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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찰스네 서점 : 한국 요괴록
작가 : 정초딩
작품등록일 : 2020.8.1

전직 경찰 현수와
기묘한 서점의 주인 찰스가 만나는
요괴들의 이야기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요괴들, 요괴보다 못한 인간들의 이야기.

 
의뢰인 3
작성일 : 20-08-01 08:54     조회 : 26     추천 : 0     분량 : 1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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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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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를 만나고 난 뒤, 의문이 커졌다. 내게 ‘그슨대’가 묻어있다니.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그슨대’가 출몰할만한 곳을 찾았다. 저수지는 이미 다녀왔지만, 얼어서 무언가 튀어나오지 못할 환경과 익숙한 거북함에 공포를 느껴 다른 곳으로 발을 옮겼다.

  주변을 조사하던 중 섬과 뭍을 이어주는 다리가 생긴 이후로 다리에서 자살한 사람이 많은데 그들의 시체가 훼손된 경우가 많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들었다. 저수지에 관해 물었는데 몇 번의 입을 거치고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덧붙여 준 이야기에 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날이 저물고야 도착한 다리는 여태껏 봐온 다리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더 화려한 조명이 빛났고, 위로는 차들이 쌩쌩거리며 지나갔다. 미지의 존재 따위 얹어만 놓으면 차에 치여 사라질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다리 위를 그렇게 몇 걸음 걷다, 미지가 얹혀질 공간은 없다고 확신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아래로 검은 물이 보인다. 차라리 저 속에 있다면 현실에 가까운 것이다. 밝게 빛나는 공원도 보인다. 즐비한 차들이 서 있는 공원, 그 모습에 검은 물에서 ‘그슨대’가 나와 사람들을 삼키는 상상을 하지만, 상상이 끝날 때까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리를 내려와 살펴보니 검은 다리 밑을 기준으로 공원이 있던 반대편에 검게 물들어 있는 풍경이 보였다. 간간이 불빛은 있지만, 주거 지역이라고 보기엔 이상한 벽이 하나 보였다. 발걸음은 당연하게도 그 벽을 향했다. 생선을 가공하는 듯한 비릿한 건물을 지나 도착한 벽은 나무를 가공하는 곳과 주거 지역을 가르는 벽이었다. 요즘 시대에 아직도 나무로 배를 만드나 싶었지만, 옆에 나무로 만든 작은 배의 파편들이 보였다. 방송일을 했지만, 이런 구시대 같은 시설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감상에 젖어 있자, 비릿한 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나무로 만드는 파편 옆에 검게 가려져 있던 기름진 배들이 보였다. 거대한 철의 차가움에 돌아서 벽으로 다시 향한다. 벽은 한 면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다른 면들은 뻥 뚫린 그저 방음의 용도로 구시대 같은 발상을 기반으로 서 있는 것 같았다.

  벽과 주거 지역 사이 어두운 길이 보였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불빛은 없는 그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다가 멀리서부터 소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가까워진다. 한 집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 집의 소란함에 묻혀서인지 다른 집은 불빛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란의 중심에 있는 집에는 기름때가 잔뜩 묻은 빨래가 널려있었고, 검게 탄 외국인들이 밝은 조명 아래서 신난 듯 허우적거렸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검게 탄 게 아니라, 찌든 기름을 제대로 씻지 않아서 검은 것이었다. 그걸 알아챌 만큼 바라본 시간이 길어지자, 그들은 나를 바라봤다. 검은 몸에 붉게 충혈된 눈들이 하나씩 뒤를 돌아 나를 향한다. 한 명이 돌아보고 한참을 보다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입을 모아 그들은 나를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뜻도 모를 짧은 말이 풍경에 중심에서 거대해졌지만,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그 소리에도 주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들이 날 해칠 것만 같아 다시 조선소 쪽으로 도망쳤다.

  오랫동안 완성되지 못한 폐선과 철의 차가움이 느껴졌다. 휴대전화를 들어 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수는 금방 온다고 말하고는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한참 어둠에 잠겨 음침함을 더하는 배들 사이를 지나다 보니 인기척도 없었는데 갑자기 눈앞을 무언가 가로막는다.

