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1>
공사 현장에서 가스 호스가 파손되어 폭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작업자는 안전보호구를 착용하고, 안전 매뉴얼을 지켜 화를 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습니다.
XXX 기자입니다.
XX시 한 공사 현장, 건물 내부 작업이 한창인데요. 갑자기 작업장 인부들이 건물 밖으로 급히 나옵니다. 시커먼 연기가 곧 건물 밖으로 넘쳐 흐릅니다.
사고가 난 건 어제 아침(5일) 7시 10분쯤입니다.
공사가 진행중인 건물 안으로 작업자 A씨(60)가 들어갑니다. A씨는 평소처럼 용접 장비를 챙겨 작업을 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A씨가 용접 작업을 위해 불을 붙이는 순간, “펑” 소리와 함께 작은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용접에 필요한 가스를 공급하는 호스가 파손되었던 것이었는데요.
다행히 A씨는 안전 매뉴얼대로 안전보호구 착용을 하고, 작업장 옆에 소화기를 비치해 놔, 큰 사고를 면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가스 호스가 고의로 파손된 흔적이 있다’는 주변 얘기를 듣고 사실여부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차 안에서도 네 남자는 말이 없었다. 서로가 머리를 굴리며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선우가 운전을 하고, 조형사는 조수석에서 두 남자를 감시했다. 두 남자는 각각 차 문 옆의 손잡이와 한쪽 손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의 나머지 손끼리도 수갑을 채웠다. 조형사가 혹시 몰라 여분의 수갑을 챙겨 온 것이 도움이 되었다.
그들이 한 참 달려서 도착한 곳은 경찰서가 아니었다. 그 곳은 바로 조형사가 최근 근무하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농가였다. 조형사는 농가의 어느 한 빈 건물로 나머지 세사람을 이끌었다.
“형사님, 여긴 어디에요?” 뒤에 남성 중 한 명이 물었다.
“자, 이 곳은 내가 지인한테 말해서 빌린 곳이야. 현재 농사를 쉬고 있어서 비어 있어. 한동안 아무도 오지 않을 거야.”
“예? 그게 무슨 소리 에요. 우리 경찰서로 가는 거 아니었어요?” 그 남성은 당황한 듯 말했다.
“재준아, 이 사람들은 지금 우리를 경찰서로 넘길 생각이 없어. 이 사람들이 원하는 건 우리가 아니야.” 옆의 친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역시 저 놈이 눈치하난 빠르네. 그치 선우야?”
“예, 맞아요. 그만큼 우리한테 협력도 잘할 거 에요.”
선우와 조형사는 수갑이 채워진 둘을 한 명씩 건물 안으로 이동시켰다. 건물안은 먼지가 자욱했다. 창고 같은 곳으로 들어가자 선우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아무데나 걸터 앉았다. 선우는 휠체어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조형사는 한 남성의 총 맞은 다리를 임시로 소독하고 간단히 치료했다.
“자, 너 지금 위험한 상태야. 이거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 고생할지도 몰라. 네가 그 놈들 때문에 평생 고생하며 장애를 가질 이유가 뭐가 있어? 그렇다고 그 놈들이 너한테 고마워할 거 같아? 빨리 협조하고 치료받으러 가자. 내가 아는 총상 전문의한테 바로 데려가 줄게.”
“……”
그 남성은 대꾸하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형사님! 제가 말 할게요. 제 친구 빨리 치료해주세요. 사실 쟤도 제가 꼬신거에요. 얼른 치료부터 먼저 해주세요.”
“야! 가만 있어! 나 괜찮아.”
“아니야, 아무래도 이 사람들 말이 맞는 거 같아. 나는 나 때문에 너 잘못되는 거 못 견뎌. 너 자존심 쎄서 이런 거 못하는 거 알아. 내가 할게, 가만 있어.”
“아…”
“그래, 이럴 땐 네 친구가 더 똑똑한 거 같은데? 자 얘기해 볼래?” 조형사가 말했다.
“잠깐! 얘기하지 않았을 때 우리가 불리하다는 건 잘 알았어. 그런데 말하면 우리가 더 안전하다는 건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우리가 보복을 당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우리가 독박 쓰고 사건이 종료될 수도 있지 않아?”
이번엔 다시 이 남성이 다친 다리를 움켜 쥐며 말했다. 조형사는 순간 대꾸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건 내가 대답해 줄게.” 선우가 말을 이어받았다.
“우선 네가 아까 말한대로 우리의 목표는 너네가 아니야. 물론 너네가 한 일들이 잘못된 것이기때문에 그에 대한 벌은 받아야 돼. 그렇지만 우리는 그 이상을 바라진 않아. 우리가 증언을 하던 무엇을 하던 절대 너네가 독박 쓰게 하진 않을거야. 우리도 너네에서 꼬리 자르기 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결말이야. 이 부분은 우릴 믿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놈들이 너희에게 보복을 한다고 치면 오히려 경찰의 보호를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한 거 아닐까?”
