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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1919년에 태어나신 나의 할머니 오노미와 남편 정진화 그리고 그 동생들 윤화, 남화, 석이, 민화, 태화, 정화 이야기.

그때 노미는 열아홉 아리따운 소녀였고, 남편 정화와 여섯 도련님들은 스물두 살부터 열다섯 살 사이의 근동에 소문난 꽃같은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노미의 꽃길같은 시집살이는 정말 꽃길만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시어머니 대신 여섯도련님들의 어린 어머니 노릇을 하며 한명 한명 제짝을 찾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시대는 일제강점기. 아프고 어두운 시절이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어이없이 빼앗기고, 또 잃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노미의 가족들은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절 누구보다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으며, 아팠지만 따듯했고, 슬펐지만 행복했다.

공출, 가뭄, 강제징용, 그리고 빼앗긴 소녀들... 아파서 부끄러워서 또 몰라서
아무도 하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이야기이기에 감히 시작해보려 한다.

저는 작가 정진교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11화 시집 온 첫날
작성일 : 20-09-25 03:17     조회 : 40     추천 : 0     분량 : 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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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화 시집 온 첫날

 

 다음 날 아침, 진화와 노미는 곱게 새신랑 새신부 옷을 차려 입고 부모님께 아침 문안 인사를 올렸다. 노미는 다홍치마에 초록색 저고리를 입었고, 진화는 살구색 바지저고리에 진분홍색 조끼를 입었다.

 

 이런 아침 문안 인사는 보통 사흘 정도 하는데 그동안 신부는 부엌일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아직 시집이 낯선 새색시를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노미는 편찮으신 시어머니가 걱정되었다. 꽤 오래 속병을 앓고 계셔서 거의 부엌일을 못 하신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름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신식여성이었던 노미는 그래서 얼른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문을 열고 막 안으로 들어서다가 노미는 그만 깜짝 놀랐다. 진화는 국을 끓이고 있고, 민화는 나물을 무치고 있고, 태화는 밥을 하는지 아궁이에 부채질을 하며 콜록거리고 있었다.

 

 “아이구, 형수님. 새색시는 사흘 동안 정지(부엌)에 들어오믄 안됩니더.”

 

 하며 민화가 노미를 부엌 밖으로 밀어냈다. 엉겁결에 부엌 밖으로 쫓겨난 노미가 기가 막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부엌을 바라보고 있는데, 남화가 물동이를 지게에 지고 들어오더니

 

 “형수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꺼?”

 

 하고 볼에 쏙하고 보조개가 들어가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부엌에 있던 큰 물항아리에 물을 쏟아부었다. 모두 이렇게 일하는 것이 익숙한 듯 손발이 척척 맞았다.

 

 정화는 벌써 저쪽 마당에서 닭들에게 ‘구구구’ 하며 모이를 주고 있었고, 윤화는 소여물을 주고 온 듯 외양간 쪽에서 빈 여물통을 들고나오다 노미와 눈이 마주치자 뾰족한 표정으로 짐짓 엄하게

 

 “형수님, 오늘은 정지에 드가시면 안됩니더.”

 

 한다.

 

 “지는... 지도 뭘 좀 하게 해주이소.”

 

 하고 노미가 수줍게 입을 열자 진화가

 

 “거, 새색시는 며칠 동안은 일하러 나오는 거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방에 계시소.”

 

 한다. 진화에게는 이런 모습이 일상이라 매우 익숙한 모양이지만 노미는 부엌에서 국을 끓이고 있는,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남정네들 모습이 여간 어색하고 낯설지가 않았다. 자기 집에서는, 사실은 당시 보통의 집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지금이야 남자들이 부엌에서 음식 만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부엌은 여자들의 공간이었고 남자들이 들어가선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서 있는데 민화가 그런 노미가 좀 딱했는지

 

 “그라믄, 이 나물 간 좀 봐주시겠습니꺼?”

 

 하며 나물을 한 움큼 집어서 노미 입에 쏙 넣어준다. 말릴 틈도 없이 나물을 받아먹은 노미가 눈만 껌뻑이고 있는데 민화가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간이 맞습니꺼?”

 

 하고 재차 묻는다. 노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화는 얼굴이 금방 환해지더니

 

 “하하하, 지가 간을 잘 맞추지예?”

 

 한다. 세상에 뭐 이렇게 예쁜 사람이 다 있나 싶게 예쁜 도련님이다. 그 사이 막내가 언제 왔는지 노미 옆에 와서 고개를 쏙 내밀고 섰다. 열다섯 살이라고는 해도 형들만큼이나 키가 커서 얼굴만 아기이지 덩치는 다 큰 장정 못지않았다.

