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새로운 가족

　집안 식구들과의 인사가 끝난 후 신랑 신부는 대례복을 벗고 곱게 맞춰 입은 평상복을 입고 마당에 나와 잔치에 온 손님들이 앉은 상자리를 돌며 인사를 했다. 모인 사람들 모두 고운 새신랑 신부에게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함께 어울려 살게 될 소중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때 석이가 자기 가족을 노미 앞에 데리고 와 소개했다.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이었다. 눈웃음을 꼭 닮은 세 식구가 나란히 서서 노미를 향해 눈이 안 보이는 웃음을 얼굴 가득 담고 서 있었다. 석이와 석이 어머니는 친정에서부터 여기까지 함께 동행해 준 사이라 알고 있었고, 여동생은 처음 보았다.

　“김미순, 지 동생이지라이. 열다섯이고요. 흐흐, 실은 여기 윤화 형님이랑 정혼한 사이이지라.”​

　노미는 깜짝 놀라고 반가워 미순이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았다. 오동통한 볼에 눈도 동글 코도 동글한 세상 착한 얼굴의 귀여운 소녀였다. 자기를 윤화의 정혼자라고 소개한 것이 부끄러웠는지 미순이는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자기 오빠 뒤로 숨었다. 곁에 섰던 윤화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선을 획 피했다. 쑥스러워서 그러는지, 싫어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윤화의 반응에 미순은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노미는 미순이 자기 손아래 동서가 될 사람이라고 하니 반갑고 신기했다. 남동생들만 우르르 있어서 조금은 서운했는데 가깝게 지낼 여동생이 있다고 하니 여간 기쁘지 않았다. 곁에서 흐뭇하게 보고 계시던 진화의 어머니가

　“새 애기는 이제 신방에 들어가 좀 쉬거래이. 인사 다 했으믄 처녀들 델꼬가 방도 보여주고 폐물도 보여주고 하는기다.”

　하시며 노미와 미순이의 등을 떠밀어 신방으로 들여보내 주셨다. 노미는 반가운 마음에 미순이 손을 가만히 끌고 신방으로 데리고 갔다. 미순이도 활짝 웃으며 얼른 노미 손을 잡고 신나서 따라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온 미순은 예쁜 화초장이랑 신혼부부용 새 깔개를 보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노미는 풍습대로 작은 폐물함을 열어 보여주었다. 은으로 된 비녀 두 개, 옥가락지 몇 개, 노리개 몇 개 그리고 간단한 화장품과 향낭 등이 든 단출한 폐물함이었지만 미순이 눈에는 한없이 신기하고 예쁘기만 했다. 언니 없는 미순이와 여동생이 없는 노미는 첫 만남부터 그렇게 단박에 친해져 버렸다. ​

　“워매, 고은거.”​

　그 중에서도 미순이는 은은하게 반짝이는 옥가락지에 눈이 갔다. 그것은 혼인한 여인이라는 표시였기 때문이다. ​

　“고와예?”​

　하고 노미가 웃으며 말했다.​

　“야, 지는 옥가락지가 한 개도 없응께요. 시집가믄 신랑이 해주는 거람서요.”​

　노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 둘째 도련님이랑 정혼하셨다꼬예?”​

　“아이구, 말씀 노으셔라. 지가 한참 아랜디.”​

　얼굴도 귀엽고, 전라도 사투리도 귀엽고, 노미는 처음 본 미순이가 마음에 들었다. ​

　“어쩌면 그렇게 말투가 귀엽습니꺼?”​

　하며 노미가 웃자, 미순이는 부끄러우면서도 노미의 칭찬이 싫지 않았다.​

　“언니는 참말로 얼굴도 고운디 맴도 고우요. 지가 아직 애려도 일 하나는 여물게 하요. 뮈시든지 손 보탤 일 있으믄 불르쇼잉. 언니 오시기 전에도 지가 이 집 일이라믄 엄니랑 같이 솔찬케 손을 보태고 했응께요.”​

　하며 미순은 낯도 안 가리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런 미순이에게 노미는

　“이 반지 한번 껴볼랍니꺼?”​

　하며 옥가락지 하나를 내밀었다.

