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첫날 밤
왁자하던 마당도 어느새 조용해졌다. 노미는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첫날 밤부터 부부관계를 요구하는, 그러니까 신부를 덮치는 신랑들이 간혹 있다고는 해도 일반적으로 그것은 예의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딱히 흉이 되지도 않아서 신랑이 어찌하든 신부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신랑이 어찌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노미는 달달 떨며 그대로 잠도 이루지 못한 채 누워있었다.
잠이 들었는지 기척이 없는 신랑이 궁금해진 노미는 고개를 돌려 신랑의 얼굴을 보았다. 우뚝 솟은 코가 희미한 달빛에 보였다. 노미는 용기를 내어 신랑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참으로 잘난 얼굴이었다.
‘이제 이 사람이 내 남편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만감이 교차했다. 노미는 몇 해 전 보았던 낯선 이가 신랑이 되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사람은 나를 기억할까? 그날 본 사람이 나인 줄 알까?’
싶었다.
‘인연인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노미는 부끄럽고 민망해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여전히 두려웠고 낯설었지만, 웬일인지 노미는 마음이 놓였다.
“와예, 잠이 안 옵니꺼?”
자는 줄 알았던 신랑이 불쑥 입을 열었다. 깜짝 놀란 노미는 이불 속으로 얼굴을 쏙 숨겼다.
“예? 예....”
노미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모깃소리만큼 작은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그러자 신랑이 이불을 가만히 잡아 내리더니 노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창밖으로 환하게 떠오른 달빛에 노미의 얼굴이 둥실 떠올랐다.
순간 진화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진화는 부끄러움도 잊고서 턱을 괸 채로 노미의 말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배 안 고픕니꺼? 종일 제대로 못 먹었을 낀데.”
하고 진화가 물었다.
“아니요....”
노미가 여전히 이불을 꼭 쥐고서 겨우 들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노미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진화는 픽하고 웃음이 났다. 노미는 너무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상에 국수가 있던데, 먹을까예?”
하고 진화가 물었다. 노미는 뭐라 대답해야 할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진짜 배가 많이 고팠다.
“예..., 근데.... 다 불었을 낀데....”
“지는 괘안습니더. 원래 불은 거 잘 먹습니더. 그거 말고도 전도 있고 떡도 있고 약과도 있던데요.”
노미는 그제야 어색하게 겨우 웃었다.
불을 다시 켜는 것이 번거로워 진화는 상을 창문 앞 달빛이 비치는 쪽으로 끌고 왔다. 달이 하도 밝아서 움직이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상을 마주하고서 둘은 조용히 국수를 나누어 먹었다. 진화가 먼저 한입 먹고는 노미에게 젓가락을 건네주었다. 상 위에는 젓가락이 한 짝뿐이라 이렇게 서로 나누어 먹어야 했다.
어느새 국물까지 다 비운 두 사람은 전이랑 약과랑 떡도 모두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노미는 부끄러운 것도 잊고 열심히 먹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노미는 혼자만 열심히 약과를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새색시가 첫날 밤 이렇게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신랑에게 보이다니. 노미는 얼른 입에 물었던 약과를 도로 내려놓았다.
“와예, 이제 배부릅니꺼?”
“예....”
진화는 그런 노미의 모습에 빙긋 웃었다. 달빛에 비친 그 미소는 참으로 고왔다.
할아버지 미소가 눈에 선하다. 어린 시절 나에게 할아버지는 다가가기 어려운 무섭고 엄한 분이었다. 항상 웃어주시고 안아주시던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늘 화가 난 사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신 날이었을 것이다. 우리 아빠가 셋째 아들이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랑 같이 사시지는 않고 가끔 오셔서 일주일 정도 주무시고 가시곤 했다.
마루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는 일부러 나를 가까이 부르셨다. 숙제한다는 핑계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가능한 착한 얼굴을 하고 할아버지께 다가갔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시더니
“니가 니 할무이를 젤로 닮았데이.”
하셨다.
“예?”
“니 할무이도 니처럼 얼굴이 말갛고 눈매가 선하고 참말로 고왔데이.”
아, 그럼 할아버지 눈에는 나도 이쁘다는 뜻이구나 싶어 뭐 그다지 많이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감사합니다.”
라고 했다. 그렇게 내 얼굴을 들여다보시며 빙그레 웃으시던 할아버지 얼굴은 지금까지 내가 본 적이 별로 없었던 참 선하고 고운 얼굴이었다. 눈이 반달이 되게 웃으실 때는 꼭 아기 같으셨다. 햇살이 따로 없었다.
