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혼인 하는 날

　“아이구, 신랑 오네! 신랑 와!”

　하고 누군가 소리쳤다.

　다들 신랑을 보러 가는지 우르르하고 달려가는 소리도 들렸다. 문밖으로 사람들이 서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누군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마구 뒤섞여 들려왔다. 노미의 가슴도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혼례의 첫 번째 절차는 신랑이 신부의 방 앞으로 다가와 나무 기러기 한 쌍을 신부 어머니께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문 앞에 발이 쳐 있고 신부는 손을 가린 흰 비단 천(한삼)을 높이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해서 아직은 신랑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흰 비단에는

　‘二姓之合[이성지합] 萬福之原[만복지원]’

　이라는 글귀가 수로 쓰여 있다.

　‘두 사람이 서로 합하는 것이 행복 중의 행복이다.’

　라는 뜻이다.

　신랑이 문 앞에 와서 서자 노미 어머니가 발을 걷고 밖으로 나가 나무 기러기 쌍을 받으셨다. 사람들의 탄성 소리가 들렸다. 노미는 속으로 드디어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양쪽에서 부축해주는 아주머니들이 노미를 일으켜 세웠다. 이제 초례청, 그러니까 혼례를 치르는 마당으로 나서야 했다. 노미는 조심조심 방을 나섰다. 느낌으로 신랑이 앞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다시 ‘와!’하고 사람들의 탄성 소리가 터졌다.

　“아이고, 고바라! 우예, 저리 곱노!”

　“세상에, 내 저리 고운 얼굴은 첨 봤데이.”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탄성 소리가 너무 커서 노미는 어리둥절했다. 평소에도 곱다는 얘기는 많이 듣는 편이었지만 이렇게 혼례복을 차려입은 것이 처음이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한발 한발 마당을 향해 발을 뗄 때마다 사람들의 ‘와!’ 하는 탄성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손뼉을 치며 까르르 웃는 사람, ‘하이고!’ 하고 장탄식을 하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탄성과 함성 소리는 마당 중앙에 차려진 혼례상 앞에 도착하자 절정을 이루었다.

　“세상에, 우예 저리 곱노! 사람이 아닌갑다. 저 봐래이, 저 봐래이, 하늘에서 내려온 학같다 아이가!”

　“우야꼬, 진짜 인물 좋데이! 세상에, 신랑이 아니라 색시 같다, 색시!”

　사람들의 ‘와!’하는 웃음소리와 함성 소리는 한참이나 끝날 줄을 몰랐다. 노미는 그제야 이 엄청난 장탄식의 주인공이 자기가 아니라 신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례자가 좌중을 조용히 시키고 나서야 이 기막힌 상황은 잠시 조용해졌다. 주례자가 신부인 노미에게 사배(네 번 절하기)를 하라 하였고, 노미는 신랑을 향해 사배를 했다. 노미가 절을 할 때마다 마당에 모인 사람들의 다정한 찬사와 곱다는 칭찬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신랑이 이배(두 번 절하기)를 할 차례였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우레와 같이 소리를 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아이고, 신랑 절한다. 신랑 절한데이!”

　하며 외쳐댔다. 노미는 다른 이의 혼례식을 몇 번 구경해 본 적이 있었지만, 신랑 절하는 순서에 이렇게 환호가 큰 혼례식을 본 적이 없었다.

　맞절을 끝낸 신랑 신부는 이제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술을 나누어 마신다. 드디어 신부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흰 비단 천을 내리고 신랑이 신부 얼굴을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신부는 눈을 내리뜨고 있어야 해서 이때도 노미는 신랑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노미의 얼굴이 드러나자 그제야 신부를 향한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고, 고바라! 선남선녀네, 선남선녀야! 신랑만 고븐게 아니라, 신부도 억수로 곱네!”

　노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신랑이 도대체 얼마나 곱기에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다 난리가 났을까 싶었다.

　​

　“할머니, 다들 할아버지만 곱다하니까 할머니 속상하셨겠네요.”

　하고 내가 장난스럽게 할머니께 물었다.

　“어대, 뭐 속상할 정신도 없꼬, 사람들이 하도 곱다 곱다 하니까, 남자가 사내답게 안 생기고 계집애 맨크롬 이쁘장하게 생겼는 갑다 하고 좀 실망을 했지.”

