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여섯 명의 도련님
한편, 진화네 동네는 오랜만에 열리는 혼인 잔치 소식에 아침부터 모두 들떠 있었다. 다른 집도 아닌 훈장님댁 맏아들이 색시 데리고 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게 잘생기고 인품 좋은 청년이라 누가 시집을 오는지 모두 궁금해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두 아낙네가 머리 위에 빨랫감을 한아름 이고 동네 빨래터로 가는 중이었다. 그때 저 뒤에서 ‘우다다’하고 누군가 달려왔다. 품에 술떡이 든 바구니를 들고 입으로는 한 움큼 뜯어 먹으며 달려오는 커다란 눈의 더벅머리 소년이 쌩하고 아주머니들을 지나치며 그 와중에도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다.
“아지매들, 진지드셨습니꺼?”
하더니 다시 냅다 뛰어간다. 깜짝 놀란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쿠, 자는 누꼬?”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태화아이가. 훈장님 댁 쌍둥이. 자가 넷짼가 다섯짼가?”
“근데, 와 아침 댓바람부터 뛰노?”
“맨날 저칸다.”
정태화. 나이 16세, 1922년생.
그때, 다시 뒤에서 바람처럼 뛰어오는 누군가가 역시나 아주머니들께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뛰어 지나간다.
“진지드셨지예?”
하는 목소리가 남자아이 같지 않게 나긋나긋하다.
“니 그기 혼자 다 묵으믄 안됀데이!!”
하며 쫓는데, 아주머니들께 인사할 때와 달리 도망가는 놈 뒤통수에 대고 치는 호통 소리는 제법 우렁차다.
“자는 또 누꼬?”
하고 좀 작은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 물으니
“민화 아이가. 자가 아마 쌍둥이 형이제?”
정민화. 16세, 1922년생.
그때 또다시 뒤에서 울리는 우레같은 발소리. 누군가 또 달려오는데 지축이 흔들릴 지경이다.
“잡히면 죽는데이!”
하며 달려오는데 역시나 아주머니들께 인사하는 것은 잊지 않는다.
“자는?”
아까 그 작은 아주머니가 또 묻는다.
“막내이. 정화. 또 형들이 먹을 거 갖고 뛰갔나 보다.”
그제야 두 아주머니는 서로 까르르 웃었다.
정정화 15세, 1923년생.
“와, 둘째 윤화는 안 뛰노?”
“어데, 윤화는 절대 안 뛴다. 갸가 이 동네 제일로 양반 아이가. 내 한 번도 윤화 뛰는 거 몬 봤다.”
하며 아주머니들은 또 배꼽을 잡고 웃는다.
빨래터에 도착한 아주머니들이 빨래를 방망이로 두드리고 있을 때쯤 도포를 차려입은 선비 차림의 키 큰 청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고, 훈장님 출근하시능교?”
하며 다른 아주머니보다는 키가 좀 큰 아주머니가 아는 체를 하자,
“아, 예, 진지드셨습니꺼.”
하며 키는 훤칠한데 얼굴은 아직 앳된 훈장님이 한껏 점잖은 말투로 인사를 한다.
“동생들은 아침 댓바람부터 또 뜀박질들을 하던데예.”
하며 아주머니가 일러주자,
“하하, 아, 예, 아직 천방지축들이라 폐가 많습니더.”
한다.
정남화. 18세, 1920년생. 훈장님댁 셋째 아들이다.
“큰형님이 안 계셔가 셋째 도련님이 오늘은 서당에 가십니꺼?”
“예, 앞으로는 지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자주 하지 싶습니더. 둘째 형님이 영 안 하시려 하셔서예. 애들 준비되는 대로 보내주시소. 그럼, 지는 이만...”
하며 남화는 또 멋들어진 걸음걸이로 서당을 향한다.
한편, 윤화는 싫은 서당에 나와 꼬맹이들 앞에 앉아 있었다. 실은 거의 반쯤 누워 있었다.
정윤화 20세, 1918년생. 훈장님댁 둘째 아들이다.
“하늘 천!”
아이들이 제법 우렁찬 소리로 따라 한다.
“하늘 천!”
“따 지!”
“따 지!”
영 재미없는 표정으로 모로 누운 윤화는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 중이다. 실은 그냥 읊어주는 중이다. 시큰둥한 선생님 태도에 아이들 목소리도 자꾸 줄어든다.
“이거이, 이거이, 목소리 봐라! 크게 안 하나! 누를 황!”
겁먹은 아이들이 큰 소리로 ‘누를 황!’ 하는데, 꽤나 용맹스러운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을 한다.
“훈장님, 우리 훈장님은 언제 오십니꺼?”
“와, 오늘은 내가 니그들 훈장님이다. 낼로 맘에 안 드나?”