할머니는 여기까지 말씀하시고는 잠시 숨을 고르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으세요?”
“보고 싶다기보다는.... 목소리가 듣고 잡지. 두런두런 머리 맞대고 누워가 있으믄, 우스븐 얘기도 잘하고 영 쓸데없는 얘기도 재미나게 하고..., 그랬지....”
참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생전 처음 본 두 사람이 이렇게 어느 날 만나 부부가 된다는 것이 말이다. 누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참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고, 한 번 좋아하게 된 그 사람이 마음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게 되는 것은 더 기적 같은 일이다. 싫은데도 미운데도 보고 싶은 사람이 한 명쯤 마음속에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 태어나 제법 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 날 아침, 요란한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뜬 노미는 옆에 신랑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노미가 신랑보다 늦게 일어난 것이다.
‘아뿔싸!’
하며 노미는 얼른 작은 비녀를 찾아 머리를 틀어 올렸다. 이제 처녀가 아니니 댕기 머리를 내리고 있으면 안 되었다. 대충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마당으로 나가니 마당에 놓여있는 평상 위에 신랑과 동생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해가 높이 떠올라 새벽 한기가 걷히면서 막 따끈따끈해지려는 시간이었다. 순간 멈칫하고 서 있는 노미를 신랑이 돌아보는데 얼굴 위로 해가 쏟아지니 눈을 잔뜩 찡그리며 히쭉 웃는다. 노미는 얼른 시선을 피하며 부엌 쪽으로 쌩하니 걸음을 옮겼다. 국이며 밥을 어느새 다 차려놓으신 어머니가 노미를 반기셨다.
“아이고, 잘 잤나?”
“와, 안 깨웠습니꺼.”
“고단했을 텐디 깨우지 말라드라 정서방이....”
하며 어머니는 쿡쿡 웃으셨다.
“고단하기는예. 아무치도 안 하는데....”
노미는 부끄러운 마음에 일부러 볼멘소리를 했다.
“참말로, 내 처음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사람들이 다 신랑 인물 좋다꼬, 내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들을 하더라.”
“인물이 좋기는 무슨.... 사내가 사내답게 생겨야지....”
하며 노미는 신랑을 어깨너머로 살며시 돌아보았다. 남자답다기보다는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분명 스물두 살 노미 보다 세 살이나 많다고 했는데 얼른 보면 열대여섯 밖에 안 돼 보여서 다들 노미 보고 누나라고 할 것 같았다.
무슨 얘기가 그렇게 재미난 지 진화는 노미의 동생인 준이와 오랜 동무처럼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며 중간중간 까르르 웃기까지 했다. 동생들이 많다고 하더니 어린아이들이랑 잘 지내는 법을 아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보기보다 어린 애 같거나 아직 철이 덜 든 것은 아닌가 하는 괜한 의심이 들기도 했다.
신랑이 신부집에 온 첫날 아침, 신랑과 신부는 신부의 부모님께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린다. 새신랑 새신부 옷을 곱게 차려입고, 둘이 나란히 선 것을 보니 노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있는 동안 어려워하지 말고 편하게 지내라는 덕담이 오고 간 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아침상이 차려졌다. 다만 오늘은 네 식구가 아니라 다섯 식구였다.
커다란 사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상이 비좁아 보였다. 어머니는 뭐가 그리 좋은지 진화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하하하’ 하고 웃고, 밥 한술을 뜨고, 또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와하하’ 하고 웃고 국을 한술 뜨고를 반복했다. 그런 어머니가 못마땅했는지 아버지는
“거, 정서방 민망하게 뭐 그리 치다보고 또 치다보고 그라노?”
하며 역정을 내셨다.
“하이고, 내 사마 살다 살다 이래 인물 좋은 사람은 첨 봐서 그랍니더. 우리 정서방이 곱다꼬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난리 난리를 쳤다 아입니꺼.”
“참말로 요상테이.... 남의 집 사위한테 밸 소리를 다 한다. 인물이야 우리 노미가 곱지. 내 눈엔 그저 사내답게 생겼구만, 무신 소리들이고? 듣는 정서방 기분 나쁘게 코롬!”
하며 정서방 눈치를 살피신다. 듣는 정서방은 민망한 듯 피식 웃었다.
“괘안습니더. 저희 동네에서도 어릴 때부터 색시처럼 생겼다고 말 많이 들었습니더. 하하하!”
