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이 옆에 보이는 모범택시를 탔다. 꼬인 혀로 부산바다를 가자했고 타자마자 무작정 ‘초록빛 바다’ 노래를 불렀다. 목청껏 부르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아저씨가 깨우며 해운대라고 했다. 해운대라는 것에 당황해하는 나에게, 기억을 상기시켜줬다. 계산하려고 묻자, 123킬로정도 달려서 17만원이고 도로 통행료는 별도라고 하면서 영수증을 내밀었다. 신용카드로 결제되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부산에 있는 바다로 가자고 말하고는 잠들어버린 탓에 일단 해운대로 가긴 했지만, 부산에 간 정확한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기사가 말했다. 직무에 충실하려는 기사의 말을 자르며 그냥 바다만 보고 갈 것이라고 했다. 술기운이 있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아저씨는 올라가는 요금은 안 받을 테니 잠깐 바다만 보고 오라고 했다. 아무리 모범택시라 해도 분명 과잉친절이라 생각되었다. 흰머리 희끗희끗한 그 아저씨를 경계해야 할 대상인지 아닌지 살폈다. 그것을 눈치 챘는지 아저씨는 내가 오해하지 않게 설명해줬다. 어차피 대구까지 빈차로 가야하니, 잠깐 바다만 보러 온 것이 맞다면 기다려주겠다는 말이었다. 재탑승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내렸다. 다리 힘이 풀렸다. 다리로 땅을 딛고 서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새삼 깨달아졌다. 겨우 몇 발자국 옮겨 바닷가에 앉았다. 해운대는 찻길과 바닷가가 붙어있어서 택시 앞 내린 바로 그곳이 바닷가 모래사장이나 다름없었다. 술이 취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취기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을까? 혼잣말을 아저씨에게 해버렸다.
“내 마음이 검은 바다여서 초록빛 바다를 보고 싶어 왔는데 여기서도 볼 수가 없네요. 아직은 검은 바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안 좋은 기분으로는 바다를 오래 보는 것 아니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바다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낯설고 허전한 그 바닷가에서 잠깐 파도소리를 듣다가 혼잣말처럼 아저씨에게 내 속내를 말해 버렸다.
“아저씨처럼 간섭해 주는 아빠가 그립네요. 아빠와 등 돌리고 산지 오래 됐거든요. 큰 맘 먹고 화해해 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속상한 맘에 술 마시고 여기까지 왔어요.”
말해 놓고는 초면에 그런 말까지 한 것이 민망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손에 만져지는 모래를 뭉쳤다가 흐트러뜨렸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말문을 열었다.
“손님 입장에서는 내가 너무 오지랖 넓은 늙은이라 생각하겠지만, 딸 같아서 그냥 지나쳐 지지가 않네예. 나도 아부지와 등 돌리고 살았었거든예. 날 낳아주신 어무니와 이혼하시고 재혼하신 아부지는 아들 하나에 딸 넷을 키우시게 되었지예. 도축장에서 일하셨는데 나에겐 무섭게만 대하시던 아부지가 가끔 여동생들만 당신이 일하시는 곳에 데려가시더라구예. 윽쑤로 서운 하드라구예. 나만 외톨이 같아서 오랫동안 불만은 갖고 살았구예. 18살이 되던 해에 아부지에게 따질 계획으로 도축장으로 찾아 갔지예. 그란데 거기서 평소와 다른 아부지의 모습을 보았지예. 서너 명의 아저씨들이 소를 끌고 가려는데 소가 막 저항했으예. 그때 누군가 아부지를 불렀고, 아부지는 소한테 무슨 말을 했으예. 몇 분 지나니께 거짓말처럼 소가 순하게 움직이더라구예. 소를 힘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다루는 아부지를 보고 따지려던 내 마음을 내려놓고 아부지의 다른 모습을 보려고 노력했지예. 알고 보니 아부지는 참 따뜻하신 분이더라구예. 나에게만 엄하다고 생각했던 불만은, 의붓동생들과 차별 대우 받는다는 내 생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더라구예. 손님,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어른 대 어른으로 아부지 찾아서 한 인간으로의 아부지를 겪어 보는 것도 화해의 방법이지 않을까 싶네예.”
경청하고 있었는데 아저씨는 내가 의식되었는지 나이 드니까 주제 넘는 잔소리가 많아진다는 말을 덧붙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저씨 손가락 사이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처럼 내 속의 것을 태운 연기가 밤 바닷가로 흩어져 하늘로 올라가는 듯 했다. 옳은 소리 해줄 아저씨를 적절하게 만나도록 어떤 존재가 조종하는 듯 한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은 야릇했지만 머릿속은 명료해 지는 것 같았다. 밤바다만 바라보기를 어느정도 했었을까?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철석거리는 파도소리에 맞춰 두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예기치 않은 손님으로 인해 두 시간을 소모하게 한 것이 아저씨에게 죄송할 따름이었다. 그 어떤 어둡고 침침한 곳이라도 그곳에서 진짜 진정성, 사랑, 용서, 치유, 회복을 대면하게 되면 그 분노의 일탈은 아주 성공적이라는 말을 파도소리가 해주는 듯했다. 밀려온 파도가 내 앞에서 하얗게 부서져 거품을 만들고 빠져 나가는 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내 속의 아이가 어느덧 어른으로 성숙된 것 같았다. 부산에서 바다를 봤고 초록빛같이 싱그러운 메시지를 준 아저씨를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난 초록빛 바다를 봤다. 대구로 오는 동안 다시 아빠와의 만남을 시도해 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연락도 없이 결근해서 수업에 지장을 준 이유로 시말서를 썼고 보충수업을 해 주느라 좀 더 분주한 일상이었지만, 별탈없이 만 사흘이 지나고 있었다. 늘 텅텅 소리 나게 입을 벌리고 배고파하던 우편함에 웬일로 편지가 들어 있었다. 발신이니 아빠였기 때문에 눈의 휘둥그레졌다. 관계회복하고 싶은 내 진심이 통했나 보다 싶어 벅찬 가슴으로 봉투를 뜯었는데 맙소사! 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