“아니, 그게 아니라요.... 지금 훈장님은 쪼매 우리 가르치시는 거 싫어하시는 거 같아가....”
한 아이가 친구에게 조그맣게
“실은 다 배운긴데....”
“뭐라꼬?”
“아니..., 그게 아니라.... 쪼매 무서브셔가....”
아이들은 정말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윤화가 민망 미안 난감한 얼굴로 아이들 앞에 머쓱하게 앉아 있는데, 서당 앞에 남화가 와서 ‘쯧쯧쯔’ 하는 표정으로 섰다.
진화네 집은 대대로 이 동네에서 서당을 하며 훈장 일을 하고 있었다. 진화가 이십 세 무렵부터 아버지 대신 맡아서 하고 있었고, 둘째 윤화와 셋째 남화도 틈나는 대로 돕고 있었다.
아이들이 대부분 소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라 서당에 오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진화네 형제들은 아이들에게 천자문, 사서삼경, 소학 등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던 시절이었다.
“신랑 신부 옵니다!”
하며 석이가 말고삐를 붙잡고 진화네 마당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김석호. 18세, 1920년생.
진화는 말 위에 탔다. 워낙 인물이 훤한 사람인데 신랑 옷을 차려입고 있으니 길에 늘어서 있던 동네 처녀들이 자지러진다. 남몰래 사모했던 소녀 몇몇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정진화. 22세, 1916년생
아름다운 가마에 타고 있는 새색시를 보려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기웃거렸다. 동네 사람들은 열려있는 가마 창문으로 색시 얼굴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가며 보았는데도 새색시 자태가 어찌나 고운지 동네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고운 색시를 찾아왔는가 하며 다들 입이 아프게 칭찬을 했다.
오노미. 19세, 1919년생
드디어 노미를 태운 가마가 진화네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운 혼례 행렬에 동네 사람들은 거의 모두 나와 구경했다.
말을 탄 진화가 먼저 마당으로 들어서자 일가친척들 모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가와 반겼다. 그러나 가장 반기는 이들은 아무래도 어린 동생들이었다. 말을 탄 형의 모습을, 그것도 신랑 옷을 차려입은 형의 모습을 처음 보는 터라 어린 동생들은 말을 둘러싸고 빙빙 돌며 신기해했다.
형이 말에서 내리자 태화, 민화, 정화는 형의 옷을 만져보고 뒤에서 끌어안고 하며 법석을 떨었다. 이런 격한 반응이 익숙한 듯 진화는 대충 동생들을 밀어내고는 아버지 어머니 앞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곧이어 신부를 태운 가마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기대에 차 수군거리며 왁자하게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가마의 덮개 문이 올라가고, 손에 두른 흰 비단 천으로 얼굴을 가린 신부가 가마에서 내렸다. 진화가 다가가 노미를 부모님이 앉아계신 대청마루로 인도했다.
노미는 한껏 소매를 올려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노미의 옆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고, 고바라. 참말로 곱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진화의 동생들은 모두 입을 떡 벌린 채 자기들 앞을 지나가는 노미의 옆얼굴을 보았다.
좀처럼 무언가에 놀라지 않는 윤화도 노미의 얼굴을 보고는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남화는 그저 흐뭇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먼 길을 동행해준 동갑 친구 석이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태화도 민화도 형수의 고운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막내는 그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몇 번이나 형수의 얼굴을 다시 보고 다시 보면서 ‘와! 와! 와!’ 하고 알 수 없는 탄성을 질렀다.
노미는 진화네 동네가 노미네 동네보다 큰 곳이라 사람들도 더 많고, 가족들도 더 많아서 왁자지껄한 인사를 받으리라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 하지만 막상 가마에서 내리자 너무 많이 모여 있는 사람들과 예상보다 너무 큰 함성에 그만 기가 팍 질리고 말았다. 노미는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잡아주는 아주머니들이 없었으면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 할 뻔했다.
노미는 겨우 마당을 지나 마루로 올랐다. 그리고 시부모님 앞에 진화와 함께 섰다. 혼인 전 두 분 모두 얼굴을 뵌 적이 있었으나 까마득한 옛날 일인 것만 같았다. 너그러운 인상의 아버지는 진화와 많이 닮으신 듯했고, 날카로운 인상의 어머니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처음 뵈었을 때의 고고하면서도 다정한 말투 덕분에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함께 절을 올리고 진화와 노미는 드디어 부모님 앞에 얼굴이 보이게 앉았다. 순간 모여 선 사람들이 ‘하이고!’하고 탄성을 질렀다. 시골 동네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신랑 신부였다.