“우리나라 경찰은 못 믿어. 우리를 산 채로 그 놈들한테 갔다 바칠 수도 있는 놈들이야.”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어?”
“너네와 동행을 하게 해줘. 상황이 돌아가는 것도 바로 파악이 가능하고, 이왕 이렇게 할 거면 그 놈들을 확실히 잡아야 나도 뒤끝이 없을 테니까.”
“……”
예상치 않은 제안에 선우와 조형사는 순간 아무 말도 못하고 서로 마주봤다. 그러다 먼저 입을 뗀 것은 조형사였다.
“그건 말이 안되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랑 형사가 같이 다니는 게 말이 돼? 그리고 너 네가 도망갈 가능성도 많자나. 계속 묶어 두고 다닐 수도 없고.”
“그럼 저희도 협조할 생각 없어요.”
“뭐! 이 놈 자식이 좋게 말하니까 기어오르네. 지금 상황파악이 안 되지? 너 네가 지금 협상할 상황 인줄 알아?”
갑자기 둘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건물 안의 공기는 급속히 가라 앉았다.
“음… 제가 생각해봤을 때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제안 같아요.” 선우가 대답했다.
“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건 아니지!” 조형사가 반발했다
“제 얘기 잘 들어보세요, 형사님. 지금 임실장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바로 이 사람들일 거에요. 이렇게 얘기하면 좀 그렇지만, 임실장을 불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미끼인 거죠. 임실장이 마음먹고 대비하고 있으면 사실 우리가 잡는 것이 쉽지 않아요. 우리도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 이 친구들을 이용해서 우리가 유리한 장소로 불러내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우리도 옆에 두면 혹시나 생기는 변수에 대비하기도 쉽고, 그리고 혹시나…”
“혹시나…?”
“아주 혹시나,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더 큰 도움이 되겠죠. 백지장도 맛들면 낫다고 하잖아요. 뭐 사실 이거 까지는 기대 안 하지만.”
“이 놈들이 지금 우리를 속이고 있는 거면 어떻게 해? 도망이라도 가면?”
“음… 그 정도 상황 파악은 되는 사람들일 거에요.” 선우는 그 둘을 지긋이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도망가면 제가 뒤에서 쏴버릴거에요. 고민없이, 간결하게.” 선우는 차갑게 말을 덧붙였다.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음… 그래, 선우야. 이번 일에서 두뇌는 너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나는 몸의 역할만 하기로 했으니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 난 널 믿어! 그런데 이거 돌아가는 거 보니까 잘 못되면 나도 무사하지 못할 거 같다 하하. 식당이라도 차려야 되나.” 조형사의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걱정 마세요, 형사님. 절대… 절대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 들한테는 지지 않아요. 정의는 승리합니다!”
“하하, 그래. 그렇게 비장한 거 보니 어쩔 수 없구나. 너네들 딴짓 하거나 딴 생각하면 내가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잡을 거니까 허튼 생각 마라!”
조형사는 두 남성들에게 무서운 얼굴로 엄포를 놨다. 한 남성은 진지하게 “알겠습니다.” 대답을 했고, 한 남성은 시덥잖다는듯 무표정하게 조형사를 응시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참, 너네 이름은 뭐니?
조형사가 물었다.
“조사했었다 면서 이름도 몰라요?”
“글쎄 기억이 안 나네?”
“저는 재준이에요. 제 친구는 호진이구요.”
상대적으로 말이 많은 친구가 대답했다.
“이름은 착하게 잘 지었구만, 왜 그런 짓을 했어?”
조형사의 농담에 호진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당신이 뭘 알아?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 당신이 나처럼 살았어도 그렇게 웃으면서 편하게 말할 수 있을까?”
“뭐? 이 XX가!”
분위기는 금방 다시 험악 해졌다. 그 때 선우와 재준이 둘 사이로 들어가 각자의 상대방 앞을 가로막았다.
“에이~ 호진아, 너무 날 서서 반응하지 말자. 형사님은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닐거야.”
“형사님, 저 친구도 사정이 있을거에요. 서로 시간을 갖고 이해해봐요.”
다행히도 두 사람의 노력으로 분위기는 다시 수습됐다.
“그럼, 나도 하나 물어봐도 돼?”
재준이 말했다.
“응, 뭔데?”
“너 다리는 언제부터 그런거야?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
“음…”
선우는 즉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야! 이 놈아. 그런 질문을 왜 해?”
이번에는 조형사가 재준에게 대꾸했다.