　“워매, 아니여라. 지가 워트케...”​

　하며 미순이 손사래를 치는데도 노미는 미순의 손가락에 옥가락지를 하나 끼워주었다. 하얗고 오동통한 약지에 옥가락지는 꼭 맞춘 듯이 잘 맞았다. ​

　“워메, 이쁜거...”​

　미순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러다 미순은 노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옥가락지에 눈이 갔다. 폐물함에 있던 다른 옥가락지들 보다 더 빛이 은은하고 모양이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한눈에도 그것은 신랑에게 받은 결혼반지였다. 미순이 궁금해하자 노미가 자기 옥가락지를 빼 미순이에게 가깝게 보여주었다.

　“이거이 혼인반지여라?”

　하고 미순이 묻자, 노미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미순이 눈에 반지 안 쪽에 새겨진 글귀가 보였다. 정말 작게 쓴 글씨라 가까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으나 거기에는 분명 음각으로 새겨진 글씨가 있었다. ‘정진화(鄭眞和)’ 서방님의 이름이었다. 미순은 사뭇 감동한 표정으로 그 글씨를 바라보는데 어느새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서방님이 시집 오는 날 가마 타기 전에 지 손에 끼워준 긴데, 어무이가 준비해주신 거라 하데예.”

　미순이 상기된 표정으로 노미를 바라보았다. 노미는 웃으며,

　“서방님 말로는 어무이가 아들마다 이렇게 준비해 두신다 하데예. 내도 아들들을 낳으면 꼭 어무이처럼 이래 준비해가 며느리들한테 줘야지... 했어예.”

　미순이 사뭇 감동한 표정으로 노미의 옥가락지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노미는 옆 눈으로 미순을 살피며 참 좋은 소녀구나 싶었다. 그리고 서로 의좋게 지낼 수 있겠구나 싶어 흐뭇했다. 그렇게 두 소녀는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한참 동안 웃으며 서로 처음 만난 사이란 것도 잊을 만큼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

　 “미순아! 인자 그만 가자잉.”​

　하고 석이가 부르자 미순이는 아쉬운 듯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다 신방으로 들어오는 진화랑 눈이 마주친 미순은 ​

　“오라버니, 축하허요.”

　하며 눈을 찡긋했다. 그러자 진화도 빙긋 웃으며,​

　“허허, 제수씨, 감사허요.”​

　하고 미순이 사투리를 흉내 내며 받아주었다. 그러자 마당에 섰던 석이가 볼멘소리로​

　“아직, 제수씨 아니랑께라.”​

　하며 동생을 데리고 이리저리 인사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

　나중에 진화을 통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진화 아버지가 젊은 시절, 서당 훈장 일을 막 시작하던 당시 일본 순사들이 와서 서당에서 일본제국에 반하는 불순한 사상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진화 아버지를 핍박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잠시 몸을 피해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진화 아버지는 연고도 없는 전라도 광주로 진화네 집안과는 할아버지 때부터 막역한 친구셨다는 김 아무개의 집을 무작정 찾아갔다.

　전라도 광주에서는 제법 명망이 있는 가문이었던 석이네 집에서는 옛 어른들의 인연을 귀하게 여겨 진화 아버지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몇 해 동안 머물게 해주었다. 그리고 당시 동갑이었던 진화 아버지와 석이 아버지는 그 할아버지들만큼이나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 그 후 진화 아버지는 구길로 돌아와서도 간간히 오가기도 하고, 소식도 전하며 석이 아버지와의 우정을 이어갔다.

　그러다 독립 만세 운동이 휩쓸고 지나간 1920년대 초, 광주 주요 인사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석이 아버지는 함께 뜻을 모으던 동료들이 대부분 옥에 갇히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하면서 쫓기는 몸이 되고 말았다. 피할 곳을 찾지 못한 석이 아버지는 어린 석이를 업고 만삭인 아내를 데리고 어쩔 수 없이 전라도 광주에서 경상도 구길로 진화 아버지를 찾아왔던 것이다.