 

 “이런 곳엔 왜 온 거지?”

 

  사람이었다.

 

 “현수 씨.”

 

  어둠 속에서 드러난 그의 모습은 찰스였다. 현수라고 불러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투덜거리는 찰스.

 

 “이 몸은 찰스라니까, 그 이름으로 이 몸을 다시 지칭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네만?”

 

 “아, 네.”

 

 “이 몸의 질문에 답부터 하시게.”

 

 “조사를 위해서요.”

 

 “말을 안 듣는 타입이로군, ‘그것’이 묻었다는 걸 인지하고도 이런 곳에….”

 

  찰스의 말에 두려움을 느끼긴 했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공포에, 실재하지 않는 공포에 대해 두려움을 금방 느낄 만큼 그리 쉽게 살아온 삶은 아니었다. 적당한 두려움이 찰스의 말에 수긍하려던 순간, 고집이라는 것이 발동했는지 찰스에게 말했다.

 

 “고작 그게 뭐라고 제가 두려워해야 하는 거죠? ‘그슨대’라는 이름도 못 부를 정도로?”

 

 “저런….”

 

  찰스는 고집에 바로 얼굴을 손으로 가리곤 절레절레했다.

 

 “혹시 아까 외국인들이 뭐라고 한 지도 모르지?”

 

 “뭐라고 했는데요?”

 

 “‘디 디’라고 했지.”

 

 “그게 무슨 뜻인데요.”

 

 “‘저리 가’라는 말이지.”

 

 “그게 왜요?”

 

 “그들은 처자에게 ‘저리 가’라고 부탁한 게 아니야. 그럴 거라면 한 명이 한국어로 말하면 되는 일이지.”

 

 “그럼?”

 

 “그들은 처자 뒤에 있는 어둠 속에서 자신들을 노리는 것에게 말한 거야. 혼자서는 이길 수 없으니, ‘그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단체로 맞서며 이름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저리 가’라고 말했는데, 처자는 그것도 모르고 ‘그것’의 이름을 말하다니. 정말 대책이 없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둠이 찰스와 주변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하늘의 구름이 끼어 달빛이라도 가려진 게 아닌가 했지만, 자연스러운 어둠과 거리가 먼 어둠이었다. 달빛은 어둠에 삼켜진 뒤였다.

 

 “벌써 우리를 삼키려 드는군.”

 

  찰스는 손짓으로 가로등 아래로 나를 인도했다. 가로등으로 향하며 뒤를 보자, 우리가 있던 곳도 밟았던 길도 검게 물든다.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공포가 확실한 형태를 가지고 나를 덮치려 한다. 검은 ‘그것’은 나를 잡아먹으려는 것이 느껴졌다.

 

  가로등 아래 도착하자, 우리를 따라오던 어둠은 멈칫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가로등 빛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둠에 먹힌다.

 

 “부디 가만히 있기를.”

 

  찰스는 그렇게 말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찰스가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가로등 빛이 깜빡인다. 전기가 나가려는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길함에 깜빡임마다 심장이 한 번씩 철렁거리며 입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손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심장과 비명을 부여잡고 ‘살려줘’를 속으로 되뇐다. 선명한 두려움이 나를 죽이려 한다. 순간 찰스의 말이 떠오르며 그보다 더한 무언가일지도 모른다는 걸 느끼곤 앞을 바라본다.

 

 ‘아, 어쩌면 이게 다 환상이지 않을까?’

 

  찰스가 설명했던 자두처럼, 찰스의 존재처럼 눈을 감고 저 속으로 걸어간다면 빠져나갈 것 같았다. 눈을 꼭 감고 한 걸음을 내밀어 봤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내디디자 역시나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안심하고 눈을 떴다.

 

  그 순간!

