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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찰스네 서점 : 한국 요괴록
작가 : 정초딩
작품등록일 : 2020.8.1

전직 경찰 현수와
기묘한 서점의 주인 찰스가 만나는
요괴들의 이야기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요괴들, 요괴보다 못한 인간들의 이야기.

 
외전 '한(恨)'
작성일 : 20-08-01 09:08     조회 : 30     추천 : 0     분량 : 7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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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월관의 불빛이 정전이라도 난 듯 깜박거리다 완전히 꺼졌다 켜진다.

 

 “이곳도 오랜만이군.”

 

  허공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허월에게 말한다.

 

 “다...당신이 어떻게?”

 

  허월도 놀랐는지 남자를 보고 말하지만, 남자는 답을 해주지 않는다.

 

 “지금은 이름이 뭐지. 마지막으로 봤을 땐 이곳의 주인은 계집이 아니었는데, 계집이었다면 이미 그때 내 것이 되었겠지 이곳도? 근데 계집 날 알아?”

 

 “...”

 

 “아는구나? 말하면 안 되는 것도 알고 그럼 내가 찾고 있는 것도 알려나?”

 

 “허월 씨 무슨 일이에요?”

 

  옆에서 이조가 나타난다. 허월은 이조와 남자의 사이를 가로막는다.

 

 “호오? 귀인? 여기도 그런 걸 모셨나?”

 

 “귀인?”

 

  이조는 자신을 귀인이라 부르는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만, 허월을 이조에게 돌아서며 둘의 시선을 끊고 말한다.

 

 “이조 씨 괜찮으니 돌아가세요.”

 

 “하지만….”

 

 “계집 내가 규칙도 무시하고 귀인을 손댈 거라고 보는 건가?”

 

  또 어느새 허공을 건너뛴 듯 남자는 이조의 앞에 서 있다.

 

 “너구나. 날 부른 짐승의 마지막 식사.”

 

  다시 마주친 시선은 무언가 깊은 곳까지 보는 듯했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죽을 때도 떠오르지 않던 주마등을 이조는 남자의 눈빛에 떠올렸다.

 

 “그만!”

 

  허월이 손을 휘두르지만, 남자는 뒤로 살짝 뛰어 피하고는 말한다.

 

 “고마워서 인사라도 하러 온 거야. 그리고 계집, 아니 넌 생각보다 강하군 모쪼록 잘 지키고 있어. 언젠가 또 올지 모르니까.”

 

  허월관의 불은 또 깜빡거리고 어두워진 사이 남자는 사라진다.

 

 “허월 씨 저 남자는 누구인가요?”

 

 “오래된….”

 

 “네?”

 

 “아주 오래된 존재에요. 찰스가 내게 말하지 않은 게 있는 것 같네요.”

 

  심각한 표정의 허월을 보며 이조는 남자가 남기고 간 한기를 느끼곤 몸을 떤다.

 

 

 “자. 주영이라고 했나?”

 

  남자는 검게 구름이 달조차 삼킨 하늘 아래서 한 건물의 옥상을 바라본다. 한 여자가 점점 옥상 끝자락으로 가고 있다. 아무도 없는 그 시간에 거기 있는 것도 수상하지만, 주변도 살피지 않고 바로 옥상 아래에서 올라오는 빛을 보며 향하는 모습이 썩 위험해 보인다.

 

 “주영 씨?”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주영은 고개를 돌린다. 놀라서 고개를 돌린 것이지만, 거기에 자신을 알 만한 사람은 없었다. 다시 앞을 보자 한 남자가 뛰어내리려던 풍경과 자신 사이에 웃으며 서 있다.

 

 “주영 씨 맞죠?”

 

 “...네. 누구시죠?”

 

  주영은 잔뜩 경계하며 남자에게 대답한다. 남자의 차림새는 깔끔한 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까지 하고 하얀 셔츠와 하얀 얼굴이 어두운 옷에 대비되어 더욱더 하얗게 보였다. 입술은 그 와중에 붉게 빛나고 있는데 입술을 바라보는 걸 의식이라도 한 듯 남자는 립밤을 꺼내서 바르고 있었다.

 

 “요즘은 공기가 참 좋지 않네요.”

 

 “아, 네.”

 

 “그런데 피 냄새가 나면 뭔가 새롭긴 하겠어요. 그죠?”

 

  주영은 자기 생각을 들킨 것 같아 놀라 한 발자국 물러난다.

 

 “아아, 걱정하지 마세요. 방해할 생각은 아니니. 그냥 기회를 한번 드리고 싶어서요.”

