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실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소속사 배우가 이런 망신을 당할 때까지 그냥 두고만 봤어!!!”
성난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조 실장은 그를 향해 쏟아지는 욕설과 분노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그 자식 곱게 이미지 만들어서 금칠해놨더니. 제 얼굴에 똥칠할 동안 넌 그냥 두고 봤냐고!”
조 실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조 실장의 속도 말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분에 받쳐 한참을 씩씩대던 김 사장은 거칠게 담배를 물었다.
달그락달그락
한참을 담배에 불을 붙이지도 못하고, 라이터만 빙글빙글 돌리던 김 사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박준서 그놈. 너도 잘 알지 않냐……. 솔직히 걔가 얼굴 빼고 쓸 데가 어딨어. 연기도 발로 한다고 감독들도 다 안 쓴다고 해. 그렇다고 예능에서 쓸 만큼 순발력도 좋지 않아. 입만 열면 무식한 거 다 티나. 노래도 춤도 안돼.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겨우 그 드라마에서 한 컷 제대로 걸려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냐……걘 진짜 그 얼굴이랑 이미지로 먹고 사는 앤데. 열애설에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닌다고 광고를 하고 다닌 꼴이니. 이제 누가 얘랑 작업하려고 하겠냐.”
“…….”
“너도 여기서 한두 해 밥 먹고 산 거 아니잖아? 딱 보면 견적 나오잖아. 박준서 끽해야 1, 2년이야. 그놈 얼굴이 먹히는 것도 딱 그때까지라고. 예쁜 꽃도 세월 가면 시들어. 누구보다 물관리 잘해야 그나마 유지 되는 거 몰라?”
김 사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피지도 못한 담배를 내동댕이치고 찬물을 들이켰다. 벌써 박준서가 데뷔한 지 10여년이다. 고등학생 때 만들어 놓은 미소년의 이미지는 연기의 미숙함은 수줍음으로 포장되었고, 최대한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면서 그만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자신이 잘나서 성공했다고 믿는 박준서는 겁도 모르고 이일 저일 다 저질러 놓고 다녔고, 황금알을 낳을 것 같은 그를, 김 사장이 이 악물고 소문을 수습해가며 만들어 놓은 게 슈퍼스타 박준서였다.
“열애설. 그래 날 수 있지. 그게 장사가 되면 날 수도 있어. 그런데 이건 뭐 개업도 못 하고 끝난 거 아냐? 로맨스도 둘이 좋다고 해야 장사가 되지. 이거 조금만 엇나가면 구질구질해지는 이미지만 남고 뭐가 돼?”
“그래도. 상대가 이슈가 되기엔 좋지 않습니까? 재벌가 공주님인데…….”
입 다물고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조 실장이 조그만 목소리로 반박하듯이 이야기했다.
돈이 되는 열애설. 그 이야기대로라면 이 환희는 큰 대어가 아닌가?
이 계획을 반대했던 자신을 준서가 설득했던 부분도 이것이였다.
그녀와의 열애설은 이슈가 되기만 해도 자신의 몸값을 높여줄 대상이라고. 조실장도 그 점에 동조했기 때문에 그의 무모한 계획에 참여 했던 것이었다.
“야! 뱀도 자기가 소화 시키지 못할 크기의 먹이는 입도 대질 않아. 재벌가 공주님? 딴 데도 아니고 K그룹 공주님이야. 거기서 삐딱선 타면 박준서도 박준서지만 너도, 나도 거리 신세인 거 몰라서 그래? 이거 어떻게 수습할 거야!!!!”
또 다시 분노를 내뿜는 김 사장을 앞에 두고 조실장은 없는 준서의 이야기를 꺼냈다.
“……준서가 생각이 있다고……”
“일을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 생각 있다고 이야기하면 다야? 이 자식 어딨는데?”
“오늘 지면 CF 촬영하러 갔습니다.”
조실장은 오래간만에 잡힌 그의 일정을 김 사장에게 보고 했다.
“그거 끝나자마자 사무실로 데리고 와!”