 

 “형수님, 방에 드가기 싫으시믄 지랑 계란 있나 보러 가실래예?”

 

 방글방글 웃는 막내가 두 손까지 모으고 부탁을 하니 노미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그랄까예?”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정화는 노미 손을 와락 잡더니 닭장으로 막 끌고 갔다. 그 모습에 진화가 깜짝 놀라서

 

 “야! 야! 그 소...손! 안 놓나! 어디서 형수님 손을 덥석 덥석 잡노!”

 

 하는데 이미 노미는 정화 손에 끌려서 저만치 가고 있었다. 잔뜩 약이 오른 진화가 정화를 노려보고 있고 다른 동생들은 부럽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노미가 정화와 같이 닭장에서 찾아온 계란은 수란을 만들어 아침상에 차려졌다. 오늘도 어머니는 속이 좋지 않아 진화가 따로 죽을 챙겨드리고 큰 방에는 아버지 한 상, 형제들 한 상이 차려지고 진화와 노미 앞에도 상이 차려졌다. 계란이 세 개뿐이라 아버지 어머니 드시고, 노미 앞에 한 개가 오고 나니 형제들은 먹을 것이 없었다. 노미가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시아버지께서 엄하게 새아기가 먹어야 한다고 하셔서 노미는 어쩔 수 없이 양보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진화의 아버지, 노미의 시아버지는 아내에 대한, 여인들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셨다고 한다. 당시 다른 집들은 여인을 가혹하게 대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할머니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참 못되 먹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고 당시의 제대로 된 집안의 사람들은 결코 여인을 하찮게 대하지 않았고, 특히나 노미의 시아버지는 집안 여인들이 흠이 있거나 거친 음식은 절대 먹지 못하게 하시고 과일도 제일 예쁜 놈으로 주시고, 생선을 먹을 때도 제일 잘생긴 놈으로 골라 주셨다고 한다.

 

 

 아침상을 물리고 난 후,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노미가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고 다른 식구들은 다들 무언가 할 일이 있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진화는 아버지와 의논할 것이 있다고 안방에 들어가 있고 오늘 설거지는 태화와 민화가 하는 중이었다. 쌍둥이 도련님 둘이 어깨를 맞대고 앉아 투덕거리면서도 익숙하게 그릇들을 말끔하게 씻어내는 모습이 노미는 신기하기만 했다.

 

 그 사이 윤화와 남화는 논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새 계절은 초여름을 지나는 중이었다. 논에 심어놓은 모들이 자라 푸른 벼가 되어 가는 시기였고, 마당에 내리쬐는 볕이 제법 따가워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노미는 이렇게 할 일 없이 앉아 있어 본 적이 있었던가 싶어 좀 민망해져서 혼자 빙그레 웃었다.

 

 “형수님, 논에 댕겨 오겠습니더.”

 

 하며 남화가 노미에게 인사를 건네자 노미는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예, 댕겨오시소.”

 

 했다. 윤화도 남화도 그런 노미에게 계속 눈인사를 건네며 주춤주춤 집을 나서는데 발이 잘 안 떨어진다. 남화가 윤화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림 같소. 그림....”

 

 윤화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 번 더 형수를 바라보았다. 참말로 저런 그림이 있을까 싶은 그림 같은 모습의 여인이 이제 우리 형수고, 우리 가족이었다.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데도 논에 나가는 두 도련님을 향해 방긋 웃어주고 있는 형수의 모습에 윤화도 남화도 자꾸 따라 웃게 되었다.

 

 형들이 대문 밖으로 사라진 후, 정화는 아예 노미 앞에 떡 버티고 서서 그런 형수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도 저만큼 아름답지 않을 것 같았다. 바람결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이며 하얀 목선이며 그린 것 같은 눈썹에 오밀조밀한 눈코입에 손은 또 어찌 저리 작고 하얀지.... 정화는 노미를 바라보며 그렇게 계속 벙글벙글 웃고 서 있었다. 노미는 그런 정화와 눈이 마주쳤다.

 

 “와예?”

 

 정화는 그림이 자기에게 말을 건 것만 같아 화들짝 놀랐다.

 

 “형수님!”

 

 “예?”

 

 “지는 세상에서 형수님이 젤로 예쁜 거 같습니더.”

 

 노미도 당황했지만 설거지하던 민화와 태화도 순간 놀랐다.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도 형수님만큼 예쁠 거 같지 않습니더.”

 

 노미는 막내 도련님의 깜짝 고백이 부끄러우면서도 싫지 않았다.

 

 “아니라예. 도련님이 여자들을 많이 몬 봐가 그렇습니더. 참말로, 읍내에 나가믄 이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예.”

