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시집가는 날
며칠 후, 신랑집에서 꽃가마와 말이 도착했다. 노미가 드디어 시집에 가는 날이다.
사모관대를 갖춰 입은 진화가 먼저 마당에 나서고 혼례 때처럼 다시 활옷을 곱게 차려입은 노미가 방에서 나오자 마당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사람들 사이에는 낯선 이들도 눈에 띄었는데 진화네 마을에서 온 가마꾼들과 동행해 줄 아주머니, 그리고 말고삐를 잡고 있는 한 청년이었다.
가마꾼들은 동네 아재들이시고, 말고삐를 잡고 있는 청년은 형제처럼 지내는 동네 동생 석이라고 진화가 노미에게 소개해주었다. 항상 입만 열면 자랑하듯 얘기하던 바로 그 형제 같은 옆집 동생이었다. 같이 온 아주머니는 석이 어머니셨다. 노미를 사뭇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순박한 표정의 청년은 노미를 향해 고개가 땅에 닿을 만큼 절을 했다.
드디어 노미가 가마에 올라타고 진화도 말에 올랐다. 세월이 어수선하던 시절이라 많은 부분들이 간소하게 치러진 혼인이었지만 신부를 신랑집으로 보내는 행렬만은 사뭇 아름답고 보기 좋았다.
“아따, 형님, 겁나게 좋으시겄소. 시상에 형수님이 저리 고울 줄 꿈에도 몰랐당께~. 저래 고운 분은 내 평생에 처음보요.”
가마 안에서도 석이가 하는 말이 다 들려서 노미는 얼굴이 빨개졌다. 전라도 광주가 고향인 석이 아버지와 경상도 경주가 고향인 진화 아버지가 어쩌다 동무가 되셨는지는 모르지만 두 분의 각별한 인연 때문에 석이네가 진화네 옆집에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석이는 특이하게 경상도 동네에서 겁나 징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후일 이 인연이 서로의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주고, 그 험하고 어려운 시절을 몇 고비나 함께 넘기는 사이가 될 줄을 노미는 그때 몰랐었다.
어머니는 가마의 작은 창문을 열고 노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살폈다. 창문 밖으로 어머니와 손을 맞잡은 노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좋은 날 울면 안 된데이.”
“어무이...”
“내는 눈물 한 개도 안 난데이. 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꽃 같은 우리 딸이 나비 같은 서방님을 만났으니 이제 아들딸 많이 낳고 시부모님 이쁨받고 그래 잘 살믄 된다. 어여들, 가시소. 마.”
눈물이 맺힌 노미의 눈에 멀찍이 서 있는 아버지가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 옆에서 제법 의젓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준이는 누나를 눈에 끝까지 담으려는 듯 커다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화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진화는 말에서 다시 내리더니 장모님 손을 한 번 더 붙잡고는 가만히 안고 등을 쓸어 드렸다.
“걱정마이소. 내 금방 날 맞춰가 같이 올라니까예.”
그러자 장모는 갑자기 왈칵 울음을 터트리며 진화의 목을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격한 포옹에 진화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끝까지 장모님 등을 두드려 드렸다. 그리고 진화는 장인어른에게 다가가 다시 꾸벅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장인도 그런 사위의 등을 두드려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진화는 무릎을 꿇고 준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처남, 내 누나랑 금방 또 올테니까, 아부지 어무이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 묵고, 잘 자고, 그래 잘 지내고... 알았제?”
다정한 진화의 말에 준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매형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런 처남을 번쩍 안아 들고 몇 번을 둥개둥개 해주고는 진화는 준이를 내려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진화의 환한 인물에 다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절에 보기 힘든, 실은 요즘도 보기 힘든 그 다정한 마음씨에 모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가마는 동네를 벗어나 나지막한 산길로 들어섰다. 초여름이었지만 낮은 그래도 제법 더웠다. 꽤 가파른 오르막길을 가마꾼들은 익숙하게 ‘으쌰으쌰’ 하면서 신부가 혹시라도 불편할세라 가마가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며 나아갔다. 그때 노미가 가마의 창문을 열고 행렬을 세웠다.
“잠시만예.”
새색시의 부름에 모두 잠시 그 자리에 섰다. 산새 소리가 재잘재잘 나고 온 천지가 초여름 풀향, 꽃향으로 가득했다.
“어째? 소피마렵소잉?”
하며 같이 동행해 주던 석이 어머니가 조용히 속삭였다.
“아니라예. 지 잠시만 내려주이소.”
하며 노미는 가마에서 내렸다. 갑자기 가마에서 내려 선 노미 때문에 진화도 무슨 일인가 하고 말에서 내려 다가왔다.
“와예? 소피마렵습니꺼?”
진화도 다가와 노미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노미는 두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이 우스웠지만 소피가 마려워 가마를 세운 것이 아니었다.
“아니라예. 날도 덥고 오르막인데, 가마를 우예 지고 올라갑니꺼. 여서부터는 걸어도 됩니더.”
하며 노미는 씩씩하게 앞서 걸었다. 가마꾼들은 모두 손사래를 치며 어서 빨리 다시 가마에 타라고 성화를 했지만 노미는 멀쩡한 두 발 놔두고 어르신들 등골 뺄 일 없다며 한사코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진화는 그런 노미 곁에 다가서며,
“허허, 지 색시가 장군감이라 이래 씩씩합니더. 허허허!”
하고 웃었다. 사람들도 모두 웃음을 터트리고는 어쩔 수 없이 신랑 신부를 뒤쫓아 걸었다.
“아따, 형수님, 그라지 마시고 말이라도 타셔라.”
하고 석이가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말은 안 힘듭니꺼?”
석이는 노미의 당찬 대답에 무릎을 치며 박장대소를 했다.
