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와 조형사는 최검사의 사무실로 갔다. 선우는 여태까지 모은 자료와 정보들을 최검사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일, 겪은 일, 알아낸 일들을 모두 말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을 모음 자료라 시간이 꽤 걸렸다. 조형사는 소파에 기대어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콰당!
“아이구야, 아파라.”
“엥? 형사님 주무셨어요?”
“응? 아이고, 내가 깜빡 졸았나 보다. 하하. 미안, 얘기하는데 방해됐지?”
“아니에요. 얘기는 좀 전에 다 끝났어요.”
“응? 벌써?”
“벌써라뇨. 형사님 지금 몇 시인지 아세요?”
“응? 글쎄… 으잉!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내가 도대체 얼마나 잔거야.”
“글쎄요… 적어도 1시간은 주무신 거 같은데… 신기하네요.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어찌 그리 잘 주무시는지… 하하.”
“불편하게 자는 게 익숙해져서… 하하”
조형사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형사님은 출근 안하셔도 돼요?”
두 사람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최검사가 물었다.
“아, 저, 그게… 하하 그냥 그렇게 됐어요. 휴가 중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래요. 자세한 건 묻지 않겠습니다. 그럼 우리 오늘 이렇게 모인 것도 인연인데 저녁이나 같이 할까요? 제가 사겠습니다.”
“예, 좋죠. 선우 넌 어때?”
“저도 좋아요.”
“그럼 메뉴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어떨까요?”
“좋습니다. 검사님!”
“좋아요, 제가 자주가는 단골집이 있어요. 거기가 비록 복숭아 나무 밑은 아니지만 우리 술 잔을 부딪히며 ‘도원결의’라도 합시다!”
“도원… 뭐요?” 조형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도원결의’요, 형사님. 그 삼국지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같이 의형제를 맺은…” 이번엔 선우가 대답했다.
“오, 맞아요! 역시 선우군은 스마트해요. 모든 게 다 기운이 있는 거니까, 같이 갑시다.”
“아, 유비, 관우, 장비! 알지, 알지. 그럼 내가 유비인가?”
“예? 형사님이 왜 유비에요?”
“유비가 제일 싸움 잘하잖아. 아닌가? 보통 첫 째가 제일 싸움 잘 하던데…”
“아, 뭐에요. 정말 못말려. 하하하.”
“하하하하, 조형사님이 개그를 아시네요. 농담도 잘 하시고.”
“예? 농담 아닌…”
“형사님은 그냥 장비하세요. 그럼 돼요. 더 이상 얘기하시면 형사님 이미지만 더 안 좋아져요.”
선우가 조형사의 말을 끊고 말했다.
“응? 장비? 나랑 안 어울리게 뭔가 부족하고 사고 칠 것만 같은 이름인데?”
“완전 딱 어울려요. 턱에 그 수염부터 해서. 하하.”
“그래요. 형사님이 장비하시고, 이제 그만 나갑시다.”
셋은 지내온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마치 오래 알고지낸 사람처럼 금방 친해졌다. 특히 최검사는 오늘 만난 사람일 뿐인 데도, 셋은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같은 목적을 가진 한 팀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최검사는 마치 운명으로 태어날 때부터 이 둘을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같이 느껴 지기도 했다.
“치이이이익”
“으악, 너무 맛있겠다!”
불판에 삼겹살이 맛있는 소리를 내며 구워지고 있었다. 세 남자는 투명한 소주 잔에 맑은 소주를 ‘쪼로록’ 채우고, 잔을 들어 테이블 가운데로 모았다.
“자, 우리가 비록 만난지 오래되지 않았고, 서로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만은 도원결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태어난 해는 모두 다르지만, 가는 데에는 순서가 없기에, 모두 몸 조심하고 같은 배를 탔다는 것을 잊지 말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자.”
“응? 검사님. 내용이 뭔가 좀 삼국지랑 좀 다른데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 해봤어. 하하.”
“검사님도 참 엉뚱한 면이 있으시네요. 하하.”
“아무렴 어때, 우리가 서로의 진심만 확인하면 됐지.”
“맞습니다. 우리 모두 바라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정의의 승리를 위하여!”
“위하여!”
