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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세자마마의 은밀한 기녀생활
작가 : 지놓
작품등록일 : 2019.9.3

잘생긴 왕자?
아니, 이젠 예쁜 세자마마의 시대!

자신의 예악스승을 뵈러 기방을 방문한 세자 이안에게
어느 날, 무슨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겨버렸다?

3개월 남짓 펼쳐지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세자마마의
기이하고도 은밀한 기녀(妓女)생활!!

PS)
복장도착증(x)
성정체성혼란(x)
그냥변태(x)
아닙니다.

 
13. 달리 뭘 하겠느냐, 기녀수업이다
작성일 : 19-09-20 21:01     조회 : 213     추천 : 0     분량 : 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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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한성 운종가 내 저잣거리.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경매로 시장의 열기는 이미 절정에 달해있었다.

 

  “닷 냥!”

 

  “어허, 여섯 냥!”

 

  “열 냥!”

 

  “열 냥 나왔고! 더 없지!?”

 

  시중가로 한 동이에 닷 냥 하는 것을 무려 세 동이 열 냥에 사가게 된 떠돌이 술장수가 환한 웃음을 내보였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여옥은 그와는 정반대의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도…… 없다?”

 

  본래대로라면 이곳 시장경매에서 술이란 술은 몽땅 다 쓸어 담고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여옥은 마땅히 보여야 할 이의 모습이 여태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반쯤 열이 오른 상태였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저잣거리에 나간 홍월이 제자리에 없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주막 한 구석에 처박혀 몰래 술을 홀짝거리고 있는 것.

 

  나이도 얼마 먹지 않은 년이 갑작스레 술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인심 좋은 술장수의 곳간을 털어먹기 시작한 게 근 6개월 전이었다. 여태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곳간주인이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로 홍월이 털어먹은 술의 양은 상당한 것이었고, 이에 여옥의 심사도 덩달아 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그녀를 찾아 시전(市廛)의 중심부로 나서기 전, 술장수의 곳간부터 먼저 확인을 해봤던 것이다. 그곳엔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또…….’

 

  여옥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황급히 두리번대고 있을 즈음이었다.

 

 

  “아니! 저 영감탱이가 더듬었다고!”

 

 

  어디선가 쨍쨍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엉덩이랑! 여기, 여기랑! 또 다리도!”

 

  시전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 외어물전으로 통하는 골목 어귀에서 경매터를 압도할 정도의 커다란 소란이 일고 있었다.

 

  “원 개구리를 떼로 삶아 처먹었나, 목청하고는. 내가 언제? 안 그랬다고!”

 

  “그랬잖아, 이 영감탱이야! 기억나게 해줄까? 어?”

 

  “아니, 이 어린 년 좀 보게! 장유유서는 어따 팔아먹은 게야? 그리고 네 년! 고년 고거 기생년 아니더냐? 한 번 더듬을 수도 있지 그것 가지고 왜 이렇게 지랄이야!”

 

  허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중늙은이가 벅벅 소리를 질러댔음에도 아랑곳 않은 채,

 

  “기생 때려 친 지 오래됐거든!?”

 

  질세라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고 있는 한 여인이 여옥의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두 번째, 어디선가 신나게 싸움판을 벌이고 있는 것.

 

 

  여옥의 입에서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휴……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이려나.”

 

  저 지랄 맞은 성질머리를 세자마마 앞에 대령하겠다고 말한 자신이 미친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옥은 끝끝내 그녀를 향한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

 

 

 

  “할게요.”

 

  말을 마친 여인의 두 눈이 또렷이 빛났다. 그것도…… 괜히 수상쩍다 싶을 정도로 말똥하게.

 

  “……그러겠느냐.”

 

  여옥은 그녀의 대답이 자신이 원하던 것이었는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언제부터죠?”

 

  “……빠르면 빠를수록.”

 

  “지금 당장?”

 

  “그건…… 아무래도 너무 빠른 것 같구나. 그래도 기본적인 채비는 갖춰야할 터이니.”

 

  그러고 여옥은 때가 묻어 거뭇한 여인의 얼굴을 슬쩍 훑어보았다.

 

  익숙한 분백분 대신 얼굴 한 가득 시전바닥의 흙먼지를 뒤집어 쓴 아이. 고집스레 앙다문 입술과 피로가 내려앉은 눈매엔 전에 없던 억척스러움이 한가득 담겨있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곱구나.’

 

  한 때는 악(樂)으로 유명한 여옥을 일색(一色)기방으로 탈바꿈시킬 기녀로까지 평가되었던 미모가 아니던가. 짙은 아미(蛾眉: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굽은 아름다운 눈썹)아래로 일렁거리는 갈색의 두 눈동자가 여옥의 마음을 심란케 만들었다.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란다.”

 

  “쉽게 생각한 거 아닌데요?”

 

  “조금 더 고민해도 된다는 얘기야.”

 

  “좀 전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

 

  여옥은 잠시나마 연민의 감정을 품었던 좀 전의 자신을 크게 꾸짖었다.

 

  “그리고 어차피 얘기를 들은 이상에야…… 무를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건…….”

 

  잠시간 반박의 말을 준비하던 여옥이 이내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그녀의 말이 맞다. 이미 세자마마의 존재까지 거론해버리지 않았던가. 이제와 무를 순 없다.

 

  ‘……하여간에 눈치 빠른 계집애 같으니라고.’