분노가 가득 찬 외침이 사무실에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
“어머, 준서 씨 살이 좀 빠졌나 봐. 이 턱선 좀 봐봐. 이젠 아주 베이겠네.”
간만에 지면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선 그를 보며, 디렉터가 호들갑을 떨며 나왔다.
평소에는 그를 봐도 데면데면하던 그는 생전 처음 보는 얼굴로 호들갑 떨며 준서를 반겼다.
“아, 오래간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그의 확 달라진 태도에 준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지만, 디렉터는 그의 주변을 맴돌며, 계속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준서 씨는 요새 더 관리 받나 봐. 어찌 더 멋져진 거 같기도 하고. 이번 광고도 대박 나는 거 아냐?”
준서는 낯선 디렉터의 칭찬에 그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가 자신에게 칭찬하다니. 항상 준서를 무시하는 것도 그에게 일상이었고, 준서의 뒷담화라면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그가 오늘은 준서를 반긴다니. 괜한 경계심이 생겼다.
“그리 봐주신다면 좋은 일이죠. 전 이만 준비하러 가볼게요.”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준서는 디렉터를 벗어나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이동했다.
그러나 디렉터는 그의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낯간지러운 아부를 쏟아냈다.
“그래. 준서 씨는 이런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너무 좋다니까? 이번 광고도 다 자기한테 달린 거 알지? 편안하게 촬영해요.”
하루 아침에 변해버린 듯한 그의 태도에, 준서는 구역질이 나는 것 같았다. 저놈 때문에 없던 일도 만들어져, 영문도 모르고 사과하고 다녔던 일도 있었건만, 그는 그런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이 입안에 혀처럼 굴고 있었다.
도무지 그가 변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준서는 그를 마주 보고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준서 씨, 이번에는 이렇게 촬영 해볼게요. 뒤를 돌아보면서 그렇지, 그렇게 좋아요!”
끊임없이 플래시가 터지고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줍은 미소를 카메라를 향해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훈련된 그의 미소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왔다. 저 멀리서 자신을 부담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디렉터가 매우 신경이 쓰였지만, 매번 들릴 듯 말 듯 한 뒷담화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걔랑 사귀는 거 맞을까?”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셔터 소리 속에 파묻힌 준서의 귀에 자그맣지만 정확한 목소리가 흘려 들어왔다. 이상하게도 이 소음 속에서도 그 목소리가 그에게 꽂혀 들어왔다..
“기사에는 부정했다고 했잖아요. 근데 왜 사귄다고 믿으세요?”
“쟤가 딴 건 몰라도 여자 후리는 솜씨는 뛰어나잖아. 사람 많은 데서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분명 만나고 있을 거야. 내 촉이 확실하다니까? 딴 사람도 아니고 K그룹 공주님인데 혹시 모르지. 잘 보여두면 우리한테도 콩고물 떨어질 수도 있다니까?”
밝은 조명 뒤에 서서 보이지도 않는 그들의 비열한 웃음이 준서에게 보이는 듯했다. 준서는 순간 그가 가진 미소를 잃어버린 채로 그들을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와 준서 씨! 이런 표정도 있었어? 너무 좋다!!”
영문을 모르는 카메라의 셔터만 그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
“다음 촬영 준비할게요.”
준서가 세트장에서 내려오자, 디렉터는 다시금 잽싸게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고했어. 잠깐 확인해봤는데 A컷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던데. 역시 준서 씨가……”
“조금 피곤해서요. 저 잠깐 혼자 쉬고 싶은데 대기실로 가봐도 될까요? 작가님 저 10분만 쉴게요.”
디렉터의 말이 더 이어지기 전에 준서는 그의 말을 싹둑 자르며, 대기실로 걸어 들어갔다. 역시나 저 인간이 자신에게 이유 없는 친절을 베풀 리가 없다면서. 따라 들어오는 로드 매니저도 거절한 채 그는 대기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XXX. 역시 저 자식 저럴 줄 알았어. 영 찝찝하더니만. 아이씨 재수 없어.”
