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으로 출근하기 전 오후1시에 노란 장미를 포장한 꽃다발을 들고 택시를 기다렸다. 다섯 번 만나서 50송이를 준비했다. 꽃말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던 것으로 기억되어 J씨가 여자인 까닭에 노란 장미를 선택했다. 누군가에게 선물해 보라던 J씨가 내준 숙제를 하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J씨에게 선물할 생각으로 준비한 것이었다. 택시에 타자 기사는 경쾌한 목소리로 어떤 좋은날인지 물었다. 대답할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고 귀찮기도 해서 대꾸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기사는 더 큰 목소리로 그렇게 큰 꽃다발은 사랑고백용인데 고백하러 가느냐 아니면 프로포즈 받은 것이냐고 물었다. 대답을 회피했다. 내 무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장난기 섞인 기사의 목소리는 좁은 택시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기사 뒤통수를 꽃으로 실컷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그래도 꾹 참고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만 할 줄 알았는데 기사는 수다스러움을 겸비한 장난에 충실한 것 같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윗니로 깨물고 화를 누르고 있는데 그는 거울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부끄러워 할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기분 나쁘게 웃어댔다. 기사 아저씨 혼자 짐작해서 상상 속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꼴이 역겨워, 용이 입에서 불을 뿜어내듯 속에서 끓던 화가 입 밖으로 뿜어져 나오고 말았다. J씨를 만나기전의 내가 불덩이가 되어 고개를 치켜든 것이었다.
“이씨! 아저씨는 입으로 운전해요?!”
운전석 대각선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당신 마누라한테나 갖다 주라고 하면서 조수석 쪽으로 꽃다발을 던지듯 넘겨줬다. 그제야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아저씨가 장난기 있던 목소리와 표정을 급하게 삼키고 정자세로 앉아 운전만 했다. 택시의 좁은 공간에서 서로 싫은 공기를 섞어가며 앉아있기가 짜증나서 내려달라고 할까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기사의 말이 먼저 들려와버렸다. 최대한 태연한척하며 내렸다.
택시 사건의 화가 덜 풀린 표정으로 상담실로 들어갔다. 내 표정과는 상관없이 J씨는 여느 때처럼 상냥한 목소리로 반겼다.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는 얼굴에 도드라진 광대뼈만이 밉상스럽게 내 눈에 들어왔다. 편안하게 앉으라고 준비된 푹신한 소파에 앉지 않고 문 옆에 여유분으로 옹색하게 자리 잡은 알루미늄 접이식 의자에 털썩 앉는 동시에 굳은 표정까지 고수하면서 온 몸으로 내 불편한 심리상태를 표현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J씨에게 물어ㅘ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택시에서 있었던 일을 아이가 엄마에게 일러바치듯 쏟아냈다. 조금은 변한 것 같다가 제자리인 것으로 보아 병원을 여러 번 찾아온 것이 무의미 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것까지 말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상하게 의사 J씨 앞에만 가면 생각으로만 있어야 할 것들까지 낱낱이 말하곤 했다. 일단 흥분하면 듣는 사람에게까지 내 속의 화를 전염시키듯 숨 가쁜 속도로 말을 쏟아냈다. 말할 상대가 없어서 나 자신도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자기가 뛰는 것도 아닌데 등에 엎인 사람이 덩달아 숨찬 소리를 내듯이 J씨는 함께 숨 가빠 했다. 실컷 택시에서 있었던 일을 시무룩한 표정과 말투로 말하다가 갑자기 나 자신에게 화난다는 말을 불쑥 했다. 뱉어놓은 말을 거둘 수가 없어서 눈을 말갛게 뜨고 탐색하는 눈길로 J씨를 살펴보았다. J씨가 왜냐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가 푸는 표정을 지었다. 자못 미심쩍은 눈길로 나를 건너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내 감정을 얼굴 뒤로 감추려 애쓰며 J씨는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일주일 동안 속상한 일이 많았었군요.
저 같아도 화가 심하게 났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윤주씨는 자신을 화나게 한 다른 것들에게
화살을 끝까지 돌리지 않고 자신에게 화가 나는 감정이 생겼을까요?”
