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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12화 달달한 시집살이
작성일 : 20-09-25 03:51     조회 : 31     추천 : 0     분량 : 7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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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2화 달달한 시집살이

 

 노미가 이제 집안일에 좀 익숙해지기 시작한 어느 날 저녁, 저녁상을 물리고 났는데 석이가 장떡을 한 바구니 들고 건너왔다.

 

 진화네 집은 부모님이 쓰는 큰방이 있고, 큰 마루를 가운데 두고 건너에 중간크기의 건넛방이 있고, 건넛방에 붙은 부엌이 있고 부엌 옆에 진화와 노미의 작은 신혼부부방이 있었다. 마당을 중간에 두고 독채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사랑방처럼 쓰는 방이랑 베틀이 있는 방이 붙어있는 조금 큰 독채이고, 다른 하나는 메주를 띄우거나, 짚으로 짚신을 만들기도 하고 꼬아서 새끼줄을 만들기도 하는 작업방이었다.

 

 진화는 동네 친구가 보자고 해서 저녁 먹고 난 후 외출하고 집에 없었고, 석이는 남화와 윤화가 있는 사랑방에 가서 어울리고, 태화 민화 정화는 자기들 자는 건넛방에 모여 있었다. 밤 야식이 먹고 싶을 시간이라 노미는 얼른 아직 따근 따근한 장떡을 부모님 방이랑 사랑방 도련님들한테 넣어주고, 외출한 진화 몫도 따로 챙겨두고는 나머지 장떡을 가지고 막내 도련님들이 있는 건넛방으로 갔다. 막내들은 이미 형수가 장떡을 가지고 올 줄 알고 잔뜩 기대하며 기다리는 중이었다. 노미는 별생각 없이

 

 “도련님들, 장떡 좀 드시소.”

 

 하며 건넛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태화가

 

 “예,”

 

 하면서 그릇을 받아들었다. 순간 문 옆에 숨어있던 정화가 이불을 들고 있다가 노미에게 와락 뒤집어씌우고는 뱅글뱅글 돌려서 바닥에 넘어트렸다. 셋은 ‘와하하’ 웃으며 이불에 싸인 채 바닥에 넘어진 노미를 손으로 두드려댔다. 그것은 개구쟁이 도련님들이 늘 서로에게 하는 장난이었다. 이런 소란에 사랑방에 있던 형들이 건넛방으로 뛰어왔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온 형들은 방안의 광경에 그만 입을 턱 벌리고 말았고, 형들 표정을 보고서야 동생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이누무 자슥들이! 돌았나!”

 

 하고 윤화가 소리쳤다. 영문을 모르는 세 동생들은 그저 눈만 껌뻑거렸다.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형수를 멍석말이를 하노!”

 

 “멍석말이가 아니라... 이불말인디...”

 

 하고 태화가 더듬거리자, 남화와 석이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냥, 우리는 형수님 재미나게 해드릴라꼬...”

 

 하며 정화가 변명하고 있는데, 그때, 이불 속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민화가 얼른 이불을 헤집자 머리는 산발이 되고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노미의 얼굴이 드러났다. 하얗게 질린 형수님의 얼굴을 보고서야 세 동생은 ‘아차, 큰일 났구나.’ 싶었다.

 

 “형... 형수님...!”

 

 하며 너무 놀란 민화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형수님, 죄송합니더. 놀라셨습니꺼? 지는... 지들은... 그냥 우리끼리 하는 장난질을 한긴데....”

 

 하며 민화가 울먹였다.

 

 “죄송합니더. 많이 놀라셨습니꺼?”

 

 하며 민화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민화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너무 미안해하자 노미도 놀랐다.

 

 “아입니더. 지는 이래 말려본 적이 없어가. 쪼매 무서버가...”

 

 그러자 민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무서벘다고예?”

 

 하며 노미 보다 더 놀라서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다.

 

 “아입니더, 아입니더, 괜찮습니더.”

 

 하는데 이미 민화는 울음이 터져버렸다.

 

 “형수님! 잘못했습니더!”

 

 하며 민화는 노미를 와락 부등켜 안고는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노미는 하는 수 없이 어색하게 민화를 부둥켜안고 등을 두드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화가 엉엉 울며 민화를 밀쳐내고 노미를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형수님! 지가 더 잘못했습니더!”

 

 그러자 이번에는 태화가 더 큰 소리로 울며 정화를 밀쳐내고 노미를 부둥켜안고 통곡을 한다.

 

 “아입니더! 지가 더 더 잘못했습니더!!”