 

 “무슨 기회요?”

 

 “제 눈 잠깐 바라보시겠어요?”

 

 

  주영의 꿈은 주목받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주영의 집이 가난했고, 어머니는 사고로 돌아가시고 그 후 모든 것을 포기한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며 살았기에 그런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날의 주영은 주목을 받기 위해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학교도 그만두고 미성년으로 아이를 가졌다. 남자친구라는 놈은 주영에게 아이를 지우라고 했지만, 그 말을 무시하고 지우지 않고 키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남자의 포기에 주영은 미혼모가 되었다.

 

  한동안 놈은 주영에게 돈을 주었지만, 다른 여자가 생기자 주영과 아이를 외면했다. 배운 것도 없었던 주영이 가능한 건 밤일 뿐이었다. 그나마 어릴 적 함께 놀던 친구의 호의로, 그 친구의 집에서 아이와 셋이 살게 되었다. 주영은 매일매일 밤마다 술에 절어가며 돈을 벌어 친구와 아이를 위해 썼다.

 

  어느 날 몸이 안 좋아 일찍 집에 들어오자, 친구는 없이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놀랐다. 제정신으로 아이를 본 날은 적었지만, 아이의 그 날카롭던 울음소리는 뭔가의 위화감을 엄마로서 주영이 느끼게 했다. 울던 아이를 데리고 간 병원, 의사는 경찰을 불렀다. 주영에게서 나는 술 냄새와 아이에게 있던 학대의 흔적. 친구는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 냄새가 난다며 추운 화장실에 아이를 혼자 두고 울면 옷장에 수건으로 싸 가두고 짜증이 나면 아이를 꼬집고 그렇게 아이의 온몸은 멍투성이에 터지고 곪아있었다. 기저귀도 자주 갈아주지 않아 피부병도 생긴 아이, 사실을 알고 주영은 경찰에게 친구의 일이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자신이 아이를 지키려 했지만, 술에 취한 주영을 이길 수 없었다고 그리고 아이를 자기가 키우고 싶다고 지키고 싶다고 울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며 경찰에게 안기고 안긴 그 모습 뒤로 주영을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요즘 시대에 그런 얘기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쉬웠다. 주영은 모든 걸 잃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일을 하고 도박을 손을 댄다. 거기서 만난 ‘선영’과 친해지고, 불우한 인생에 서로 공감하며 깊게 빠져든다.

 

  선영은 주영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주목을 받기 위해 살았던 인생에 주목하는 건 항상 남자였지만, 그런 자신에게 진실하게 다가오는 듯한 선영에게 주영도 조금씩 마음을 주었다. 이미 줘버린 몸을 돌이킬 순 없었고, 마음도 서서히 몸처럼 가까워졌다. 선영은 오랫동안 자신이 하던 계획에 함께하자고 말했다. 친구처럼 선영도 자신을 이용하는 건 아닐까 주영은 경계했지만, 선영은 매번 자신을 안심시켰다.

 

  계획을 실행한다는 당일 주영에게 마지막 전화를 하고 선영은 사라졌다. 남편이던 이조도 사라졌다. 이조의 사망 보험금의 수령 2순위가 주영이었기에 경찰을 또 찾아왔다. 경찰에게 선영과 미리 짜두었던 둘 다 부모님이 없이 살았고, 친해서 자매처럼 지냈다. 남편과도 왕래가 있었고, 남편에게 가족이 없어 그나마 믿을 만한 자신을 수령인으로 해두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쉽게 믿고 물러갔지만, 며칠이 지나 아이에 관한 지난 사건을 찾아 들고 와선 “애도 버린 사람이 그런 감정이 있다고요?”하며 물어왔다. 그때의 슬픔이 현재의 복받침과 더해져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계획에 성공하고 돈으로 하려고 했던 일, 그 일은 아이를 되찾는 것이었다. 그런 속마음은 모른 채 경찰에 잡혀가 조사를 받고 황폐해진 마음으로 손목을 긋고, 일어나다 보니 병원이었다.

 

 “죽으려고 그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원래 손목 긋는 사람은 얼마나 그어야 할지 모르고 깊게 자신을 찌르는 것도 힘들어서 그렇게 보입니다. 경찰이란 분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 그게.”

 

  경찰은 의사에게 뭔가 보여주고 의사와 경찰의 시선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바라보던 주영을 향한다.

 

  다행히 수갑은 없었다. 응급실도 새벽이 되니 한가해지고 주영을 보는 이도 없었다. 주사기를 빼고 나가려는데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 가세요. 환자분?”

