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혁은 하임이 나간 뒤 하임의 눈빛이 맘에 걸려 , 자리에서 그저 서 있을 뿐 , 다른 어떤것도 할수 없었다.
거리를 원한건 사실이다.
그건 내가 아니라 , 어쩌면 장 하임을 위한 거리다.
나랑 붙어 있으면 있을수록 장하임이 힘들어 질 뿐이다.
당장은 그래- 내가 자기에게 어떠한 보답도 할수 없는, 하지 않는... 내 감정이 없는 고철 덩어리 같아서 화 나고-
공허할테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 아버지 주변 사람들까지도 그렇게 개입할텐데...... 내 걱정이 지나친가?
그건 장 하임이 아버지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그렇다고 내 상황을 전부 다 이야기 할수도 없다. 그냥 .... 이 여자가 친구로라도 내 곁에 좀 있어줬으면...
그게 다였는데..
내가 5년만에 품은 욕심이란건 그게 다다.
이 여자가 가끔 - 가끔 그렇게 즐겁게 같이 웃고 같이 즐거워 하고..
친구로써라도-
그랬는데.. 저렇게 까지 화 내고- 섭섭할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세련되게 , 단정하게 좀 거리를 유지 할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수도 있었을 텐데.....
사람을 잃은지가 너무나도 오래 되어- 그때는 그저 다 떨쳐내 버리고 도망치는게 방법이었기에
적당히 밀어내고 적당히... 내게서 멀어지지도 다칠만큼 속 상할만큼 가까이 있지도 않게 하는 방법은 몰랐다.
몰랐다고 나도, 그런걸 원하게 될지도 몰랐다고.
지혁은 속으로만 되뇌였다.
사과하고 싶지만- , 아니 내가 그렇게 까지 해도 되는거긴 할까?
사과 해 놓고 나한테 다가오게 해 놓고 뭐라고 해? 난 위험하니까- 나는 안고 있는 사정이 너무 많으니까
간격을 지켜달라고 해? ... 계속 당신이 옆에 있어 줬으면 하지만- 당신이 늘 그러듯이 나한테 자꾸 밖에 나오라고
용기를 주는건 안했으면 좋겠다고? 그럼 내가 맘에 있는 무거운것들을 다 버리고
그저 도망가고 싶을지도 모른다고?
지혁은 의자에 돌아가 다시 앉았다. 자신의 편협함에 어이가 없었다.
내가 나치도 아니고 공산당도 아닌데 .... 이런 부탁을 , 그것도 앞날이 창창한 여자가.....
들어줄리가 없지 않은가....
들어 준다고 한들- 난 그 마음에 보답 할수 없을텐데....
... 지혁은 한숨을 내 쉬며 하임이 놓고 간 조사해온 관광지들을 살핀다.
깔끔하게 분야별로... 그것도 가지런한 손글씨로... 이걸 하면서 분명히 시간을 많이 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따뜻한 말 한마디 정도는... 정말로 기대했을 것이다.
......
그 여자가 내게 솔직히 왜 다가오는지도 난 이해를 못하겠다.
어떤부분에선가 이 사람이 날 , 호감으로 느끼는지 깨달았냐고 묻는다면
그때였다.
이 여자가 내 얼굴에 그 연고인지 뭔지를 발라주겠다고 앉아 있을때.
난 눈을 감고 있었다. 연고가 좀 매워서.
그때 너무나도 익숙한 눈길을 느꼈다.
심장이 가느다란 떨림이 , 내 손목에도 스쳐갔다.
하민이가 날 바라볼때의 그 느낌이 되살아 났다.
우정이라 하기엔 너무나 선명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 느낌-
손은 상처에 가 있었으나- 그녀의 눈은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듯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훑었다.
눈을 뜨고 아무렇지 않은척-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당황한 빛을 읽었고- 그 뒤에도 조금씩 조금씩
느꼈지만.
아니길 바랬다. 그건 내 이기심이지만... 그랬다.
