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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백색살인
작가 : BLED
작품등록일 : 2019.9.30

 
백색살인(35화)
작성일 : 19-10-21 12:57     조회 : 24     추천 : 0     분량 : 4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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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20대에 경찰에 입문한 뒤부터 지금까지 근 30년 가까운 시간동안 민 반장의 삶의 대부분은 범죄 현장이었다. 잠복근무나 사건 수사로 몇 칠씩 집에 못 들어가는 것은 다반사였고, 쉬는 날에도 불려나가기가 일쑤였다.

  자연히 가족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오히려 가족과 같이 있는 시간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요즘 들어 민 반장은 자신과 가족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가름막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있는 십대의 사춘기 딸아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내마저도 민 반장을 아예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경찰서에서는 능력 있는 베테랑 강력 반장이었지만 집에서만큼은 아무 짝에도 쓸데가 없는 유령인간이었다.

  가족들의 그런 시선 때문인지 민 반장 역시 쉬는 날에 집에 있는 것이 더 불편했다. 모처럼 갖는 휴일이어도 민 반장이 하루 종일 집에서 하는 일이란 것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빈둥거리면서 재미없는 텔레비전 채널만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딸아이가 귀가하는 저녁 무렵까지만 이었다.

  이제 고 3이 된 딸아이가 귀가하면 그 즉시 집안은 절간보다 고요해진다. 아내는 딸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민 반장이 눈치 없이 텔레비전 볼륨이라도 크게 틀라치면 곧바로 아내의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당신은 지금 텔레비전이 보여요? 아이 공부에 도움을 주진 못하고……. 아이 이이가! 빨리 꺼요!!”

  아내가 텔레비전을 끄지 않고 미적거리는 민 반장의 손에서 리모컨을 빼앗아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민 반장은 그런 아내의 태도에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내가 아이들 공부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뭔데?”

  그 말에 아내의 눈초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민 반장은 아내의 얼굴 표정을 보고 그냥 텔레비전이나 끌 걸 괜한 말을 꺼냈다는 후회를 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의 판박이 같은 푸념이 쏟아졌다.

  “당신이 어디 다른 집 아이들처럼 한 번 아이 과외 공부를 시킬 만큼 벌어다 주길 했어요? 아니면 아이 용돈이나 한 번 줘봤어요?”

  아내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민 반장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럼 대한민국 경찰들 봉급이 다 그렇지!...... 그걸 모르고 나랑 결혼 한 거야?”

  “그걸 아니까 지금까지 당신에게 한 마디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 지금……. 내가 돈을 못 벌어오니까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텔레비전도 꺼라 이거지?”

  민 반장이 억지를 부리자 아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때 딸애가 자기 방문을 벌컥 열며 짜증을 냈다.

  “좀 조용히 좀 하세요! 엄마 아빠 싸우는 것 다 들려요…….”

  민 반장이 딸애에게 한 마디 하려다 두 눈에 쌍심지를 켜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그냥 참았다. ‘애 야단만 쳐봐. 그럼 오늘 아예 끝장이 날줄 알아’라는 아내의 무언의 협박 아닌 협박이 민 반장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딸애가 방문을 닫자 아내도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 혼자 덜렁 남은 민 반장은 황당했다. 민망함과 함께 까닭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지만 텔레비전마저 끄고 나자 달리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거실에 앉아있던 민 반장은 점퍼를 꺼내 입고 집을 나왔다.

  그러나 막상 집을 나와도 갈 곳이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친구들을 검색하다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껐다. 친구들을 불러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연락도 제대로 않고 지내온 터에 느닷없이 자기 하소연을 하자고 쉬고 있을 친구들을 부르기도 멋쩍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도 아마 자기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부른다고 집 식구 눈치 안보고 이 늦은 시간에 나올 수 있는 친구가 몇이나 있을까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제대로 된 아빠나 남편으로 살기조차 힘들게 되어버린 이 사회가 씁쓸했다. 민 반장은 나온 김에 포장마차에서 혼자 소주 한 병을 마셨다. 정말 그동안 일밖에 모르고 살아 온 자신의 삶이 억울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막 늦은 가게 문을 닫으려는 꽃집이 보였다.

  민 반장은 불현듯 아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안개꽃과 장미를 섞어 포장을 했다. 민 반장은 오래전 아내와 데이트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민 반장의 가슴에 그리움과 아련함이 함께 촉촉이 묻어났다.

 

  오후 3시에 예정된 기자회견 시간이 다가왔다.

  민 반장은 입이 썼다. 매일 정례적인 브리핑은 검찰에서 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무슨 이유인지 사건을 직접 담당하는 강력반에서 브리핑하도록 경찰서장의 지시가 있었다.

