아니니 길을 잃었을 리도 없고, 부엌과도 반대편이라 허기진 배를 채우려 돌아다녔던 것도 아닐 것이다.
또한 애당초 지금은 금이나 곡조 연습에 몰두하고 있어야 할 시각이 아니던가. 당최 미화들이 이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오늘따라 갑작스레 기녀들의 객 맞이가 궁금해졌을 리도 없을 텐데…….’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벼락처럼 홍월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굳이 오늘이라고!? 설마…….’
오늘의 기방 ‘여옥’이 어제와 다른 점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새로이 기녀 둘이 추가되었다는 점.
‘너희들 설마…… 우릴 구경 왔던 거야?’
어떻게 알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으나 정황상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