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 소설>
미프라친카치아
(미친 + 가짜 + 츠프라카치아)
[부제목]
1. 뇌 세포의 널뛰기
- 뇌의 분주함
2. 미친 ‘인(人)’ 이라는 느낌표! ‘현대인’이라는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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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살인하고 말았다. 파티를 하며 상처폭죽을 터뜨리고 무덤을 만들었다. 저주의 욕설이라는 포장지로 빈틈없이 싼 내양심도 함께 파묻어버렸다. 지옥에 떨어진다 해도 그 살인을 후회하지 않을 생각으로 14년을 살아왔다. 어느 누구도 나를 살인자라고 지목하지 않았고 나 또한 잔잔한 호수위의 백조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싸늘한 주검 위에 얹어줬던 잔인한 선물 포장지를 누가 뜯은 것일까? 칼 끝에 핀 꽃이 과연 있을까? 손톱 끝에 핀 미프라친카치아를 손톱밑의 살이 뜯어질 정도로 뽑아서 내동댕이쳐 버렸다.
뼛속까지 저려오다 못해 심장까지 파고드는 송곳니 드러낸 추위가 엄습하는 날이었다. 설 연휴 전날이라는 이유로 녹아내릴 듯 행복한 웃음이 얼굴에 걸려있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불행과 행복이 구별되지 않아 그저 속내를 감추고 살던 일상중의 하루일뿐이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는 나에게 추위는 마치 전기충격기를 몸에 갖다 댄 것 같은 고통으로 다가왔다. 추위의 송곳니가 더 뾰족해지기 전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음악 시디를 고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온기를 얻어내고 있었다. 학생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틀지도 않은 헤드폰을 의지해 못 들은척 했다. 음반가게 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헤드폰을 재빨리 들어 머리띠를 하듯 머리와 귀에 얹었으니 말이다.이 헤드폰의 크기만큼 커다란 소리로 음악을 감상하고 있는 중이니 그냥 지나쳐 가길 바란다는 뜻으로 귀를 덮고 있는 헤드폰의 둥근 귀마개부분을 손으로 덮은 채 고개짓을 해댔다. 이쯤 했으면 지나갔겠지 싶어 두 손의 위치와 목의 까딱거림은 유지한 채 눈동자만 굴려 힐끔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뿔싸! 그 찰나 눈이 마주쳐버렸다. 교복 입은 여자 중학생 두 명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피할 방도가 없던 터라, 학생들을 반가워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멋쩍은 행동을 해보였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뻣뻣한 체조 동작처럼, 학생들이 다가오는 걸음 숫자를 구령삼아 어색하게 움직였다.
학생들이 다가오는 한걸음에 목의 까딱거림을 멈췄고 두 걸음에 두 손을 이용해 헤드폰을 목뒤로 빼냈다. 세 걸음에 억지웃음을 입가에 지어보였다. 네 걸음에 내 걸음을 옮겨서 헤드폰을 벽에다 걸고 돌아섰다. 다섯 걸음에는 학생들의 인사에 화답한다는 듯 오른쪽 다섯 손가락을 얼굴 옆에서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여섯 걸음에 멈춰선 학생들에게 ‘싱싱하게 만개한 꽃이 향기 풍기듯’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반가운 척 인사 했다. 이쯤 했으면 학생들이 눈치껏 일곱 걸음에는 뒤돌아서서 여덟, 아홉, 열 걸음 나로부터 멀어져 가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그러나 여섯 걸음에서 멈춘 발걸음은 진전이 없었다. 그저 내 눈앞에 딱 버티고 서서 입을 나불거렸다. 무슨 음악을 듣고 있었느냐 부터 시작해 중요하지도 않은 쫑알거림을 계속 이어갔다. 너희가 아는 척 하는 것이 싫고 너의 쫑알대는 주둥이를 헤드폰으로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니 닥치고 꺼지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얼른 말을 돌렸다.
“ 소라야 옆 친구는 교복이 다르네? "
소라는 동생이라고 답했다. 동생이라는 학생에게 웃는 시늉을 하며 오른손을 오른쪽 귀 옆쯤에서 살짝 흔들어 줬다. 소라동생의 눈빛에는 반가움이 스치는가 싶더니 놀라움이 맺혔다. 경악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견고한 놀라움이었다. 이유를 알겠기에 명절 연휴 잘 보내라는 말로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돌아섰다. 내가 다른 시디 진열대로 옮기자마자 두 학생이 소곤거렸다. 속삭인다고 하는 말이었지만 센 경상도 억양 때문에 내 귀에는 너무 생생하게 들렸다.
“언니야, 선생 맞나? 손톱이 간 파묵는 구미호 같드라.”
“쉿!”
“ 하긴, 명절이라꼬 며칠간 기분전환으로 깔롱지깃는 갑따.”
“그칸 갑따. 평소엔 저것보다는 짧으니까네.”
“음미야~ 평소에도 저렇단 말이가? 학원에서 안 짤리는 갑따?”
“못 들었나? 수학강사계의 여신이라는 이윤주 쌤이다카이.”
“음마야~ 가가 가가? 어쩐지 앞머리 없는 긴 생머리 하며 하얗고 조막만한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딱 들어가 있는 이목구비가 여신포스다 싶드라카이~"
“그케서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딱 알아봤다 아이가~ 멀리서 봐도 생기 있게 광 나는 피부가 눈에 딱 띄드라 카이. 스키니진이 착 달라붙게 잘 어울리는 저 실루엣 봐봐라카이.여신급 모델 포스다아이가~ 내가 윽쑤로 좋아하는 쌤이다. 남학생 여학생 가릴것 없이 완전 인기 많데이~ "
"수학쌤하기에 외모가 넘 아깝네. 근데 그카믄 뭐 하겠노. 매력적이다 싶어서 졸졸 쫓아왔다가도 저 간 파먹을 것 같은 손톱을 보고는 비명지르면서 도망가겠다카이.”
“부러브서 그카나?”
“부럽냐꼬? 쳇! 여신급이면 청순모드로 가주야지 시상에나 하고 있는 꼬라지는 완전 날라리 같다. 저 간 파먹을 것 같은 손톱 우짜겠노~ 완전 옥의 티다! 학원에서 분필 안 잡나? 저 손톱으로는 분필 아니라 연필도 못 잡겠다카이.”
그 뒤로 쿡쿡 웃어대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나에게는 눈 파먹겠다 간 파먹겠다 정도의 말은 충격도 아니었다. 내 속은 이미 오래전에 파 먹혀서 저런 반응에 화내는 법도 파 먹혀 버렸기 때문에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익숙했다. 화? 화 날 리 없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경악하는 반응을 즐기는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못들은 척하며 가게 밖으로 나왔다. 곧바로 내 산소 호흡기를 찾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