 

  실제로 홍월과 독대를 시작할 당시, 여옥은 최대한 말을 아끼려 노력했었다. 비밀리에 진행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혹, 함께 할 수 있겠냐고. 최대한 겁과 부담을 심어준 이후에 의논을 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 몇 차례 문답 만에 비밀을 몽땅 다 털리고 말았는데, 이는 순전히 다 홍월의 저돌적인 화법 때문이었다.

 

  *

 

  “먼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지금부터 네게 설명하고자 하는 이 일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또 절대적으로 비밀리에…….”

 

  “무슨 일인데요?”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하고 또…….”

 

  “뭔데요? 말해 봐요.”

 

  “……궁으로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궁? 궁 어디?”

 

  “……깊은 곳. 굉장히 깊은…….”

 

  “아, 어디요? 말해요 그냥.”

 

  “……이를 말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약속해줘야 할 것이 있…….”

 

  “왜요? 어딘데요? 왕의 거처라도 되요?”

 

  “……!”

 

  여옥은 어째서 자신이 이야기를 듣는 이 겁 대가리 없는 어린년보다 더 화들짝 놀라야 하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거, 거기까진 아니고.”

 

  “그럼? 중전? 세자?”

 

  “……헙.”

 

  당황해 헛바람을 삼킨 게 실수였다.

 

  “세자? 진짜로?”

 

  “……이, 이 일이 알려지면…….”

 

  “가서 뭘 해야 하는 건데요?”

 

  “……후.”

 

  여옥은 조심스레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 요망한 것에 말려들지 말자.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다.

 

  “……지금부터 듣게 될 얘기는 결코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엔…… 목숨을 장담키 어려울지도 모르니.”

 

  “…….”

 

  ‘겁 좀 먹었나?’

 

  하지만 여옥은 자신할 수 없었다. 이제까지처럼 곧장 대답이 나온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겁먹은 표정 또한 아니었던 것이다. 저 짙은 두 갈색의 눈동자 속에 들어있는 것은 분명…….

 

  ‘우, 웃다니…….’

 

  여옥은 다시 한 번 제대로 겁을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 상황판단이 서지 않은 모양이구나. 이 얘기는 결코 누구에게도, 또한 아무데서도, 설사 혼자 있는 방 안에서라도 해서는 아니…….”

 

  “안 해요.”

 

  “……만에 하나라도 누가 이 사안에…….”

 

  “안 한다니까요? 그래서 이 일이 뭔데요 대체?”

 

  그러고 답답하다는 듯 내뱉는 걸 보니, ‘백날 말한다 한들 이 년이 겁을 집어먹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옥은 세차게 밀려드는 자괴감을 힘겹게 떨쳐내야만 했다.

 

  “세자마마께서 급히 일이 생기셔서…… 그러니까 백성들의 고충과 민심을 헤아리기 위해…….”

 

  “위해?”

 

  “……기방.”

 

  “예?”

 

  “……기방에 들어…….”

 

  “기방? 기방을 방문하신다고요? 우리 기방? 여옥?”

 

  “……그, 그래.”

 

  “그런데 저는 이제 기녀도 아니잖아요. 어째서 제게 이 얘기를?”

 

  홍월의 미간이 얕게 찌푸려지면서 그녀의 두 눈이 한층 깊게 가라앉았다. 무슨 꿍꿍이인지 얼른 설명하라는 눈초리였다.

 

  “기방에 들어가 민심의 향방과 백성들의 고충을 살펴보려 하시는데…… 근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아, 뭔데요! 우리 방주님 오늘따라 왜 이리 뜸을 들이실까?”

 

  재촉하지 마 이년아! 여옥은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녀.”

 

  “응?”

 

  “……기녀라고.”

 

  “기녀?”

 

  “그래, 기녀.”

 

  “뭘요? 뭐가요?”

 

  “……기녀라고, 기녀.”

 

  “아, 진짜! 알아듣게 좀 말해 봐요!”

 

  그즈음엔 여옥 역시 참을 수가 없어,

 

  “아! 기녀가 되는 거라고!”

 

  냅다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누가요?”

 

  “누구겠니?”

 

  “……응?”

 

  이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홍월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설마? 하, 하지만…….”

 

  “정말이야.”

 

  “진짜로요?”

 

  “그렇다니까.”

 

  “하, 하지만…… 세자는…… 그러니까 그 세자마마란 건…… 남자…… 인거잖아요?”

 

  이어 여옥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놀라 까무러칠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여옥은 은은히 올라오는 승리감에 도취되지 않으려 부단히도 애를 써야만했다.

 

  “어쨌거나 이 이상은 묻지 말거라. 알아서도, 또한 알 필요도 없으니. 그리고 세자마마에 대해 함부로 억측하려 들지도 말고. 결코 마, 망측한 괴벽 따위를 가지신 게 아니니.”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홍월의 당혹스러움은 서서히 잦아드는 듯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 이를 대체한 것은 다름 아닌,

 

  ‘저, 저 겁대가리 없는 년! 어째서 저렇게 흥미로워 하는 얼굴이냐고!’

 

  말똥히 빛나는 두 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기녀가 되고픈 세자마마를 만나서 뭘 하면 되는 건데요?

 

  “기녀가 되고픈…… 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 기녀인 나와 기녀였던 네가 기녀가 되어야 하는 이를 만나 달리 뭘 하겠느냐?”

 

  “……그럼?”

 

  “기녀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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