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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방 내의 적막이 의미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 중 하나이지요.”
“무엇과 무엇인가요?”
“손님이 없거나, 혹은 문제가 터졌거나.”
“……그렇다는 건 항시 적막을 경계하란 소리시군요.”
“어쩜, 영특하시기도 하셔라.”
누군가의 술잔이 한 차례 달그락거린 걸 제외하곤 온 사방이 고요했다. 그제까지 미친 듯 울어재끼던 귀뚜라미들도 웬일인지 소식이 없었다. 이안은 홍월이 주의를 준 그 ‘경계해야 할 상황’이 바로 지금이란 걸 깨달았다.
“호…… 청하였으니 올린다, 그러니 경청해 달라?”
이상환의 되물음에 공기가 한 층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단순히 귀 기울여 달라 요청했기 때문이 아니다. 홍월이 웃으며 말했다면 누군들 그리하겠다 말하지 않았을까. 문제가 된 건 저 두 눈 때문이다. 어찌된 일인지 갑작스레 적의(敵意)를 드러낸 저 두 눈.
‘설마 나 때문인가……?’
사실 그 외엔 달리 이유가 될 만한 게 없었다. 정말로 딴 짓을 하는 이들의 행태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면.
‘나를 위하여 화를 내주는 건 고맙긴 한데, 이대로 가다간…….’
심지어 상황은 이안의 생각보다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상환의 되물음에도 홍월이 그 기세를 꺾지 않자, 이어 다른 중년인들의 눈에도 기묘한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치 분노와 멸시, 음욕이 뒤섞인 것만 같은 께름칙한 시선이었다.
“아니, 아니…… 중간 중간 술 한 잔 돌릴 수도 있는 거지 뭘.”
“모르는 이가 들으면 무슨 상전이라도 되는 줄 아시겠어?”
“혹, 우리에게 불만이라도 있는 게야?”
흡사 ‘네 까짓 게 건방지게 무슨 말버릇이냐’라는 식의 반응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안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매, 매화가! 여, 열심히 연습한다 싶더라니 나리들 앞에서 드디어 선보이시려나 봐요! 아, 기대된다!”
이안은 가능한 한 최대한의 콧소리를 내며 중년인들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한 편, 이어 간절한 바람을 담은 눈길을 홍월에게 곧장 쏘아 보냈다 .
‘작은 스승님, 대체 뭐 때문에 그리 화가 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참아야 해요, 참아야 된다고요!’
……!?
홍월은 이안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듯, 잠시간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곧이어,
“아, 아…… 오, 오래 연습했는데 아무도 안 봐주시고 청화에게만 시선을 주니 저도 모르게 그만…….”
매서운 눈빛은 어디가고, 수줍음 가득한 목소리로 살포시 교태를 떠는 것이었다. 눈치를 준 이안이 놀랄 정도로 신속한 변화였다.
“……응? 아아, 그랬었나 우리가?”
“아니야, 나는 한 눈 팔지 않았다고!”
“그냥 술 한 잔 따르려 잠깐 부른 것뿐이야, 누가 청화만 봤다 그래?”
다행스럽게도 중년인들 역시 홍월의 기민한 반응에 금세 다시 본래의 태도로 돌아오는 모습들이었다.
“그럼 우리도 네게 집중할 터이니, 어서 빨리 곡조를 들려주겠느냐?”
“……예.”
이상환의 말에 홍월이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다만 지나치게 고개를 숙인 탓인지, 그녀의 눈빛이 어떠한 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윽고, 홍월이 담담히 노래를 시작했다.
매화야,
옛 등걸에 봄철이 돌아를 온다…….
‘……일단은 넘어간 건가?’
이안은 다시금 상황이 안정화 된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만, 상황진압을 위해 콧소리를 과장하여 낸 값은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었다.
“이리로, 이리로 조금 더 당겨 앉도록 하거라.”
“……예.”
그의 허리부근을 만지작거리는 이상환의 ‘못된 손’에 온통 신경이 쏠린 탓에, 이안은 홍월의 노래마저 제대로 감상하지 못할 정도였다.
‘……점점 더 내려가려고 하네?’
하지만 그렇다고 티를 낼 수도 없는 게, 언제 또 홍월이 돌변하여 사납기 짝이 없는 눈길을 찍 뿌려댈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빨리 끝나기만 바랄 뿐…….’
어느샌가 기녀 초년생(初年生)들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이안이었다.
잠시 뒤, 나지막이 울려 퍼지던 홍월의 노랫소리가 멎었다.
“어떻게 잘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들었다마다!”
“이래서 여옥, 여옥 하는 것이로구나!”
이상환 또한 한참을 심취해있던 손의 움직임까지 멈추고선,
“진정 이곳 수기(首妓)가 복이 차고 넘치는구나. 어찌 이리도 어여쁘고 재주 좋은 기녀들이 동시에 등장할 수가 있단 말인가!”
감탄해 마지않는 척 마구 박수를 쳐대는 것이 아닌가. 마치 손의 결백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일부러 더 과장되게 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허공 높이 들고 있어라. 다시는 내리지 말고…….’
그러나 이안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의 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탁자 아래로 먹잇감을 찾아 숨어들었고, 이에 이안의 몸도 한순간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청화 이 것이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로구나. 내가 노래를 끝내고 왔으면 잽싸게 다시 방석을 비워둬야지?”
때마침 홍월이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띠운 채 이안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 네, 네.”
“음, 청화가 굳이 옮겨 앉을 필요…….”
“제가 나리 곁에 앉아 따라드리고 싶어서요, 괜찮겠지요?”
또한 이상환의 요구 또한 기다렸다는 듯 단칼에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어…… 음, 그렇다면야…….”
그즈음 이안 쪽을 잠시간 힐끔거린 홍월의 눈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번엔…… 확실히 지켜드릴게요!
순간 이안은 전신을 휘감아오는 기이한 안도감에 당황했다.
‘여, 여인에게 보호를 받는다고 느끼다니…….’
그러나 마냥 부끄럽다거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냥, 그냥 묘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두근…… 대는 것 같기도 하고…….’
조심스레 심장부근을 만지작거리는 이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