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는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깊게 잠들 수가 없었다. 어제는 경찰서로 가 호진과 재준을 만났다. 둘의 표정은 불신으로 가득 찼다. 선우는 그들에게 자신과 조형사님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 마지막에 호진이 한 말이 선우의 가슴 깊이 박혀 있었다.
“우리가 한 일도 있고, 네 원망 같은 건 안 해. 걱정 마.”
그 말에 선우는 더 미안해졌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둘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끝나는 상황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임실장의 말을 녹음해 둔 자료였다. 그 것으로 임실장의 죄를 증명해내고, 이 일과의 연관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밝힐만한 다른 일이 없나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 그는 갑자기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어? 혹시!’
그는 몇 시간동안 인터넷을 계속 뒤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계속 컴퓨터를 하던 그는 무언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기지개를 키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어느덧 밖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그러나 그와 대비되게 선우의 표정은 밝았다.
선우는 밖으로 나가 차를 몰았다. 그리곤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조형사가 있는 병원이었다. 그는 힘차게 조형사의 병실로 향했다.
“형사님!”
“응? 선우 왔어?”
조형사는 밥을 먹고 있었다.
“예, 형사님. 몸은 좀 어떠세요?”
“응, 괜찮아지고 있어. 넌 표정이 좀 밝아 보이는 거 같은데?”
“예, 드디어 알아낸 거 같아요.”
“응? 뭘?”
“이사장과 임실장이 지금까지 한 일들이요! 이거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일이 커요. 제 생각이 맞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저항이 심한 것도 이해가 가요.”
“응? 뭔데 그래? 자세하게 설명 좀 해봐.”
선우는 조형사에게 자신이 알아낸 것에 대해 말했다. 그 것만으로도 시간이 꽤 걸렸다.
“진짜야? 말도 안 돼. 그렇다면 이건 너무…”
“형사님이 못 믿는 게 당연해요. 저도 처음엔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아예 배제하고 있던 아이디어거든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못 하는게 당연해요. 우리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그림 안의 퍼즐 한 두개만 맞추고 있던 거에요. 그러니 진실에 다가갈 수가 없었던 거죠.”
“하아… 일단 내가 돌아가서 좀 알아봐야…”
“휴직 올리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내가 올린 게 아니야. 위에서 그냥... 어?”
“맞아요… 위에서 그냥이 아닌 거였어요…”
“하아…”
“우선, 안 돌아가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적진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정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썩었다는 거야… 일단 네 말대로 하자.”
“예, 그럼 앞으로 우리가 할 일들에 대해 계획을 짜보죠.”
“좋아.”
두 남자는 밤새도록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온 세상을 뒤덮은 어둠이 가고 자연스레 다음 날의 태양이 떠올랐다.
며칠 후, 선우와 조형사는 카페에 앉아있었다. 서로 말없이 시계를 자주 확인하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분이 우리를 도와주시겠죠?”
“응, 생각이 올곧은 분이니까 도움을 주실거야.”
“하아… 긴장되네요.”
“그러게, 나도 긴장된다. 선우 너는 모르겠지만 원래 경찰이랑 검찰은 사이가 안 좋아. 어떻게 보면 나는 지금 조직을 배신하고 있는거야.”
“예, 그런데도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나도 지금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그런데도 이게 옳다고 생각하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맞아요. 이게 정상인 거죠. 비정상의 정상화!”
그 때 누군가 그 둘에게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선우군? 조형사님?”
“아, 예 맞습니다. 제가 조형사입니다. 이 친구가 말씀드린 선우 학생(?)이구요.”
“아이구, 반갑습니다. 네가 선우니? 생각보다 더 의젓하구나. 네가 고생이 많다.”
“아,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검사님 이시죠?”
“응, 네가 날 좀 보고싶다 했다고? 무슨 일이니? 날 어떻게 알았니?”
“예, 유명하신 분이시잖아요. ‘소신 있는 검사’, ‘정의로운 검사’. 제가 검사님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저한테 도움을 주실 분은 검사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세한 건 지금부터 말씀 드릴게요. 우선 이걸 좀 봐주시겠어요?”
“그래,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얘기 해보렴.”
선우는 한참동안 그 남자에게 얘기를 했다. 중간중간 준비해 간 자료를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분노를 보이기도 했다. 조형사도 옆에서 지원사격을 했다. 그 얘기를 조용히 듣기만 하던 그 남자는 둘의 얘기를 다 들은 후 천천히 입을 뗐다.”
“흐음… 그래, 이거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구나.”
“그렇지만 이건 소설이 아니에요. 현실이에요!”
“아, 미안하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 정말 소설처럼 믿기 힘든 일이라는 얘기야. 물론 요즘 현실은 때론 소설보다 더 소설 같기도 하지.” 그리고 그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흠… 우선 선우군은 아주 똑똑하고 당차구나. 자료 준비도 그렇고, 말 하는 걸 보고 감탄했어. 무엇을 하던 성공할거야. 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이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는 거야. 언젠가는 네가 모르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 올거야. 그리고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더욱 더…”
“예, 그게 바로 저희가 검사님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요.”
