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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소년의 순정
작가 : 송루나
작품등록일 : 2018.7.2

2014년, 어느 여름.
억겁의 시간이 내 품으로 쏟아진 그 날,
북에서 넘어온 한 소년을 만났다.
까만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두 개의 눈동자, 올곧은 시선.
아, 순정한 눈빛이었다.
소년의 이름은 손영주였다.

 
소년의 순정 20
작성일 : 18-09-05 10:30     조회 : 477     추천 : 9     분량 : 7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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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거창할 것 없던 강의는 출석과 간단한 커리큘럼 소개로 끝이 났다.

 괜히 무겁게 서적을 들고 왔다며 투덜거리는 학생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나 또한 서적을 가방에 넣고 핸드폰을 챙겨들었다.

 

 

 "영주야, 너 신입생 환영회 갈 거지?"

 "응. 갈게."

 

 

 입학식 때 몇 마디 말 나눈 게 전부인 아이들이 저마다 친하게 굴어줘서 다행이었다.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아닌지라,

 경운에게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놨던 적이 있었기도 하고.

 

 

 "화장실 좀 들렀다 갈게."

 "응. 일층으로 내려와!"

 

 

 '쏴아-'

 

 

 손을 씻고 거울 속에 내 모습을 확인하며 매무새를 다듬었다.

 앳된 티는 많이 벗었다.

 제가 봐도 어엿한 대학생 같아 보이는 내 모습은.

 혹시 은호가 보면 많이 컸다고 할까.

 

 

 '지잉-'

 

 

 잠시 세면대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에 진동이 울리고 물 묻은 손을 아무렇게나 바지에 스윽 닦았다.

 받으려고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여보세요-' 했다가 바로 끊겨버린 전화에 응? 하고 다시 확인하자 곧바로 경운의 이름이 뜬다.

 

 

 "네. 형."

 [끝났어?]

 "신입생 환영회 한대서 가려구요."

 

 

 술 많이 마시지 말고-

 괜히 흑역사 만들지마,

 그의 말에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가 문득 좀 전에 전화 건 게 경운인지 물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 왔는데 받았다가 금방 끊겼어요."

 [피싱 아니야?]

 "그런가..."

 

 

 전에 어눌한 목소리로 가족을 납치했다고 돈을 당장 입금하라는 말에 사색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곧 보이스피싱이란 걸 알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셨는데 말이다.

 

 

 [즐겁게 놀아.]

 "네."

 

 

 "영주야 얼른 와."

 "엇, 저기..!"

 

 

 여긴 남자 화장실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런 것쯤은 아랑곳 않는 그녀에 벙찌고 말았다.

 어제도 보니까 먼저 말 걸고 하는 게 성격이 활발한 것 같다.

 아, 아까 얼핏 들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설윤희라고 했다.

 

 

 

 "넌 혼자 살아?"

 "응."

 "자취?"

 "응, 뭐."

 

 

 술집으로 가는 내내도 윤희는 내 옆에 붙어서 조잘조잘 내게 말을 걸었다.

 딱히 귀찮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친구는 처음 사귀어 보는 거라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저기 저 선배들 조심해."

 "왜?"

 "OT 때도 신입생들 술 엄청 먹여서 몇 명 응급실 갔다고 하더라."

 

 

 웬만하면 저 선배들 시야에서 벗어난 곳에 앉아.

 

 

 라고 친히 경고까지 했는데,

 

 

 "영주? 아 네가 이경운이랑 친한 걔구나."

 "...네,네."

 

 

 대단하네,

 술을 따르는 선배에 난 곤란해 죽는 얼굴로 윤희를 쳐다보았다.

 문제는 윤희도 딱히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터라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고 나를 곁눈짓 할 뿐이었다.

 아 벌써 연속 넉잔째다.

 

 

 "이경운이랑 알면 걔도 알겠네."

 "......."

 "서은호."

 

 

 다행히도 내 옆에 있던 준서가 대신 대답을 해줬다.