 

 그렇게 셋은 통곡을 하며 형수님을 부둥켜안고 서로 자기가 더 잘못했다고 울어댔다. 동생들 하는 꼴을 기가 막힌 듯 보고 있던 형들은 각자 한 놈씩 붙잡고 뒤통수들을 때리며

 

 “잘못한 줄 알았으면 떨어져 앉아라. 이누무 자슥들아!”

 

 하며 발로 밟고 목을 조르고 팔을 비틀고 했다. 난리 난리 그런 난리가 없었다. 당황한 노미가 ‘고마 하이소.’ 하며 아무리 말려도 이미 한데 엉겨 붙어서 때리고 밟고 조르고 하는 장정 여섯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노미는 온 힘을 다해 고함을 쳤다.

 

 “고마 하이소!!”

 

 그러자 여섯 도련님들은 순간 얼음이 되어 노미를 보았다. 노미는 자라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에 순간 기가 막혔다. 노미도 동생이 있고, 사촌들도 있지만 다들 소꿉놀이나 하고 놀았지 이렇게 치고받고 싸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노미는 도대체 이 집 형제들 기운을 자기가 앞으로 어찌 감당할까 싶었다. 하지만 노미는 용기를 내었다. 이랬든 저랬든 자기가 제일 맏형수 아닌가.

 

 “고마 하이소! 마, 됐심더. 장떡 식슴더, 어서 드시소.”

 

 하고는 한쪽에 나뒹굴고 있는 장떡 접시를 들고 장떡을 한 개씩 손에 쥐여주었다. 상황 끝. 노미는 그제야 자기가 남자들만 우글우글한 집에 시집을 왔구나 하고 실감했다.

 

 “워매~, 착한 우리 형수님은 동상들이 거시기혔는디 때리지도 않고 막 안아주고 그라십니까잉? 나가 잘못해도 막 안아주고 그라실랍니까잉?”

 

 하며 석이가 방글방글 웃으며 말하는데 옆에 앉은 윤화는 보지도 않고 석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퍽 쳤다. 그렇게 맞고도 좋다고 웃는 석이 얼굴을 보니 노미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아무래도 이불은 좀 빨아야 되지 싶습니더. 냄새가....”

 

 하고 노미가 조심스레 말하자,

 

 “다들 형수님 말씀 들었나! 내일은 이불 빤다. 알았제!”

 

 하고 윤화가 호통을 치자

 

 “빨래는 정화 담당 아이가?”

 

 하고 태화가 말했다.

 

 “담당이 어딨노! 다 같이 해라. 알았나?”

 

 윤화의 호령에 다들 ‘예!’ 한다. 이럴 때는 참 의좋은 형제들이다. 외출에서 돌아온 진화가 건넛방으로 들어서며

 

 “무슨 일 있었나?”

 

 하는데 동생들과 노미 모두 장떡을 뜯어 먹으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로 흔들었다.

 

 

 

 이 ‘이불말이’는 다른 집들도 하는 놀이 같은 장난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집 남자들이 좋아했던 것 같다. 어릴 때 삼촌들한테 이렇게 ‘이불말이’를 당해보지 않은 조카들이 없었다.

 

 아마도 이 ‘이불말이’가 할아버지 형제들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 집안 전통 놀이 같은 것이었나보다. 사촌 언니는 세 살 때 운다고 삼촌들이 한번 말았다가 아기가 기절할 만큼 놀라는 바람에 다시는 안 말렸고, 사촌 오빠도 나도 여러 번 말려봤는데 처음에는 막 울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했지만 몇 번 말리다 보니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며 삼촌들이 풀어줄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나중에 삼촌들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 삼촌들 그러니까 노미의 아들들은 모두 어릴 때 그 삼촌들,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 동생들한테 이렇게 ‘이불말이’를 엄청 당하셨다고 했다. 하여튼 장난 심하게 치고 개구진 것은 집안 내력인 모양이다.

 

 그 일 이후로 노미는, 우리 할머니는 여자 형제 없이 남자들끼리만 지내다 보니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치고받고 할 줄만 알지 서로 살뜰하게 챙겨주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시동생들에게 앞으로 가르칠 것이 많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여튼,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노미는 장난꾸러기 도련님들 때문에 놀랄 일도 많고 웃을 일도 많았다.

 

 

 다음 날, 형제들은 모두 개울에 이불들을 들고 가서 다 같이 빨았다. 석이랑 미순이도 자기 집 이불이랑 빨래들을 다 들고 나왔다. 빨래를 하는 건지 물장난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다들 신나게 방망이질을 하다 보니 홀딱 젖어서 도련님들은 아예 목욕까지 다 하고 왔다.

 

 

 

 며칠 후, 윤화는

 

 “오다 줏었습니더. 드시소.”

