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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소년의 순정
작가 : 송루나
작품등록일 : 2018.7.2

2014년, 어느 여름.
억겁의 시간이 내 품으로 쏟아진 그 날,
북에서 넘어온 한 소년을 만났다.
까만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두 개의 눈동자, 올곧은 시선.
아, 순정한 눈빛이었다.
소년의 이름은 손영주였다.

 
소년의 순정 09
작성일 : 18-08-02 14:05     조회 : 563     추천 : 11     분량 : 4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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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가만히 생각을 했다.

 감정을 되돌려 내가 녀석을 좋아하게 된 그 시점을 떠올려보았다.

 시작점이 분명히 있을 거다.

 두만강 근처에서 영주를 처음 본 날.

 중국 호텔에서 머물던 며칠.

 그리고 하나원을 들락거리며... 아니 잠깐만

 그때면 이미 마음이 달라져있지 않았던가.

 시작점이 번져버려 어디가 처음인지 모를 내 감정의 근원은 결국 또 영주를 얼른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뒤덮여 버렸다.

 

 

 또래보다 마른 몸에 유난히 뼈가 툭툭 튀어나와 있는 팔과 다리.

 빛을 보지 않아 하얀 피부와 소같이 큰 눈.

 그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또 그 붉고 살짝 튀어나온 입술로 '은호 형님-' 하고 부르면.

 아,

 기분이 몽글몽글.

 새까맣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내 손끝으로 흩어지면 세상 모든 편안함은 내가 다 끌어 가진 것 같았다.

 영주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프레임별로 기분과 감정을 흔드는.

 

 

 하나원 앞에서 있으란 그의 말에 흙먼지 바닥을 툭툭 차며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벅저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만치서 영주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형님."

 

 

 우리는 곧 마주 보게 되었고 날이 좋아 근처 숲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딱히 목적지 없이 걷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한없이 느렸고 또 한 없이 정처가 없었다.

 

 

 "아픈 덴 없어?"

 "없습니다. 형님은요?"

 "보다시피."

 

 

 멀쩡해.

 미소를 짓고는 입을 꾹 다물던 영주가 무언가 고민하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춰 섰다.

 그런 줄 모르고 다섯 걸음 정도 앞서 걷다가 인기척이 없어서 돌아보았다.

 뒤에서 곧게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물음 대신 기다림을 건넸다.

 

 

 "은호..형님."

 "........."

 "제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는 두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입을 떼었다.

 

 

 "저를 왜 좋아하십니까?"

 

 

 그의 눈빛에 어떠한 의도도 담겨있지 않았다.

 소년은 정말 궁금했다.

 내가 왜 저를 좋아하는지.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

 "생각이 안 나."

 

 

 그냥 네가 좋아서 아무 생각이 안 나 영주야.

 

 제일 솔직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했던 말 중에 가장 솔직한 말.

 선선한 바람이 영주의 머리칼을 흩트린다.

 가만히 내 대답을 들은 손영주는 어렵사리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네 걸음 가까이 다가가 한 걸음만을 남겨놓고 자리에 섰다.

 

 

 "제가 아니라고 해도,"

 "그래도 괜찮아."

 

 

 너랑 변하는 거 없을 거야.

 

 그래 내가 며칠 동안 준비한 건 이 말이다.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이상의 말.

 또 가장 맞는 말.

 네가 날 받아들이지 않아도 난 괜찮다고.

 네 옆에 있겠다 약속해주는 것.

 아픈 건 나 하나로 족하니까.

 내 감정 하나로 녀석을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럼 옆에 있어줘요."

 "........"

 "저 계속 좋아해 줄 것이지요?"

 

 

 거절의 의미라고 확신할 때쯤 덧붙여진 녀석의 말에 작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

 

 

 영주가 이제 맘 편히 웃는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꼬리가 너무 예뻐서 입술을 댔다.

 그리고 눈가에 속삭였다.

 

 

 "너도 날 좋아하지?"

 

 

 대답 대신 두 팔을 뻗어 내 허리를 가만히 안아온 어색한 그 손짓에 붕 뜬 마음이 민들레 홀씨가 되어 어디론가 날아갈 것 같았다.

 

 -

 

 영주와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지난번에 비를 피해 숨어들었던 정자로 향했다.

 그때와 다르게 맑은 저녁 초여름 공기가 기분을 선선하게 만들었다.

 마음까지 단비에 다 젖어버린 그날의 우린 첫 입맞춤을 했었다.