 은호 선배는 모르는 것 같던데요-

 고맙다, 내가 내 스스로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줘서.

 잔을 내려놓고 입가를 닦았다.

 그러자마자 또 잔이 채워지기에 고개를 수그리며 그 잔을 들어 올렸다.

 눈을 비비적거렸다.

 아 이게 취하는 건가,

 난생처음 어지러운 기분에 시야가 흐릿해져 내내 눈을 비볐다.

 그렇게 하면 좀 또렷하게 보일 줄 알고 말이다.

 

 선배들은 취기가 오르는 나를 보고도 저들끼리 낄낄거리며 더 술을 따른다.

 보다 못한 윤희가 다가와 내 술잔 안에 물을 채워주었지만.

 이미 나는 취할 대로 취한 뒤였다.

 

 -

 

 

 "선배들끼리 2차 간다."

 "들어가십시오."

 

 

 선배들은 손을 흔들며 호프집에서 일어섰고 나는 그제야 편하게 탁자에 엎어졌던 것 같다.

 

 

 "영주야 괜찮아?"

 "...어, 응. 괜찮아."

 

 

 숨을 깊게 쉴 때마다 술 냄새가 역하게 올라와서 속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보단 일어나서 얼른 집에 가는 쪽이 훨씬 낫겠다.

 나를 부축해주는 윤희를 가볍게 밀어냈다.

 괜찮아 나는-

 준서가 마지막으로 괜찮냐고 묻기에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내일 봐, 얘들아."

 

 

 손을 아무렇게나 흔들고 비척거리며 술집 밖으로 나섰다.

 

 

 "후우-"

 

 찬 바깥공기를 마시니 조금 나아졌다.

 이마를 손바닥으로 두어 번 탁탁 치고 걸음을 옮겼다.

 

 

 "정신 차리자 손영주우. 가자. 집."

 

 

 이제 자기 자신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3년이면, 그래야 하니까.

 신호등 앞에 서서 얌전히 기다렸다.

 

 

 "어머 저 사람 봐."

 

 

 그니까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을 둘러보니 나보다 더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게 어쩐지...

 

 

 "그냥 바닥에 앉았네,"

 "노숙잔 아니겠지?"

 "에이- 그냥 취객 같은데."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릴 들으며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중간에 팔이 들리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알콜로 샤워를 해버린 나는 그 뒤로 아무것도 느낄 수도, 생각해낼 수도 없었다.

 

 

 

 하마터면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다.

 귀 바로 옆에서 울려대는 벨소리에.

 알람인가 싶어서 눈도 못 뜨고 종료 버튼을 찾다가 먼저 끊긴 전화에 앓는 소릴 내며 베게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스멀거리며 떠오르는 기억을 되짚었다.

 

 

 "아우..어제..."

 

 

 선배들이 술 줬고 1차가 끝나고 애들하고 안녕하고 신호등에서... 신호등을 건넜나?

 애석하게 내 기억은 신호등을 기다렸던 것에서 무참히 끊겨버렸다.

 불현듯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난 이 집에 어떻게 들어온거지.

 

 

 "....뭐지."

 

 

 양치를 하면서도 어제 귀갓길 기억이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기억이 안 날 수 있나 싶어서.

 양치를 하던 손이 나도 모르게 느려졌고 매운 치약의 기운이 목구멍 뒤로 잘못 넘어갔을 때 올라오는 구역질에 치약 거품을 뱉을 새도 없이 변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윽-"

 

 

 뒤늦게 토기가 올라와버렸다.

 얼마나 구역질을 한 건지, 더 이상 올릴 게 없어 위액만 뱉어내고 있을 때 겨우 숨을 쉬었다.

 

 

 "으아... 술 다신.. 안 먹어."

 

 

 아무리 생각해도 백해무익하다 술은.

 비위 상해.

 이 다시 닦아야겠다.

 그렇게 이만 서너 번은 더 닦고 나서야 화장실을 나섰다.