  세 건의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수사 진척이 없자 청와대에서 질책이 내려왔다는 말도 있었다. 민 반장은 한 번쯤은 닥칠 일이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기자 회견은 경찰서 5층에 있는 강당에 마련되어 있었다. 수사를 직접 맡고 있는 강력반장이 처음으로 언론에 하는 브리핑이라 그래서였는지 강당 안에는 많은 기자들과 카메라로 가득했다. 민 반장이 연단에 올라서자 여기저기에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강단 앞쪽에 놓인 접이식 의자에는 주로 사건 취재 기자들이 저마다 노트북을 켠 채 앉아 있었고, 그 뒤쪽에 카메라 기자들이 삼각대에 카메라를 거치하거나 망원렌즈가 달린 커다란 카메라를 양 손에 쥐고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다.

  민 반장이 강당을 한번 둘러보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다른 기자들과 떨어져 강당 한쪽 벽에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기대고 서있는 김수빈 기자도 보였다. 그는 아예 취재를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민 반장은 그동안의 수사 상황을 간략하게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했다. 수사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정보는 브리핑에서 뺐다. 특히 김수현 프로파일러가 분석한 범인의 윤곽에 대해서는 일체 꺼내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브리핑이 끝나자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그럼 아직도 범인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다는 건가요?”

  “어느 정도 윤곽은 잡았습니다. 지금 강력반에서 좀 더 세밀하게 분석중이니까 조만간에 용의자를 찾아낼 겁니다.”

  “조만간이라면 대략 어느 정도를 말합니까?”

  “글쎄요……. 그리 길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민 반장의 대답에 기자들의 얼굴에 실망감과 함께 짜증스러움이 묻어났다. 고개를 젓는 기자들도 보였다. 그래도 사건 담당 강력반장이 하는 브리핑이라 무엇인가 보도 자료를 건질까 하는 마음이었던 기자들에게는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브리핑이었다.

  ‘이런 브리핑은 왜 하는 거냐.’는 불만스런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그러면서도 기자들의 질문은 이어졌다. 그만큼 기자들도 수사 정보에 목말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파악된 것이 있습니까?”

  “범행 동기도 아직은 밝힐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 말씀 드릴수가 없습니다.”

  “그 말은 결국 아직까지 경찰에서 결정적인 단서나 증거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민 반장이 핵심적인 사항은 밝히지 않은 채 빙빙 말을 돌리기만 하자 한 젊은 기자가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런 의도에 말릴 민 반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니라고만 밝히겠습니다.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 더 이상 밝히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민 반장이 브리핑 자료를 챙기며 기자들을 둘러보았다. 더 있어봐야 별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 몇몇 기자들이 노트북을 덮는 것이 보였다.

  “그럼 오늘 브리핑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민 반장이 별 문제없이 브리핑을 마쳤다고 생각하며 강단을 내려왔다. 그때 한 기자의 목소리가 민 반장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오늘 브리핑은 청와대에서 질책이 내려오자 마지못해 한 건가요?”

  민 반장이 돌아서서 질문을 던진 기자를 노려봤다. 아직 젊은 티가 남아 있는 기자였지만 가슴에 단 패찰에는 중앙의 유력 일간지 마크가 선명했다. 쉽게 무시해서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건 기자님 생각이라고 믿겠습니다.”

 

  그날 저녁 시간 뉴스에 자신의 기자 회견 장면이 여과 없이 텔레비전 화면을 메웠다. 기자들은 나름대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기자의 감각을 살려 경찰 못지않게 사건을 분석하고 수사의 방향을 보도했지만 민 반장이 브리핑 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날 강력반 사무실을 발칵 뒤집는 뉴스 보도가 터져 나왔다. 한 종편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범행에 스즈키사의 오토바이가 이용됐다는 사실을 특종으로 보도한 것이다.

  철저한 대외비로 처리된 정보가 언론에 흘러나간 것이다. 민 반장이 우려했던 상황이 기어이 벌어진 것이다. 기자는 뉴스 말미에 민 반장이 기자들에게 브리핑 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보여주면서 경찰의 무능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빼먹지도 않았다.

  “참 기자들도 대단하다. 그렇게 철저히 정보 통제를 했는데도 어떻게 저런 기밀 정보를 빼 간 걸까…….”

  차 형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사무실에 있는 모든 형사들은 차 형사의 중얼거림을 전부 들을 수가 있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저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일부 형사들 중에서 수사의 비밀 정보를 특정 기자에게 흘리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특종을 노리는 기자들이 돈으로 매수하는 경우도 있고, 그 형사의 비리나 약점을 쥔 기자가 이를 미끼로 협박하는 경우도 있었다.

  민 반장도 자기 사무실에서 정보가 새어나갔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 문제 삼지 않았다. 소위 ‘쥐새끼’를 잡기 위해 가뜩이나 위태위태하게 운영되고 있는 수사팀의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정보의 유출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 정보의 유출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조직의 와해는 수사팀을 완전히 교체하기 전에는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어차피 흘러나갈 정보는 어떻게든 흘러나가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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