 

 하며 어디서 따왔는지 오디가 가득 든 바가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바가지를 든 손톱 밑이 새까맣다. 노미는 윤화의 손톱을 보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참고로, 오디는 초여름에 나는 즙이 많고 까만 열매로 작은 산딸기처럼 생겼다. 오디는 알이 워낙 작고 부드러워서 나무에 달린 열매를 손으로 조심해서 따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손톱 밑이 새까맣게 된다. 윤화 손톱이 새카맣게 된 것은 오디를 오다 줏은 것이 아니라 일부러 나무에 올라가 따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오다 줏었다고 하니 노미는 우스웠던 것이다.

 

 “형수님, 지가 한 살 오빠인 거 아시지예? 형님이 미리 정한 데서 파토 안났으믄 지랑 혼인할 뻔한 거 아십니꺼?”

 

 하며 윤화는 씩 웃었다. 말은 항상 쌀쌀맞게 하는데 그렇게 한 번씩, 아주 가끔 한 번씩 웃으면 햇살이 따로 없었다.

 

 남화는 언문책(한글책)을 한 권 들고 서 있다가

 

 “형수님, 실은 지가 언문을 잘 못 읽습니다. 언제 가르쳐 주시겠습니꺼? 어무이가 형수님 오시믄 꼭 형수님한테 언문을 배우라 하셨습니더.”

 

 하며 간절한 눈으로 노미를 바라보았다. 노미는 꼭 시간 내서 가르쳐 주겠노라 약속을 했다. 남화는 늘 행동과 말이 진중하고 위엄이 있어서 노미는 남화에게는 저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저만큼 잘나고 똑똑하면 콧대가 높아져 교만해질 만도 한데 남화는 항상 겸손하고 다정했다. 남화가 셋째였지만 두 형들은 남화를 맏이처럼 대했다. 늘 공부하고 고민하는 소년인 남화는 그래서 늘 근심도 생각도 깊었다.

 

 석이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꼭 들러서 안부를 묻고, 무언가를 가지고 오고, 또 안부를 묻고, 노미를 바라보며 벙긋벙긋 웃고 했다. 노미는 도대체 어쩌다 그리 됐는지 석이가 멀리 보이기만 해도 웃음이 났다. 항상 좋은 기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 근처에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소년이 젓갈에, 나물에, 전에, 겉절이에, 가지볶음에, 맛나고 귀한 것을 많이도 가져다주었다. 솜씨 좋으신 석이 어머니와 부지런히 날라다 주는 석이와 미순이 덕분에 노미는 크게 반찬 걱정을 안 하고 지냈다.

 

 민화는

 

 “형수님~!”

 

 하고 다정하게 부르더니 뒷춤에 숨겨두었던 들꽃을 한 다발 노미에게 건네주었다. 노미가 지나가는 말로 꽃을 좋아한다고 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민화는 그래서 그 후로도 사시사철 꽃만 피면 따다가 노미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꽃보다 고운 도련님이 꽃을 들고 서서 꽃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태화는

 

 “형수님~!”

 

 하고 수줍게 부르더니 손에 쥐고 온 돌맹이를 노미에게 건네주었다. 당황한 노미가 그래도 고맙다며 받아들자

 

 “이쁘지예? 사방치기 할 때 쓰면 딱이지예?”

 

 한다. 눈코입 어디 버릴 데가 없이 잘생긴 도련님이 자기만큼 잘생긴 돌멩이들을 잘도 찾아다 주어왔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태화는 노미에게 주로 돌멩이, 개구리, 달팽이, 나뭇가지 같은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노미는 태화가 가져다 준 예쁜 돌맹이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시집 올 때 가져온 화초장 위에 줄을 맞춰 올려놓았다. 그 예쁜 돌맹이들을 볼 때마다 노미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태화 웃는 얼굴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웃곤 했다.

 

 정화는

 

 “형수님!!”

 

 하며 신나게 달려오더니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엿을 노미 입에다 쑥 넣어주었다. 그런데 이 엿이 이미 좀 축축한 상태였다.

 

 “지가 딱 한 번 밖에 안 먹었어예.”

 

 한다. 정화는 진화한테 수없이 야단을 맞으면서도 우르르 달려와 노미를 뒤에서 와락 끌어안고, 갑자기 손을 잡고 막 뛰고, 볼을 비비고 했다. 노미는 그런 막내를 안 이뻐할 방법이 없었다.

 

 

 진화는 오늘따라 서당 일을 일찍 마치고 집에 왔다. 동생들도 아버지도 다 일하러 나가고 집에 아무도 없었다.