　이 사연 많은 오랜 친구들은 그렇게 해서 이웃이 되어 함께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두 어른은 몇 해 전 이미 정혼자가 있었던 진화 대신 윤화를 미순이 짝으로 정했다. 그 폭풍 같은 세월에도 아이들은 또 그렇게 인연을 만나 맺어지고, 어른이 되고, 또 아이들을 낳고 하면서 생명을 이어갔다. ​

　잔치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식구들은 모두 분주하게 잘 준비를 했다. 도련님들은 일부러 신혼부부 방 앞을 쌩하고 지나가기도 하고 슬쩍 기웃거리고 하면서 ‘에헴, 에헴’하고 돌아다녔다. 진화는 방으로 소금과 양칫물 그리고 세수할 대야를 가지고 들어왔다.

　“오매, 서방님.”

　하며 노미가 깜짝 놀라 진화를 맞았다.

　“오늘은 첫날이라 낯설 테니 방에서 세수하고, 내일부터는 마당에 나가 세수하면 됩니더.”

　하며 진화는 또 사람 설레게 웃었다. 그 모습을 동생들이 우르르 달려와 보는데 진화는 눈에 힘을 빡 주고 동생들을 획 쏘아보고는 문을 야멸차게 쾅 닫아걸었다. 밖에서 ‘아~!’하고 탄식 소리가 들렸다. 노미는 얼굴이 빨개져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생각지 않은 진화의 배려에 노미는 그저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노미가 세수를 마치자 진화는 노미처럼 더운물을 한 바가지 더 떠서 들고 들어왔다.

　“오늘은 지가 색시 발 씻어주는 날입니더.”

　노미는 소스라치게 놀라 진화를 말렸지만, 진화는 이미 노미의 버선을 벗기고 있었다. 노미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다. 진화는 아무 말 없이 노미의 발을 조물조물 씻어주었다. 눈물이 그렁하고 맺힌 노미의 눈을 바라보며 진화는 또 사람 좋게 싱긋 웃었다.

　“형님, 형수님, 안녕히 주무시소.”

　하고 윤화가 문밖에서 선창하자 동생들이 모두 따라서

　“형님, 형수님, 안녕히 주무시소!!”

　하고 우렁차게 밤인사를 했다. 그런데 큰 방으로 향하는 다른 형들과 달리 막내 정화는 뭐가 아쉬운지 주춤주춤 발길이 안 떨어지는 눈치였다.

　“니, 뭐하노? 퍼뜩 안오나!”

　하고 남화가 정화를 나무라자 정화는 그제야 풀이 푹 죽어서 형들 손에 끌려 큰 방으로 향했다. 저 집이나 이 집이나 막내들은 모두 지금껏 함께 자던 형이랑 누나가 자기랑 떨어져 자게 된 것이 영 섭섭한 모양이었다.

　낯선 집, 낯선 방, 너무 많은 식구들, 낯선 동네, 낯선 사람들, 온통 낯선 것 천지인 이곳에서 노미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어느새 진화는 노미의 손을 잡고 자는 것이 당연하고 편한 것이 되어버렸고, 노미도 이제 이 커다란 사내가 곁에 누워 있는 것이 익숙하고 좋았다.

　노미는 진화의 잠든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는 노미에게 하늘 같은 사람이 되어버린 노미의 서방님이었다. 노미는 그런 서방님을 만난 것이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할수록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밤, 노미는 그렇게 조그맣게 기도했다.

　며칠 동안 앓는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실제로도 감기몸살에 걸려 있었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영상이, 이야기들이, 목소리들이 온종일 나를 괴롭혔다.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이라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보드라운 앵두꽃잎이 볼에 스치는 듯 했고, 누군가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까르르 웃는 소녀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는 소년들의 음성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저 자장가처럼 듣던 할머니 이야기 속의 사람들이, 나는 만나본 적도 없는 아주 먼 예전의 그 사람들이 자꾸자꾸 나를 찾아와 무언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없이 고운 얼굴, 또 한없이 슬픈 얼굴, 또 한없이 노한 얼굴도 있었다. 그들은 백 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 지금의 나를, 우리를, 우리 아이들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자꾸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세상을 향해 다시 살아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