 

 하며 노미는 수줍게 웃었다. 웃으니 더 꽃 같았다.

 

 “지도 장에 가봐 압니더. 형수님만큼 예쁜 사람은 못 봤습니더.”

 

 노미는 그만 까르르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노미는 귀여운 막내 도련님 손을 끌어다 옆에 앉혔다.

 

 “제 눈에는 막내 도련님이 훨씬 더 예쁩니더. 지도 막내 도련님만큼 잘나고 잘생긴 사람은 못 봤습니더.”

 

 민화랑 태화가 설거지하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지... 지는예? 지는 안 잘생깄습니꺼?”

 

 태화가 말까지 더듬으며 정색을 하고 끼어들었다. 노미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형수님 말씀 몬 들었나? 내가 젤로 잘생겼다 안 하나!”

 

 정화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태화도 민화도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한다. 노미는 큰일났다 싶었다.

 

 “아이고! 도련님들 마카 다 너무 잘생기시가 지가 지금 정신이 다 없습니더. 세상에, 우예 이렇게 다 잘나고 잘생기셨습니꺼. 지야말로 세상에 태어나가 이래 잘생긴 도련님들은 참말로 처음 봅니더.”

 

 ‘도련님’이 ‘도련님들’로 바뀌자 정화는 ‘어, 이게 아닌데.’하고 있는데 민화가 상황정리를 해준다.

 

 “고마해라. 형수님은 큰형님이 젤로 잘생기셨다. 그기 답이다. 그니까 자꾸 형수님 곤란하게 쓸데없는 거 묻고 하지 마라.”

 

 하지만 ‘도련님’이 ‘도련님들’로 바뀐 것이 영 불만인 정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형수님이 분명히! 내가 젤로 잘 생깄다고 하셨다. 맞지예?”

 

 정화는 노미 곁으로 더 바짝 다가앉으며 재차 물었다. 그러자 노미 옆 다른 쪽 자리에 태화가 턱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형수님....”

 

 하더니 태화는 은근한 눈으로 노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노미의 남은 다른 한 손을 와락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형수님, 형수님이 지를 찬찬히 몬 보셔가 그렇습니더. 지가 자보다 훨씬 잘 생깄다고 동네 아지매들이 침이 마르게 칭찬하고 그랍니더.”

 

 라고 말하며 태화는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그렁그렁한 눈으로 노미를 더 지그시 바라보는데, 정화도 태화도 좀처럼 노미의 손을 놓아줄 것 같지가 않았다. 노미는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민화는 그런 둘을 아니꼬운 표정으로 보고 서 있었다. 노미는 새삼 세 도련님을 번갈아 보면서 빈말이 아니라 도대체 누가 제일 잘 났다 할 수 없을 만큼 어여쁜 도련님들 용모에 다시 한번 감탄을 했다. 그때,

 

 “거 모합니꺼? 얼라들 데리고... 이리 나오이소.”

 

 하고 진화가 마루에 나와 섰다.

 

 “상황 끝이다. 젤로 잘생긴 서방님 나오셨다!”

 

 하며 민화가 두 동생을 끌어냈다.

 

 “큰형! 낼로 지금까지 형이 한 번도 부러븐 적이 없었는데요. 오늘은 참말로 부럽습니더.”

 

 태화가 진심을 담아 진화를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오야, 오야, 고맙데이.”

 

 하고 진화는 얄밉게 싱긋 웃으며 노미의 손을 꼭 쥐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진짜 얄밉데이~.”

 

 하며 정화가 입이 삐죽 나오며 말하자,

 

 “내도 장가가고 싶다!”

 

 하고 태화가 울먹였다. 그런 태화를 민화가 등을 두드리며 달랬다.

 

 “하모, 하모, 장가 가야제. 일단은 형들 새참부터 챙기고, 니는 바둑이 밥 줬나?”

 

 하고 이번에는 민화가 정화를 향해 쏘아붙였다.

 

 “안 줬다.”

 

 하며 정화는 서둘러 바둑이에게 가고, 태화는 민화 손에 이끌려 새참 준비하러 갔다.

 

 

 

 앞으로 사나흘 동안 신랑 신부가 해야 할 일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집안 어른들과 동네 어른들께 인사를 다니는 것이었다. 간단히 인사만 하고 나오는 집도 있었고, 음식 대접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오늘 점심은 석이네서 먹기로 되어 있었다.

 

 노미는 머리를 곱게 빗어 올려 은비녀를 꼽고 여자들이 외출할 때 입는 연분홍색 장옷을 입었다. 진화도 진청색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나왔다. 그렇게 둘이 외출복을 차려입고 서 있으니 한 폭의 그림 같고, 한 쌍의 원앙 같았다.

