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성은 경찰서를 나와 어디론가 급하게 차를 몰았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어떤 생각에 몰두하는 듯 보였다. 잠시 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야, 어떻게 됐어?” 살짝 높은 톤의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려왔다.
“음… 일단 경찰은 맞는 것 같아.”
“응? 진짜? 그럼 어떡해. 우리 큰일난 거 아니야?”
“큰일날 게 뭐 있어. 우리가 한 게 뭐 있다고.”
“걔들이 뭔가 냄새를 맡은 거 아냐?”
“아니라니까. 왜 이렇게 겁이 많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서 나쁠 게 뭐가 있어.”
“걱정 마. 일단 우리가 한 일은 모르는 눈치야. 그냥 떠보려고 부른 거 같아. 우리는 계획대로 휴가 좀 갔다 오자. 이제 잠깐 비우는 게 좋을 것 같기는 해. 그리고 우리 돈도 받아야 되니까.”
“응, 알겠어. 그 분들한테 연락해볼게.”
“그래. 아, 그리고 그 아저씨는 경찰이 맞는데 그 때 같이 왔던 사람은 좀 수상해.”
“같이 왔던? 아, 그 장애인XX? 그치? 나도 좀 그랬어. 그런 병X이 무슨 경찰이야.”
“응. 분명히 경찰은 아닌 거 같긴 한데,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또… 아무튼 뭔가 기분이 좀 그래. 그 눈빛…이 재수없어.”
“재수없으면 한 번 작업할까? 엄청 쉬울 거 같은데? 다리도 없어서 벌레처럼 막 기어 다닐 거 아니야. 하하, 생각만 해도 웃기네.”
“일단 지금은 네 말 대로 몸 좀 사려야 될 거 같아. 그 때 썼던 칼 같은 건 다 버렸지?”
“응, 걱정 마. 그 때 너가 시키는 대로 알코올로 싹 씻고 바닷가 가서 다 던져버리고 왔어. 근데 알코올로 닦으면 도움이 돼?”
“혹시 몰라서 하라고 한 거야. 어차피 바다에 던지면 못 찾아. 그 조그만 칼을 어떻게 찾아. 그게 뭐 특이한 제품도 아니고 기성품인데. 차 블랙박스는 끄고 갔다 왔지?”
“예, 예. 분부대로 했습죠.”
“좋아. 그럼 우리 만나기로 한 데서 만나자. 나는 지금 가고 있어.”
“알겠어, 나도 바로 출발할게.”
“응 누구 따라오는 사람 없나 주위 잘 살피면서 와.”
“예, 알겠습니다요.”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남자는 어느 한적한 산골 마을에 다다랐다. 그리곤 능숙하게 산 속으로 난 길로 차를 밟았다. 그리곤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간이 좀 지난 후, 어두워질 무렵 또 다른 차 한 대가 불을 밝히며 잠시 나타난 후, 그 역시 어두운 산길로 이내 사라졌다. 산 속엔 어둠과 적막만이 남아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선우의 차가 경찰서로 들어섰다.
“형사님, 저 왔어요.”
“응, 잘 지냈어?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셔?”
“예, 일단 너무 안 들어가면 걱정하시니까 어쩔 수 없이 일주일 있다 왔어요.”
“응, 잘했다. 사실 이제부터 나한테 맡기고 넌 쉬어도 되는데.”
“아니에요. 이 사건을 해결해야만 제가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얼른 해결해버리자. 이제 다 됐겠지?”
“그럼요. 이제 충분히 저희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에요.”
“그래. 네 예상대로 그 놈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더라. 주변에 물어보니 가끔 둘이 사라진 대. 어디를 놀러가는지 마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하더라고. 좀 알아봤어?”
“음… 글쎄요…”
“응? 뭐야? 그거 때문에 집에 간 거 아니야?”
“하하, 장난이에요. 당연히 알아봤죠. 그 위치 추적기가 생각보다 성능이 좋던데요?”
“오, 그래서. 어디야?”
“XX산이요.”
“XX산? 거기에 뭐가 있다고?”
“글쎄요. 일단 가보면 알겠죠? 출발할까요?”
“그래, 준비 좀 하고 출발하자. 점심은 먹었니?”
“형사님은 맨날 밥타령이세요. 하하.”
“한국인은 밥심이야. 속을 든든하게 먹어줘야 일이 또 잘 되지.”