  무언가 다리를 휘감기 시작했다. 분명 거기엔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터인데 뱀처럼 서늘한 기운이 다리를 무서운 기세로 감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눈을 뜨고 다리를 바라보자, 검은 그림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뒤를 바라보자 처음의 한 걸음이 빛 아래 있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림자는 익숙하게 내 몸을 다리부터 감싸기 시작한다. 어둠에 닿는 한 다리를 타고 올라와 상체가 아닌 다른 편 다리로 향해 먼저 내 걸음을 막는다. 꼼짝할 못하게 된 나는 입을 막던 팔을 휘두르며 반항해 보지만, 어둠 속에는 닿는 게 없다. 어둠을 계속 바라보며 허우적거리지만 생기는 이변은 촉감이 아닌 어둠 속이 쩍하고 갈라지더니 눈 하나가 나타나 나를 보는 시선이다. 눈의 등장에 더욱 허우적거리지만, 눈도 무엇도 손에도, 팔에도 닿지 않는다.

 

 ‘어째서? 반항할 수 없지?’

 

 ‘그슨대’는 나를 잡고, 보는데 왜 밀어낼 수 없는 것일까? 무력감에 마음에 무언가를 놓으려는 순간, 찰스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뿅 하고 소리를 낼 것만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아직 완벽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지.”

 

  찰스는 나무라기 시작한다. 위험이란 건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가로등 아래 자리를 잡아주었더니 이건 무슨 상황이지?”

 

 “가로등 빛이 깜빡여서….”

 

  울먹이며 말하는 나의 말을 자르며 찰스가 말한다.

 

 “속았군, ‘그것’이 만든 연출일 텐데 공포에 속아 용기를 낸다. 단순한 행동 양식이지.”

 

 “그것보다 빨리….”

 

 “‘살려주세요.’하고 말을 할 생각이라면, 염치가 없군. 살려주려 한 일을 무시하고 이렇게 위험에 빠져놓고선, 혼자 판단을 잘한다면 죽일 거라고는 왜 생각하는 거지?”

 

 “그럼 제가 죽지 않는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존재의 소멸도 명백한 죽음이니, 그따위 의식구조라면 그렇게 생각할 거라 한 번 물어본 걸세. 그렇게 생각하지는 마시게, 말한 것처럼 존재의 소멸이 일어날 터이니.”

 

 “그럼 뭐라도 해보세요!”

 

  두려움에 소리를 지르자,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림자가 멈칫한다. 그건 내 소리가 아닌 어둠을 뚫고 나온 찰스의 손에 들린 조명탄 때문임을 알게 된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있던 조명탄이 발사되고, 어둠은 선명한 밝음을 피해 도망가듯 멀어져 간다. 주변에 경치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다리에 감겨있던 서늘함도 사라진다. 없어졌던 달빛이 내리는 것이 느껴지고 주변은 밝은 어둠이 된다. 밝은 어둠이 존재한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며, 현실과 비교가 될 만큼 비현실답고 깊고 어둡기만 한 곳이 방금까지 존재했던 게 현실이었는지 의심이 들어 얼굴을 꼬집어 본다.

 

  답은 통증으로 느껴진다. 대신 그 의심만큼이나 의심스러운 사내가 내 앞에 있다.

 

 “그 공포가 처자를 살린 걸세.”

 

 “공포라니요? 전 느낀 적 없는데요?”

 

  눈물이 볼을 따라 흘렀다. 닦고 아닌 척, 센 척을 해보지만, 찰스는 가볍게 비웃고는 답이 아닌 자신의 말을 뱉는다.

 

 “이제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을 테니, 당장 출발하지.”

 

 “짐은 챙겨서 가면 안 될까요?”

 

 “그래. 현수를 부를 때까지 시간은 있으니 그러도록 하지.”

 

  끄덕이고 숙소로 향한다.

 

  생각보다 숙소는 조용하다. 조용함에 찰스의 작은 혼잣말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슨대’를 쫓아내는 주문처럼 들렸기에 안심한다.

 

 “다 챙겼어요.”

 

 “그럼 집으로 가세.”

 

 “집이요?”

 

 “처자의 영(靈)이 가장 강해지는 곳이니, 그곳에서 ‘그것’을 몰아내는 의식을 할 걸세.”

 

 “방금 완전히 물러간 게 아니었나요?”