도대체 어디서 저런 번죽이 나오는지, 노미는 진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난감했다. 실없이 자꾸 히죽히죽 웃는 것도 슬그머니 못마땅했다.
그때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언제 와 있었는지 동네 아낙네들이랑 처녀들이 마당에 주르르 서 있었다.
“기침 하셨능교?”
하며 누군가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아침부터 이게 다 무신 일인교?”
하며 어머니가 반겼다.
“신랑 신부 잘 잤나 시퍼가 왔심더.”
하며 여인들은 방안을 기웃거렸다. 어머니는 노미와 진화를 서둘러 인사시켰다. 아직은 낯도 설고 수줍기도 할 텐데 진화는 사람 좋게 웃으며 손님들을 맞았다. 노미도 덩달아 수줍게 인사를 하며 신랑 옆에 섰다. 그러자 여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진화에게 달려와 일부러 팔꿈치를 두드리기도 하고 얼굴 밑까지 고개를 들이밀고는 탄성을 질러댔다. 아직 처녀인 소녀들은 멀찍이 서서 발만 동동 구르며 서 있었다.
곁에 서 있는 노미는 안중에도 없는 듯 여인네들은 진화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귀까지 얼굴이 빨개진 진화를 보며 여인들은 신랑이 너무 고와서 밤새 얼굴이 아른거렸다는 둥, 나중에 자기 딸도 신랑 같은 사람한테 시집보내고 싶은데 동생들도 다 그렇게 잘났느냐는 둥, 노미는 무슨 복이 많아서 이래 잘난 신랑을 얻었냐는 둥, 칭찬과 덕담이 끊이지를 않았다. 원래 이렇게 동네 아낙네들이 찾아와 새신랑을 반겨주고 덕담을 건네는 것이 풍습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과한 덕담 잔치를 노미는 생전 처음 보았다.
왁자한 팬미팅이 끝난 후, 노미는 아직도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진화를 내버려 둔 체 아침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밤잠을 설친 듯 아침을 먹고 나니 노곤한 모양이었다. 마루 기둥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이 올락 말락 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아기 같았다.
어젯밤, 그렇게 국수를 나누어 먹고 난 후, 진화와 노미는 다시 자리에 나란히 누웠었다. 노미는 다시 심장이 뛰고 눈앞이 아득했다.
“잠이 안 오지예?”
하고 진화가 누운 채로 노미에게 말을 걸었다.
“예....”
하고 노미가 역시나 모기만 한 소리로 대답했다.
“하루 종일 음식 준비한다고 고단했을 텐데, 고마 주무이소. 내 귀찮게 안 할테니.”
하고 말했다. 노미는 조금 놀라 진화를 옆 눈으로 살짝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떻게 알았는지 진화도 고개를 돌려 노미를 보았다. 노미는 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낯선 사내가 옆에 와 누웠으니 잠이 옳게 올 리가 없지예? 그래도 자야 됩니더. 내도 잘께예.”
하며 노미를 향해 빙긋 웃었다. 노미는 자기도 모르게 진화를 따라 웃었다. 처음 이었다. 진화가 노미가 웃는 것을, 자기를 향해 환하게 웃는 것을 본 첫 순간이었다. 달빛이 이보다 고울까, 별빛이 이보다 빛날까 싶었다. 진화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렇게 진화도 또 노미를 따라 웃었다.
진화는 이제 아예 노미를 향해 돌아누워 팔을 괴고 노미를 바라보았다.
“내 우스운 얘기 하나 해줄까예?”
했다. 노미는 갑작스러운 진화의 제안에 눈으로만 그러시라는 뜻을 전했다.
“목수가 고칠 수 없는 집이 뭔지 압니꺼?”
노미는 어리둥절했다.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얼른 답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노미가 대답을 안 하자 진화는 기다렸다는 듯 빙긋 웃더니
“모르겠어예? 알려줄까예?”
한다. 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집!”
하더니 뭐가 좋은지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노미는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솜씨 좋은 목수라도 고집은 못 고칩니더. 그치예?”
하며 진화는 또 키득키득 혼자 좋아 웃었다. 노미는 진화가 웃으라고 한 얘기지만 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 것 같기도 한 그 이야기를 내내 생각하다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진화와 노미의 첫날 밤이 지나갔다.
노미는 어제 일을 생각하며 혼자 픽 웃었다. 마루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든 진화의 얼굴을 노미는 찬찬히 보았다. 어찌 저 사람이 저기 앉아 있나 싶었다. 저 사람이 내 신랑인가 싶었다.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