 녀석도 딱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었는지 나무 의자에 앉아 발로 바닥만 투욱- 툭 차며 쑥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노을이 지는 건너편 풍경을 바라보며 의자를 짚고 있는 영주의 손을 슬쩍 잡았다.

 

 

 "얼른 여기서 나왔으면 좋겠어."

 "......."

 

 

 그래도 교육은 다 받고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더듬거리는 말에 푸스스 웃었다.

 넌 나랑 한시도 빨리 같이 있고 싶지 않아?

 그리 물으니 또 얼굴이 발그레 해져서는 땅만 보기에 '아닌가 보구나' 하고 손을 슬쩍 놓았다.

 영주가 놀라 벌떡 일어난다.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란.."

 "....."

 "...말입니다 형님."

 

 

 쫄기는.

 나는 그의 팔목을 잡아 다시 정자에 앉혔다.

 그리고 내내 가방에 고이 잠들어 있던 그것을 꺼내기로 했다.

 영주는 의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웃대며 내 행동을 살폈다.

 

 

 "그대로 있어봐."

 

 

 영주의 발치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리고 손에 들린 반짝거리는 은색 발찌를 발목에 걸어주었다.

 당황스러움에 뒤로 스윽 빼려던 그의 아킬레스건을 살며시 움켜쥐어 다시 내 쪽으로 뻗게 만들었다.

 

 

 "됐다."

 

 

 가느다랗고 흰 발목에 반짝이는 예쁜 발찌가 걸렸다.

 분침과 시침 펜던트가 영주의 발목에서 빛을 반사한다.

 마치 그의 시간이 째깍 째깍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영주가 발치 쪽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이게 뭐냐 물었다.

 나는 아직 굽힌 무릎을 펴지 않은 채 그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나를 만난 네 시간들이 전부 행복한 순간 속에서 흐르면 좋겠어."

 ".....은호 형님."

 "좋아해 영주야."

 

 

 다시한 번 녀석의 눈을 바라보고 입 밖으로 꺼낸 내 마음의 실체;.

 손영주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더니 제 발목에 걸린 발찌를 살펴본다.

 

 

 "진짜 시계 모양이어요."

 "응."

 

 

 발찌에 정신이 팔려 있는 영주에게 또 정신이 팔린 나는 서서히 굽혔던 다리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얼굴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

 

 

 둔한 녀석은 그제야 다가온 나를 발견한 건지 다소 놀란 표정으로 흠칫하고 만다.

 천천히 그의 얼굴 한 쪽을 어루어 감쌌고 긴장 속에서 조심스레 입술을 머금었다.

 폭신하고 달콤하고,

 아 손영주의 입술은 보는 것과 어쩜 그리 똑같이 아름다운지.

 도저히 가슴이 뛰어서 내가 더는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고개를 떼어냈고 그의 쇄골 즈음에 고개를 묻었다.

 

 

 "후...."

 "괘, 괜찮으십니까?"

 "...응."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

 영주의 뒷머리칼에 손을 집어 넣어 끊임 없이 쓰다듬었다.

 손의 감각이 둔해질때까지 그 보드라움을 만지고 또 만지며,

 저녁노을이 다 넘어가는 그 시간속에 영주와 나는 떨리는 두 번째 입맞춤을 했다.

 

 

 

 -

 

 

 손영주 이야기,

 

 

 '무, 물살이 너무 세어요!'

 '나를 꽉 잡아라!'

 '저는 틀린 것 우웁 같습니다.'

 

 

 자꾸 물을 먹는 나를 끝까지 잡아 끄는 할아버지를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고 몸에 힘이 풀렸다.

 순간 코와 입으로 물이 밀려들어오며 극도의 공포감으로 정신을 놓고 말았다.

 

 

 '여기가...어,어뎁니까'

 

 

 후에 눈을 떴을 때 맞닥뜨린 낯섦과 처음 보는 사내 그리고 내 손을 놓지 않았던 그 할아버지의 죽음은 날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처음 며칠은 내가 할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나 혼자 잘 살아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있는 건 아주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

 

 

 '미안 여태 묻지도 않았네. 이름이 어떻게 돼?'

 

 

 

 한국으로 가는 여권을 발급받으며 내 또래쯤으로 보이는 낯선 사내가 이름을 물었다.

 나조차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내 이름을 누군가 물어본 것이다.

 

 

 '손영주 입니다.'

 

 

 이영은, 손주호.