심하게 호응하는 것은 J씨의 직업상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알몸수색을 당하는 것처럼 모멸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대답을 은근슬쩍 흘려버리려하지 J씨의 치켜뜬 눈썹이 내려오면서 입을 ‘우’모양으로 쭉 내밀었다가 풀었다. 나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옆 건물의 공사하는 소음도, 상담중 감정이 격해져서 고함치며 울부짖는 소리마저도 철저하게 차단되는 진료실 겸 상담실이었던 까락에 J씨방의 정적은 빈틈없이 단단했다. 정적만큼이나 단단해진 내 마음상태로 J씨의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더 말하기 싫은 불쾌감이 들었는데 왜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택시 아저씨가 꽃다발에 관심을 보이자 누군가에게 선물 하는 제자신이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 들면서 창피해지는 거에요. 그래서 창피함을 감추려고 화를 내고 꽃다발도 줘버렸거든요. 치료받는 중인데도 이러는 제 자신에 대한 화인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하지 않고 삼켜 버렸다. J라는 이 여자는 정신과 의사일 뿐 아니라 독심술사 인 것 같았다. 내 속에 가둬 버린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하려했다. 자꾸 호응해 주는 그 자체가 나를 더 처참한 기분이 들게 해서 J씨와의 인연도 끊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제 방식대로 살래요! 고쳐 보려는 자체가 너무 피곤하네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내용은 분명했지만 착잡하고 불안한 목소리로 말 한 후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에게 J씨는 변함없이 안정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상대방이 더는 화를 낼 수 없게 만드는 미소를 머금은 채…….
“윤주씨 맘 편한 대로해도 좋아요. 하지만 오늘은
기왕 온 거니까 잠깐 데이트 어때요?”
다정함이 지나쳐서 친절병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J씨의 말투였다. 그와는 판이하게 다른 냉정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싫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은 거절하면서도 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기만 했을 뿐 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대로 서있었다. 왜였을까?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날 뭐에 홀린 것처럼 J씨의 말을 다 듣고 호응까지 했다는 것이다. 특유의 광대뼈와 눈가 사이에 잔주름을 깊게 새기며 웃는 J씨의 표정은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발은 한발자국도 내 딛을 수 없었고 입은 바짝바짝 말랐기 때문이었다. 예전처럼 내 맘대로 살겠다는 나에게 J씨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J씨의 이야기 좀 들어달라고 하면서, 내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고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내가 다시 자리에 앉도록 유도 했다. 못이기는 척 상담의자에 앉은 나에게 탁자에 있는 찻잔을 들어 함께 마시자고 권했다. 묏대추나무의 씨인 ‘산조인(酸棗仁)’을 달인 차라고 했다. 찻잔을 들고 뜨거움을 식히는 척 입김을 후후 불면서 내 속 저 깊숙이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을 가냘프고 길게 만들어 입 밖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서너 번 정도 그렇게 하고 나니 조금은 진정된 듯해서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손으로 끌어 모아 숨을 들이 쉬어 보았다. J씨가 하는 행동을 따라해 본 것이었는데 내 입맛을 자극하기는커녕 피어오르는 김을 타고 느끼한 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해서 괜히 냄새를 맡았다고 후회했다. 달작지근하고 시큼하면서 약간의 느끼한 기름 냄새까지 내서 못 먹겠다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를 관하기 전까지의 상황이 떠올라서 말할 수 없었다. 민망했는데 차를 마시는 핑계가 오히려 다행스럽다 생각되어서였다. 코가 막힌 사람처럼 입으로 숨을 호호 불어가며 겨우 절반정도를 마셨다. 나와는 달리 J씨는 자연스럽게 지그시 눈을 감고 차를 음미하며 마셨다. 그녀는 산조인 차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위안을 거의 받은 것 같은 때 감았던 눈을 뜨면서 입도 열었다. 병원에 있는 것은 아프리카에 사는 미프라친카치아의 모형이라고 했단. 조화(造化)라는 것에 놀라는 나에게 J씨는 그 식물에 대해 말했다. 아프리카에 사는 식물인데 싱싱하면서도 신비롭게 생겨서 보는 사람들마다 만지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이 손끝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그 식물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프라친카치아를 위해 멀리서 바라만 보기 때문에 늘 외로운 식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손길 닿았던 사람이 계속 관심을 가져주고 만져주면 죽지 않고 오히려 더 싱그럽게 피어난다고 했다. 그쯤 들었을 때 무슨 동화 이야기 하는 것 같다며 자신 없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J씨는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수십 년 동안 '미프라친카치아'에 대해 연구한 박사가 밝혀낸 사실이라고 덧붙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