 

 “보소, 이리 좀 오소.”

 

 하고 진화가 노미를 가만히 불렀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이리 들어와 여 좀 누워보소.”

 

 한다. 노미는 그만 얼굴이 빨개져서

 

 “뭐... 뭐할라꼬예. 아직 일이 덜 끝났는데....”

 

 하며 주춤주춤 방으로 들어갔다. 진화는 방 한가운데 앉아서 방바닥을 툭툭 치며

 

 “여 좀 누워보소.”

 

 하며 은근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노미는 부끄럽고 민망해서 얼른 눕지 못하고

 

 “도...도련님들 금방 들어오실낀데....”

 

 했더니

 

 “어허, 이 사람이 지금 몬 생각하노? 서방님이 이리 누워라 하믄 색시는 예 하고 이리 누우면 되지.”

 

 하며 살짝 째려보더니 주춤거리는 노미 손을 잡아다 자기 무릎 위에 눕혔다. 노미는 너무 부끄러워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눈만 꼭 감고 있었다. 그러자 진화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휘리릭 펼쳐 들었다. 실이다. 진화는 익숙한 듯 실을 꼬아서 양 손가락에 감고 팽팽하게 잡아당긴 다음에 노미의 얼굴에 실면도를 해주기 시작했다.

 

 “오메, 이게 뭡니꺼?”

 

 “실면도 모릅니꺼? 요래 실로다 얼굴을 싹 한 번씩 밀어주믄 잔털이 빠지고 얼굴이 고와집니더. 먼지가 안 달라붙으니 얼굴도 안 지저분해지고 요래 뽀얘집니더. 우리 아~들은(아이들, 동생들을 말함) 얼굴에 잔털이 많아가 내 꼭 이렇게 실면도를 해줍니더. 근데 우리 색시는 잔털도 마이 없네.”

 

 하며 진화는 뽀얘진 노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빙그레 웃었다. 노미도 그런 진화를 올려다보며 수줍게 방긋 웃었다. 그때,

 

 “와! 형아 실면도 하나?”

 

 하며 정화가 뛰어 들어오더니 냉큼 노미 옆에 눕는다. 그리고는 익숙한 듯 눈을 감고 얼굴을 위로 하고는 진화의 실면도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동생들도 우르르 하고 달려와 옆에 따라 눕는다. 어쩔 수 없이 노미는 옆으로 밀려나 앉았는데, 다들 눈을 감고 쪼르르 누워있는 동생들이 노미는 여간 귀엽지 않았다. 진화는 실을 새로 끊어 손에 쥐고 노미의 손에도 쥐어 주었다.

 

 “당신도 거들랍니꺼?”

 

 하고 진화가 묻자

 

 “형수님은 지 해주이소!”

 

 하며 정화가 얼른 노미 옆으로 가 눕는다.

 

 “나도 나도!”

 

 하며 민화랑 태화도 노미 옆으로 갔다.

 

 “그럼, 나도...”

 

 하며 언제 와 누워 있었는지 석이도 노미 옆으로 갔다. 남화랑 윤화도 슬그머니 일어나려는 걸 진화가 도로 눕히더니

 

 “니들은 내 해주께.”

 

 한다. 아쉬운 표정을 숨기며 어쩔 수 없이 남화랑 윤화는 진화 앞에 누웠다.

 

 그렇게 한바탕 실면도들을 해주고 나니 다들 얼굴이 색시처럼 뽀오얗다. 노미는 정화 민화 태화 석이까지 얼굴에 묻은 잔털을 털어주었다. 다들 방글방글 웃는 얼굴들이 너무 고와서 노미는 한참이나 일부러 더 많이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진화가 노미 앞에 누웠다. 노미는 진화 얼굴에 실면도를 해주며 고운 눈, 고운 코, 고운 볼을 눈에 담았다. 노미가 진화 실면도를 해주는 모습을 동생들은 모두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상에 저렇게 보기 좋은 그림이 있을까 하며 부러운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으로 바라보았다. 동생들은 큰형이 여인의 무릎에 누워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큰 형을 자기들을 보는 눈과는 사뭇 다른 눈으로 바라보며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 노미를 보며 여인이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아주 조금 알 것 같았다.

 

 계절은 초여름을 지나 이제 더위가 슬슬 몰려오는 칠 월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할머니는 꽃도련님들 사이에서 마냥 좋으실 줄 알았는데 그래도 드센 남자들이라 적응하는데 쉽지 않으셨답니다. 그리고 사실 저 ‘이불 말이’를 할머니는 할아버지한테 더 많이 당하셨다고 합니다. 너무 장난이 심하셔서 참 곤란하셨답니다.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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