“알겠습니다. 그럼 밥 든든하게 먹고 출발 하실까요?”
둘은 조형사의 의견대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을 국물이 우유처럼 뽀얀 설렁탕에 든든히말아 먹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지도를 보고 차를 달린 지 1시간도 더 지났다. 아직 목적지는 절반 정도 더 남았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던 선우는 터널을 지나기 전 창 밖으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검정색 형태가 터널 입구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아지랑이인가?’
대수롭지 않게 그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던 선우는 갑자기 너무 놀라 심장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당황스러워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선우의 시선은 옆 자리의 조형사에게 향했다. 그는 자는 건 아니었지만 눈을 살짝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터널 입구에 다가갈수록 선우의 손의 떨림이 심해졌다. 너무 떨어 운전대를 제대로 잡을 수조차 없었다. 그에 따라 차가 잠깐 기우뚱 했다. 그러자 조형사가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그리곤 옆자리에서 핸들을 잡으며 선우에게 소리쳤다.
“선우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 아… 저기 옆에…”
“응? 옆에 어디? 일단 운전대 잡아. 위험해. 옆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저기 터널 입구에요.”
“응? 뭐 말하는 거야?”
“저기 옆에 사람이 서 있잖아요. 안 보이세요? 으아!!”
선우는 터널 입구를 통과할 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터널을 지나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조형사는 바로 나오는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선우야, 아까 옆에 뭐가 있다고 그렇게 사시나무 떨 듯한 거야.”
“형사님…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이셨어요?” 선우는 조금 진정이 된 듯 조형사의 말에 대답했다.
“응, 뭐가 보였는데?”
“처음엔 검정색 형체가 아른거려서 아지랑이인 줄 알았어요. 제가 눈이 나빠졌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점점 가까워지자 그 형체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건 바로… 사람이었어요. 검정색 옷을 입고, 얼굴은 하얗게 창백한…”
“사람? 진짜 사람 맞아? 사람이 왜 거기 서 있어? 말도 안돼. 내가 봤을 땐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데 그건 분명 사람이 맞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핏기가 하나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 세상사에 전혀 관심 없어 보이는 그 허무한 표정… 분명해요…”
“선우야, 너가 지금 너무 긴장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아. 몸이 안 좋으면 그냥 나한테 맡기고 쉬어. 걱정된다.”
“음… 그런 거 아니에요. 분명 저는 봤어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선우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말하고 나면 뭔가 인정을 해버리는 것 같아서, 그럼 앞으로의 일이 더 두려워질까 꺼려져서였다.
“응? 뭔데, 말해봐. 괜찮아.”
“음… 말하려고 하니 좀 무서운데요. 형사님 제가 사고 나던 날 밤에… 그 날에도 비슷한 걸 봤어요… 그 때는 처음이라 잘 못 봤겠지 하며 그냥 지나쳤는데… 혹시… 혹시나…”
선우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몸이 다시 떨려왔다.
조형사는 그런 선우를 힘껏 끌어안았다. 선우는 따듯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았다.
“선우야, 무서워해도 괜찮아. 넌 아직 한참 그럴 나이야. 무서운 게 당연한 거야. 그래도 걱정 마. 그때 랑 달리 지금은 둘이잖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그리고 반대로 생각하면, 네가 본 것들이 너를 아프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 너에게 조심하라고 미리 알려주려 온 것일수도 있어. 어찌 보면 너의 수호천사일 수도 있는 거야.”
“저렇게 기괴하게 생겨서, 이렇게 무섭게 나타나는 수호천사가 어디 있어요?
선우는 살짝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아까 와는 다르게 마음이 많이 안정이 되었다.
“어!? 선우야? 너 그거 알아? 너희 나이 애들도 아려나?”
“예? 뭐요?”
“울다가 웃으면…”
“아, 뭐에요. 정말! 하하.”
“하하 기분 좀 전환됐으면, 출발할까? 아니면 안 가도 돼. 아까 말한대로 너는 언제든 네가 원할 때 그만 둘 수 있어.”
“아니에요.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죠. 그게 제 성격이에요. 저는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아요. 평생 이렇게 살아왔어요.”
“평생? 그럼 얼마 안 되는 거 아니야? 하하. 농담이고, 장하고 기특하다. 그렇게 쭉 달려가보자.”
“예, 형사님!”
둘의 우정이 조금 더 깊어지고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달려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르고 있었다.