셋은 ‘짠’소리와 함께 투명한 잔을 들어 입 속으로 들이켰다. 맑고 시원한 액체가 입을 지나 식도를 타고 들어가 위에 뿌려졌다. 청량함이 목구멍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다. 입 안에는 달콤 쌉싸름한 맛이 여운을 남겼다. 선우는 기름에 튀겨지듯이 반질거리게 윤기가 나도록 익은 삼겹살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그리고 짙은 주황빛이 나는 쌈장에 살짝 찍어, 생 마늘과 함께 입에 넣었다. 고소한 맛이 혀 전체에 퍼지고, 부드러운 고기의 지방이 혀를 글레이즈드 하는 듯이 느껴졌다.
조형사는 자기 손바닥 만한 큰 쌈을 하나 집어 쌈장, 마늘, 파채, 양파 등을 넣고 고기를 두 점이나 넣었다. 그리곤 쌈을 싸서 한 입에 우겨 넣었다. 내용물이 많아 입 주변에 음식이 묻었다.
최검사는 소금과 참기름을 섞은 소금장에 살짝 찍어 먹었다.
“키야~ 술이 달다 달어.” “술이 다네.” “술이 다네요.”
세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셋은 삼겹살을 먹는 방식과 취향은 각자 달랐지만, 잘 맞는 구석이 있었다. 그들은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게 술잔을 부딪히고, 기울였다. 어느새 술병은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쌓였다. 그들의 취기도 덩달아 올랐다.
“형사님, 저 사실 그 때 좀 무서웠어요?”
“응? 언제?”
“그… 형사님이랑 임실장이랑 싸울 때요. 형사님이 질 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하던지…”
“또 그 얘기야? 하하, 나 믿으라고 했잖아. 내가 누군데? 나 조형사야! 제대로 싸우면 안 져! 검사님은 싸움 잘 하시나요?”
“하하, 형사님. 검사는 머리로 싸우는 직업입니다. 저는 싸움은 하지 않아요.”
“히야, 역시 검사님 말씀 참 이쁘게 하세요!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검사님은 머리, 저는 몸, 선우는 심장.”
“응? 저도 원래 브레인 아니었어요?”
“아 그런가? 그럼 나만 머리가 나쁘네. 하하하. 그래 몸으로 하는 건 내가 다 할게! 내가…”
“쿵” 조형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취해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잠들었다.
“아이고, 형사님 취하셨네. 검사님은 괜찮으세요?”
“응, 선우 술 잘 마시네!”
“전 조금씩 꺽어마셨어요. 많이 안 마셔봐서. 그나저나 검사님, 저희가 이길 수 있겠죠?”
“이기도록 노력 해야지.”
“예… 그렇지만 그 놈들, 그 나쁜 놈들 진짜 막 엄청 장난 아니던 데요. 이 세상이 정의가 이기는 세상이 맞을까요? 전 그게 가장 두려워요.”
“솔직히 말하면, 힘에 의해 정의가 짓눌린 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우리가 아는 사건도 많지만, 오히려 우리가 모르는 것은 훨씬 더 많을 거야.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마냥 좌절하고 도전을 안 할 수는 없어. 상대가 아무리 커다랗고 튼튼한 바위라 해도 우리는 계란이라도 계속 던져봐야지. 그럼 바위에 상처 하나 못 내더라도 적어도 바위를 더럽힐 수는 있잖아. 그래서 ‘이 바위는 더러운 바위입니다’ 라고 주변에 말이라도 할 수 있잖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면 이것이라도 해야되는거야.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해야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거야. 모르는 것보다 알면서 안 하는게 더 나쁜거야. 그 거대한 바위에 계란이라도 한 판 멋지게 던져주자!”
“알겠습니다. 정의가 꼭 이기진 못하더라도 정의는 살아있다고 알려 주자구요!”
“그래, 역시 선우는 똑똑하구나. 정의는 살아있다!”
“정의는 살아있다!!!”
어느덧 깬 조형사가 소리를 질렀다. 셋은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기분 좋게 식당에서 나왔다. 선우는 최근에 이렇게 많이 웃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그만큼 ‘서로의 생각이 맞는 동료를 만나는 건 어렵고 소중한 것이구나’ 느꼈다.
그리고 마치 제갈량을 얻은 유비처럼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최검사는 솔직하고, 신뢰가 갔다. 이제 이 사건이 아마추어에서 프로의 세계로 넘어 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전의 날이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밤이 또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