 

 “방금 몰아낸 건 그곳에 본디 있던 것이네. 처자에게 묻은 건 오래전부터 존재하며 더 많은 존재를 삼킨 것이지. 아까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것이지.”

 

 “그럼 왜 나타나지 않죠? 이때까지?”

 

 “강한 만큼 더 신중하니까. 한 번에 사냥감을, 방금 것도 능숙하게 사냥하는 법을 알았지만, 그보다 더 확실하기 삼키기 위해 기다리는 게지. 어쩌면 몇 번쯤 실패했을지도 모르고 우연이 처자를 살린 건지도 모르지.”

 

 “저에게 붙은 ‘그것’도 눈이 있나요?”

 

  한 번 마주한 그 시선이 두려웠다.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인간이 가진 건 다 가지지, 다만 그걸 어디에 위치시키는 지는 모를 테지.”

 

 “왜죠?”

 

 “본디 자기가 가지던 것이 아니니. 많은 인간의 기도나 공포가 ‘그것’에게 부여한 허상일 뿐, 대신 비슷한 형태로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할 테지.”

 

 “예를 들면요?”

 

 “‘그것’은 저수지에 어린아이가 빠져 죽는다는 얘기를 만든 녀석이지, 그런데 실제로 어린아이가 빠져 죽은 적은 없고, 어린이의 모습을 보고 구하려다 빠진 어른의 진술이나, 빠져 죽은 어른은 많았지. 그걸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먹잇감을 유인했다는 것쯤을 알지만, 소문에 지고만 어리석은 어른들은 ‘그것’이 만든 함정에 빠져 여전히 죽지.”

 

 “지금 인간이 그렇게 단순하다고 말씀하고 계신 건가요?”

 

 “단순하지. 가로등에 속은 처자처럼, 허튼 용기가 죽음으로 이끈 것이지. 공포를 인정하며 살아남은 것처럼. 인간의 단순함에 ‘그것’은 반응하지, 용기라는 무지의 산물에 말이야. 자신이 물리친다. 용기를 가졌던 자의 힘을 흡수해 도륙하였고,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미끼를 구하려는 용기를 가진 자들을 먹고 점점 자라났지. 존재를 지울 만큼 강한 것이면서 남기고 싶은 허상은 남겨 그 허상을 숭배하듯 인간을 조종하지. ‘멍청한 만큼 용감하다.’ 이런 말이 왜 있는 줄 아는가? 용감하기 위한 의식의 구조가 그만큼 단순하단 걸 나타내는 말일세. 그걸 너무도 잘 알 만큼 인간에 대해서 오랫동안 살아오며 분석한 녀석이란 말이지. 처자에게 붙은 ‘그것’은.”

 

  찰스의 말에는 내가 조사한 속설들과 현실이 담겨 있었다. 언젠가 ‘그것’이 죽였다는 장수의 얘기도, 저수지 사건에 목격담과 생존자들의 패턴, 비현실의 존재가 그 속설과 현실을 섞으면 더 선명해지는 것이란 걸 처음 알았다. 선명해지는 건 존재의 상실이란 두려움도 함께였다. 공포가 ‘그슨대’, 아니 ‘그것’을 쫓아내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듣고 알지만, 그걸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이 느끼는 공포를 당장에 이겨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어울리지 않네, 두려워하지 마시게.”

 

  상냥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떨림을 느꼈는지 찰스는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어깨에 올려진 손에는 거의 무게감이 느껴지지는 않아 소름이 돋을 뻔했지만, 분명한 촉감은 있었다. 새로운 놀람으로 기존의 두려움을 떨쳐내는 듯한 이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효과는 훌륭했다. 금세 진정이 된 나에게 찰스는 말했다.

 

 “이 몸은 여기를 쉽게 떠날 수 없으니 현수를 부르지.”

 

 

  그것도 시간이 걸리나 싶었지만, 30분쯤 지나자 호텔 벨이 울렸다.

 

  현수였다.

 

 “괜찮으세요?”

 

  첫 질문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네, 다리가 약간 아프지만….”

 

  늦은 첫 질문만큼 그때까지 잊던 다리의 통증이 느껴져 바지를 걷자, 나선형으로 멍이 들어 있었다.