　하며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할아버지만 이쁘다고 해서 할머니 삐친 건 아니구요?”

　하고 내가 쿡쿡 웃으니, 할머니도 쿡쿡 웃으시며,

　“삐친 게 아이고, 내도 참 어대 가서 인물 몬하다는 소리 안 듣는데, 여자가 제일로 곱다는 소리 들어야 되는 혼례식 날 내내 신랑이 더 곱다는 얘기만 들으매 혼례를 치렀으니 이게 뭔가 싶었제.”

　할머니는 주름이 자글자글하시긴 해도 여전히 뽀얗고 고운 얼굴로 그때를 생각하며 새색시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정신없이 혼례식을 치른 후 노미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저녁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신랑은 신부 측 어른들과 길고 긴 인사와 면담을 하고 다른 방에서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신부가 있는 방으로 건너오게 되어있었다.

　배도 고프고, 눈꺼풀도 무겁고,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도대체 신랑이 어떤 사람일까 싶어 궁금하고 초조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드르륵 하고 문 열리는 소리에 노미는 깜짝 놀라 깼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노미는 감히 고개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을 쳐다보지 못했다. 신랑이었다.

　방 안에는 호롱불 하나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좀 전에 어머니가 가져다주신 술상 겸 저녁상이 놓여있었다.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신랑은 호롱불 옆 노미 앞으로 와서 앉았다. 푸른색 대례복을 입은 신랑의 가슴과 하얀 손이 보였다. 신랑은 ‘에헴’하고 짧은 헛기침을 했다.

　“식사는 하셨습니꺼?”

　신랑이 처음으로 노미에게 건넨 말이었다. 노미는 덜컥 내려앉는 마음을 부여잡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이후로 거의 먹은 게 없었지만,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맑고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노미는

　‘신랑이 여자만큼 곱다고 하더니 목소리도 꼭 여자같이 얇고 맑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제, 지한테 술을 따라주셔야 되지예?”

　신랑의 목소리도 수줍고 어색하게 떨렸다. 노미는 긴 소매를 어렵게 걷어 손을 겨우 빼고는 상 위에 놓여있던 술 주전자를 들었다. 하얀 백자 주전자가 달달달 떨렸다. 술잔을 들고 있는 신랑의 하얀 손이 호롱불 밑으로 보였다. 마디가 제법 굵은 큰 손이었다.

　‘목소리는 여자처럼 고운데 손은 또 남자답게 마디가 굵고 크구나.’

　라고 노미는 생각했다.

　“술을 사람 눈도 안 보고 따라줍니꺼?”

　순간, 노미는 이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 고개를 든 노미는 정말 너무나 놀라서 하마터면 들고 있는 술 주전자를 놓칠 뻔했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 신랑의 얼굴이 보였다. 수줍은 듯 무심한 듯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는 숯으로 그려놓은 듯 새까만 눈썹 밑으로 맑고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밖에서 어른들이 주시는 술을 몇 잔 마신 듯 볼은 발그레하고, 수줍음 때문인지 눈가가 촉촉했지만, 또렷한 시선으로 노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미는 그만 숨이 멎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놀랐다. 그 사람이었다. 몇 해 전 샘터에서 만나 버들잎 띄운 물바가지를 건네주었던 그 사람이었다. 호롱불 아래서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그 사람, 노미의 신랑은 처음 노미가 보았을 때만큼이나 아니 그때보다 더 곱고 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노미는 속으로

　‘세상에, 무슨 남자가 이리 곱게 생겼노.’

　라고 생각했다. 노미는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이번에는 신랑이 술 주전자를 들었다. 노미가 당황해서 눈만 깜빡이고 있자 신랑이 술잔을 들어 노미 손에 쥐여 주었다. 신랑 손이 노미 손에 닿자 노미는 불에라도 데인 듯 또 화들짝 놀랐다.

　그렇게 겨우 들고 있는 술잔에 신랑이 술을 따라 주었다. 노미는 술을 입술만 대고는 내려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신랑이 전을 하나 젓가락으로 집어 노미 입에 가까이 대었다. 이렇게 서로에게 술을 따라주고 전을 먹여주는 것이 첫날 밤 꼭 해야 하는 순서였다. 노미는 전을 받아먹었다. 이제 노미가 신랑에게 전을 집어줄 차례였다. 노미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젓가락으로 전을 집어 들었다.