더 가까워 지고 싶어하는 맘이 더해지면 - 둘 중 하나는 실망하거나 아님 밀어내야 할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너 나 좋아하지? 그러지 마-' 라고 하겠는가?
그보다.. 그녀가 나를 그런 감정으로.. 바라보는건 맞긴 할까?
있어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다가 오는 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수 없게 한다.
난 죄책감으로 두걸음 이상 물러날 것이다. 그때마다... 그녀는 또 이렇게 화가 날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아픔에서 떨어졌으면 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충분한 경고쯤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경고가, 의도치 않게 너무 달콤했나 보다.
그녀는 내 진심을 전혀 알지 못했다. 결과적으론 그랬다.
죄책감과 책임감, 또 욕심이 뒤섞여 엉망이 된 기분이었다.
지혁은 다시 한숨을 내 쉬며 하임이 빼곡히 적어놓은 글들을 보며
한숨같이 말을 내뱉었다.
"그냥 , 그대로 있기만 하면, 그럼 되는데...........
왜 이렇게 자꾸만 간격이 좁아지는건지....."
-
하임은 문을 쾅 닫고 들어와선 씩씩거렸다.
냉장고 문을 벌컥 열고 물병을 들곤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괜한 성질인걸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화가 나는건...
작약이 잘못한게.. 별거 없다는게 더 화가난다. 그 사람은 .. 별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
어차피 일하는 사이면서- 대체 내가 어떤걸 기대했는지...
맘속의 자극적인 목소리가 나한테 되 물었다, 알잖아- 알면서 스스로에게 뭘 물어?
니가 생각한건 결국엔 니 맘에 그가 답하는거, 아니었어?
....
아니야.. 나의 목소리는 힘 없이 항변했다.
처음에 그저 그 사람이 조금만 숨통이 트였으면 해서 니가 먼저 뻗은 손이었어- 그 정도면
너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잖아- 그러면서 .. 그사람이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화를 내?
그럼 그 사람이 너를 장 하민처럼 사랑하기라도 해야 해? 그 사람에겐 .. 사랑의 방은 하나뿐이야
그 방은 이미 임자가 있고. 너도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이제와서 그 사람이 널 조금
아주 조금 선 밖으로 넘어왔다고 - 간격을 지키라고 밀어냈다고 이렇게 씩이나 화를 내는거야?
......
다 아는 일이니까 더 힘이 빠졌다.
그는 끊임없이 경고를 했다. 간격을 지키라고- 그게 자신을 위하는 것 보단 나를 위하는 것이었음은
안다.
맘속의 간격이 내가 바란 것과 그가 바란 것이 달랐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가까워 지는 듯 하다가도 다시 처음으로 쭉 밀려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런 감정은 시작 조차 하면 안됬다. 몰랐던거 아니면서...
이 사람이 변치 못할꺼 알고 있었으면서-
시작조차 하면 안됬는데,
하임은 무의식적으로 떨어진 눈물을 훔쳤다.
"맙소사, 나 지금 우는거야?...."
하임은 어이가 없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짝사랑 때문에 우는건 고등학생때 쯤에 졸업한줄만 알았는데....
하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서러운 맘은 달라지지 않았다.
18살 소녀처럼, 하임은 한동안 상처난 가슴을 달래야 했다.
-
그때 지혁의 어머니에게는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
지혁의 아버지였다.
폭풍같던 그날이후- 안 받는데도 참 꾸준히도 전화를 한다.
전화벨은 무척 끈질기게도 울어댔다.
지혁의 어머니는 한숨을 내 쉬곤 결국엔 이번의 전화는 받았다.
"회장님."
지혁의 아버지는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아직도 아내가 화가 나있음을 알수 있었다.
화나면 평소와 달리 꼭 회장님 소리를 하니.... 받는 것만이라도 다행이라 해야 하나,
어쩜 이 여자도 , 내 둘째 아들같이.. 내 맘같지 않은지.
"... 흠... 아직 청평이라며?..... 그래도 집에 가 있지... 집이 비었는데...."
지혁의 어머니는 숨소리하나 없이 조용할 뿐이다.