 

 “이 멍은 뭐예요? 그 녀석은 이러 걸 알면 치료나 해주고 날 부르지.”

 

 “찰스 씨가 하는 걸 현수 씨는 못 하시나요?”

 

 “아, 저도 응급 처치 정도는 하는데 찰스 그 녀석은 더 많은 것에 조예가 깊거든요. 그리고 이 멍은 아무리 봐도 그냥 다친 건 아니신 것 같은데, 다른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서요.”

 

 “괜찮을 거예요. 이제 섬뜩한 기운도 없고, 통증만 있거든요.”

 

 “이제 겨우 제가 상대 가능한 영역으로 오셨네요.”

 

 “네, 그렇네요. 이제 뭘 하면 되죠?”

 

 “해가 뜨면 차를 타고 집으로 가시면 돼요.”

 

 “생각보다 단순하네요. 현수 씨가 운전해 주시는 건가요?”

 

 “아뇨. 전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찰스가 그냥 옆에 있으라던데요?”

 

  이 사람은 뭔가 어긋나 있다. 찰스와 둘의 영역을 나눈 것처럼 세상과 어긋난 부분이 존재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현수는 통화로 찰스와 얘기를 나누는 듯한 행동을 했다. 아침이 돼서 출발해서 밝은데도 차 실내등을 켜라는 말과 조언 뒤에 뭔가를 떠올린 것인지, 대화는 산으로 가는 것 같았다. 현수는 계속 반기를 드는 듯한 목소리와 문장을 반복했다.

 

 “바보 같은 소리를 믿으란 거야?” “자네는 정말 너무한 것 같네.” “자네는 항상 핑계가 너무 심해!” “서점 비우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래, 알겠어. 내가 잘못했네.”

 

  결국, 수긍한 듯한 힘 빠지는 사과가 나오고야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듣는 듯한 행동을 했다. 바보 같은 행색을 옆에서 바라보며 2시간 정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아마 카메라에 열 번 이상 찍힌 기분이었지만, 위험에 대해서는 ‘현실 부분’을 담당하는 쪽치고는 현수는 관심이 없었다.

 

 “도착했어요.”

 

 “수고하셨어요. 근데 바로 오면 안 되고 살 게 있는데.”

 

  현수는 그제야 실컷 전화하며 찰스에게 들었다는 살 것을 내게 말했다.

 ‘방을 밝힐 조명.’

 

  바로 조명 상가로 향해 조명을 잔뜩 사서 집으로 향했다.

 

  현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분주하게 조명을 설치했다. 조명을 잔뜩 설치하면 ‘콘센트에서 불을 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잔뜩. 설치가 끝나자 찰스가 나타난다.

 

 “이제 ‘그것’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걸세.”

 

 “그럼 원하면 나타난다는 말씀이신가요?”

 

 “말투에 존경이 담기기 시작했군, 이제야 현실이라는 허상에서 조금 벗어난 건가?”

 

 “제가 살던 현실이 허상이라고 막연하게 말할 순 없지만, 그보다 많은 게 있다는 걸 알아버렸죠. 본의 아니게.”

 

  다리로 손을 뻗는다. 서늘한 기억을 되새긴다. 다시는 그 기분을 남기기 싫었다.

 

 “그럼 현수가 이제 옆을 지킬 걸세.”

 

 “내가?”

 

 “해.”

 

 “네.”

 

  현수는 차에서의 통화와는 달리 빠른 수긍을 한다. 한 번 접힌 마음은 한동안은 접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밤이 되고 몇 시간이나 빛을 쬐자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 버틸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눈을 살며시 감아보았다.

 

 “감으면 안 돼요.”

 

  감자마자 현수가 외쳤다.

 

 “찰스가 말한 건 웬만하면 듣는 게 좋아요. 조금의 위험이라도 없게 하려면.”

 

 “찰스 씨의 말을 그렇게나 신뢰하시는 건가요?”

 

 “네, 그만큼 시아 씨의 안위도 걱정하는 거고요.”

 

 “찰스 씨가 대체 뭐라고.”