 엄마와 아빠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서 온 내 이름,

 이젠 없는 그 두 사람의 실체를 이름으로 간직하고 있다.

 두 사람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걸 알려주는 건 오로지 내 이름뿐이었다.

 

 

 아. 그래. 영주-

 

 

 영주라는 이름을 곱씹어 보며 여권 신청서에 작성하는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곳에 와서부터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사내의 아버지란 사람은 나를 미워한다.

 하지만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그저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화장실은 참았다가 그들이 잠이 들면 뒤꿈치를 들고 다녀오거나 배가 고파도 참았다.

 적어도 북에 있을 때처럼 며칠씩 굶는 게 아니니었으니까.

 

 

 사내는 나를 데리고 시내에 나갔다.

 아직은 마음 편히 돌아다닐 처지가 아니라 생각됐던 지라 머뭇거렸다.

 나를 돌아보며 손짓하는 그에게 옅은 미소가 걸린 것을 보고 그냥 순간이었다.

 무장해제될 만큼이나 마음이 놓여버린 건.

 어쩐지 저 사람을 믿고 싶어졌다.

 

 

 '제가 뭐라고 호칭을 부르면 좋습네까?'

 '은호 형.'

 

 

 서은호.

 내게 스무살의 형이 생겼다.

 

 

 -

 

 

 

 

 하나원에 들어가 첫날은 밤에 눈물바람으로 지새야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있던 은호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공허할 줄 몰랐다.

 정말 다시 혼자가 된 느낌이었다.

 입안 가득 낯섦이 되새김질 되고 있었다.

 돌아가면 그와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약속을 바라보기엔 내 외로움은 그 크기가 컸나 보다.

 

 

 서걱거리는 연필 말고 끝이 둥글리듯 미끄러운 볼펜을 좋아하는 건 정말 은호 답다고 생각했다.

 괜히 연필을 내려놓고 필통 한 켠에 있는 검은 펜을 집어 들어 이름 석 자를 적어보았다.

 

 

 '서 은 호'

 

 

 선이 곧게 뻗은 은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랄 때 부터 허여멀건 해서 비실대는 나완 다른 든든한 외관이었다.

 나는 그런 그를 존경했다.

 

 

 '우리 형님이다. 잘생겼지?'

 '와 영주 너 부럽다-'

 

 

 생활 동기들에게 은호의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는 제 사진이 내게 준 돈 사이에 딸려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을 거다 아마.

 

 감히 닮고 싶은 마음에 연필 대신 이틀 정도를 볼펜만 쓰다가 손에 굳은 살이 다 배겨버렸다.

 

 

 몸이 약한 내게 체력 활동 교육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날도 공을 갖고 몇 걸음 달음박질치지도 않았는데 고꾸라져서 무릎이 까졌다.

 

 생각보다 피가 많이 흘러 지혈이라도 하러 보건실에 갔다가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온 은호형에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저 슨생님, 잠깐 형님과 담소를 나누어도 괜찮겠지요?'

 

 

 양해를 구하고 형과 나는 병동으로 들어섰다.

 좀 전까지만 해도 외롭던 내 마음이 그의 얼굴을 보니 어떤 걸로 꽉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오늘은 학교를 안 갔습니까?'

 

 

 그렇게 묻는 내 목소리는 묘하게 들떠있었다.

 그러나 나와 다르게 좋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은호는 연신 내 다친 다리가 신경 쓰였나 보다.

 바짓단을 위로 걷어주고 다리를 잡아 위로 올려주는 그 손길이 다정했다.

 

 

 

 결국 그날 아쉬움을 뒤로하지 못하고 형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달빛을 받은 그의 얼굴을 눈에 담으려고 쏟아진 머리칼을 손으로 넘겨보았다.

 

 

 '감히 형님의 머리를 제가 만져도 될는지요.'

 '.........말했잖아.'

 

 

 넌 '아무나'가 아니라고,

 

 나한테 은호 또한 아무나가 아니다.

 고로 우린 서로에게 아무렇지 않은 존재가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고작 머리칼 따위를 매만지면서.

 

 다시 오지 않을 밤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말
 

 날이 너무 더워요ㅠㅠ 여러분 건강 조심하세요!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채송 18-08-02 14:09
 
* 비밀글 입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구름아밥먹자 18-08-03 07:40
 
* 비밀글 입니다.
자신만의 이미지를 등록해보세요
찡킴 18-08-22 13:41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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