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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백색살인
작가 : BLED
작품등록일 : 2019.9.30

 
백색살인(14화)
작성일 : 19-10-12 22:59     조회 : 15     추천 : 0     분량 : 4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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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관측병 충돌 사건이 있은 뒤에도 시위는 계속 되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과격하거나 장시간 농성을 하지는 않았다. 김 대위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까닭모를 불안감이 다가왔다.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하고 갑갑했다. 자기도 모르게 무엇인가가 진행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부대의 이전도 예전과는 달리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다. 상부에서는 부대 이전에 필요한 예산 문제라고는 하지만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 시위에 군 지휘부에서 몸을 사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김 대위 부대만 달랑 본대에서 이탈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꼴이었다.

  예전처럼 휴일에 외출 외박도 자유롭지 못했다. 가족들의 면회도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불상사를 우려해 가급적 부대 내에서 이루어졌다. 시위 상황은 평온이 유지됐지만 병사들의 사기는 점점 떨어져 갔다. 부대원들은 말은 않았지만 자기들이 국민의 안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매섭던 추위가 조금씩 누그러졌다. 밤에는 아직도 찬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했지만 한 낮에는 두툼한 방한복을 벗어도 될 만큼 포근한 봄날이었다. 주말을 앞 둔 금요일이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시위가 없었다. 아예 시위 신고 자체가 없었다. 김 대위가 이곳으로 이동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김 대위는 다른 장교들과 오랜만에 담소를 나누면서 시위가 없는 것을 고마워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궁금증과 불안감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워커홀릭에 걸린 것처럼 쉬고 있지만 쉬는 것이 아니었다.

  오후 햇살이 한가롭게 연병장에 가득했다. 김 대위는 이런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는 것이 얼마만인지 몰랐다. 온 몸에서 생기가 돋아나는 것 같았다. 점심 식사 후에 김 대위는 장교와 사병들을 전부 연병장에 모이게 한 뒤 소대 대항 축구시합을 벌였다.

  마침 전투체력의 날이기도 했지만 간만에 느끼는 한가로움에 병사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병사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김 대위와 장교들은 사비를 털어 막걸리와 먹을 것을 준비했다.

  그렇게 즐거운 오후 시간이 흘렀다.

 

  “충성!!”

  2소대가 1소대의 골문에 막 역전골을 넣었을 때였다. 병사들의 함성 소리 속에서 김 대위는 정문 초소병의 거총 경례 소리를 들었다. 이 시간에 부대를 방문할 사람이 없는데 누구일까? 하는 생각으로 김 대위는 고개를 돌려 정문 초소를 바라보았다. 군용 지프차 한 대가 정문을 통과해 중대본부 막사 앞으로 오고 있었다.

  김 대위는 병사들이 눈치 채지않게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김 중위와 최 중위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옆에 다가와 섰다. 그들도 부대 안으로 들어오는 지프차를 본 것이다.

  “괜찮아. 시합이나 계속 해.”

  병사들 사이에서 잠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김 대위가 하던 시합을 계속하라는 지시를 하자 다시 연병장은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찼다.

  지프차에서 내린 사람은 연대 작전참모였다. 작전참모는 김 대위가 육사 생도시절 교육관이었다. 생도시절부터 김 대위를 아껴줬던 작전참모는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게 된 뒤로는 마치 친동생처럼 대해줬다. 가족이 없었던 김 대위도 그런 작전참모를 친형처럼 의지했다.

  김 대위가 편안한 자세로 거수경례를 했다. 작전참모는 다른 장교들과 악수를 나눈 다음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냥 지난는 길에 시간이 나서 격려차 방문했다고 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한동안 담소를 나누던 작전참모가 슬쩍 김 대위에게 눈치를 보냈다. 김 대위가 다른 장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최 중위와 김중위가 사무실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본 뒤에 작전참모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너 정신 있는 거니 없는 거니?”

  김 대위가 굳은 표정으로 작전참모를 쳐다보았다. 작전참모가 왜 왔는지 감이 잡혔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작전참모가 몇 번 헛기침을 한 뒤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김 대위 앞으로 내밀었다. 얼마 전에 자기가 시위대에게 써 준 확인서 복사본이었다. 김 대위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네가 써준 것 맞아?”

  “예! 형님……. 제가 써 준 것 맞습니다.”

  작전참모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답답함이 묻어났다.