"..... 지견이 다녀 갔다는 이야긴 들었어-.. 그래 내가 성급했어-
하지만 그 녀석이 언제까지 그럴순 없잖아-... 그 아이도 이제 결혼도 해야하고
다른 사람... 만나봐야 하잖아 언제까지 저 혼자... 그렇게 둘수 없어서 맘이 급해져서
그랬어.."
한숨과 함께.. 이번엔 대답이 돌아왔다.
"..... 기억 안나세요? 하민이 그렇게 되고... 그 아이... 혹시라도 나쁜 생각할까봐... 우리 둘다 잠 못 이루고..
밤새 복도에서 기도했던 때... ? 그때 우리 둘다 그랬어요.. 살아만 준다면야 뭘 못해주겠냐고... 그랬죠..
그런데.. 그냥 피해 안 끼치고.. 혼자 잘 지내고 싶다- 잘 있고 싶다. 그게 다인.. 그 아이 곁에서 ... 그것도 저흰 끊임없이
방해하잖아요- 그 아이를 잊을 법 하다면 언젠간 그렇겠죠-.. 그 아이를 더 못놓게 더 잊지 못하게 더 죄책감 품게
하는건 우리에요..... 저희라구요.. 전 그저 밥 한끼 내 손으로 해 먹이고 싶었어요 불편함 없이... 그게 다 였어요
그래서 지견이 없을때 한번 들르라 한 거고 - 그게 당신의 강압인줄은 몰랐죠."
목소리엔 냉기가 서려있다. 원망을 넘은 서늘함이..
"강압이 아니었어-... 강비서 없이.. 한번 일 해 보란 거였지... 그렇게라도 그 아이가 나한테 도와달라고 했으면 했다고-"
"필요하면 이야길 하겠죠- 왜 그 대답을 기어이 들어 내셔야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강비서 없으니 결국 자신이 움직이잖아- ...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거 아닌가?"
회장의 중후한 목소리로 뱉는 애같은 의견에 지혁의 어머니는 이 사람의 성미를 그대로 닮은..
첫째를 안 떠올릴수가 없다.
"과정이 전 더 중요해요-... 결과는 딱히 더 좋지도 더 나쁘지도 않아요..... 그 아이한테 더 주진 못할망정
다 뺏고 당신한테 손 좀 벌렸으면 하시나 본데........ 그게 방법이 아니란 건 당신도 알잖아요-
안그럼 안되는 거에요? 다들 그 아이를 불편하게 힘들게 하는데 저흰 부모잖아요... 안 그럼 ... 그냥 좀 안아주고
포용하고 넘어가면 안되는거였냐구요!"
결국 언성이 높아지고 회장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어진다.
"전 설사 그 애가 평생 총각으로 늙어 죽을때까지 하민이 못 잊는대도 상관 없어요-
그게 자기 행복이라 생각하면 그걸로 충분해요-..... 시간이 더 지나 만약 잊고 다른 사람 생긴다면
그건 그거대로 또 축복해 줄거에요-.....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구요 밀어붙여서 될일이면...
그 아이 - 벌써 괜찮았어야 되는거 아닌가요? 당신이 하민이 부모님 도와서 하민이 경기도로 보냈을때.......
그때 해결 났을 일이라구요 알면서.... 왜 이렇게까지 미련하게 굴어요...."
회장은 말이 없고 지혁의 어머니는 딱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이제 당신은 지혁이 일에서 손 떼요- 강비서? 이제 저한테 보고하라고 하세요-
이거 최후 통첩이에요-...... 당신과는 부부이기에 맘 먹기에 달렸지만 그 아이와 난 천륜이니.... 끊을래야 끊을수
없다는 것도 아시겠죠-... 당신 방법으로는 애 다 부숴서 가루만 돌아올테니.. 이젠 내 방식으로 할래요-
더는 못 참아요-.... 싫으시다면 평생 저는 여기 있겠어요-"
회장은 지혁 어머니의 날벼락 같은 말에.... 그저 수화기 너머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