“흠…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훼방도 많이 놓을 거고. 심지어 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이런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공감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 ‘소시오패스’라는 말 들어 봤니? 감정이 없기 때문에 냉정하게 행동해서 증거를 많이 남기지도 않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기도 해. 사람 목숨 정도는 쉽게 생각할 수도 있어.
그래도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자신이 있어? 과정이 괴롭고, 끝은 허무할 수도 있어. 사실 그럴 경우가 많지. 나는 어린 나이에 이런 힘든 경험을 하는 걸 권하고 싶진 않아…”
“검사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많이 경험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고 시작한 일이에요. 아니 오히려,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더 이상 저처럼 불행해지는 사람이 나오지 않길 바라요.
흔히들 겪어봐야 안다고 하잖아요. 정말 겪어보니 상상한 것 보다 더 괴롭더라구요. ‘어떤 걸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라는 말처럼요. 하루 아침에 두 다리를 잃었을 때… 초기에는 부정을 했어요. 이건 현실이 아니라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죠. 그 다음엔 화가 났어요. 그 때 왜 거기에 있었는지, 하필 왜 거기에… 분노의 감정이 지나간 후엔 절망감뿐이었어요…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밝기만 했던 내 인생이 불 빛 하나 없는 구덩이에 빠진 느낌이었어요. 너무 답답해서 숨도 못 쉴 정도였어요.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사실 아직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요. 친구들 앞에서 늘 당당하던 제가 너무 그리워요. 운동도 곧잘 했는데,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던 난데… 그걸 한 순간에 앗아가 버린 그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미치도록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럴 힘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행히 아직까지 저에게 현실감각은 남아 있던 거죠. 그렇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라는 생각으로 자료를 모으고, 수집하고, 해킹도 좀 배워서 그 놈들을 파헤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몇 개월을 지냈어요. 부모님이 걱정하셨지만, 전 멈출 수 없었어요.
그 놈들에 대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더더욱 그랬죠. 어떻게 이런 짓들을 할 수 있는지… 화가 나고, 무섭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불쌍하고, 나처럼 될 사람들이 걱정돼서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대다수였어요. 그렇게 지옥을 지키는 파수꾼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 버텨서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에요. 검사님이 저에겐 지옥의 신 하데스에요. 그 놈들을 제가 있는 이 지옥으로 데려와 주세요.”
“음… 선우 네 절실한 마음은 잘 알았다. 그런데 왜 하필 나지…? 내가 사람을 안 따르고 법만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는 건 맞지만,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은 많아. 그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은데?”
“혹시 기억나시나요? 10년전쯤 검사님이 맡았던 사건… 결국 검사님 사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없음’판결이 났었죠. 그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했었고…
“네가 그 사건을 어떻게 알어!?” 남성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당혹스러음 혹은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지는 듯 보였다.
“조사를 하다 알게 됐어요. 그 사건도 지금 이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고 하면 이제 검사님을 선택한 이유가 납득이 되시나요?”
“하아… 내가 선우 널 잘못 봤구나.”
“예?”
“넌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대단한 아이였어. 하지만 네가 말한 것 중에 틀린 것이 하나 있어.”
“예? 그럴 리가… 그게 뭔데요?”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건데, 하데스는 사실 지옥의 신이 아니란다. 하데스는 바로 저승의 신이야. 사람들은 보통 하데스의 무서운 표정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고 저승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저승의 규칙을 엄격하고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하는 강력한 지배자야. 그러니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에겐 어찌 보면 든든한 경찰관 같은 존재일 수도 있지. 바로 네 옆에 앉아있는 사람처럼.”
그 남성은 선우 옆에 앉은 조형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그래서 네가 지금 있는 곳은 지옥이 아니란다. 누구나 다 언젠가는 거쳐가는 그런 곳이야. 그 곳에 네가 아주 조금 더 일찍 도착해 있는 거라고 생각하렴. 그리고 네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네가 있는 곳으로 오면 먼저 온 선배로서 이끌어주고, 적응이 쉽도록 도와주고, 위로해 주렴. 물론, 난 법을 지키지 않는 그 놈들에겐 지옥의 신 하데스가 될 거지만.”
“검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그의 앞으로 굵고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옆에 있던 조형사도 눈물을 훔쳤다.
“자… 이럴 땐 결국 끝까지 버티는 놈이 이기는 경우가 많아. 네가 정 그렇다면 한 번 시작해보자. 네가 두 번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던 내 기억을 꺼내버렸어…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에서 희망을 찾아보자. 나도 더 이상 도망치거나 숨지 않고, 지난 날의 내 과오를 내 손으로 직접 끝마칠 때가 온 것 같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우와 조형사는 계속 감사 인사를 반복했다.
“하하, 인사는 나중에 해도 돼. 지금 해결이 된 게 아니야. 이제 시작을 할 뿐인 거지.”
“아, 예. 무슨 말씀이 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조형사님은 괜찮으시겠어요?” 최검사가 말했다.
“예, 정의가 승리하는 것이 제 가치관입니다. 제 위치나 입장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래요. 그럼, 우리 같이 방법을 찾아봅시다.”
“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