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갑자기 왜 그래?"
"어? 아니.. 아무것도 아냐.."
얼굴을 가렸던 손을 조심스레 내리는데 세경이 묻는다.
"어제 그 남자 얘기 좀 자세히 해봐."
"어?"
"첫인상이 얼마나 안 좋은데?"
"아.. 그게.."
머뭇거리며 말을 아끼는 지우가 수상쩍다.
준희가 음료를 가지고 와 묻는다.
"둘이 뭘 그렇게 쑥덕거려?"
"준희한테는 아직 얘기 안한거야?"
"응... 참! 성훈씨 말이야."
성훈이라는 얘기에 두 사람의 얼굴이 굳어져서는 지우를 쳐다본다.
"그 자식 이름을 갑자기 왜 꺼내? 너 도서관 왜 계속 나가는데?"
"그래, 지우야. 그만두라니까."
"아니.. 그 사람이 그만뒀거든. 그래서 나 그만 안둘거야."
"그 자식이?"
그만뒀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세경.
"그래.. 차라리 잘됐다. 잘못한 사람이 나가야지."
"그건 그렇고 나한테 얘기 안한 건 또 뭔데?"
준희가 의자에 앉으며 말한다.
말은 안하고 쥬스만 쪽쪽 빨아먹고 있는 지우가 답답했던지 쥬스를 빼앗는다.
"그만 먹고 말해봐. 뭐냐니까?"
"우리가 계속 다치니까 지우가 해결책을 알아왔대."
"뭐? 설마.. 그 사주 때문에 그래? 내가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신경 안 쓸 문제가 아니니까 그렇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것 같아 오히려 화를 내는 지우.
그런 지우가 당황스러운 준희인데..
"서지우..."
"미안.. 다 너희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 그래서, 그 해결책이 뭔데?"
지우가 무당이 알려준 해결책을 줄줄이 얘기한다.
듣고 있던 준희가 황당해한다.
"뭐? 유혹? 그 무당 돌팔이 아냐? 처음 본 사람을 유혹하라니 넌 그걸 듣고만 있었어?"
"세경이랑 어쩜 똑같은 소리를 하니?"
"장세경 너도 듣고만 있었냐? 당장 찾아가서.."
"난 지우 뜻대로 하게 둘거야."
"미쳤냐? 그 짓을 하게 두겠다고?"
준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지우가 일어나 귀를 막으며 말한다.
"너네 그만 좀 싸워. 난 결정했어. 그 사람이.. 나 사랑하게 만들어 볼거야. 어떻게든."
"서지우,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마!"
티슈를 가지러 향하는 지우에게 소리치는데 그 옆으로 여자 손님이 지우와 부딪힌다.
그러다 여자 손님이 들고 있던 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깨진다.
"아 뜨거!!"
그 소리에 놀라 시선이 집중되고, 하진이 그녀들에게 뛰어온다.
"손님들 괜찮으세요?"
"어머.. 잔이 깨졌네.. 어떡해.. 죄송해요.."
"두 분 다 안 다쳤습니까?"
"전 괜찮은데..."
여자 손님이 손사레를 치며 괜찮다고 하며 지우를 돌아보는데 지우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있다.
하진이 여자 손님을 일으켜 세워주고는 다시 지우를 살핀다.
"괜찮아요?"
"아.. 네.. 괜찮아요."
"어디 봐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다는데도 억지로 손을 당겨 살피는 하진을 지우는 빤히 바라본다.
이 순간, 하진의 눈빛은 차가움이 아닌 걱정이 가득한 눈빛이다.
"서지우. 괜찮아? 베인거야?"
준희가 놀란 눈으로 다가와 묻는다.
지우의 왼쪽 손등이 빨갛다. 여자 손님이 들고 있던 것은 뜨거운 커피였던 모양이다.
하진과 준희가 지우를 부축해 의자에 앉힌다.
그러고는 준희에게 말한다.
"창고 가서 약상자 가져와."
"네.. 사장님."
걱정스런 눈빛을 거두고 빠른 걸음으로 창고로 가버리는 준희.
따갑고 쓰라린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는 지우.
점점 더 벌겋게 달아오르는데 머리에서도 열이 나는듯하다.