“아따! 형수님! 형수님이 최고랑께, 최고여!”
그렇게 한참을 오르막을 오른 일행은 이제 좀 평평한 길을 만났다. 하지만 노미는 좀처럼 가마를 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남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더운 날씨에 활옷에 족두리까지 쓰고 있으니 여간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진화가 다시 행렬을 세웠다.
“아무래도 더워가 안 되겠습니더. 옷을 좀 벗었다가 산길 끝나는 데서 다시 입어야 겠습니더.”
다들 그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노미도 진화도 혼례복을 벗기로 했다. 노미가 혼자 활옷을 벗으려는데 석이 어머니가
“색시가 활옷을 혼자 벗으믄 쓰것소....”
하시며 진화를 향해 웃으셨다. 진화는 머쓱한 얼굴로 노미에게 다가와
“그라믄, 다들 뒤돌아 계시소.”
했다. 일행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멀찍이 서서 돌아서 있었다. 모두 돌아선 것을 확인한 후, 진화는 노미의 활옷을 벗겨주었다. 상황이 좀 우습긴 했지만, 진화는 제법 익숙하게 노미의 활옷을 벗겨 가마에 넣고 자기도 사모관대를 벗어 가마에 넣었다.
“지들은 천천히 갈 테니 어르신들은 가마랑 먼저 산 아래까지 가서 참이라도 들고 계시소.”
하며 진화는 일행을 앞서 보냈다.
“알았응께, 형님, 형수님, 천천히 오셔라.”
하며 석이는 자꾸 웃었다. 가마꾼들과 석이, 석이 어머니까지 보내고 나서 한적한 산길에 이제 노미와 진화만 남았다.
옷이 가벼워지니 한결 시원하고 걷기가 좋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초여름 녹음이 가득한 산길을 함께 걸었다. 길이 거칠면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들꽃이 보이면 따다가 코끝에 대주기도 했다. 수줍게 배시시 웃는 노미의 고운 얼굴은 눈에 담아도, 담아도 싫지 않았다.
하지만 문득 진화는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이 마냥 이리 곱지만은 않을 텐데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괜스레 미안하고 마음이 짠했다. 그런 진화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미는 진화와 함께 걷는 이 길이 좋기만 했다. 꽃도 이쁘고, 새 소리도 좋고, 신랑도 이쁘고, 햇살도 바람도 다 좋았다. 갑자기 진화가 우뚝 멈춰 서더니 노미 앞에 등을 대고 앉았다.
“업히소.”
“아, 아입니더.”
부끄러운 마음에 노미는 한사코 사양했다.
“업히소. 내 지금 아니면 색시 업어줄 짬이 없소.”
노미는 한없이 넓은 진화의 등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 주변에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 노미는 부끄러웠지만 방긋 웃으며 진화의 등에 업혔다. 진화는 노미를 번쩍 업어 들었다. 생각보다 너무 가벼워서 진화는 깜짝 놀랐다.
“얼라가? 와 이리 가볍노.”
진화의 등에 업힌 노미는 부끄러워 속으로만 쿡쿡 웃었다. 그렇게 한동안 진화는 노미를 아기처럼 업고 걸었다. 노미는 진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한없이 마음이 간질간질하고 행복했다.
“내내 이래 업고 걸을 수 있으믄 좋을 낀데, 세상이 어수선해가 우예 좋은 날만 있겠습니꺼. 낼로 따라와 줘서 고맙고, 또 고마븐데, 사는 게 녹녹치 않아가 힘든 날도 많고 그랄 낀데....”
평소와 달리 진화의 목소리는 깊게 떨렸다.
“내도 압니더. 여름도 있고, 가을도 있고, 겨울도 있고, 그라다 보믄 또 봄도 오고..., 지는예, 좋은 날만 보자고 사는 거 아입니더. 어려븐 일이 있으믄 같이 헤쳐 나가믄 되지예. 세상에 좋은 일 나쁜 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더. 다 그냥 살다 보믄 생기는 하늘이 주는 일들입니더. 하늘은 원래 아무 이유 없이 사람한테 일을 주고 그라지 않습니더. 그래가 나쁜 사람은 좋은 일도 나쁜 일로 맨들고, 좋은 사람은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맨듭니더. 서방님은 좋은 사람입니더. 내가 본 중에 젤로 좋은 사람입니더. 그래서예, 지는 아무 걱정이 안됩니더. 서방님이랑만 있으믄 내는...."
하는데 갑자기 진화가 우뚝 서더니 노미를 내려놓고 돌아서 노미를 바라보았다. 진화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노미는 조금 놀라서 자기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진화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볼수록 잘난 우리 서방님, 어찌 저리 눈매가 고울까. 어찌 저리 입매가 고울까, 코는 또 어찌 저리 잘났을까.’
하고 있는데 진화가 그 큰 손으로 노미의 볼을 가만히 감싸 쥐었다.
”내가... 좋은 사람입니꺼?“
노미는 이글거리는 진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수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진화는 노미의 이마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떨리는 입술로 노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산길에서, 산새 소리, 풀내음, 꽃내음, 실바람 소리가 가득한 그 산길에서 진화와 노미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 입을 맞추었다.
지금, 당신.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만져주세요. 그 사람이 뽀뽀를 해도 되는 사람이라면 빨리 뽀뽀해주세요. 아들이든, 딸이든, 남편이든, 아내든, 엄마든, 아빠든, 혹은 고양이나 강아지라도 좋습니다. 서로 이뻐해 주세요. 서로 안아주세요. 이룰 수 없는 사랑, 만질 수 없는 사람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 나랑 같이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 주세요. 아무도 없다면 너무 슬퍼하지 말고 나를 안아주세요. 우리는 그들과, 또 나와 100년도 함께 못 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