“아, 아니에요. 형사님. 제가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요, 뭐. 괜찮아요. 말 해줄게. 내가 작년에 사고를 당했어. 그 전까지 만해도 나도 너희들처럼 멀쩡한 두 다리로 걷고, 뛰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운동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누구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아이였어. 믿을지 모르겠지만 운동 신경도 남들보다 뛰어났다고 생각해. 그런데 그 날 그 사고 이후로 내 인생은 180도 변했어.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도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가끔은 지금 이 게 꿈이 아닐까 생각해. 악몽에서 깨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우는 얼굴로 엄마한테 뛰어가 안기지 않을까? 그럼 모든 게 없던 일처럼 사라지고,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수없이 꿈꾸고, 상상하고, 좌절하고, 슬퍼하고 그러기를 수백 번 반복했어. 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다리가 없이 몸뚱이만 남아있는 거울속에 나를 보며 피눈물을 흘렸어. 너희에게 한 가지만 말할게. 난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하늘위의 신일까? 아니면 신을 가장한 오만한 악마일까를 확인하기 위해 지금 이 노력들을 하고 있는 거야. 너네가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고, 내 기대에 부응을 해줬으면 좋겠어. 너네도 사실 그렇게 악인은 아니잖아?”
“어, 어… 그래.”
선우의 진지한 대답에 질문을 한 당사자는 얼어붙었다. 분위기는 다시 무겁고 비장해지기까지 했다.”
“뭐야, 이거 무슨 제갈공명의 출사표도 아니고. 난 내가 한 말은 지켜. 걱정 말고, 넌 계획이나 잘 짜. 우린 그대로 움직일 테니.”
여태까지 말 한 마디 안 하던 호진이 낮은 목소리로 툭 내 던지듯이 말했다. 그 말에 선우도 조형사도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조형사는 호진의 발을 치료하기 위해 나가고, 선우는 건물에서 휴식을 취하며 계획을 짜기로 했다. 재준은 선우와 건물에 남기로 했다. 그러나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한 팔은 수갑을 채워 벽 쪽에 기둥과 묶어 뒀다. 재준은 친구를 두고 혼자 도망가지 않는다고, 자신을 믿으라며 말을 했지만 선우를 혼자 남겨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었던 조형사는 어쩔 수 없이 그리 해놓고 나갔다. 재준의 표정은 불만 가득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상황을 받아들였다. 현실적으로 선우가 가져다 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제서야 선우는 긴장이 좀 풀렸다. 그러자 갑자기 하루 종일 느꼈던 모든 피로감이 온 몸으로 쏟아졌다. 이제 스무 살 된 앳된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하루였다. 선우는 기절하듯이 조형사가 깔아 둔 담요로 몸을 뉘었다. 그리곤 이내 잠이 들었다.
“선우야, 선우야. 어서 일어나.”
“어? 엄마? 아빠? 무슨 일이에요, 두 분 다 내 방에?”
“무슨 일이긴, 어서 일어나.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예? 무슨 소리에요. 저 지금 학교 안 다니는데…”
선우는 이상한 마음에 이불을 걷고 자신의 다리를 봤다.
“…… 역시… 이건 꿈이었구나.”
“응? 무슨 소리니? 안 좋은 꿈 꿨니?”
“아니에요… 저 이거 지금 꿈인 거 알아요.”
“응? 꿈이라니?”
“이거 지금 꿈인 거 안다구요! 내 다리가 이렇게 멀쩡히 붙어 있잖아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아요!”
“선우야, 지금까지도 충분해. 넌 충분히 최선을 다했어. 그만하고 집에 가자.”
“아니야! 여기선 못 끝내! 내가 꼭 찾아내고 복수 할거야!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 꼭 복수하고 말거야!”
“선우야… 위험해. 넌 할 만큼 다 했어. 엄마, 아빠 말 들어. 이제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오렴.”
“아니야!!! 아니야!!! 아아아아악!!!!”
선우는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눈을 뜨니 조형사의 얼굴이 보였다. 현실에서도 소리를 쳤는지 조형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선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선우야, 괜찮니? 너 땀을 이렇게 흘리고…”
“어? 형사님? 벌써 오셨어요? 지금 몇 시에요?”
“응, 새벽 5시 정도 됐어. 내가 아는 친구 중에 작은 의원을 하는 친구가 근처에 있어서 임시방편으로 치료하고 왔어. 몸은 괜찮아?”
“예, 괜찮아요. 그냥 악몽을 좀 꿨어요…”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고 나한테 맡겨.”
“예, 알겠어요. 고마워요, 형사님.”
“고맙긴 무슨. 배고프지? 일단 이거 좀 먹자.”
조형사가 삼각김밥과 편의점 음식을 잔뜩 사왔다. 네 명은 각자 배를 채우고 휴식을 취했다. 한 시간 정도 후에 움직이기로 하고, 선우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 때 호진이 선우에게 다가왔다.
“뭐 하나 말해도 될까?”
“응, 뭔데?”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호진은 선우에게 뭔가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선우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고 한 참 동안 둘은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이정도면 괜찮은 것 같네.”
한 참 대화를 나눈 후, 선우가 말했다.
“그래, 그럼 각자 파트너한테 역할 공유하고, 슬슬 나갈 준비하자.”
호진이 선우의 말에 답했다.
그렇게 넷은 또 둘 둘로 쪼개져 대화를 나눈 후,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문을 여니 어제 밤 들어왔을 때 와는 다르게 밝은 햇살이 눈부시게 사방을 비추고 있었다. 네 명의 눈이 자연스레 찌푸러졌다. 그러나 넷의 입가에는 묘하게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