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로 찾아간 정신병원은 을씨년스러운 골목에 위치한 소박한 2층 건물의 1층이었다. 소리 소문 없이 진료를 받아보자 싶어서 작은 곳으로 갔다.
특히 그곳이 맘에 드는 이유는 좁은 시멘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가정의학과’와 ‘정신과’의 문이 마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두 개의 아담한 개인병원이 마주한 덕에 주위의 이목 시경 쓸 일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 생각되었다.
가정의학과를 가는 척 하다가 들어간 그곳에는 단 한 명의 환자만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어서 더 안심이 되었다.
나무 관(棺)처럼 길쭉하고 폭이 좁은 옻칠한 책상이 출입문 바로 앞에 있었는데 그 곳에서 접수를 하고 상담료를 수납했다.
병원 나름의 환자 배려 차원에서 설치해 두었을 따뜻한 차가 담긴 철제 온수통을 기준으로 왼쪽은 진료신문이 오른쪽에는 대기실문이 있었다. 병원의 구석구석이 어렸을 적 다녔던 보건소를 연상하게 하는 차가운 내부였지만 대기실은 판이하게 달랐다.
대기실 문을 통과하자 따뜻한 분위기의 내부가 펼쳐졌다. 안락해 보이는 1인용 하얀색 소파 일곱 개가 한쪽 벽을 타고 나열되어있었다. 두 번째 소파에 환자 한명이 앉아 있었기에 하나를 띄우고 네 번째 소파에 앉았다. 엉덩이가 아래로 푹 꺼졌을 정도로 푹신했다. 앉은 눈높이 앞쪽 벽면에는 초록색의 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벽 바로 아래에는 초록색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실내 미니 정원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정신과 병원답게 안정을 취하며 기다리도록 배려한 그 공간으로 나를 안내한 간호사는 네장분량의 ‘예진 설문지’를 건네주며 작성하라고 했다. 여러 질문에 체크를 하면서 괜히 왔나 하는 고민이 뇌 속에서 널뛰기를 해댔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은 설문지의 빈칸을 메우고 있었다.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새가 들어있어야 할 새장 안에 초록색 식물이 뿌리내린 작은 화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빨간색 가시줄기가 노란색 새장의 타원형 살들을 지그재그로 통과하고 있었다. 살펴보고 있노라니 신기했다. 이미 자유를 박탈한 특성이 있는 새장을 한 번 더 결박하는 빨간색 가시줄기는 올가미 같기도 했다. 아니, 새장속의 초록색 식물이 흘리는 피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착시현상으로 다양한 생각이 들게끔 연출된 작품인지 모르겠으나, 새장에 갇힌 채 피를 흘리는 그 식물이 궁금해서 가까이로 갔다.
그 식물은 ‘미프라친카치아’라고 써진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마치 초록색 색소가루와 설탕을 섞어 만든 솜사탕처럼, 보드랍고 얇은 초록색의 가늘고 긴 세모모양의 잎들이 섞여 동그란 모양을 이루고 있는 식물이었다. 다르게 포현한다면 씨실과 날실이 교차해서 짜여진 천처럼 연두색과 초록색 솜털같아 보이는 것들이 교차하며 규칙적으로 짜여진 잎이었다. 그 여러 장의 잎들이 섞여 둥근 형체를 하고 있는 것이 신비로워 보였다. 희귀한 식물이라서 보호하기 위해 새장에 넣어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쓸쓸하고 고통스러워보였다.
감정이입이 된 것이었을까? ‘미프라친카치아-사람의 영혼을 가진 식물’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는 ‘윤주-식물의 영혼을 가진 사람’ 이라고 써서 내 가슴팍에 달아야만 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새장을 옭아매고 있는 빨간색 가시줄기를 뜯고 있었다. 가시에 찔려 내손가락에 피가 나는 것은 마치 그 식물이 흘리는 피 같았다.
얼마나 몰두 하고 있었던지 내 이름이 호명되는지도 몰랐다. 간호사가 내 손을 잡고 손가락의 피를 소독 솜으로 닦고 밴드를 붙여주고서야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잠깐의 휴식 후, 자신을 따라오라는 간호사의 뒤통수를 보며 대기실 문을 빠져나왔다. 간호사가 먼저 열고 들어간 진료실문을 나는 통과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열렸다가 닫힌 문틈으로 보인 흰색 가운을 입은 여의사는 푸근해 보이는 인상이 아니었다. 형광등의 창백한 불빛 아래 그 여자의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푹 꺼진 볼의 해쓱함이 선명했고 층지지 않은 일자 단발머리가 각진 턱선 옆에 흐트러짐 없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병원을 나갈까 말까, 진료실을 바로 코앞에 둔 그 순간에도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였다.
내 생각을 읽은 것이었을까?
문틈 사이로 보였던 인상 차가운 여의사가 문을 열고 나와 웃으며 어서 오라고 했다. 정신과 의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심술도 보유한 사람인가 싶었다. 하여튼 내가 예상했던 의사의 차가움은 아니었다. 이런 정성이 있는 의사라면 한번 속아보자 싶어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했다. 흰색처럼 보일 정도의 아주 옅은 하늘색 벽이 차가우리만큼 차분하게 만드는 실내였다. 책장과 접이식 보조의자 등 시선을 분산시킬 것 같은 물건들은 일제히 문 쪽에 있었다. 의자와 탁자는 모두 흰색이었는데 서로 마주보고 앉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몇 분의 정적이 흐르는 동안 그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독심술로 내 마음을 읽고 있는 중일까 의심이 생길 정도로 그 여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나는 팔을 엮은 채 왼쪽 팔에 얹어진 오른손 검지로 시계 초침에 맞춰 팔꿈치를 간헐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차트만 보고 있던 그 여자처럼 나 역시 시계만 보고 있었다. 내가 왜 돈쓰면서 이 여자와 대면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싶었지만 이미 수납을 하고 왔으니 그냥 어떻게 하나 살펴나 보자는 심정으로 시계를 보던 시선을 옮겨보기로 했다. 파묻히듯 소파에 앉아서 눈을 사선으로 치켜뜨고 의사를 건너다보았다. 그 여자는 나를 살피고 있었겠지만 나는 그 여자를 구경하고 있었다. 비싼 동물원 구경 한 번 한 셈 치고 참아주되 다시는 이 여자를 볼 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상담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몇 곡만 들으면 아쉽게 지나가는 시간인데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침묵이 좀 더 길어지자, 50분 상담에 18만원이나 하는 이 비싼 시간을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때우는 건 아닐지 의심이 생겼다.
“이렇게 시간 때우며 돈 벌어요?”
생각으로만 있어야 할 말이 눈치 없이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