커피 알러지가 있는 지우인데 커피물을 만져도 반응이 와버린다.
약상자를 가져와 하진에게 내민다.
걱정스럽게 지우를 바라보는데..
"이거 혹시 커피는 아니지?"
"...."
지우의 손등에 화상연고를 바르는데 준희에 말에 돌아보면 준희가 지우에게 묻고 있다.
지우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맞는거 같애.."
"무슨 소리 하는거야. 커피는 왜?"
준희에게 되묻는데 준희가 말한다.
"지우가 커피 알러지가 있거든요. 그래서 커피도 못먹는데.."
하며 지우의 이마에 손을 얹어 보는데 뜨겁다.
지우를 일으켜 세운다.
하진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한다.
"... 뭐하는거야. 치료 중인거 안보여?"
"얘 병원 가야되요. 이마 뜨겁다고요."
"여기서 치료 받고 가도 돼. 준희야, 오버하지마."
괜찮다는 듯 준희에게 웃어준다.
하진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다.
괜히 준희에게 화가 나려하는 하진이 약을 준희에게 덥석 쥐어준다.
"그렇게 걱정되면 니가 치료해 주던지, 병원으로 데려가던지. 니 맘대로 해."
"...."
약을 받아든 준희가 까페 밖으로 나가 버리는 하진을 보더니 지우에게 말한다.
"당장 가자. 데인 것도 병원가서 치료받고."
"너 사장님한테 왜 그래? 기껏 치료해주고 계시는데."
"너 빨리 알러지 가라앉게 해야지. 겪어봐놓고도 바보 같은 소리할래?"
"봤지, 마준희."
빨리 병원 가자며 재촉하는데 지우가 심각하게 묻는다.
그런 지우를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는데.
"나 지금 또 다쳤어. 오늘 도서관에서도 책에 머리도 맞았고. 이게 다 내 사주 때문이야.
이제는 부정할수도 없어. 나쁜 일들이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녀. 그러니까 더 이상 나 포기하려 만들지마."
"서지우..."
"병원은 나 혼자 갈게. 넌 세경이랑 여기 있어."
옆에서 아무말도 못하고 서 있는 세경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웃어준다.
준희를 지나쳐 까페 밖으로 나온다.
하진이 까페 앞 구석에 기대 서서 담배를 피다 나오는 지우를 발견하고는 비벼끈다.
그런 하진에게 다가간다.
"죄송합니다. 준희가 좀 바보같고 그래요.. 제가 걱정되서 그런거에요.."
"저 자식 바보 같은 거 압니다."
의외의 대답에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바로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로 간다.
"타요. 병원가게."
"네? 아니요. 혼자 갈수 있어요. 까페 들어가셔야죠."
"내가 사장인데 내가 어딜 가는지 허락 받아야 됩니까?"
또 옳은 소리하고 있다. 이 상황이 어쩐지 낯이 익다.
태워다 준다는 성훈의 목소리가 하진의 목소리와 겹치게 들린다.
감시 눈을 감았다 뜨는데 현실은 지우 앞에 하진이 서 있다.
조심스레 하진의 차에 탄다.
병원으로 가는 길, 말이 없는 두 사람.
열이 더 오르는지 어지럽기 시작하는 지우.
등을 기댄 채 창밖만 들여다보고 있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우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하진이
꿈쩍도 않고 있는 지우를 부른다.
"안 내리고 뭐합니까?"
여전히 창밖으로 고개가 돌려져 있는 지우를 흔들어 보는데.
잠이 든건지 기절해 있는 건지 깨어나질 않는다.
흠칫 놀라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고 지우를 번쩍 들어올린다.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 의사를 부른다.
의사가 다가와 지우를 살펴본다.
"어떻게 된거죠?"
"여기 손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김 간호사, 얼른 치료 준비해요."
"네, 선생님."
하진의 말을 끊고는 지우의 손등을 치료하기 시작한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조심히 입을 연다.
"근데 이 여자, 알러지가 있다던데.."
오른쪽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수액을 맞으며 누워 자고있는 지우를 바라보며 의사에게 말한다.
의사가 알고 있다는 듯 담담히 말한다.
"아, 커피 알러지요?"
"아셨습니까?"