　“이 전을 직접 다 부친 거라고 어머님이 말씀하시던데요.”

　“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노미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대답을 했다.

　“이 꽃은....?”

　신랑은 전 위에 올라가 있는 앵두꽃잎을 가리켰다.

　“애...앵두꽃입니더.”

　“하, 참, 이래 이쁜 전은 처음 봤습니더. 참, 곱네예.”

　신랑은 그렇게 말하며 노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노미는 신랑이 자기 얼굴을 그렇게 빤히 바라보는 동안 전을 집은 젓가락을 내내 들고 있어야 했다. 노미가 어찌할 바를 몰라 눈만 깜빡깜빡하고 있자 신랑은 노미가 건네는 전을 받아먹었다. 노미는 그렇게 진화를 만났다.

　그 다음 순서를 알고 있는 노미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꽤 침착해 보이던 신랑도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제 족두리를 벗기고 신부가 입고 있던 겉옷인 활옷을 벗겨주어야 했다.

　첫날 밤 신부는 스스로 옷을 벗을 수 없었고, 스스로 자리에 누워서도 안 되었다. 신랑이 옷을 벗겨주고 자리에 눕혀주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신랑이 혹시라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취해서 첫날 밤 신부의 옷을 벗겨주지 않고 혼자 곯아떨어지기라도 하면 신부는 꼼짝없이 앉은 채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다행히 신랑은 순서를 잘 알고 있는 듯 조심스럽게 다가와 노미의 족두리를 벗겨주었다. 얼마나 떨렸던지 족두리를 벗길 때 족두리에 달린 나비 장식들이 달달달 떨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다음에는 옷고름을 풀고 활옷을 벗겨주고, 비녀에 두른 댕기를 풀어주고, 비녀를 풀어 머리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이제 볼에 붙여놓은 연지곤지를 떼어줄 차례였다. 연지곤지는 반드시 신랑이 입으로 떼어주어야 했다. 주춤거리던 신랑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가만히 노미의 얼굴 가까이 입술을 대었다. 노미는 부끄러움에 눈을 꼭 감고 숨을 참았다. 신랑의 입술이 노미의 볼에 닿았다. 누군가의 입술이 자기 얼굴에 닿은 것이 아주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가 볼 뽀뽀를 해주신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렇게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이 첫 뽀뽀식이 끝난 후 신랑은 입으로 떼어낸 연지곤지를 어색하게 뱉어 상 위에 수줍게 올려두었다. 연지에 묻은 빨간물이 신랑 입술에 묻어 그렇지 않아도 붉은 입술이 더 붉어져 있었다. 붉게 물든 것은 입술 뿐 만이 아니었다. 생전 처음 여자의 볼에 입을 맞춘 신랑은 얼굴에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신랑은 정신을 다가듬고 이번에는 자기가 입고 있던 사모관대를 벗어 옆에 가지런히 개켜두었다. 그리고는 노미를 가만히 이불 위에 눕혀주었다. 그리고 나서 호롱불을 껐다. 그러자 밖에서 지키고 있던 아낙네들의 장탄식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길고 긴 첫날밤의 의식이 끝났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어떤 집에서는 문에 바른 창호지를 뚫어 안을 들여다보기도 한다는데, 노미 아버지는 그런 짓은 뭐 하러 하느냐며 못하게 하셨다. 신랑 신부 첫날밤을 훔쳐보거나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유는 혹시라도 어린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 지켜주기 위한 풍습이었다.

　어둠 속에서 신랑은 노미 옆으로 들어와 나란히 누웠다. 노미의 심장 소리가 거의 한가위 북소리처럼 큰소리로 쿵쾅거렸다. 그러나 신랑은 더는 기척이 없었다. 커다란 낯선 남자가 자기 옆에 와서 누웠으니 노미는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달이 밝아 호롱불을 껐는데도 방안이 환했다. 열어둔 창문으로 이제는 달빛을 받아 더 영롱한 분홍빛으로 빛나는 앵두꽃들이 하늘하늘 흔들리며 두 사람을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