 

 

 -

 

 

 다소 멀쩡한 모습으로 강의실에 들어선 나를 보며 동기들이 괜찮냐고 묻는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준서는 선배들이 너한테 작정하고 먹인 것 같아서 걱정했다고 했다.

 윤희는 내 앞에 앉아 몸만 돌린 채 주려고 숙취해소 약을 사 왔는데 필요 없겠다며 김빠지게 봉지를 흔들었다.

 

 그 숙취해소 약을 살짝 보고 잠시간 속이 또 안 좋을 뻔했다.

 아까 저거 먹고 2차로 다 게워낸 게 생각이 나서.

 

 

 "나 오늘 못 일어날 뻔했잖아. 어제 알람 안 맞추고 잤어."

 

 

 전공서적을 꺼내며 고개를 내젓던 윤희가 그런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알람은 안 맞췄는데 벨소리에 놀라서 일어났었지.

 누구한테 전화가 왔던 거지, 경황이 없어서 확인을 못했네.

 

 

 핸드폰 통화내역을 슬쩍 확인해보다가 어딘가 낯이 익은 번호 열한 자리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곧 교수가 와서 폰을 뒤집느라 생각은 멈춰졌지만.

 

 

 "추가 서적이 왜이렇게 많냐. 돈 다 털어가네 정말."

 

 

 서점에서 줄을 서며 투덜거리는 준서에 짧게 '그러게-' 하고 대답했다.

 알바를 하나 더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점심 사 먹는 것도 그렇고 은근히 들어가는 돈들이 많아서.

 티 나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현대소설 작법이랑..."

 "현대소설 작법만 주세요."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얼굴 하나에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형."

 "그거 한 권만 사. 나머지 여기."

 

 

 경운이 책을 한아름 들고 내게 건넨다.

 

 

 "현대소설 작법 필요 없어! 그것도 사지 마!"

 "....!"

 

 

 저만치 뒤에서 책을 머리 위로 흔들거리는 사람에 이번엔 웃음이 났다.

 이미 서점에 있는 학생들에게 시선이 집중 당한지 오래지만 그 반가운 얼굴에 뛰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은석이 형!"

 

 

 은석이 웃으며 두 팔을 벌렸고 난 그에게 가서 안겼다.

 곧 제대라더니 언제 나온 걸까,

 실로 오랜만에 보는 그 반가운 얼굴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무거워 이거부터 들어."

 "아, 고마워요 뭘 이런 거까지."

 

 

 사야 했던 서적을 건네받고 고마워하자 은석은 손을 탈탈 털며 그럤다.

 손영주 지갑 열리는 소리 안 나게 할 거라고 말이다.

 팔불출 같은 이 형들에 결국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던 것 같다.

 

 

 "은석 선배랑도 아는 사인가 보네."

 "영주는 좋겠다. 책 안 사도 되고."

 

 

 수군거리는 소리에 불편한 것도 잠시 경운이 입학식 때와 같은 말을 하고는 내 어깰 잡아 서점을 빠져나갔다.

 

 

 "손영주 좀 빌려 간다!"

 

 

 -

 

 

 

 "똥강아지 잘 지냈어?"

 "아서라."

 

 

 애 취급, 강아지 취급 뭐 이런 거 하면 영주 눈에 불을 켜 요즘.

 은석에게 손을 휘휘 저어 보인 경운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도 다 컸어요 형들.

 남자 셋이 모여서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는 건전한 풍경에 짝을 이뤄 온 연인들이 흘끔거렸다.

 

 

 "근데 말투 봐. 진짜 다 고쳤네."

 "그럼요. 몇 년이 지났습니다."

 "네가 우리 학교 온 것도 신기해."

 

 

 서은호도 알면 놀라겠다.

 아무렇지 않게 꺼낸 이야기에 경운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고 은석은 얼굴에 인상을 쓰며 '아 왜' 하고 말했다.

 

 

 "안 그래도 나 제대하면 제일 먼저 묻고 싶었어."

 

 

 아이스크림 수저를 내려놓고 팔짱을 낀 은석이 내게 비장하게 묻는다.