"뭐 흔한 알러지는 아니고 6명 중 1명에게 있는 알러지랄까. 근데 방치해 두거나 심하면 죽을수도 있는
무서운 알러지죠."
"그 알러지가 그 정도란 말입니까."
알러지에 대해 알게 된 하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지우를 본다.
자신에게 치료 받고 가도 된다고 말하는 지우가 내심 생각이 났다.
치료가 끝나고 옆에 있는 의자를 끓어다가 앉는다.
가만히 지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마준희가 설마 이 여자를 좋아하는건가..'
자신의 라이벌이 될수도 있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하진이다.
한참 후,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하진을 잠에서 언제 깼는지 지켜보고 있는 지우.
"이 사람.. 어떻게 하면 유혹할수 있을까?"
웅성웅성 시끄러운 응급실 안의 소리에 눈을 뜨는 하진.
깨어있는 지우를 보고는 말을 건넨다.
"좀 어때요?"
"네.. 괜찮아요."
"다행이네. 깬 거 봤으니 난 이만 가볼게요. 이거 다 맞고 가요."
옆에 덩그러니 꽂혀있는 수액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려는 하진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다.
"고마워요. 데려다줘서."
"마준희 친구니까 데려다준겁니다."
가버리는 하진. 손을 이마에 얹어보는 지우.
뜨겁던 이마가 다시 온기를 되찾았다.
잠을 다 자고 일어나보니 수액통은 어느새 비어있고, 그 옆에는 엎드려 자고 있는 준희의 모습이 보인다.
준희를 흔들어 깨어본다.
"준희야. 마준희. 일어나."
"으음..."
피곤했던지 일어나려하지 않다가 화들짝 놀라 일어난다.
"내가 언제 잠들었지?"
"언제 왔어?"
"일 끝나고 바로 왔지."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켜는 준희를 보며 장난스레 웃는다.
"피곤하면 그냥 집으로 가지. 내가 무슨 다리 다친것도 아니고."
"걱정되서 내가 집에 갈수나 있겠냐?"
항상 자신의 걱정을 해주는 준희가 고맙기만 하다.
그런 준희를 위해서, 세경이를 위해서 꼭 그 남자를, 아니 하진을 유혹하고 말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본다.
손에 붕대를 감은 채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지우가 도서관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직원들이 하나같이 붕대 같은 지우의 손을 보고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묻는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주다 보니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지우씨!"
"네."
직원의 부름에 돌아보는데 직원이 싱글벙글 미소지으며 말한다.
"지우씨 오늘 회식 있는거 알지? 뭐 먹고 싶은거 없어?"
"저요?"
"응. 2차는 지우씨 먹고 싶은걸로 먹자고 합의봤거든."
"안 그러셔도 되는데.."
"요새 계속 사소하게 다치잖아. 지우씨 먹고 싶은 거 생각해놔."
먹고 싶은거라.. 뭐가 있을까..
퇴근 시간이 되고 직원들이 도서관 앞에 모여 있다.
"1차는 고기집으로 갑니다. 2차는 생각해놨어, 지우씨?"
"음.. 치킨 어떠세요?"
"오~ 치킨 좋지! 치맥 캬! 다들 좋지?"
"그럼요~"
다들 환호하며 고기집으로 향한다.
고기를 먹으며 술잔에 술을 따르는 직원들과 건배를 하며 오랜만에 술을 마신다.
잘 마신다며 지우가 잔을 비우면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채워주고 또 채워준다.
얼굴이 빨개져 취기가 오른다.
그만 마셔야지 하며 술잔을 한쪽으로 치워놓는데, 여직원이 묻는다.
"어머, 지우씨 취한거야? 그럼 재미없지. 내 잔 딱 한잔만 받아라 응?"
"에이.. 아니에요.. 저 그만 마실게요.."
혀가 살짝 꼬인 말투로 정중히 거절한다.
직원이 재미없는지 다른 쪽으로 가버린다.
지우가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후우.. 얼굴 너무 빨갛네."
거울속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볼을 감싼다.
물을 틀고는 손을 적셔 볼에 물을 묻힌다.
그리고는 화장실을 나와 가게 밖으로 나간다.
"바람이나 좀 쐬고 들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