 

 

 할머니는 내가 보챌 때마다 이렇게 한 개씩 한 개씩 이야기들을 풀어내 보여주셨다. 할머니의 아득한 눈은 언제나 고향 어딘가의 어느 시간쯤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무엇이 그토록 그립고 소중하셨을까. 어린 마음에도 나는 할머니의 그리움이 느껴지곤 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할머니가 이토록 그리워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그때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할머니는 무엇이 그토록 그리워 옛이야기를 하실 때면 그렇게 아득하고 아픈 눈으로 나를 보셨을까.

 

 

 신랑 신부가 시부모님께 아침 문안 인사를 하는 사흘도 지나고 이제 드디어 노미가 부엌에 들어가도 되는 날이 되었다. 노미의 본격적인 시집살이가 시작된 셈이다. 노미는 도대체 남자들이 부엌일을 한다고 설치는 것이 영 못마땅했다. 나름 신여성임을 자부하면서도 노미는 부엌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구식 여성이기도 했다.

 

 어머니 병이 깊으신 바람에 진화가 열서너 살 무렵부터 부엌에서 맏딸처럼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 동생들을 먹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상 고생 모르고 자랐을 것 같이 귀하게 생긴 사람이 어릴 때부터 그런 고생을 하고 자랐다고 하니 노미는 마음이 아팠다. 남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남자가 여자처럼 다정한 성품을 갖게 된 것이 다 그런 이유 때문인 듯했다.

 

 “남자들은 이제 부엌에 얼씬도 하지 마이소.”

 

 하고 노미는 제일 먼저 부엌에서 진화와 도련님들을 모두 몰아내는 것으로 시집살이 첫 일을 시작했다.

 

 부엌 밖으로 쫓겨난 남자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개선장군처럼 부엌 한가운데 서 있는 노미를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진화는 어떻게 하나 보자는 심정으로 노미를 보고 있었고, 민화는 도대체 저 많은 일을 혼자 어떻게 다 한다고 저러시나 싶어 발만 동동 구르고 서 있었다. 태화는 ‘지가 불만 땔께예.’ 하며 계속 눈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노미는 모른 척하고는 아궁이에 익숙하게 불을 지펴 밥을 하고, 다른 솥에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제법 능숙하게 나물도 무치고, 오늘은 식구 모두가 먹을 수 있게 서너 알 나온 계란으로 계란찜도 했다.

 

 노미는 식구들을 위해 오로지 자기 혼자 힘으로 첫 식사를 차리고 싶었다. 하지만 친정에서 늘 4인분 식사를 하는 데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9인분 식사를 하려니 영 서툴고 정신이 없었다. 하마터면 어머니 죽을 태울 뻔했고, 나물은 한다고 했는데도 양이 너무 적었다. 된장찌개도 영 국인지 찌개인지 애매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밖에서 멀리 가지 못하고 지켜보던 민화가

 

 “형수님, 죽 죽!”

 

 “형수님, 찌개, 찌개!”

 

 하고 계속 거들어준 덕분에 그나마 대형 참사를 면할 수 있었다.

 

 

 노미는 시집오면서 가져온 놋그릇에 시집 와 처음으로 차린 음식들을 담아냈다. 황금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유기그릇과 수저 젓가락들은 새색시가 시집 올 때 꼭 가져오는 중요한 혼수품목이기도 했다. 귀하게 쓰는 그릇이라 특별한 날만 사용하는 것으로 노미는 오늘을 위해 놋그릇들을 아껴두었었다. 빛깔 좋은 나물에 참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나물이 놋그릇에 담기니 시집 와 처음 차린 노미의 아침상은 제법 그럴듯했다. 아버지는 몇 번이나

 

 “고생했다. 아, 맛나다.”

 

 하시면서 식사를 하셨다. 윤화는 찌개를 한 입 먹고는 뿜을 뻔했다. 남화는 탄내가 향긋하게 올라오는 밥을 먹으며

 

 “오늘따라 밥이 더 구수합니더.”

 

 라고 했다. 태화는 나물을 입에 물었다가 못 삼키고 있는데 민화가 옆구리를 퍽 치니 그대로 꿀떡 삼켰다. 민화는 오물오물 맛있게 나물을 먹어주었다. 참 착한 도련님이시다. 정화는 진짜로 다 맛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다. 모두 정화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진화는 노미가 행여 기죽을까 싶어 ‘이것도 맛있다. 저것도 맛있다.’ 하면서 계속 김치만 먹었다.

 

 물론 그 이후로 조금씩 솜씨가 나아져서 나중에는 형수님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착한 도련님들은 고생 아닌 고생을 해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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