절을 받은 시부모님은 신랑 신부에게 덕담을 건네고 대추와 밤을 잡아 신부의 치마폭에 던졌다. 이것이 우리나라 혼례의 매우 중요한 절차인 폐백이다. 집안 어른들이 차례대로 절을 받으시고 드디어 형제들과 맞절을 할 차례가 되었다. 초록, 노랑, 파랑, 연분홍, 색색이 곱게도 차려입은 다섯 명의 동생들이 마루 위에 죽 늘어섰다. 아버지가
“석이도 올라오너라.”
하셔서 석이도 동생들 사이에 끼어 모두 여섯 명의 잘생긴 도련님들이 노미 앞에 섰다. 동생들과 맞절을 한 후 진화가 동생들에게
“형수님이시다. 각자 자기소개를 해라.”
하고 제법 큰 형처럼 일렀다. 그러자 동생들은 앉은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둘째 윤화입니더. 올해 스물입니더.”
하는데 윤화는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 형과 달리 어머니를 닮아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빙긋 웃는 입매는 형을 빼닮아 있었다.
“셋째 남화입니다. 열여덟입니더.”
다른 형제들보다 키가 훌쩍 크고 의젓한 인상의 남화는 이제 막 앳된 티를 벗은 영특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지도 열여덟이고, 남화랑은 동갑이지라이. 김석호여라. 여그 친형제는 아니지만 친형제나 마찬가지로 어불려지내지라잉. 형수님 앞으로 겁나 잘 부탁한당께요.”
하며 석이가 자기를 소개했다. 웃는 모습이 너무 해맑아서 노미는 자기도 모르게 석이를 따라 방긋 웃었다.
“봤능가? 형수님이 나만 보고 웃으셨당께!”
석이를 부러워할 틈도 없이 형수님의 첫 ‘방긋’에 모두 다 입이 딱 벌어져 있는데 진화가 이어서 어린 동생들을 인사시켰다.
“넷째 다섯째 민화랑 태화요. 쌍둥이고, 열여섯 살이요.”
그러자 태화가
“지가 넷쨉니더.”
하며 눈썹을 씰룩씰룩 한다. 커다란 눈망울 가득 귀티와 장난기가 동시에 흐르는 참 잘생긴 소년이었다.
“아입니더. 지가 넷쨉니더.”
하며 민화가 태화 앞을 막아서며 눈이 안 보이게 웃는다.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 오동통한 볼에 세상 착한 미소를 가진 미소년이었다.
“마, 됐고!”
하고는 진화는 동생들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막내 정화요. 올해 열다섯 살이요.”
정화를 보니 노미는 친정에 있는 준이 생각이 났다. 아직 아기 티를 채 벗지 못한 어린 얼굴이었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한 예쁜 도련님이었다. 어쩔 수 없이 노미는 정화를 보며 누나 미소가 피어올랐다.
“허허허, 내 보고도 웃으싰당!”
노미는 진화가 동생들 얘기를 할 때 막연히 자기 동생인 준이 비슷한 모습을 상상했었다. 이렇게 다 큰 장정들이 여섯이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래 좋은 날 풍악이 없으면 섭하제. 어이, 아그들, 연장들 챙겨라잉.”
석이의 신호에 동생들은 후다닥 어딘가로 달려나갔다. 그리고는 손에 손에 각각 꽹과리, 징, 장고, 북, 태평소까지 들고 마당으로 모여 섰다. 진화는 이런 모습이 익숙한 듯 노미를 마당이 잘 보이는 쪽으로 서게 했다. 한쪽에서 ‘타당타당’하는 꽹과리 소리를 시작으로 여섯 도련님의 풍물놀이가 시작되었다.
꽹과리를 치는 석이와 장구를 치는 민화, 북을 치는 윤화와 남화, 소고를 치는 정화, 태화는 태평소를 들었고, 윤화는 징을 진화 손에 들려주었다. 이렇게 이 근동에서 제일 유명한 풍물놀이패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덩실덩실 어찌나 어깨춤을 잘 추는지 하루 이틀 해 본 솜씨들이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환대에 노미는 정신이 다 어질어질했다. 어느새 마당 한가운데에 노미를 세우고 일곱 형제는 빙글빙글 돌며 노미를 위해 풍물을 울려주었다.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날의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그때의 그 풍물 소리가 내내 그립다고 하셨다. 그때는 그렇게 모두가 마냥 매일 매일 덩실덩실 춤을 추며 살게 되나보다 하셨단다. 그렇게 살아지기를 바라셨단다. 1938년 봄, 노미는 꽃같이 고운 신부였다. 그리고 꽃보다 더 고운 소년들이 함께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예쁜 도련님들이 막 반겨주니까 좋으셨어요?”
할머니는 그때 생각이 나시는 듯 빙그레 웃으셨다.
“좋기는..., 이 많은 입들을 우예 다 먹이노 싶어가 앞이 노랗더라.”
할머니는 또 열아홉 새색시처럼 빙그레 웃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