 

 “만능의 인간?”

 

 “만능?”

 

  그런 감상을 인간이 스스로 한다는 게 신기했다.

 

 “네, 그 녀석은 꽤 유능하거든요. 제가 무능하거나, 부족한 것을 넘어서는 아득한 유능함. ‘이쪽’ 세계나, 신비에 관해서 전혀 모를 때 저에게 이런 세계를 알려주기도 했죠. 저는 영능력 같은 건 없어서 제령, 퇴마 같은 건 못하지만, 제가 믿던 신조차 과학에 존재를 거부당하는 세상에서 영(靈)의 존재와 귀(鬼) 그리고 과학이 부정한 신(神)의 존재를 믿게 해주었죠.”

 

  감상에 설명이 꽤 장황했다. 마치 찰스의 실체를 모르는 듯한 현수의 감상에 토를 달까 했지만, 먼저 찰스가 토를 단다.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이 아니네, 처자가 흔들린 건 지금이 달을 먹은 자정이기 때문이야.”

 

 “그게 왜?”

 

 ‘앗’하고 현수의 멍한 질문과 비슷한 속도로 떠올렸지만, 이번에도 먼저 찰스가 말한다.

 

 “가장 어두운 시간이라 그렇네.”

 

 “가장 어두운 건 해뜨기 직전이 아닌가?”

 

  현수의 말이 내가 아는 상식이었지만, 찰스는 그 상식을 고쳐낸다.

 

 “그건 해가 내리기 전에 별빛도 달빛도 삼켜져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 마물이나 영(靈)이 가장 어둡게 생각하는 건 자정부터 1시 정도까지 달이 없는 날이면 더더욱 그렇다네. ‘그것’이 가장 강해지는 시간이지.”

 

 “근데 그걸 왜 말해?”

 

 “말했잖는가….”

 

  홀린 것처럼 찰스의 말을 미리 알았다,

 

 “그것은 공포심에 약해진다고.” “그것은 공포심에 약해진다.” 찰스의 말과 동시에 내가 말한다. 나와 찰스의 말에 바로 이해가 됐는지. 현수는 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이건 왜 이러는 건가?”

 

  깜빡이는 조명을 가리키며 묻는 현수.

 

 “그건 이미 처자는 겪어보아서 안다네.”

 

 “‘그것’이 유혹하는 거죠.”

 

  현수의 궁금증 가득한 시선이 느껴지지만, 다른 방향에 존재하는 찰스와의 대화에 나는 집중한다. 찰스는 끄덕이고 대답한다.

 

 “그래. 다만 처자에게 묻어있는 ‘그것’인지, 조선소에서 몰아낸 것이나, 새로운 것인지가 문제군.”

 

 “그렇게나 ‘그것’들의 수가 많나요?”

 

 “그늘이란 글자의 기원이 됐다고 불릴 정도의 녀석들일세. 그늘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를 묻는 것과 같은 질문이네.”

 

 “근데 왜?”

 

 “왜? 어떤 건 악하고, 또 어떤 건 약하며, 어떤 건 이렇게 사람을 잡아먹는지 말인가? 단순한 이치지. 인간은 영(靈) 따위의 걸 부정하고 숨기는 데 애를 쓰지. 근데 비겁하게도 신(神)에게는 그렇지 않아. 어딘가의 ‘그것’은 그저 그늘 정도의 것으로 취급받고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도 않지. 또 다른 곳의 ‘그것’은 방송에도 나올 뻔할 정도로 정체를 드러내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강한 숭배를 오랫동안 받아왔지. 그게 어떤 미신이나, 공포의 형식이지만, 몇 년 묶은 미물이 요괴가 되는 것처럼 본디 어둠이라는 강력한 두려움의 존재였던 것이 몇백 년 또는 몇천 년을 묶으며 숭배를 받으면 이토록 강한 힘을 가지게 되지.”

 

 “그럼 우리가 물리친 건, 그저 근처에 있던 게 그 정도란 말이에요?”