 

 “아, 화장실 좀 가려고요.”

 

  간호사 선생님이 나가려던 주영에게 말을 걸어왔다 대충 핑계를 대자 “화장실은 저쪽이에요. 다녀오세요.”하고 웃으며 보내줬다.

 

  그 길로 주영은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문은 잠겨있었지만, 문 바로 옆에 비상 열쇠가 형광색 케이스에 자신의 존재를 뽐내듯 있었다. 문으로부터 빛이 올라오는 끝자락까지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 거군요.”

 

  남자는 모든 걸 알기라도 한 듯 말하고, 잠깐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됐어요. 주영 씨가 제게 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어때요? 다시 돌려보시겠어요?”

 

  주영은 세상 모든 걸 믿을 수 없었지만,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을 금방 했다.

 

 “그러면 비켜 주실 건가요?”

 

 “물론이죠.”

 

  남자는 웃으며 대답했고, 주영은 끄덕였다.

 

  남자는 비키고 주영은 앞으로 향했다. 허공에 발을 내딛자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몸보다는 심장과 머리가 강렬하게 떨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수초 후

 

  퍽

 

 

 “주영아, 주영아.”

 

  오래전 그리워하길 포기한 목소리에 주영은 눈을 떴다. 앞에 보이는 건 어렸을 적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 어안이 벙벙했지만, 주영은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얘가 왜 그래. 무서운 꿈이라도 꿨니? 괜찮다. 괜찮다.”

 

  주영의 등을 쓸어내리며 어머니는 말했다.

 

 “조금 진정되면 밥 먹으러 가자.”

 

  겨우 어머니를 안던 팔을 풀고 진정된 주영은 이끌림에 식탁으로 향한다. 식탁에는 붉고 검던 얼굴이 아닌 밝고 맑은 미소를 품은 아버지가 신문을 읽었다.

 

  정말 남자의 말대로 과거로 돌아간 것이었다.

  아이를 가지기도 전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도 전인.

 

  과거로 돌아간 주영은 어머니를 살리고 열심히 공부와 일을 하여 주목받는 사람이 되었다. 지난 생에서의 미련이었을까? 주영은 주목받는 삶을 살아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생의 나이와 비슷해졌을 무렵, 길을 가던 중 잊고 살던 아이의 아빠와 친구를 보았다. 둘은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지나갔고 주영은 뭔지 모를 슬픔에 빠졌다. 그래도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의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무슨 일인지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는 하지 못해 가족들과의 시간이 전부였고, 친구도 믿지 못해 없었다. 슬픔은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겨우 그 사실을 알아차린 그날 밤, 집으로 손님이 찾아왔다. 남자였다.

 

  주영은 남자를 보고도 놀랐지만, 남자의 얘기에 더 놀라게 된다.

 

 "주영 씨 사실 당신의 전생은 주영 씨의 것이 아니었답니다. 그것도 누군가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생, 당신의 친구는 그 아이의 아비와 주영 씨의 관계를 질투했답니다. 지금 당신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물론 주영 씨도 전생과는 또 다른 생을 살았죠. 한 사람이 사랑에 눈이 멀어 그 자리를 버리면서까지 주영 씨를 타락시켜, 아이도 아비도 가지려 했지만, 그래서 겨우 당신은 타락했지만, 결국 아비는 가지지도 못하고 아이를 가지려는 마음과 죄책감에 당신과 함께 살았죠. 결국, 아비를 가지지 못한 그 분노는 주영 씨의 아이에게 향하게 되었죠. 사랑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가지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타락시킨 여자를 닮은 그 아이. 얼마나 한없이 저주스럽겠어요. 그래서 난 친구분께 다시 물었죠. ‘무엇을 원하느냐고’ 모든 것을 버릴 테니 그 아이를 세상에서 없어지게 해주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어요. 원래라면 말이죠. 아이를 버린 아비는 상관없지만, 그 아이의 어미인 주영 씨가 강하게 아이를 보호했기 때문에 말이죠. 그래서 안 된다고 했더니 친구분은 모든 것을 준다 약속을 하시기에, 계약의 이행을 위해 주영 씨에게 말했죠. 지난 모든 걸 돌려주겠다고, 그 뒤는 아시는 것처럼 응하셨죠. 자신의 슬픔만 중요하고 자신의 아이는 중요하지 않은 듯 주영 씨의 그 대답에 아이는 사라진 것도 모르고 이렇게 행복하게 사시다니. 덕분에 전 순수한 영혼 하나와 타락할 때로 타락한 영혼 하나를 얻어 감사할 따름이지만, 이 감사함의 표현으로 주영 씨에게 이렇게 말해주러 왔지만, 이 얘기를 들은 주영 씨는 어떻죠?“

 

  충격적인 남자의 말, 주영은 구역감이 가득한 입을 틀어막고 미친 듯이 옥상으로 도망쳤다. 옥상에서 하늘을 보던 주영은 대상을 알 수 없는 말을 던진다.