 막 딸기맛 아이스크림을 퍼먹던 걸 급히 삼키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솔직히 말해. 서은호네 집에서 왜 나왔냐?"

 "........"

 "단순히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서?"

 

 

 라기엔 너 은호랑 연락도 안 하는 것 같더만.

 의심의 눈초리로 계속 캐묻고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 안쪽 여린 살결을 깨작였다.

 보다 못한 경운이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 하고 화제를 전환시키려고 했지만 은석은 자꾸 스읍 입맛을 다시며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아 저 형들 덕분에 돈 다 굳었어요. 책 진짜 고마워요."

 "말만 해라. 족보도 구해다 주마."

 

 

 유독 처음 봤을 때부터 나를 예뻐하던 은석이 형을 알기에 그가 제대해서 돌아온 건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연락할 내 편 하나 더 생긴 기분이니까.

 정말 이렇게 놓고 보니...

 

 

 "서은호만 없네."

 "야 은호 얘기 그만해라 좀."

 

 

 애 불편하게.

 경운에게 괜찮다고 해야 하는데 정말 괜찮지가 않아서 그저 아이스크림 수저로 통 안쪽을 의미 없이 뒤적이는 행동이 이어졌다.

 한숨을 푹 쉰 은석이 '어쩌다가 이런 거야 정말' 하고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

 

 

 사실 대학 입학하며 새 친구 사귀는 것에 대한 걱정을 했었는데,

 나는 어느새

 

 

 "영주야, 밥 같이 먹자."

 "영주야 옆에 앉아도 돼?"

 "영주야! 우리 같은 조 하자."

 

 

 경운과 은석 덕분에 어렵지 않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정말 경운과 은석이 학교에서 유명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

 

 

 "작년에 경운 선배 축제 때 다 쓸었었을 때."

 "이게 뭐야?"

 

 

 키보드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경운의 낯선 모습이 윤희의 핸드폰 속에서 흘러나온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으니 저 한 쪽에서 기타 치는 누군가를 손가락으로 짚는다.

 이건 누군 줄 알아?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숙여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허어?' 하는 우스꽝스러운 소릴 내고 말았다.

 

 

 "이거 은석이 형이야?"

 "어. 대박이지."

 

 

 휴가 나왔을 땐데 경운 선배 도와주러 기꺼이 무대에 올라가셨다-

 보기만 해도 충격적인 영상인데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함성은 엄청났다.

 

 

 "이때부터 팍 유명해졌을걸. 타과 애들도 다 좋아할 정도였어."

 

 

 그래도 이 둘보단 은호 선배 아니겠냐-

 막 도착한 준서가 가방을 풀며 대화에 합류한다.

 

 

 "그 선배는 뭐 한 게 없는데 얼굴 때문에 유명해졌잖아."

 "그건 그래."

 

 

 수긍하는 윤희에 난 '얼굴이 왜?' 라고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윤희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너 경운, 은석 선배랑은 친하면서 서은호 선배에 대해선 정말 하나도 모르는구나."

 "....뭐..응."

 

 

 그 선배 그냥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 생긴 선배로 유명했어.

 뭔 케이블 프로그램에서도 찍어갔을걸.

 

 

 '영주야,'

 '네 형님.'

 '나 잘생겼어?'

 '왜요?'

 '애들이 잘생겼대.'

 

 

 또 또 무슨 말장난을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은호와의 대화에 멍하니 정신을 뺏겨버렸다.

 그냥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 서은호란 사람은 유명했었구나.

 마지못해 '북에서는 보기 드문 호남형이긴 하지요' 라고 대답했었는데.

 아무것도 몰랐었네 바보.

 

 

 "아 맞다 영주야 너 조 어떻게 할 거야?"

 

 

 윤희와 준서를 번갈아 보다가 다른 아이들도 다 내게 시선을 두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아이들도 내게 조를 함께 하자고 제안한 상태라서,

 

 

 "난 당연히..."

 "......."

 "...너네랑 하려고 했는데?"