 

 “신앙이 종교의 다른 해석과 파생으로 이어지듯 숭배는 많은 민담과 신화, 전설 따위로 계승되는 경우가 많지. 처자 몸에 묻은 ‘그것’은 아마 어떤 장군을 죽였던 정도로 강한 것이고, 카메라에 담길 정도로 선명한 것이지. 어둠이란 허상이 선명함을 가지기 위해선 얼마나 강력할지 상상이나 가는가? 그것으로 오해를 받는 것만으로 약하게나마 다른 비슷한 것들도 힘을 받은 것이지. 주변을 삼키는 어둠이 되는 힘이나, 사냥감을 보는 눈, 함정을 만드는 지능까지. ‘그것’을 따라 하며 ‘그것’을 자칭하며.”

 

 “그보다 더한 것도 가능하다는 거예요? 잘 죽지도 않고?”

 

 “애초에 악귀(惡鬼)나 악령(惡靈)의 범주와는 전혀 다른 요괴(妖怪)의 범주의 것이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의 범주는 쉽게 벗어나 있겠지. 악귀나 악령처럼 무언가 정확한 기원이 있는 것이 아닌, 어둠이라는 공포에서 기원이 되는 또는 기원하는 요괴. 어둠을 이기지 않는 이상 절대 죽일 수는 없지.”

 

 “그래서 조명을 이렇게나 켜고 저를 겁주는 건가요?”

 

 “아니지. 그보다 더 강력한 영(靈)에게 느끼지 못하던 공포를 빛을 쏘지.”

 

 “네? 그딴 바보 같은 소리가 어딨어요. 여기 우리 말고는 다른 사람은 없는데. 그리고 두 분은….”

 

 “쉿. 와버렸네. ‘그것’이. 걷어내려던 허튼 어둠 이기지 못한 듯하군….”

 

  검지를 입술 위에 올리고 찰스는 할 말을 죽여버린 것처럼 날 침묵시킨다.

 

 “뒷얘기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우린 따로 얘기할 게 있는 것 같군. 그리고 그걸 모르는 건 여기서 항상 현수뿐이네.”

 

 “응? 나 왜?”

 

 “자네가 잘못해서 이런 사달이 벌어졌다고 말했네.”

 

 “내가? 이렇게 겨울에 미세먼지 같은 존재감을 뽐내며, 옆에서 둘이 하는 걸 관망만 한 내가?”

 

 “이 사건의 중심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자네는?”

 

 “물론 시아 씨지.”

 

 “아니라네.”

 

 “뭐?” “네?” 듣던 나도 황당함에 현수와 같이 대답한다.

 

 “이 방안에 가장 강렬하게 ‘그것’을 조우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는 자네뿐일세, 이 몸도 저 처자도 ‘그것’이 묻어있지.”

 

  순간 가슴 속에서 검은 무언가가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내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가 삐걱하는 소리를 내고는 쿵 하고 무너졌다. 찰스의 그 말은 내 폐부를 관통하는 말이었다.

 

 ‘애초부터 날 구할 생각이 없던 거야?’

 

  어쩌면 ‘그것’도 죽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도 안 되는 것이 묻어있는 건, 시간이 되면 차례를 받고 기다리다 죽는 사형수처럼 세상의 이치대로 죽기를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나를 속인 것이었다. 그저 날 이용해 자신에게서 ‘그것’을 때어놓기 위해, 이 빛 속에 미끼로 누군가를 놔두고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해.

 

  가슴에서 올라오는 검은 무언가가 전신으로 흐른다. 분노가 치밀며 손에 잡히는 조명 하나를 집어 그에게 던진다.

 

 “설마, 그 정도 말에 오해하는 것이오? 아니면 이 몸이 아직 파악 못 한 허튼 어둠에 지고 만 것이오?”

 

  알 수 없는 소리로 설파를 하며 자신의 몸만을 보존하려는 그에게 분노를 느낀다.

 

 “이 나쁜 새끼.”

 

  조명 하나는 또 집어 든다.

 

 “그 이상 조명을 깨면, ‘그것’을 몰아내는 일은 물론이고, 우리의 목숨까지 위험하오!”

 

 “네 목숨이겠지!”