대기실에 들어가 문을 닫자마자 준서는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큰소리도 내뱉지 못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혼자서 속을 삭이는 것 뿐이었다.
몇 년간, 그가 연예계에 있으면서 깨닫게 된 몇 가지의 교훈 중 하나가 자신이 불편함을 내비치면 몇 배나 더 큰 불편함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게 어떤 진실을 품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소문은 늘 좋은 쪽보다 나쁜 것을 부풀리기에 좋았다.
특히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는 모래성처럼 약하기 그지없었다. 무려 10여 년 전의 단 한 개의 작품이 그를 스타로 만들어 줬다. 어렸을 때야 그게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고, 스타란 이름으로 모든 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도 하며 안하무인으로 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평생 보장될 것 같았던 자신의 찬란한 미래가 실상은 간신히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의 마음은 급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를 찾는 감독들도 없었고, 그를 사랑해주던 팬들도 조금씩 자신에게 멀어져가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몇 개의 광고와 하이틴 스타라는 이름 뿐이었다.
지금까지는 박준서라는 이름 석 자로 지금까지 잘 버텨왔지만. 언제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숨을 죽이고 분노하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자신만의 대처 방법이기도 했다.
“씨……. 조실장은 왜 안 오는 거야. 민혁이 저 자식은 눈치도 없어서…... 이딴 소리나 듣게 하고.”
준서가 이렇게 문을 걸어 잠그고 화를 삭힐 때면, 항상 곁에서 낄낄대며 그의 모습을 위로하던 조 실장이 그리워졌다. 조 실장은 그에게 빈정대기는 해도 적어도 남들처럼 뒷말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준서는 나름 그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었고, 이런 날이면 조 실장과 나누는 의미 없는 욕설들이 그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최근에 들어온 로드 매니저는 영 그런 눈치도 없이 안절부절못하고 그의 눈치만 빤히 보는 게 영 미덥지도 못했다.
“그렇게 찾는 조 실장님 도착했다. 근데 저 새끼는 왜 저래? 징그럽게.”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던가. 준서가 굳게 닫아놓았던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그가 찾던 얼굴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오며 대번에 욕부터 쏟아냈다.
그도 디렉터의 낯간지러운 소리를 잔뜩 듣고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씨. 저 자식 나한테 콩고물 받아먹으려고 기다리는 중이야. 떨어질 콩고물도 없을 건데.”
“그게 무슨 소리야. 콩고물이라니. 너한테 떨어질 콩고물이 어딨어? 있으면 나도 좀 받아먹자.”
“이환희. 걔랑 나랑 사귄다고 굳게 믿고 있더라고. 그래서 저러더라.”
“……..오늘 아침 기사 안 봤나?”
조 실장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기사는 좋게 봐도 그들이 사귄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아니 열애설보다는 버림당한 박준서를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가 많이 풍겼고, 그걸 본 사장도 아침부터 자신을 소환해서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는가
“본 거 같은데. 저 새끼가 딱하나 믿는 게 그거더라.”
“뭘 믿기에 그 기사 보고, 너랑 걔랑 사귄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여자 후리는 게 보통이 아니라, 저 기사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는데.”
“뭐? 하하하.”
준서의 이야기를 듣던 조 실장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박준서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는 잘했지. 끊임없는 여자들을 소문 없이 정리하고 다니느라 똥줄 빠지던 조 실장이 모를 리가 없는 바였다. 그 사실이 저들에게는 사실을 안 믿게 한다니. 이건 정말 촌극이다.
“웃지 마. 이게 웃을 일이야?”
“크크크. 이걸 안 웃으면 어떤 걸 웃냐. 그냥 믿게 내버려 둬. 덕분에 저 새끼 아부하는 꼴을 다 보네.”
조 실장은 여전히 낄낄대며 준서에게 이야기했다. 아침에 사장에게 받아냈던 분노가 여기선 코미디로 변했다니. 정말 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러나 그의 웃음을 보고 있던 준서는 한참이나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환희……..이환희란 말이지………”
낄낄대며 웃는 조 실장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준서는 환희의 이름 석 자를 조용히 되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