 

 

 별생각이 없었다.

 당연히 윤희와 준서와 하려고 했던 터라 그렇게 말했더니 잔뜩 감동받은 얼굴로 둘 다 웃는다.

 

 

 "우리도 은석 경운 선배 덕 좀 보자."

 "맞아. 사진 촬영이나 일러스트 삽입하면 가산점이랬어."

 

 

 다른 애들은 초코렛 하나 주면서 형들에 대해서 은근히 묻고 그랬는데 윤희와 준서는 눈치 안 보고 대놓고 말 하는게 되려 솔직해 보여 좋았달까.

 저들끼리 벌써 이런 저런 계획 세우는 걸 보고 푸흐- 웃었더니 '우리 김칫국 한 사발이냐?' 하고 머쓱하게 그런다.

 

 

 "이미 할 거 다 하고 이제 와서 머쓱해하는 것 같아."

 "맞아. 사실은 머쓱하지도 않아."

 

 

 무조건 경운 은석 선배한테 밥 얻어먹을거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학식이라면 백 번도 더 사줄 거야 둘 다.

 그 말에 '아싸'를 외쳐대는 그들이다.

 

 

 "그럼 조별 과제는 주말에 한 번 모이자."

 "응. 연락해."

 

 

 손을 흔들고 캠퍼스를 천천히 걷다가 문득 저기 보이는 잔디 운동장에 멍하니 발걸음을 멈춰 섰다.

 푸릇푸릇한 게 꼭 그곳이 생각났달까-

 

 

 '여기가 꿈의 숲입니까?'

 '응. 진짜 멋있지?'

 '복잡한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요.'

 

 

 

 북서울 꿈의 숲 생각난다.

 은호와 같이 갔었던 그곳.

 평소엔 체육과 학생들이 공을 차느라 못 들어갔었는데 오늘은 잠잠하기에 그쪽으로 발을 들여 천천히 잔디밭을 걸어 다녔다.

 

 운동장은 다 흙먼지 날리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요즘은 이렇게 잔디를 깔아 놓기도 하는구나.

 햇빛이 잘 드는 곳에 그냥 풀썩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햇빛의 단면을 가렸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지만 해의 단면은 이렇게... 가릴 수 있다.

 물론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것이겠지만,

 

 나른한 기운에 지그시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눕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다 쳐다보겠지.

 북에서는 경치 좋은 곳만 있으면 침대 삼아 눕고 이불 대신 바람을 덮곤 했었는데.

 

 

 이상하다.

 봄기운에 회상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게,

 나도 봄을 타나보다.

 노래라도 한 곡 듣고 갈까-

 그러기엔 이어폰을 꺼내느라 눈을 떠야 하잖아.

 이 기분이 꺠질까 봐 눈을 뜨기가 싫었던걸까.

 

 

 '팍!'

 

 

 순식간이었다.

 잔디 곳곳에 숨겨져있던 스프링쿨러가 물을 뿜어댄 것은.

 하필 바로 옆에서 두 개나 터지는 바람에 나는 물벼락을 맞아야 했다.

 

 

 "으아-"

 

 

 물줄기가 너무 세서 일어나지도 못하며 이 와중에 전공 책이 젖을까 봐 재빨리 들어 품에 안아들었다.

 아, 급기야 다리까지 풀린다.

 이러다가 스프링쿨러 다 끝날 때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아, 이젠 물줄기에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진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어푸 거리며 손을 허우적거리는데 문득 팔목이 잡혀 몸이 쑥 일으켜졌다.

 

 다시 넘어지려고 하는 걸 두 다리에 힘을 줬다.

 놓아준 팔목으로 얼굴에 물을 닦아내며 가까스로 눈을 떴다.

 

 

 "감사합......."

 ".........."

 

 

 그리고 나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더 생각지 못한 사람과 재회를 했다.

 공교롭게도 또 물에서 나를 구해준.

 

 

 "은호 형..."

 

 

 서은호와.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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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킴 18-09-06 04:01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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