 

 ”미안해.“

 

  그리고 아래로 몸을 던진다.

 

  퍽

 

 

  주영은 바닥에서 눈을 뜬다. 익숙하던 집의 풍경이 아닌 잊고 지내던 고통에 몸부림치던 병원의 입구였다.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을 해보자 수분기 가득한 숨이 빠져나오는 소리만 들려온다.

 

 "말하지 말아요. 어차피 말도 못 해요. 피만 더 나오고 숨만 더 막히고 더 고통스럽게 죽을 거예요. 사실 그걸 바라지만.”

 

  큭큭 거리며 목이 부러졌는지 돌릴 수도 없는 위치에서 남자가 주영의 귓등에 속삭였다.

 

 “결국, 누군가 무엇을 버려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면 불행해진 대상도 불행하게 만든 이도 함께 불행해지고, 그것이 반복되기 때문에 세상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거야. 행복이라는 감정 자체가 질투의 대상이 되는. 뭔가 모자란 이상한 세상에서 인간들은 날 악마라고 부르기도 하지, 기회를 줄 때는 신이라고도 부르다가 말이야. 무엇을 걸고 무엇을 부탁해서 나쁘게 되면 악마, 기회를 잡고 살아갈 때는 신. 결국, 질투, 욕심 이딴 저열한 감정을 다시 빌어서 불행을 자초하고 나를 악마로 몰아가지. 신이라고 믿는 자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몇밖에 안 되지 그들도 결국 죽을 때는 무언가를 더 바라고 죽지만, 적어도 그들은 날 원망하지는 않아. 왜냐면 나는 ‘너희’의 진심 어린 바람만 이루어 줄 뿐이니. 그게 환상이라도 꿈이라도, 그들도 아는 거야. 마지막 순간 자신들의 본능을 알게 되면 죽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게 되니 그러니 인간은 다 죽는 거야 너의 아이도 너도. 아, 물론 아이는 아직 안 죽었어. 근황을 말해주자면 그 친구에게 학대당해서 장애를 가지게 됐고, 그걸 빌미로 친구는 돈벌이하지. 그 돈이 아이를 향하지 않고 허튼 곳을 향할 때마다 아이는 죽음에 더 가까워지고, 이제 7살도 넘었으니 내 목소리가 들릴 테고, 아이는 곁으로 보내줄게.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죽어.”

 

  평생을 살며 가장 소름 돋는 목소리를 주영은 듣게 된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리고 점점 남자의 인기척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주영은 한스럽게 울었다. 산산조각이 난 몸에서는 파열음만이 가득 울렸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거로 봐선 효과는 있어 보였다. 하지만, 구두 소리는 점점 멀어질 뿐이었다.

 

  시야는 점점 어두워지고, 누군지 모를 비명과 부산한 사람들의 소리가 맴도는 와중에도 구두 소리는 멀어져갔다.

 

 “완벽한 연출이지?”

 

  구두 소리는 멀어졌지만, 남자의 목소리는 다시 귓등에 닿는다.

 

 “희망과 절망, 이렇게 배열해놓으면 최고의 절망을 마주할 거로 생각하지만, 최고는 그 희망과 절망 뒤에 또 있을지도 몰랐던 최악의 절망을 배치하는 거지. 한동안 못했던 건데 나 아직 안 죽었나 봐. 아, 죽는 건 멍청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지.”

 

  코웃음을 치며 남자는 말했다.

 

 “난 악마도 신도 아니야. 그냥 이곳에 오래 뿌리를 내리던, 인간의 마음에 오래 뿌리를 내리던 하나의 감정일뿐이지. 어떤 건 숭배되고 부여되어 강해지고 존재가 나뉘지만, 나는 숭배되고 하나로 집결돼서 강력해진 존재지. 이 나라는 특히 그게 강해서 좋아.”

 

  주영의 숨은 끊어진다.

 

 “입에서 생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리네.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죽다니. 역시 인간은 시시해. 그래도 많은 걸 얻었어. 상으로 내 이름을 들려주지. 이 몸의 이름은 ‘한(恨)’. 네가 품었던 그 깊은 감정도 결국 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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