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며 웃는 표정으로 말하는 연습을 한 후 서울 집에 전화했다.수화기 너머에서 반가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엄마의 목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아빠와 대화하고 싶다고 말하자 집에 안 계신다고 했다. 오시면 꼭 전화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볼까 했는데 아빠의 핸드폰 번호조차 모르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도 하고 안절부절 못한 채 두어 시간 정도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아이고 깜빡했어. 출장 간다고 했던 걸.”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를 재빨리 끊었다. 거절감에 치가 떨렸다. 자영업을 하시는 아빠가 출장갈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갈일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출장 짐 챙겨드렸을 엄마가 잊었다는 것도 이상했다. 나와의 통화를 아빠가 피한 것이 분명하다는 거절감이 밀려왔다. 겨우 다스리고 있던 예전의 내가 또 꿈틀거렸다.
재빨리 신경안정제를 찾아 먹었다.
대문을 지키고 있는 누렁이처럼 핸드폰을 지키고 있는 내가 이상했다.연락 오는 사람 없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 된지 몇 년째였기에 안하던 짓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식음을 전폐하며 핸드폰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바탕화면의 미프라친카치아를 어루만져 주는 것일 뿐이라 합리화 했다. 하지만 나는 굶으면서 핸드폰에게는 밥을 꼬박꼬박 먹이며 기다리던 것은 바로 아빠의 전화였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내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아빠가 나와 대화하기 싫다고 한 것 아니냐고 엄마를 채근했다. 딸한테 거짓말을 왜하겠냐면서 믿으라고만 했다. 큰 결심하고 마음 열었는데 이렇게 또 거절감을 안겨주나 싶어서 대화고 뭐고 그냥 이대로 살다 죽겠다는 말을 앙칼지게 쏘아 붙이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이론과 현실은 별개인가 싶었다. 역시 무리한 시도였다 싶은 좌절감에 휩싸였다.
좌절감으로 며칠을 지냈던 까닭에 J씨의 병원 앞에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속에서 뜨거운 화가 솟구쳤다. 길에 우두커니 섰다. 세상에 있는 욕 없는 욕 다하며 내 손톱 위에 자리 잡은 미프라친카치아 장식을 뿌리 채 뽑아서 병원 문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던지 길을 맨발로 걸으며 손톱에서 피가 철철 흐르도록 병원 벽에 긁고 싶은 충동이 내 눈을 파르르 떨게 했다. 정신병원 앞에까지 가서도 그러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제대로 미친년이지 싶었다. 뭣 하러 여기까지 와서 내 성질 더러운 것을 확인해야 하나 싶었다. 성질은 더럽더라도 적어도 간질 환자 같은 발작은 없었는데 새로운 병을 발견하는 날인가 싶었다. 이 얘기를 J씨에게 말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심하게 호응해 주겠지? 아주 불쾌할 정도로 아니 내가 처참한 기분이 들 정도로 호응해 주는 J씨도 여기 길 위에 함께 깔아놓고 미프라친카치아 네일아트 장식이 달려있는 손톱으로 박박 긁어주고 싶었다. 내 생각만이 지배하는 내 세상에서 이미 나는 나뒹굴고 있었다. 이 상태로 병원에 들어가면 공포영화 한편을 찍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발길을 돌렸다. J씨 탓도 아닌데 엄한 불똥을 그녀에게 튀기고 있었다. 곧장 술집으로 갔다. 왜 안 취하냐고 투덜거리며 대낮부터 술을 퍼 마셨다. 생맥주를 들이키며 입술에 묻은 거품을 손등으로 닦아내기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반복했다. 학원 출근이고 뭐고 그 날 이미 내 정신은 날아갔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급격히 침울해졌다.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던 술집 안이 숨소리까지 크게 들릴 만큼 조용하게 느껴졌다. 길거리로 비틀거리며 나왔다. 사람의 온기가 도통 느껴지지 않는 차디찬 길거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앉아서 한숨을 길게 내 뱉으며 하늘을 원망하려 고개를 들었는데 노래방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노래방에 가서 제일 큰 방을 달라고 하자 주인은 혼자인데 큰 방이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혼자서 구르던 뛰던 뭔 상관이냐고 쏘아붙여서 큰방을 얻어냈다. 책이 찢어질 정도로 분노의 탐색질을 하며 연신 거친 숨을 씩씩댔다. 초점 없는 눈으로 벽을 쳐다보니 동요 메들리 리스트가 있어서 그 번호를 눌렀다. 동요 ‘아기염소’가 첫 곡으로 나왔다.
‘파란 하늘 파란 하는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기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빗방울이 뚝뚝뚝뚝 떨어지는 날에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엄마 찾아 으음메, 아빠 찾아 으음메 울상을 짓다가~’
자만만 쳐다보았다.
‘난 아직도 아빠 찾아 으음메 중인데……’ 하는 생각에 고개가 떨구어졌다. 하지만 가사일 뿐이니 노래나 부르자 하고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러나 그 다음 노래도 부를 수 없었다. 다음 노래가 ‘아빠와 크레파스’였기 때문이었다. 왜 계속 아빠를 그리워하거나 아빠와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 가사란 말인가. 말문이 막혀 컥컥거리며 가슴을 칠 정도로 짜증인지 화인지 모를 뜨거운 무엇이 솟구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초록빛 바다’ 동요의 자막이 나왔다. ‘초록빛 바다’라는 자막이 연거푸 나오는 화면을 멍하게 보고 있다가 나도 그렇게 초록빛 바다를 보고 싶고 어루만짐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기가 있는 정신에 초록색은 미프라친카치아의 색이라는 생각이 극대화되면서 왠지 바다에 가면 미프라친카치아의 초록과 바다가 합쳐진 ‘초록빛 바다’라는 어떤 새로운 무엇인가가 있을것만 같았다. 밖으로 뛰어 나가서 손을 들고 외쳤다.
“부산!”
택시들이 내 앞에 섰다가 부산이라는 말에 몇 대나 그냥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