 

  두 번째 조명을 던지고 나니 세 번째, 네 번째는 더 쉽게 던져졌다. 뭔가 걸리는 느낌도 뽑아버리고 그에게 잡히는 대로 조명을 던진다.

 

 “이 몸의 설명이 부족했소? 아니면 애초에 이 몸을 찾은 이유가 다른 탓에 그러는 것이오? 여태 처자가 한 거짓말을 속아준 걸 몰라서 이러는 것이오? 이 몸은 그분을 만났을 때 서점 따위 하지 않았소.”

 

  저런 건 또 어떻게 알아낸 것일까? 쓸데없이 말이 옛것으로 변해갈수록 그의 능력이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는 반대로 조명으로 만든 방의 완성도가 점점 떨어졌다. 왠지 모를 미소가 나왔다. 그 순간 찰스가 속삭였다. 먼 거리임에도 머리에 울리듯 선명하게 들리는 음성.

 

 “뒤.”

 

  짧은 그 말에 뒤를 보자. 완성도가 떨어진 방의 조명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림자는 남은 조명을 받아서 만들어질 거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길게 늘어졌다. 웃기게도 반대편으로 향해야 할 그림자는 서서히 내게 다가온다. 아니, 다가오려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뾰족하게 늘어진 일부가 떨려, 궤적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중간에서 찰스가 발로 그림자를 밟고 있다.

 

 “왜?”

 

 “질문할 때가 아닐세. 물러나게.”

 

  찰스는 흥분해서 이성을 놓던 나에게서 늘어진 그림자의 끝과 멀어지게 손으로 인도한다.

 

 “저기 둘 다 진정한 것 같으니. 이제 난 뭘 하지?”

 

 “그냥 가만히 있으시게.”

 

  찰스가 현수에게 대답한다. 그들의 대화가 무색하게 현수의 옆에 검은 형상이 꾸물꾸물 면에서 형으로 헛것만 같던 것이 온전한 형태를 가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작은 사람의 모양이 되었다. 현수는 ‘그것’과 마주했다.

 

 “이게 아이들이 빠져 죽는다는 소문의 실체인가?”

 

 “맞네. 그리고 다른 의미도 있지.”

 

 “다른 의미?”

 

  그 모습에 공포를 느꼈지만, ‘그것’은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현수가 이 사건의 중심이라던 말을 떠올렸다. 있을 리 없는 찰스와 사선 뒤, 거기서는 이해하지 못할 표정을 짓는 현수가 있었다. 점점 또렷한 형태가 부글거리며 붕괴할 것 같은 ‘그것’을 보고 웃었다.

 

 “현수 씨!”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만, 현수는 반응이 없다. 대신 찰스가 ‘그것’과 현수 앞에 나타난다.

 

 “자네는 그게 문제일세. 신비의 영역에 전혀 능력이 없다는 걸 알면서 그것을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것 말일세.”

 

  그 말에도 현수는 반응 없이 웃는다.

 

 “그게 자네 또는 주변을 죽일 수도 있는 일이건만. 자네는 참 변하지도 않구려.”

 

  찰스는 붕괴하기 전 ‘그것’을 끌어안는다. 순간 붕괴가 될 거라 보이는 부들거림과는 달리 위로 터지며 그들 위로 짙게 어둠이 깔린다. 깔린 어둠에서 불규칙한 치아가 나오더니 찰스를 덮친다. 놀라 고개를 돌려 그 장면을 회피했지만, 둔탁한 뼈를 짓이기는 소리와 액체가 볼에 닿는 것으로 찰스의 죽음을 느낀다. 두려움은 커지지만, 현수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린다.

 

 “아, 아….”

 

  무언가를 잃은 표정으로 증발하듯 사라지는 어둠을 현수는 양팔을 벌려 본다. 바로 앞에 머리가 어깨와 쇄골 쪽까지 뜯긴 채로 서 있는 찰스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증발하는 어둠만을 바라본다. 찰스는 무관심 속에 이내 무너져 무릎을 꿇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검은 액체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바닥을 검게 물들인다. 검은 액체가 내 발에 닿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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