  “연대장님이 노발대발했다. 정신이 있니 없니 하면서……. 어떻게 군인들이 민간인 시위대에게 붙잡히질 않나……. 장교란 자는 그걸 무마한다고 민간인들에게 확인서나 써 주질 않나. 당장 달려와 죽인다고 권총을 빼들고 난리치는 걸 간신히 말렸다.”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것 없다. 내가 너를 모르겠냐……. 네가 그랬다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지……. 문제는 이 사실이 육본이나 언론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너 혼자만 옷 벗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줄줄이지 뭐…….”

  “.........”

  작전참모가 딱하다는 눈빛으로 김 대위를 바라보았다.

  “참모장하고 많이 고민했다……. 현재로서는 네가 혼자 옷 벗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견이다. 그게 조직을 살리고 전부를 살리는 길이라는 거지. 참 미치겠다. 자기들에게 구정물 튀길까봐 그런다는 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만……. 그걸 야속하다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작전참모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김 대위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저지른 일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런다고 이런 식으로 군복을 벗고 싶지도 않았다.

  “...............”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나마 그게 너한테 좋을지 모르겠다. 불명예 제대도 아니고……. 퇴직금과 전별금이라도 받아야 될 것 아냐?!”

  “...........”

  김 대위가 작전참모를 노려봤다.

  “그래……. 네 마음을 모르는 것 아냐……. 그래도 살아야 하잖아? 막말로 돈도 못 받고 구속이라도 되면? 어떻게 할래? 응? 너만 당하는 거지…….”

  “형!”

  “알아 인마!!! 너한테 이런 비굴한 방법을 강요하는 내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럽다……. 나도 나 살자고 이러는 내 모습이 정말 초라하다.”

 

  고개를 떨어뜨린 작전참모의 붉어진 눈시울을 본 김 대위는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합리적인 권유였지만 사실상 강요였다. 김 대위가 전역을 거부한다면 아마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더 큰 멍에를 자신에게 지우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 대위는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징역형과 함께 이등병으로 강등될 것이다. 그럼 명예도 잃고 금전적 손실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김 대위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누구에 대한 분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결정하라는 것은 아니야……. 천천히 생각해봐……. 다음 주 작전회의가 끝난 뒤 참모장이 연대장님에게 보고드릴 예정이야.”

  사실상 일주일 밖에 생각할 시간적 여유도 없는 것이다. 김 대위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켜 온 명예와 자존심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딱했다.

 

  어디에서부터 이렇게 일이 꼬였을까…….

  작전참모가 돌아간 뒤 김 대위는 혼자 술을 마시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디에서부터 일이 잘못 꼬여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저런 생각 끝에 자기가 그렇게 기를 쓰고 군인의 길을 걷을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지난 기억들이 떠올랐다.

  부모를 잃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육사에 입학하는 길이었다. 육사에만 입학하게 되면 일단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될 수 있었다.

  장교로 임관을 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별을 단 장군이 될 것이고, 아무도 자기를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는 자기가 무시당하거나 궁지에 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기를 불행에 빠트린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군인이 되는 것뿐이라고 믿었었다.

 

  어릴 적 김선호의 집은 작지만 깨끗하고 마당이 꽤 넓은 단독주택이었다. 선호의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랐던 집이었다. 그러니까 선호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살던 곳이었고, 선호가 태어났던 곳이기도 했다. 선호의 어머니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었고 아버지는 혈혈단신이었다. 그래서 결혼한 후에도 선호의 부모는 그 집에서 같이 살았다.

  집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마치 디귿자 형태로 지어졌다. 지붕은 색 바랜 엷은 주황색의 불에 구운 스페니쉬 기와를 얹은 아름다운 집이었다. 당시에는 그런 외국풍의 아름다운 기와집은 드물었기에 그 동네에서 '구운 기와집'하면 누구나 다 알 정도였다.

  선호의 집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어렵지도 않았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교육공무원 연금으로 노후를 사는 외할아버지의 수입으로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밝은 미소였다. 활짝 웃는 것도 아니고 소리 내어 웃는 것도 아니었지만 입가에 머금은 미소만으로도 선호의 마음은 편안해 졌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호는 엄마의 말을 전부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선호가 중학교 때였다. 무더운 여름이 온 세상을 지치게 만들 때였다. 그 날은 여름 방학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1등 성적표를 받아든 선호는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등 뒤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마다않고 뛰다시피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선호가 1등을 하면 그를 꼭 안아주곤 했다. 선호는 자기를 안아주는 엄마의 품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엄마의 품에서는 언제나 잘 다린 다림질 냄새가 났다. 그리고 흩뿌리듯 달콤한 젖 냄새가 났다. 학교 앞에서 팔던 달고나 뽑기보다는 얕았지만 훨씬 더 은은했던 달콤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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